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재원 씨(46)는 건강상 이유로 최근 채식주의(비건)를 시작했다. ‘고기 마니아’였던 박 씨가 채식주의를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육을 사용한 음식이 많아져서다. 대체육을 재료로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은 물론 최근에는 밀키트와 편의점 간편식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진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육류 공급 차질로 가격이 오르면서 대체육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체육의 선두주자는 소위 ‘콩고기’다. 초기에는 콩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활용해서 만들었고 이어 식용 곤충을 대체육 재료로 사용했다. 최근에는 실제 동물 세포를 배양해서 만드는 배양육도 등장했다.
강력한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중심으로 대체식품 소비 트렌드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은 2019년 글로벌 대체육 시장 규모를 140억달러(약 17조2000억원)로 추산했다. 2029년엔 10배인 14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전 세계 육류 시장은 연평균 1~2% 성장에 그쳤다. 2017~2020년 연평균 78.6% 성장한 대체육 시장은 그야말로 ‘블루오션’인 셈이다.
국내에서는 채식 인구가 150만 명으로 추산된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 대체육 시장 규모는 연간 1700억~35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매년 증가 추세인데 향후 성장 가능성은 더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육류 소비 비중을 줄이기 위해 간헐적으로 대체육을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플렉시블+베지테리언)’도 증가 추세다. 2040년에는 대체육·배양육이 전체 육류 시장의 6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삼정KPMG)도 있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대체육은 전통적인 대규모 축산업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데다 반감이 커지고 있는 공장식 도축 같은 윤리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맛이나 향이 좋아지면서 꼭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대체식품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2040년 전체 육류 시장 60% 차지 전망도
대체육 시장은 초기 단계인 탓에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형성돼왔다.
영국 포워드푸딩의 ‘글로벌 푸드테크 500 기업’에 선정된 디보션푸드, 발 빠른 마케팅과 기대 이상의 맛으로 소비자들을 끌어 모은 지구인컴퍼니, 새송이버섯으로 만든 대체육을 선보이는 위미트 외에도 최근 2~3년 새 50여 개가 넘는 푸드테크 기업이 새로 생겨났다. 미국에서는 식물성 계란 ‘저스트에그’로 유명한 잇저스트와 대체육 기업 비욘드미트, 임파서블푸드 등이 이미 일반 계란·고기와 비슷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동네 슈퍼마켓까지 진출해 있다.
하지만 최근 수요가 급증하자 식품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농심은 지난해 비건 식품 브랜드인 ‘베지가든’ 사업을 시작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식물성 대체육 제조기술을 간편식품에 접목했다. 5월엔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100% 식물성 재료로 만든 음식만 제공하는 ‘포리스트 키친’을 선보인다. 아워홈은 지난해 12월부터 대체육으로 만든 스테이크와 숯불향떡갈비, 육개장을 비롯해 버섯으로 만든 패티를 넣은 머쉬룸베지버거, 채소로만 만든 만두 등을 구내식당에 공급하고 있다. 동원F&B는 2019년 미국 대표 대체육 기업인 ‘비욘드미트’ 제품을 수입해 대체육 소시지를 마트와 백화점에 유통하고 있다.
신세계푸드의 경우 지난해 7월 대체육 ‘베러미트’를 론칭한 이후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기업 구내식당과 스타벅스에 자체 개발한 돼지고기 대체육 슬라이스 햄을 납품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체육 경쟁이 ‘맛의 전쟁’ 국면으로 들어섰다고 본다. 한때 ‘콩고기’로 불릴 정도로 고기 맛과 괴리가 컸지만 이젠 목표로 한 고기의 맛을 정확히 구현한다는 얘기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12월 말 선보인 ‘플랜테이블’ 첫 제품 식물성 만두는 출시한 지 3주 만에 대형마트 3사와 CJ더마켓에서 약 3만5000봉이 팔리며 목표치를 뛰어넘었다. 지난해 1월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을 출범한 농심은 독자 개발한 HMMA(고수분 대체육 제조기술) 공법으로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과 식감을 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판매 중인 제품군은 치킨·만두 등 40종으로 늘렸다.
최근에는 샌드위치, 패스트푸드는 물론 가정간편식(HMR)으로까지 대체육 제품이 확대되는 추세다. 신세계푸드는 그간 B2B(기업 간 거래) 형태로 카페, 식당 등에 대체육 햄을 공급해왔던 대체육 전문 브랜드 베러미트의 사업 영역을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로 확대하고 올해 하반기 다양한 대체육 햄 제품을 대대적으로 출시한다. 지난해 12월 대체육 HMR 제품인 ‘식물성 직화불고기 덮밥소스’ 2종과 ‘식물성 불고기 철판볶음밥’을 내놓은 풀무원식품 역시 대체육 HMR 신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내 식물성 재료 전문 브랜드도 새롭게 선보인다.
