[Dear My Walking] 세계 최고 연안습지 전남 순천만습지, 머무는 것만으로 힐링~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08.01 16:13:26
수정 : 2022.08.01 16:14:01
“저~기 저기 날개 커다란 게 흑두루민가보네. 여기가 흑두루미가 유명한 곳이잖아.”
무진교에 올라서자마자 아버지가 큰 소리로 외친다. 너른 갈대밭 사이 갯벌과 물가에 하이얀 새 서너 마리가 띄엄띄엄 자리한 품이 마치 한 가족 같다.
“이이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소리부터 친다니까. 흑두루미는 검은색이지. 하얀 건 백로고.”
옆에 있던 중학생 딸이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 아빠. 흑두루미는 겨울 철새고 지금 저건 백로가 맞아요.”
살짝 뻘쭘해진 아버지가 이번엔 갈대숲을 가리키며 다시 큰 소리로 외친다.
“저어기 갈대는 왜 누우런 줄 알아? 저건 묵은 갈대거든. 여기 파릇파릇한 건 새로 올라오는 갈대고. 요건 몰랐지?”
(동시에) “오오~!”
섭씨 30도를 넘긴 여름 한낮, 평일 오후에 순천만습지를 찾았다. “이곳만큼 고즈넉한 여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한 여행 작가의 꾐에 빠져 어려운(?) 결심을 했다. 어려움의 반은 무더위요 반은 서울에서 족히 5시간은 걸리는 거리였지만, ‘고즈넉한 여름’이란 단어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그의 말마따나 무진교를 넘어 펼쳐진 갈대숲과 습지 곳곳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 반은 가족이요 반은 연인이었는데, 급히 우산으로 따가운 볕을 가렸지만 땀 닦으며 걷는 느릿한 발걸음은 그야말로 여유로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곳은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버킷리스트다. 그것도 여름이라면 더더욱.
아, 앞서 누런 갈대가 묵은 갈대란 아버지의 말은 사실일까. 마침 곁에 있던 해설사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어보니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데크 쪽 갈대는 매년 1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베어내요. 멀리 누런 곳은 베어내지 않은 곳이죠. 그러니까 푸른 건 새로 올라오는 갈대고 누런 건 작년에 다 자란 갈대예요. 서로 어우러지니 더 운치 있죠?”
▶가만히 앉아 귀 기울이면 들리는 습지 생태계
순천만습지는 전라남도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있는 만에 자리했다. 지리적인 위치 덕에 순천시, 보성군, 고흥군, 여수시와 접해 있는데, 덕분에 일단 순천만습지에 도착하면 전라남도 유명 관광지로의 이동이 수월하다. 그것만? 지도상에선 멀기만 한 부산과의 거리도 2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이곳은 5.4㎢(160만 평)의 빽빽한 갈대밭과 끝이 보이지 않는 22.6㎢(690만 평)의 광활한 갯벌로 이루어져 있다. 숫자상으론 체감이 힘들지만 실제 습지에 들어서면 끝을 가늠하기 힘든 곳까지 갈대가 뻗어 있다. 땅(갯벌)엔 그 수를 가늠하기 힘든 수중 생태계가 분주하고 하늘엔 230여 종의 철새가 정해진 계절에 따라 만을 찾는다.
갈대밭을 가른 데크길을 걷다 잠시 벤치에 앉아 귀를 기울이면 이곳이 바로 내 집이라는 듯, 조용히 울부짖는 이름 모를 생명체가 여럿이다. 멋들어진 날갯짓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던 백로도 가끔 땅에 내려앉아 무언가를 입에 물고 다시 날아오른다. ‘갯벌은 한없이 내어준다’는 말, 결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순천만습지 해설사의 말을 빌리면 순천만 철새는 우리나라 전체 조류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그런 이유로 2003년 습지보호지역, 2006년 람사르협약에 등록됐고, 2009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41호로 지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해설사의 설명 한마디.
“이곳 갯벌에선 농게와 칠게, 짱뚱어 같은 생물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순천만에 짱뚱어탕이 유명합니다. 아 저기 저 하늘을 날고 있는 새요? 저건 백로네요.”
아, 딸의 말이 맞았다.
순천만습지에 살고 있는 칠게.
▶최고의 포토 스폿, 용산전망대
흔히 순천만습지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남해안바다와 너른 갯벌의 조합은 용산전망대에 올라야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데크를 따라 갈대숲을 감상하고 난 뒤 출렁다리를 넘어 오르게 되는 용산은 아래에서 보면 멀기 만한 봉우리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빠른 걸음으로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동산이다. 등산로를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 초입부터 전망대까지 야자매트와 데크가 깔려있는데, 경사가 심하지 않아 운동화가 아니더라도 튼튼한 샌들이라면 충분히 오를 만하다.
산행을 즐기는 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여름산은 우거진 숲 아래 시원한 그늘을 품고 있다. 그 그늘을 밟고 천천히 걷다보면 간간이 갯벌이 고개를 내민다. 고개 사이에 놓인 나무데크도 볼거리. 물론 그늘로 한여름 더위를 막는 건 불가능한 일. 마실 물 한 병은 필수다.
용산전망대에 서면 남해안의 바다와 섬, 순천만습지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곳에 와 전망대에 오르지 않는다면 절반만 즐기고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침 전망대에 계신 해설사에게 바닷물의 결이 왜 다른 거냐고 물으니 또다시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은 만이에요. 썰물과 밀물이 시간에 따라 다르죠. 밤에 들어오는 물이 더 많습니다. 바닷물의 결이 다른 건 바로 그 밀물과 썰물의 표시예요. 오늘 몇 번의 밀물과 썰물이 오갔는지 선을 보면 알 수 있죠. 갯벌의 붉은 기운이요? 아, 저건 염분 때문에 붉어진 칠면초예요. 갈대가 왜 푸르고 노란지는 들어보셨나요? 아, 그럼 이곳 갈대가 수제 갈대인 건 아세요? 순천만습지의 갈대는 주변에 사는 분들이 직접 손으로 베어내고 있어요. 기계를 쓰면 그 먼지가 관광객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주거든요. 이곳이 터전인 분들에겐 또 다른 일자리가 되는 셈이죠. 여름이라고 가만히 있지 말고 땀 흘려 이런 곳에 올라와보세요. 아마, 세상이 달라 보일 겁니다. 그렇죠?”
▷순천만습지 추천 코스
-도보 40분(편도 1.5㎞)
·입구→흑두루미 소망터널(or 람사르길)→무진교→갈대숲 탐방로
-도보 2시간(편도 3㎞)
·입구→천문대→순천만 자연생태관→자연의소리 체험관→무진교→갈대숲 탐방로→용산전망대
▷생태체험선
순천만습지를 배로 돌아볼 수 있는 코스. 성인 7000원, 어린이 2000원의 요금이 든다. 소요시간은 왕복 약 30분(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