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파타고니아 | “유행을 팔지 않습니다, 버리지 말고 입으세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사업하는 ‘파타고니아’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07.11 16:23:02
수정 : 2022.07.11 16:23:27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선뜻 손이 가진 않는다. 티셔츠 하나에 8만~9만원, 반바지는 10만원, 유행하는 플리스라도 집으면 20만~3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살짝 고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브랜드, 그런 고심을 알고 있다는 듯 ‘우린 유행을 팔지 않으니 이 재킷을 사지 말라’고 광고까지 한다.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팔아야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 자사 제품을 사지 말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2011년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때 ‘파타고니아(Patagonia)’가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란 광고 얘기다. 폭발적인 소비량을 기록하는 블랙프라이데이에 역설적으로 소비를 지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이 광고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파타고니아는 이후 2016년 블랙프라이데이 동안 발생한 전 세계 매출 100%를 풀뿌리 환경단체에 기부했다. 2019년엔 블랙프라이데이부터 한 달간 환경단체에 기부할 1000만달러 모금 캠페인을 펼쳐 17일 만에 모금액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잠깐, 이 기업, 왜 이러는 걸까.
파타고니아 옛 본사.
▶오직 지구를 위해…
파타고니아는 등반 장비를 만드는 작은 회사로 시작해 엔진이 필요하지 않은 클라이밍, 서핑, 트레일러닝, 산악자전거, 스키, 스노보드, 플라잉 낚시 등의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이 기업은 1991년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는 사명을 선포했다. 쉽게 말해 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고 보호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그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 해결과 지속가능한 의류 생산, 유통에 앞장서왔다. 뜻을 함께하는 수많은 단체와 협회, 민간단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매년 매출의 1%를 전 세계 환경단체에 후원해왔다. 지금까지 누적 지원 금액만 우리 돈으로 약 1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9년엔 27년 만에 사명을 변경했다. 새로운 사명은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 지구를 위해 사업을 한다고 아예 작정하고 밝힌 셈이다. 파타고니아 측은 “이 사명은 파타고니아 전 직원과 업무의 최우선 지침”이라며 “사업적으로는 환경위기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 실질적인 해결 방안에 초점을 맞춰 행동한다”고 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파타고니아 글로벌.
그렇다면 이 기업, 얼마나 잘나가는 기업일까. 파타고니아는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등반가이자 서퍼인 이본 쉬나드가 친환경적인 제품 생산이 수익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교훈에 착안해 설립했다. 2019년 기준 매출액은 7억달러. 미국에선 노스페이스, 콜롬비아스포츠와 함께 3대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로 꼽힌다.
2013년 합작형태로 국내에 진출한 파타고니아코리아는 5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전 세계 파타고니아 지사 중 최단기간 기록이다. 지난 회계연도(2021년 5월 1일~2022년 4월 30일) 기준 매출은 650억원. 전년 대비 15% 성장했다. 전국의 매장 수는 50개. 점포당 평균 10% 이상의 성장세다. 특히 팬데믹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진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22%(2018년 매출 355억원, 2019년 428억원, 2020년 562억원)나 된다.
▶이미 10년 전 비코프(B-Corp) 인증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기업의 화두로 떠오른 시대에 파타고니아는 늘 본받을 만한 기업 사례로 회자되곤 한다. 최근 인간개발연구원 주최로 열린 ‘HDI ESG 서울 포럼’에서도 ESG 경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국내외 사례로 파타고니아가 소개됐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김광현 파타고니아코리아 팀장은 “파타고니아는 사업을 위해 환경보호를 하는 다른 기업과 달리 지구 환경보호를 위해 사업을 하는 방식”이라며 “목적 자체가 ESG에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비코프(B-Corp) 인증도 이미 10년 전인 2012년 1월 3일 인증 마크를 획득했다. 미국의 비영리기관 비랩(B Lab)이 구축한 비코프는 기업 경영 전반과 사회·환경적 성과를 평가한 뒤 수여하는 사회적 기업 인증이다. 평가 항목과 측정 기준이 까다롭고, 3년마다 갱신이 필요해 유지 또한 어려워 신뢰도가 높다.
실제로 파타고니아는 수년 전부터 다운재킷을 만들 때 학대받는 거위 털을 쓰지 않고 도축된 거위 털만 사용해 제품을 만든다. 서핑 잠수복을 만들 때에도 석유 원료가 아닌 식물에서 추출한 원료를 이용한다. ‘친환경 제품이라고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란 생각은 오산이다. 고객에게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는 게 파타고니아가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기준이다. 이러한 친환경적 사업 모델은 여타 기업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스포츠브랜드 나이키가 유기농 순면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패스트패션 브랜드 H&M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아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환경에 방점을 둔 사업과 캠페인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버려진 농사용 보를 철거해 건강한 강의 흐름을 되찾는 ‘푸른심장’과 제주도 난개발 반대의 뜻을 담아 달리는 12명의 트레일 러너들을 조명한 ‘Run to Save Jeju’, 송악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제주 지역 환경단체들과 함께 진행한 ‘송악산 그냥 이대로 놔둡서’는 파타고니아코리아가 진행 중이거나 진행한 캠페인이다.
파타고니아 코리아, ‘Run to Save Jeju’ 캠페인.
