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orcycle Test-Drive] 할리데이비슨이 선택한 새로운 변화, 콤팩트해진 FXDR 114
입력 : 2019.05.09 15:02:03
수정 : 2019.05.09 15:02:36
고집과 변화. 살다 보면 언제든 맞닥뜨릴 선택이다. 인생에서도, 브랜드 방향성에서도. 특히 브랜드라면 보다 복잡해진다. 기존 유산을 지키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은 항상 어렵기 때문이다. 긴 세월 자기만의 확고한 유산이 쌓인 브랜드라면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폭탄의 뇌관을 절단하는 것만큼 신중하고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 브랜드가 할리데이비슨이라면 어떨까? 변화라는 두 단어가 꽤 생소하게 들린다. ‘아메리칸 클래식’이라는 자기만의 길이 확실한 브랜드 아닌가. 누구든 할리데이비슨,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집과 변화, 할리데이비슨에도 선택의 순간은 피해가지 않았다.
아마 2014년이 아닌가 싶다. 할리데이비슨이 전기 모터사이클 프로토 타입을 선보였다. 다른 브랜드라면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기모터와 할리데이비슨은 솔직히 가장 동떨어진 브랜드였다. 할리데이비슨은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고배기량 V트윈 엔진이 휘발유를 들이켜며 달릴 것이라 생각하니까. 대중은 낯설게 반응했다. 그러든 말든 할리데이비슨이 전기 모터사이클 ‘라이브와이어’를 공개한 건 현실이었다. 할리발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작년에는 더욱 낯선 상황이 펼쳐졌다. 2018년은 할리데이비슨 115주년이었다. 한 세기 이상 이어온 유산을 기념하는 해였다. 전통이 도드라지는 해에 신 모델을 공개했다. 기존 할리데이비슨 모델이라고는 믿기 힘든 제품군이었다. 팬 아메리카는 어드벤처, 스트리트 파이터는 말 그대로 온전한 네이키드 장르의 모터사이클이었다. 프로토 타입을 공개한 라이브와이어 양산 모델도 포함됐다. 어드벤처와 네이키드, 전기 모터사이클까지 3종 세트를 제시했다. 누구도 연상하기 힘든 모델을 할리데이비슨은 시침 뚝 떼고 공개했다. 물론 실제로 판매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공개한 것만으로도 변화라는 단어가 명확하게 빛났다. 어느 브랜드보다도 변화 폭이 컸다. 고집과 변화, 할리데이비슨이 후자로 방향키를 확실히 조정했다. 복지부동, 할리데이비슨이라서 반향은 더욱 컸다.
할리데이비슨의 변화는 모터사이클쇼 프레젠테이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115주년을 기념하며 라인업을 재정비할 때부터 드러났다. 앞서 언급한 신 모델만큼 극적이진 않아도 변화를 감지하게 했다. 거친 매력은 여전하지만, 그 안에서 편의성을 높였다. 디자인에서도 참신한 감각을 버무렸다. 할리데이비슨의 쇳덩이 같은 묵직함은 유지하면서 요소요소 시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차체 무게를 덜어내고, 서스펜션을 매만졌다. 오랜 시간 불만이 많던 제동 성능 및 안전장치도 더했다. 덕분에 타기 편해진 할리, 덜 부담스러운 할리로 다가왔다. “역시 새 것이 좋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할리데이비슨의 ‘FXDR 114’는 이런 흐름을 증폭하는 모델이다. 115주년 기념 라인업에 속하면서 새로운 모델로 할리데이비슨 가문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준다. 누구든 처음 보면 멈칫할 만큼 외관이 독특하다. 묵직한 덩치와 엠블럼을 보면 할리데이비슨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존 할리데이비슨을 연상하면 떠오르는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길고 낮다. 게다가 LED 헤드램프에 비키니 카울을 장착하고, 뒤 펜더는 레이스 머신처럼 엉덩이를 쫑긋 세웠다. 핸들바 형상도 독특하다. 앞 서스펜션 포크에 연결된 클립온 핸들이다. 보통 클립온 핸들은 스포츠 장르 모터사이클에 주로 적용된다. 한껏 엎드려 차체에 밀착해 달려 나가도록 한 형태다. 물론 FXDR 114에는 스포츠 장르의 클립온 핸들보다는 높게 달리긴 했다. 그럼에도 할리데이비슨과 클립온 핸들 조합만으로 전에 없던 모델로 보이게 한다.
