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orcycle Test-Drive]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달리고픈 모터사이클 트라이엄프, 자유로운 질주본능 ‘스트리트 스크램블러’
입력 : 2020.01.02 10:56:09
수정 : 2020.01.02 10:58:05
1963년작 영화 <대탈주>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연배우 스티브 맥퀸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포로수용소의 철책을 뛰어넘는다.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는 못 봤어도 이 장면만은 어디선가 봤을 것이다. 모터사이클 마니아라면 더 소소한 정보도 기억한다. 그때 스티브 맥퀸이 탄 바이크는 ‘트라이엄프 TR6 트로피’. 이제는 ‘본네빌’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해진 모터사이클이다. 이런 얘기도 이어진다. 극의 흐름상 스티브 맥퀸은 독일 모터사이클을 타야 했는데 직접 스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에게 더 익숙한 TR6 트로피를 탔다는 얘기. 해서 트라이엄프 TR6 트로피가 하늘을 나는 듯한 명장면이 탄생했다는 전설. 트라이엄프가 사람들 가슴속에 남게 된 결정적 장면으로 꼽힌다.
1960년대를 주름잡은 트라이엄프의 본네빌은 다양한 커스텀 모델이 존재한다. 속도에 집착해 카페레이스로, 더 자유롭게 흙길로 나아가기 위해 스크램블러로 커스텀한다. 본네빌은 자기 취향에 맞춰 하나씩 바꿔나갈 기본 모델로 적절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우리가 모터사이클, 하면 떠올리는 옛 그 모습 그대로니까. 세월이 흘러 본네빌이 부활했다. 당시 본네빌을 매만지던 대로 파생 모델도 하나둘 등장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취향대로 만들었다면 이제는 브랜드가 직접 매만진다. 쌓인 시간만큼 커스텀 형태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까닭이다.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그렇게 등장했다. 커스텀 모터사이클을 갖고 싶지만 직접 만지기에는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해. 스크램블러라는 장르를 하나의 스타일로 즐기고픈 사람을 위해. 스티브 맥퀸이 지금 촬영한다면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를 타고 철책을 넘을지도 모른다.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스트리트 트윈’을 기본으로 한 파생 모델이다. 스트리트 트윈은 본네빌을 현대 감각에 맞게 덜어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본네빌과 비슷하지만 보다 간결하고 현대적 요소를 취했다. 반면에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보다 옛 감성으로 물들였다. 흙길 달릴 때 도움 주는 커스텀 방식이지만, 디자인 치장으로도 기능하는 까닭이다. 휠은 19인치에다 캐스트휠이 아닌 스포크휠이다. 머플러는 차체 하단이 아닌 중간을 가로지른다. 캐스트휠은 타이어 펑처에 대응하기 편하지만 스포크휠은 충격을 더 잘 흡수한다. 치켜 올린 머플러는 지면에서 더 떨어져 돌에 덜 부딪힌다. 또한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서스펜션을 알맞게 손보고, 타이어는 공도와 흙길에 대응하는 듀얼 타이어를 신겼다. 이런 기능은 둘째 치고, 일단 멋지다. 1960년대 유럽의 어느 흙길을 달리던 모터사이클을 떠올리게 한달까. 21세기 한국 도로를 달리지만 마음속 풍경은 사뭇 달라진다. 설사 흙길을 달리지 않더라도.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로 험한 산길을 달리긴 힘들다. 상황이 달라지면 합당한 도구가 필요하다.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비포장도로, 즉 흙길 정도도 탈 만하다. 더 험난한 길이라면 서스펜션부터 휠, 지상고까지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스크램블러’라는 단어에 걸맞게 흙길을 휘저으면서 달리는 정도다. 딱 그 정도 즐기면서 스크램블러의 거친 형태를 음미하는 즐거움. 스크램블러라는 커스텀 장르를 현대인이 즐기는 방식이다. 색다른 경험은 모터사이클의 재미 요소다. 스크램블러는 조금 더 색다르게 즐기게 한다. 공도에서 타다가 흙길도 들어갈 수 있으니까. 해서 더 자유분방하니까. 타이어의 트레드 무늬에 따라, 핸들바 높이에 따라 모터사이클은 느낌이 달라진다. 그렇게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고유한 매력을 품는다.
트라이엄프는 모던 클래식 라인업이 강세인 브랜드다. 본네빌을 중심으로 파생한 레트로 모터사이클이 즐비하다. 스트리트 스크램블러 역시 여기에 속한다. 각 모델마다 배기량과 형태가 다르지만 공통적인 게 있다. 만듦새가 범상치 않다는 점. 성능 얘기가 아니다. 모터사이클을 구성하는 각종 외관 부품의 질감이 뛰어나다. 모터사이클은 각 부분이 겉으로 드러난다. 특히 레트로 모터사이클은 더욱. 그래서 차체를 이루는 각 부품이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된다. 엔진 형태, 연료탱크 곡선, 핸들바 클램프 형상, 시트 질감 등 거의 모든 요소에 눈길이 닿고 손길이 머문다. 그 자체로 기계 물성이 뛰어난 건 맞다. 하지만 얼마나 공들였는지에 따라 고저는 있기 마련이다. 형태가 비슷하더라도 세부적인 감각은 각각 다르니까.