돼지고기 대신 대체육을 넣은 100% 식물성 ‘비비고 플랜테이블 왕교자’ 만두 5종으로 국내외 시장을 사로잡은 CJ제일제당은 연내 떡갈비, 주먹밥 등으로 대체육 HMR 제품군을 확대한다. 플랜테이블은 CJ제일제당의 채식 전문 브랜드다. 농심의 베지가든은 연 매출 1000억원을 목표로 업계에서 가장 많은 18종의 대체육 HMR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CU, GS25, 이마트24 등 편의점 업계는 김밥, 주먹밥 등을 주력 상품으로 대체육 간편식을 확대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대체육을 활용한 식사 대용 베이커리 상품을 다양화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대체육 간편식으로 인기몰이를 한 스타벅스가 판매 중인 대체육 간편식 상품 4종의 누적 판매량은 70만 개에 달한다.
▶중화학 기업들도 대체육에 투자
흥미로운 점은 화학 업계에서 대체육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은 지난 3월 미국 대체육 스타트업 ‘핀레스푸드(Finless Foods)’가 진행한 3400만달러(약 418억원) 규모 펀딩에 참여해 수백억원을 투자했다. 핀레스푸드는 생선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한 뒤 유사한 맛의 인공육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에도 돼지고기 배양육을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 뉴에이지미츠에 투자한 바 있다. SK그룹의 투자 전문 지주사 SK㈜도 지난 2020년 미국 대체 단백질 회사 ‘퍼펙트데이’에 540억원을 투자하며 시장에 진입한 바 있다. 지난해에 650억원을 더 투자하면서 이사회 의석까지 확보했다. 또 미국 대체 단백질 개발사 ‘네이처스파인드’에도 290억원을 투자했다.
‘고기를 대체할’ 소재 생산을 위한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메틸셀룰로스를 비롯한 셀룰로스 계열 소재 생산을 위해 18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메틸셀룰로스는 대체육이 육류 고유의 식감과 향을 내도록 하는 데 필수적인 재료다.
화학업계의 대체육 투자 확대는 각 기업의 ESG 전략과 맞물려 있다. 대체육이 증가하면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다량의 탄소를 감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국내 대체육 시장은 미국, 유럽에 비해 뒤처졌지만 한화, SK 등 대기업이 본격적으로 투자하는 데다 연구개발(R&D)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기술 개발은 물론 시장 성장세가 가팔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콩고기’로 대변되는 식물성 대체육과 함께 시장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분야는 배양육이다. 배양육은 소나 돼지의 줄기세포를 추출해 실험실에서 배양해 만든 고기를 의미한다. 식물성 대체육은 생산 비용이 낮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존 육류의 맛과 식감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배양육은 생명공학 기술로 소나 돼지로부터 줄기세포를 채취해 배양시킨 뒤 식품 조미소재 등을 조합해 만든다. 식물성 대체육보다 생산 자원이 적게 들고 고기와의 맛 유사성이 매우 높다.
컨설팅 업체 AT커니에 따르면, 세계 배양육 시장은 2025년부터 2040년까지 연평균 41%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2040년 배양육 시장은 4500억달러(약 533조원) 규모로 성장해 전체 육류 시장의 35%를 차지할 전망이다. 하지만 배양육 양산화에 성공한 기업이 없다. 따라서 육류 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체인저’로 여겨지는 세포 배양육 기술 개발과 시장 선점을 위해 국내 유수 식품기업이 관련 스타트업과 손잡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식물성 대체육에 배양육을 섞은 ‘하이브리드 고기’의 등장도 기대된다. 2020년 전 세계 처음으로 배양육 판매를 승인한 싱가포르에서 출시된 제품 역시 하이브리드 제품이다.
대체육 시장이 성장하자, 축산 업계의 견제도 나오고 있다.
‘대체육은 고기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명칭에서 ‘육’이나 ‘고기’를 빼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우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는 “식물성 단백질로 만들어진 대체육은 동물성 단백질 성분의 실제 육류와 영양소가 달라 육류를 대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축산농가의 피해를 줄이고 고기와 별도 식품으로 인식되도록 법·제도적 차원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시장 커지다 보니, ‘고기 맞나’ 하는 논란도
식품업계는 명확한 기준과 관리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직 국내에는 대체육에 대한 법적 기반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미국·유럽 등 서구 축산 업계에서 먼저 벌어진 ‘대체육 논쟁’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미주리·텍사스 등 일부 주에선 대체육에 ‘고기’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대체육 제품 라벨에 ‘육류(meat)’라는 용어 사용을 금지한 것이다. 반면 EU 회원국에서는 식물성 대체육과 세포 배양육, 기존 육류 모두 ‘육류(meat)’란 명칭 사용이 가능하다.
일종의 ‘먹거리 그린워싱(가짜 친환경주의)’도 논란거리다. ‘식물성 대체육 상품’이라고 광고하면서 실제로는 쇠고기, 계란 등 동물성 재료가 줄줄이 포함돼 있거나 제품 성분 표시를 모호하게 하는 식이다.
대체육이 친환경적이라는 인식이 허구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배양육을 만드는 과정에 유전자변형생물체(GMO)기술이 활용된다거나, 대체육 업체들이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농작물과 물을 사용하면서 환경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축산 업계에선 대체육이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적게 배출한다는 주장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