모터사이클은 자세에 따라 주행 감각이 달라진다. 핸들바 높이에 따라, 시트와 핸들 사이 거리에 따라, 발 놓는 스텝에 따라. 각각 위치가 달라지면 타는 질감 또한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FXDR 114는 클립온 핸들바에서 부터 기존 할리데이비슨과는 다른 성격을 내비친다. 그렇다고 완전히 할리데이비슨을 지우진 않았다. 발을 놓는 스텝이 차체 앞에 달려 있다. 할리데이비슨에서 자주 보는 포워드 스텝이다. 그 조합이 독특한 자세를 연출한다. 앉으면 클립온 핸들 바 때문에 상체를 낮추고 팔을 뻗어야 하는데, 포워드 스텝이라 다리까지 뻗어야 하는 자세다. 보통 클립온 핸들바를 택하면 스텝은 보통보다 뒤쪽에 달리는 게 정석이다. 또한 다리를 뻗으면 상체를 느긋하게 세울 수 있는 핸들바를 택하는 것도 보편적이다. 그러니까 FXDR 114는 한껏 엎드리면서도 다리를 뻗는 자세를 연출한다. 보편적인 형태가 정석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세만 봐도 FXDR 114가 할리데이비슨에서 얼마나 독특한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이 아니더라도 독특한 모델인 건 마찬가지지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시동을 걸면, 다시 할리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1868cc 밀워키에이트 114가 몸을 떨어댄다(FXDR 114의 114란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명확하다). 할리데이비슨의 상징 같은 고배기량 공랭 V트윈의 포효. 이 소리, 이 떨림이 다시금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아직 출발을 하지 않았는데도 종잡기 힘들다. FXDR 114는 운전자를 할리데이비슨이란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새롭다 싶으면 익숙하고, 옛 감성이 돋아나면 새 감각을 불어넣는다. 일단 흥미를 끄는 건 성공.
스로틀을 감으면 무섭게 치고 나간다. 당연한 말이다. 2ℓ에 육박하는 배기량으로 뒷바퀴를 밀어붙이니까. 게다가 할리데이비슨은 토크 위주로 엔진을 조율했다. 어떤 모델이든 펀치력이 남다르다. 그럼에도 FXDR 114는 조금 다르다. 감안하고 느껴도 가속력이 폭발적이다. ‘폭발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기도 힘들 것이다. 두툼한 펀치력이 핸들을 쥔 손에, 시트에 걸터앉은 엉덩이에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상체를 숙이고 팔다리를 뻗은 채로 무지막지한 펀치력을 몸으로 느끼면 독특한 감각에 둘러싸인다. 포탄에 매달려 날아가는 기분이랄까. 여기서 포탄이 중요하다. 둔탁하면서도 빠른 감각. 그 지점에서 FXDR 114는 두 가지 영역을 절묘하게 조합한다. 할리데이비슨과 일반적인 스포츠 모터사이클의 이종 교배다. 새로운 영역을 펼치면서도 여전히 할리의 질감을 담은 셈이다.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변화를 시도하는 절충선. FXDR 114에 복잡한 할리데이비슨의 셈법을 적용한 것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만큼 할리데이비슨이 고수해온 영역이 확고한 까닭이다. 할리데이비슨은 크루저로 잔뼈가 굵다. 다크 커스텀으로 젊은 층을 끌어들이지만 그 또한 크루저의 파생 영역이다. 어쨌든 할리데이비슨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느긋하지만 감흥을 즐기는 데 집중한다. 반면 FXDR 114는 스포츠성을 강화했다. 영역 확대라는 의미로는 충분하지만, 매력적으로 다가갈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에게 스포츠성은 첫손에 꼽히는 요소가 아니니까. 그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들리는 바로는 반응이 괜찮다고 한다. 물론 실제 판매 대수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어딘가. 할리데이비슨은 변화를 택했고, 사람들은 그 변화에 관심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FXDR 114는 라인업에서 자기 몫을 해냈다. 변화를 택한 할리데이비슨의 선포로서 울림이 크다.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고 그냥 FXDR 114를 보면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한 번쯤 경험하면 좋을 모터사이클이다. 포탄에 매달려 날아가는 기분을 어디서 느껴보겠는가. 라이딩 자세와 무지막지한 출력, 묵직한 차체가 독특한 감각을 빚었다. 할리데이비슨에서도, 다른 브랜드 모델에서도 느낄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FXDR 114의 가치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