▶트렌드에는 관심 없는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유행을 팔지 않습니다(Patagonia Doesn’t Sell Trends)’.
파타고니아코리아가 올 6월 국내에서 단독으로 전개한 캠페인의 슬로건이다.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가 오히려 그런 것엔 전혀 관심 없다니. 이 해괴한 표어의 진심은 국내 의류 산업에 던지는 파타고니아의 메시지에 있다. 최우혁 파타고니아코리아 지사장은 “의류 산업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줬지만 동시에 매년 막대한 산업 폐기물을 발생시키고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오염원의 10%를 배출한다”며 “파타고니아를 포함해 지구상 어떤 의류 브랜드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의류 산업 전체가 유행을 위한 패스트패션이 아닌 지속가능한 생산방식을 빠르고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고 취지를 전했다.
이를 위해 파타고니아는 지속가능한 소비를 위한 12가지 기준을 제시하며 환경과 사회에 책임 있고 윤리적인 소재와 제품, 생산방식(유기농, 리사이클, 공정무역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실생활에서 직접 옷을 수선할 수 있는 ‘리페어 튜토리얼(Repair Tutorial)’을 공개해 소비자의 동참도 이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는 활동 중 하나는 ‘원웨어(Worn Wear)’ 캠페인이다. 새 옷을 사기보다 이미 입고 있는 옷을 수선해 오래 입자는 파타고니아의 대표적인 환경 캠페인이다. 전 세계에 ‘Better than New’, 즉 ‘새 옷보다 나은 헌 옷’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다양한 형태로 40여 년간 진행돼왔다. 일례로 칠레, 아르헨티나, 중국 등지의 매장에선 정기적인 수선 이벤트를 진행했고, 한국에선 더 이상 필요 없는 옷을 수거해 자선 판매를 하거나 불필요한 장비를 수거해 매장 디스플레이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2019년엔 기존 수선 서비스 외에 직접 찾아가는 수선 서비스를 위해 특별히 ‘원웨어’ 차량도 제작했다. 한옥을 모티브로 설계된 이 차량은 현장에서 각종 수선작업이 가능하도록 특수 장비와 기능이 탑재됐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로 재봉기에 전원을 공급하는 친환경적 면모까지 갖췄다. ‘원웨어’ 차량은 전국 각지의 파타고니아 매장과 아웃도어 스포츠 행사 현장 등을 순회할 예정이다.
티-사이클 컬렉션.
▶환경에 진심, 스토리가 있는 제품
업계 전문가들은 “환경이 목적인 이 기업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건 제품의 품질과 제품에 담긴 스토리”라고 말하곤 한다. 국내 패션 업계의 한 디자이너는 “파타고니아가 환경보호를 위해 아웃도어 의류에 사용하는 원단에는 이미 최첨단 기술이 내포돼있다”며 “환경보호를 위해 선택한 재료가 스토리까지 얹어주며 소비자에게 확실히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베이를 통해 파타고니아의 중고 의류를 판매한 소비자가 그 돈으로 다시 파타고니아의 새 제품을 살 가능성이 높고, 친환경 제품이란 걸 강조한 결과 소비자들은 비교적 높은 파타고니아 제품의 가격을 수용한다”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분석도 흥미롭다. 제품을 구입하는 수많은 소비자들이 파타고니아가 진행하거나 후원하는 환경 캠페인을 통해 기업의 경영철학과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파타고니아코리아의 친환경 캠페인도 어쩌면 이러한 성과에 기인한다. 2018년 1월 환경 관련 전담팀인 환경팀을 신설한 파타고니아코리아는 매년 매출액의 1%로 풀뿌리 환경단체를 지원하는 ‘지구를 위한 1%’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그동안 녹색연합, 여성환경연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등 환경단체들을 지원했다.
지구를 되살리기 위한 파타고니아의 사업강력한 내구성 (Built to Endure)
파타고니아는 ‘Worn Wear’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들이 자사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비즈니스에 대한 성찰 (Clean Up Our Own Act)
파타고니아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정무역 인증 시스템을 생산 공장에 도입, 생산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높이고 각종 복지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공정무역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자연 환경 보호 (Defend Public Lands)
파타고니아는 수십 년간 강과 바다, 산과 숲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을 지키고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와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며,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지역 사회를 위한 싸움 (Fight for Our Neighbors)
파타고니아는 전 세계에서 물과 땅, 공기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환경단체들을 지원한다. 지구에 내는 세금이라 부르는 ‘지구를 위한 1%(1% For The Planet)’를 통해 매년 매출의 1%를 비영리 환경단체에 기부한다. 또한 파타고니아의 온라인 플랫폼인 파타고니아 액션 워크(Patagonia Action Works)를 통해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사람들과 지역 환경단체를 연결하고 있다. 파타고니아 매장은 매장이 있는 지역의 환경단체를 기부금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원한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싸움 (Combat the Climate Crisis)
파타고니아는 대기 중 탄소 제거를 위해 전 세계 파타고니아의 직영 매장, 사무실, 물류센터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청정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 또한 건강한 식재료와 천연 원단의 원료를 생산하면서 탄소를 땅속으로 흡수하는 ‘재생 유기 농업(Regenerative Organic Agriculture)’에 투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