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캐시미어가 호사스러운 이유는 티베트라는 한정된 지역의 염소에서 1년에 200g밖에 얻을 수 없는
귀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몸에 착 붙는 자부심, 부드러운 촉감, 예민한 취향을 빛내 줄 섬유의 보석, 캐시미어 스토리.
옷의 몸값을 좌우하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다. 디자이너의 유명세, 디자인의 기교와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섬유’에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가장 진귀하고 매력적인 캐시미어의 가격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겨울이면 더욱 몸값 경쟁이 치열해지는 캐시미어는 섬유의 보석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희소성’이라는 가치
캐시미어는 원래 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염소와 티베트산 염소의 털을 이용해 가늘게 짠 섬유를 일컫는다. 정식 명칭은 ‘Cashmere Goat Hair’ 또는 ‘Cashmere Goat Wool’이라고 한다. 이름은 북인도 카슈미르지방의 산양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됐다. 캐시미어 산양은 중국, 티베트, 몽골, 이란, 터키 및 호주 등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섬도가 가늘고 유연하며 독특한 매끄러움과 중후한 색채 등이 특징이다.
캐시미어가 예전부터 왕족과 귀족들의 전유물이 된 이유는 역시 희소성 때문이다. 염소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캐시미어의 양은 150∼250g에 불과하다. 스웨터 한 벌을 만들려면 네 마리 이상, 양복 한 벌을 만들려면 30마리 이상의 양이 필요하다. 또 세계적으로 캐시미어 산양의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값이 비싸다. 요즘은 중국 북부와 내몽골 지역의 고비사막 주변이 최고의 캐시미어 산지로 손꼽힌다고 한다. 기후가 매우 춥고 척박한데다 낮밤의 기온차가 심한 지역이다 보니 가을이 되면 뚝 떨어지는 기온에 대비해 자라나는 산양의 속 털이 다른 지역의 양털에 비해 곱고 부드럽다는 것.
최근 패브릭 명장들은 캐시미어를 놓고 온갖 품질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로 피아나는 1924년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작된 패브릭과 패션 브랜드다. 이 회사는 ‘베이비 캐시미어’라는 제품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몽골의 양치기들이 어린양의 털을 처음 빗질할 때 나오는 1온스(28g) 안팎의 부드러운 솜털을 가리킨다. 이 털은 일반 캐시미어보다 훨씬 가볍고 부드럽다고 한다.
이탈리아 회사인 100년 역사의 에르메네질도 제냐 역시 캐시미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여름옷처럼 가벼운 230g의 소모사(긴 섬유를 꼬아 만든 실) 캐시미어 섬유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깃털로 만든 옷처럼 가볍다고 한다.
아뇨나의 최상급 캐시미어 라인인 ‘화이트 캐시미어’ 역시 내몽골 지역에서 채취하고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경우도 매해, 오너인 쿠치넬리가 직접 내몽골 등 산지를 돌며 원료를 구매한다. 특히 아뇨나의 화이트 캐시미어는 일반 캐시미어보다 길이가 긴 순백색의 섬유로 보온성과 촉감이 월등히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로로 피아나와 아뇨나에서는 자사의 캐시미어를 세탁할 수 있는 전용 세탁 세제를 선보이기도 했다.
클래식과 캐주얼의 믹스 매치
캐시미어는 워낙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아이템이라, 세월이 지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두껍고 투박한 일반 스웨터와는 달리 캐시미어 니트는 얇아도 보온성이 매우 뛰어나다. 또 촉감이 부드럽고 윤기가 ‘자르르’ 흘러 입었을 때 단연 돋보인다. 부드러운 감촉과 보온성, 가뿐한 느낌 때문에 캐시미어는 고급 소재이면서 활동적인 아이템이다.
자연에서 귀하게 얻은 만큼 캐시미어는 그 관리법도 까다롭다. 캐시미어는 착용한 뒤 2~3일은 휴식기를 주고 평평하게 펴서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해야 오랫동안 입을 수 있다. 보관시 옷장 안에 양질의 방충제를 넣어야 하며 특히 원목 가구일 경우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캐시미어의 품질을 가늠하는 것은 탄력성으로, 캐시미어 소재의 옷을 구입할 때는 옷을 잡았다 놓았을 때 원래 상태로 빨리 돌아가야 하고, 불빛에 비춰 짜임새가 촘촘한지 확인해야 한다.
캐시미어는 무게가 가벼울수록 상품(上品)으로 친다. 또 최상급 소재로 만든 100% 캐시미어 소재는 염색도 잘돼 색깔부터 차이가 난다. 문제는 까다로운 공정과 값비싼 원료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점. 그런데 최근 들어 합리적인 가격으로 캐시미어 아이템을 출시하는 브랜드가 늘어나는 추세다.
클래식 룩의 대명사인 캐시미어도 요즘은 코디네이션에 따라 젊은 감각을 살리는 아이템이 될 수 있다. 특히 체크나 스트라이프 셔츠에 유사한 톤의 타이를 매치하면 좀 더 젊은 분위기를 살릴 수 있으며, 티셔츠를 한 겹 더 겹쳐 입으면 캐주얼한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다. 라운드형보다는 폴로형이나 브이넥 스타일의 스웨터가 더 세련돼 보이고, 셔츠나 티셔츠와 겹쳐 입어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아이템이다.
올 겨울에는 컬러감 있는 캐시미어 의상들도 제법 많이 출시됐다. 컬러풀한 캐시미어는 도시적인 세련된 느낌을 준다. 브라운과 블랙에서 벗어나 좀 더 과감한 컬러의 캐시미어를 선택해보면 어떨까. 모임이나 파티에서 당신을 빛내줄 가장 트렌디한 아이템이 될 것이다.
영국의 속담 중에 “옷장 속에 캐시미어가 없는 남자는 진정한 신사가 아니다”라는 얘기가 있다. 남자의 취향을 말해주는 소품과 소재는 수없이 많겠지만, 한겨울 ‘캐시미어’만한 궁극의 아이템이 과연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