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LVMH | 팬데믹에도 꺾이지 않은 상승세, 아르노의 세계 최대 명품왕국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06.13 15:29:11
수정 : 2022.06.13 15:30:23
세계적인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는다. 소속 브랜드에 대한 애정도 한몫하고 있지만 실적부터 지배구조, 승계구도까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과연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쌓아올린 명품왕국은 어떤 씨줄과 날줄을 갖추고 있을까. 팬데믹에도 꺾이지 않는 성장 곡선은 계속 우상향할 수 있을까.
올 1월 발표된 LVMH의 지난해 실적이 팬데믹 이전의 실적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LVMH는 지난해 642억2150유로(약 86조원)를 벌어들이며 2020년 대비 44%,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20%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순이익만 따져보면 전년 대비 증가폭이 서너 배에 달한다. 120억유로(약 16조원)를 기록한 지난해 순이익은 2020년보다 156%, 2019년보다 68%나 늘었다.
LVMH는 이번 ‘V자 반등’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부유한 고객들의 명품 시장 복귀를 꼽았다. 특히 주력 사업인 패션과 가죽 패션의 매출이 전년 대비 46%, 2019년 대비 42% 늘어난 308억9600만유로(약 41조4800억원)를 기록했다. 여기에 시계와 보석 매출도 전년 대비 167%나 늘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매출을 견인한 일등공신으로 티파니앤코를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파리 샹젤리제의 루이비통 매장.
아르노 회장은 “약 1년 전 그룹에 합류한 티파니는 미국 뉴욕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새 단장을 위해 문을 닫았음에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전했다. 스위스 제네바의 레일앤드시(Reyl&Cie) 최고 투자책임자 세드릭 오자스만은 “티파니의 성공적인 실적은 주얼리를 향한 소비자들의 열망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들은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 각국의 봉쇄 조치가 길어지면서 브랜드 매장들이 문을 닫았음에도 명품을 향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LVMH에 대해선 “관광객 대신 현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마케팅을 벌이면서 여타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평가했다.
▶인수합병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
‘1위 루이비통, 2위 샤넬, 3위 에르메스, 4위 구찌….’ 2021년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나타내는 순위다. 전 세계 90개국에 진출한 시장조사기업 칸타(KANTAR)가 발표했다. LVMH와 케링(Kering), 리치몬트(Richemont) 등 명품 시장을 좌우하는 럭셔리 그룹에 속한 브랜드가 5개, 에르메스, 샤넬, 프라다, 버버리, 롤렉스 등 독립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브랜드 5개가 이름을 올렸다. 그중 독보적인 1위는 ‘루이비통’이다. 무려 757억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2위 샤넬보다 287억달러나 앞선다.
업계에선 “코로나19발 경기 불황에도 공격적인 인수합병이 빛을 발했다”고 분석한다. LVMH는 2020년 11월 미국의 주얼리 기업 ‘티파니앤코(TIFFANY&Co.)’의 인수 작업에 나섰다. 인수금액이 총 162억달러(주당 135달러, 약 19조512억원)에 달하는 LVMH 사상 최대 규모의 M&A였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
이러한 LVMH의 전략은 2021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다. 지난해 2월엔 병당 100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샴페인 ‘아르망 드 브리냑(Armand de Brignac)’의 지분 50%를 매입했다. 팝스타 비욘세의 남편이자 래퍼로 활동하는 제이지(Jay-Z)가 보유한 브랜드다. 아르노 회장의 아들 알레상드로 아르노 티파니 부사장과 제이지의 친분이 인수 작업에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4월엔 7500만유로를 들여 이탈리아 브랜드 ‘토즈(Tod's)’의 지분 6.8%를 인수했다. 이로써 LVMH의 토즈 지분은 기존 3.2%에서 10%로 늘었다. 6월엔 구글 클라우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 등 주요 고객들의 온라인 체험 서비스를 강화했다. 당시 주요 외신들은 “명품에 대한 온라인 쇼핑이 늘자 LVMH가 기선 제압에 나섰다”고 전하기도 했다.
7월에는 LVMH 계열의 사모펀드 ‘엘 캐터튼’이 50년 전통의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ETRO)’의 지분 60%을 인수했다. 엘 캐터튼은 2016년 LVMH그룹과 미국 투자회사가 함께 세운 사모펀드로 인수 금액은 5억유로(약 6700억원)에 달했다. 뒤이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Off-White LLC)’의 지분 60%도 인수했다. 오프화이트는 루이비통 최초의 흑인 수석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2013년에 설립한 브랜드다. 버질 아블로는 지난해 11월, 2년간의 암 투병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LVMH는 이후 당분간 대형 인수합병은 없다고 선언했다.