트라이엄프 모던 클래식 라인업은 그 부분에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무심한 부품 하나도 매끄럽고 쇠의 질감이 깊다. 절삭 가공 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각 부품마다 고유한 멋도 놓치지 않았다. 단지 기능만을 위한 게 아닌 심미안을 자극한다. 모터사이클을 즐기게 하는 요소를, 분명 알고 만든 솜씨다. 그 부분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어느 한 구석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모터사이클 각 부분을 보며 금속 공예품처럼 음미하게 한다. 스트리트 스크램블러 역시 이 수준을 유지했다. 보는 즐거움이 분명하다. 만져보면 감흥이 진하다.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를 타기 전에도 한참 쳐다봤다. 숲이 떠오르는 녹색 무광 연료탱크가 은은하게 빛났다. 자꾸 만지고 싶어지는 질감이다. 매끄럽고 깔끔해서. 수랭이지만 공랭 냉각핀을 살린 엔진도 시선을 머물게 했다. 차체 오른쪽 중간을 가로지르는 머플러에 다다르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통칭 ‘업머플러’는 스크램블러 장르를 상징하는 요소다. 거친 인상을 풍기면서 확실히 다른 모델과 차별화한다. 머플러의 열기를 차단하기 위해 덧댄 방열판도 만듦새가 뛰어나다. 확실히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업머플러’가 인상을 좌우한다.
한참 둘러보고 만져보고 나서야 시동을 걸었다.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그렇게 타기 전부터 즐기게 하는 모터사이클이다. 질 좋은 시트에 엉덩이를 걸치고 핸들바를 잡았다. 시트고는 835㎜. 시트가 좁진 않아 생각보다 높은 느낌이 들긴 한다. 하지만 신장 175㎝ 정도면 편안하게 앉을 수준이다. 흙길이든 공도든 편하게 타는 스크램블러로서 높지 않은 시트고는 언제나 환영할 요소다. 좌우로 차체를 흔들며 무게에 적응하면 더욱 편하게 앉을 수 있다.
900cc 2기통 수랭엔진은 부드럽게 출력을 뽑아낸다. 라이드 바이 와이어, 즉 전자식 스로틀은 섬세하게 조작하기에도 알맞다. 천천히 스로틀을 감으며 클러치 레버를 놓는 순간, 동력이 부드럽게 연결됐다. 각 단계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라이더를 한결 편하게 하는 느낌이다. 물론 실력 있는 라이더라면 상관없지만, 초보자라도 부담감이 적다. 누구나 편하게 접하게 한다는 점에서 모델의 성격이 드러난다. 스티브 맥퀸은 실력자였지만, 초보자라도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편하게 탈 수 있다는 뜻이다. 거친 느낌을 손쉽게 손에 넣는다.
출력은 적당하다. 신형 모델은 65마력으로 출력이 상승했다. 그렇다고 해도 900cc에, 2기통, 거기에 수랭이라는 엔진 방식에 비하면 화끈하진 않다. 대신 타기 편하게 토크를 두텁게 한 결과다. 덕분에 공랭엔진 모델이 연상되는 고동감도 어느 정도 살렸다. 화끈하지 않다는 것뿐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건조중량 198㎏인 차체 무게를 민첩하게 움직이기엔 적절하다. 이런 설정은 누구나 편하게 접근하게 하려는 성격과 부합한다. 조금만 타면 무게에, 출력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모터사이클은 몸에 익을수록 더 즐겁게 타기 마련이다. 그 과정을 짧게 거칠수록 즐길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숙련된 라이더라면 더욱 짜릿하게 즐길 곳을 찾을 테다. 그러니까 흙길에서 뒷바퀴 흘리며 탄다든가. 본격적으로 스크램블러를 즐길 수 있다.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레트로 모터사이클이지만, 기능까지 옛 방식은 아니다. 주행모드까지 바꿀 수 있는 신식이다. 형태가 과거를 지향한다고 안전 및 재미 관련 기능을 잊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 양쪽의 장점을 챙기며 라이딩의 즐거움을 전한다. 그만큼 스트리트 스크램블러는 과거 형태를 사랑하면서도 현대 기술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가슴속에 쏙 들어오는 모델이다. 또한 오른쪽 허벅지를 데우는 머플러 열기마저도 풍류로 즐기는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