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Dining Restaurant] 농심의 첫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 코스로 즐기는 채식의 여유, 맛 좋은 콩고기 스테이크까지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07.08 14:53:30
수정 : 2022.07.15 17:32:08
“식물성 대체육? 그거 푸석하거나 꼬들거리는 콩고기 아니에요?”
비건(Vegan·채식주의자)을 얘기할 때 백이면 백, 되돌아오는 반응은 ‘맛없는’ 콩고기 아니냐는 반문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분위기가 달라졌다.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고기 대신 식물성 대체육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 분위기가 달라지니 전 세계 식품 업계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2017년에 3만5300여 개였던 전 세계 식물성 대체육 식품 수는 지난해 4만6600여 개로 늘었다. 국내 시장 상황도 마찬가지. 식품 업계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대체육과 비건 제품을 내놓으며 아예 비건 식품 브랜드를 론칭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식물성 대체육은 도대체 무엇일까. 주로 콩 단백질이 원료인 대체육은 모양과 식감을 고기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식품이다. 식물성 원료로 완성됐기 때문에 동물이 배출하는 막대한 양의 탄소를 줄일 수 있어 이른바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럼 식물성 대체육이 정말 육류 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일단 모양은 고기와 구별되지 않는다. 정말 똑같다. 고기 고유의 식감을 구현하는 건 브랜드별로 숙제라지만 “이게 바로 대체육”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깜빡 속는 제품도 있다.
국내 대기업 중 식물성 대체육과 비건 등의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농심’이다. 지난해 말 비건 브랜드 ‘베지가든’을 론칭한 후 현재 식물성 다짐육과 카레, 소스·양념류 등 40종의 제품을 갖추고 있다. 지난 5월 27일엔 첫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도 개장했다. 단일 코스의 파인다이닝을 콘셉트로 내세운 이 레스토랑에선 점심엔 7개(5만5000원), 저녁엔 10개(7만7000원)의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그중 3개 요리에 대체육이 사용된다. 과연 농심이 선보인 비건 문화는 어떤 맛일까.
평일 오후 점심시간에 맞춰 잠실 롯데월드몰 6층에 자리한 ‘포리스트 키친’을 찾았다. 초록색과 나무 소재를 사용해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온 듯 완성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오픈형 주방, 셰프가 직접 서빙하는 바 테이블
34석, 171.5㎡의 공간은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꽤 넓었다. 통창으로 마감된 안쪽 벽면에 석촌호수가 펼쳐진 것도 시원했다. 무엇보다 오픈형 주방 앞에 놓인 ㄷ자형 바 테이블이 멋스러웠다. 바로 그 바(Bar)에 앉으니 작은 봉투 안에 명함 크기의 카드가 놓여있다.
“식탁 위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비건 컨템퍼러리 다이닝 forest kitchen은 지역 농가와의 협력을 통해 공수한 우수한 품질의 제철 채소를 사용합니다.”
-총괄 셰프 김태형
봉투는 식사시간 동안 마스크를 넣어두는 이곳만의 에티켓이고 카드는 이곳의 콘셉트와 비전을 설명하는 일종의 안내문이다. 작지만 세심한 배려는 어쩌면 파인다이닝의 기본이자 미덕이다. 비싸지만 기꺼이 지불하고 코스요리를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각각 7개와 10개의 단일 코스를 운영하는 포리스트 키친은 주문시간이 길지 않다. 코스요리와 궁합이 맞는 와인 페어링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음료를 선택할 것인지 정도. 점심시간의 코스요리는 ‘작은 숲’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코코넛’ ‘뿌리채소’ ‘흑마늘’ ‘세모가사리’ ‘루바브’로 진행된다. 주재료의 이름에서 딴 이 코스에 저녁엔 ‘초당옥수수’ ‘야생버섯’ ‘참외’가 추가된다.
재미있는 건 테이블 위에 각 잡고 꽂혀있는 카드였다. 요리이름과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쓰인 각각의 카드는 코스의 순서대로 정리돼 있었다. 그러니까 요리가 나오면 한 번씩 확인하고 뒤로 넘기면 되는 식이다. 일례로 이 집의 대표 메뉴이자 코스의 첫 요리인 ‘작은 숲’은 ‘도시적인 이미지의 아크릴 위에 편백나무 향과 함께 한 폭의 숲을 만들고 제철 채소를 이용하여 준비한 작은 한입들, 대리석 자재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콩 커스터드, 사과나무에 꽂은 콩꼬치를 담았습니다’라는 설명이 담겨있었다.