▶73세 아르노, 장기 집권 전망
LVMH가 전 세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명품제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마다하지 않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경영 전략에 기인한다. 부친에 이어 건설 사업을 하던 아르노 회장은 1979년 미국 출장을 계기로 명품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1984년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던 크리스챤 디올의 모회사 부삭그룹을 인수하며 명품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9년 ‘루이비통’을 인수하며 탄생한 LVMH그룹은 1988년 ‘지방시’, 1993년 ‘겐조’, 1996년 ‘로에베’와 ‘셀린느’, 1997년 ‘마크 제이콥스’, 2000년 ‘에밀리오 푸치’, 2001년 ‘펜디’와 ‘도나 카렌’을 인수했다. 주류부문은 ‘헤네시 꼬냑’ 인수 후 브라질과 호주,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포도밭을 사들이며 명품 와인 제조에 몰두, ‘모엣 샹동’ ‘돔 페리뇽’ ‘크뤼그’ 등을 인수했다.
LVMH그룹의 성공전략은 첫째 공격적인 인수합병, 둘째 디자이너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셋째 명품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일류 브랜드 마케팅으로 요약할 수 있다. 크리스챤 디올을 인수하며 시작된 인수합병은 브랜드를 75개로 늘리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명품의 전통과 역사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인수하는 게 훨씬 시너지 효과가 높다는 아르노 회장의 판단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루이비통컵 요트대회와 유명 스포츠 스타 마케팅 등을 통한 상류사회 명품 마케팅은 지금도 유효한 성공전략 중 하나다.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비통 메종 서울 내부.
그런가 하면 지난 3월 명품 업계의 시선은 다시금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에게 집중됐다. LVMH가 CEO(최고경영자)의 정년을 75세에서 80세로 연장해 달라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해당 안건은 81.6%라는 높은 찬성률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올해 만 73세인 아르노 회장은 2030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그의 임기 연장에 대해 “후계 계획을 결정할 시간이 더 길어졌다”며 “많은 관계자들이 그의 다섯 자녀 중 한 명이 승계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르노 회장의 장수 경영 체제가 확정된 이후 그의 다섯 자녀들에 대한 후계 문제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LVMH는 두 개의 상장 회사인 크리스챤 디올과 LVMH를 중심으로 그 아래 수많은 비상장 자회사가 퍼져있다. 크게 보면 아르노 가족 그룹을 정점으로 크리스챤 디올이 중간에 지주회사로, 크리스챤 디올이 다시 LVMH의 지분을 보유하는 다층적 지분 소유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아르노그룹주식회사(Groupe Arnault S.E.)라는 가족지주회사를 포함하는 아르노 가족 그룹이 크리스챤 디올의 지분 97.5%(차등의결권을 인정받는 주식에 의거해서 의결권은 98.44%)를 보유하고 있고, 크리스챤 디올이 다시 LVMH 지분 41.25%(의결권 56.49%)를 보유하고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회장
아르노 회장은 두 번 결혼으로 슬하에 4남 1녀를 뒀다. 다섯 남매 모두 LVMH에서 일하고 있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장녀인 델핀 아르노 루이비통 부사장이 경영진에 참여한 유일한 혈육”이라며 “하지만 형제들도 유력한 경쟁상대”라고 전했다. 1975년생인 델핀 아르노는 2000년부터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현재 아르노 회장과 함께 LVMH 이사회 구성원이자 최고경영위원회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남 앙투안 아르노(1977년생)는 LVMH의 커뮤니케이션과 이미지 분야를 담당하며 2011년부터 벨루티의 최고경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1992년생인 차남 알레상드르 아르노는 여행용 가방 브랜드 리모와의 최고경영자를 거쳐 티파니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셋째 아들 프레데릭 아르노(1995년생)는 아르노 회장이 수학한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수학을 전공한 수재라고 알려졌다. 2020년 25세의 나이에 태그호이어 최고경영자로 임명돼 일하고 있다. 막내아들 장 아르노(2000년생)는 루이비통 시계 부문의 마케팅과 개발이사로 활동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건강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어떻게 진행할지 알려진 바는 없다”며 “한 가지 확실한 건 최고의 전문 경영인을 옆에 두고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며 성공적인 승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LVMH그룹에는 20년 이상 경영진으로 활동 중인 전문 경영인이 여럿이다. LVMH의 전략을 담당하는 그룹 전무이사 안토니오 벨로니, 불가리와 루이비통의 최고경영자인 마이클 버크, 개발과 인수를 담당하는 아르노 가족 그룹의 전무이사 니콜라스 바지레가 그 주인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