아, 여기서 팁 하나! 바 테이블에 앉으면 셰프가 직접 서빙해주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셰프의 요리 설명은 덤이다.
▶감칠맛 없어도 구미 당기는 담백한 맛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요소는 눈으로 보는 담음새, 귀에 들리는 씹는 소리와 대화, 코로 전해지는 향, 여기에 씹는 맛이 더해져 완성된다. 7가지 코스 모두 나름의 콘셉트와 스토리가 훌륭했다.
특히 대체육을 사용한 스테이크인 ‘흑마늘’은 독특한 식감이 이채로웠다. 언뜻 채끝살 같기도 하고 부채살 같기도 한데, 맛은 강하지 않고 담백했다. 흑마늘을 이용한 소스로 감싸 색은 마치 초콜릿 같았지만 달지 않고 썩 잘 어울렸다. 농심이 대체육 제품에 쓰는 재료와 같은 재료로 만들었다는데, 콕 집어 말하지 않으면 어느 부위려니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살짝 놀랍기도 했다. 바 테이블과 마주한 오픈형 주방에는 김태형 총괄셰프와 4명의 셰프들이 바삐 움직인다.
여타 레스토랑의 주방과 다른 점은 화구 대신 인덕션을 들이고 양식에 필수라는 버터와 우유, 계란을 쓰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제대로 맛을 낼 수 있느냐고? 그건 직접 확인해보시길. ‘포리스트 키친’은 100%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애플리케이션 ‘캐치테이블’로 예약할 수 있다. 아참, 한 가지, 여타 음료 메뉴가 부족하다는 건 아쉬웠다. 와인리스트가 12종뿐인 것도 칵테일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그랬다.
Interview|김태형 포리스트 키친 총괄셰프
파인다이닝은 경험을 줄 수 있는 공간
농심의 첫 비건 레스토랑 ‘포리스트 키친’을 이끄는 이는 16살에 미국 유학을 떠나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CIA에서 수학한 김태형 셰프다. 김 셰프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인 ‘더 모던’과 1스타인 ‘링컨 리스토란테’ 등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실무 수습(엑스턴십) 과정을 밟았고, 2015년 졸업 후 유학생 취업 비자(OPT)를 받아 요리 경력을 이어갔다. 비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이즈음. 이듬해 귀국한 김 셰프는 꾸준히 채식 요리에 대해 연구하며 <내 몸이 빛나는 순간, 마이 키토 채식 레시피>란 책을 내기도 했다.
●비건 메뉴를 고민한다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인데요.
○지난해 9월 말에 합류했는데 쓸 수 있는 재료도 많이 한정돼 있어서 더 고민스러워요.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개장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됐는데요.
○어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오시는 분들의 성향이나 평가, 트렌드도 살피고, 메뉴 개발도 하고 있는데, 원래 의도한 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원래 의도한 바라면.
○처음엔 다이닝을 하겠다는 전제조건을 두기 전에 비건과 논비건, 두 부류를 모두 사로잡을 수 있는 키워드를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지금까지 레스토랑을 찾으신 분들 중 비건보다 논비건의 비중이 훨씬 높거든요. 그중엔 비건 레스토랑인지 몰랐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겐 엄청난 과찬이죠.
●2040세대를 겨냥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부모님과 함께 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제는 노년의 부부가 함께 오셨더군요. 어떻게 알게 되셨냐고 했더니 손자가 예약을 해줬다고, 자주 올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제철 채소 등이 주재료인데, 코스는 시즌제로 운영되는 겁니까.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우선 가을 시즌의 코스를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소개한 메뉴 내용에 제철이란 단어가 있어요. 계절에 따라 바로 그 수준의 음식으로 여러 가지가 바뀔 겁니다.
●재료를 선별하는 기준이 있을 텐데.
○우선은 공급이 꾸준히 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최상의 식재료, 셋째는 제철이어야 합니다. 또 너무 단맛만 있는 채소보다 달고 짜고 시고 감칠맛 나는 채소들로 코스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찾는 분들이 어떤 점을 알아봐줬으면 싶은가요.
○사실 국내에서 비건을 전문으로 하는 파인다이닝은 포리스트 키친이 처음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캐주얼과 파인다이닝의 차이가 뭐냐는 거예요. 다이닝은 고객에게 경험을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메뉴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있고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죠. 그러한 세심함을 놓치지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