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을 보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그 나라의 전반적인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전략적인 스타일링을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 메이킹을 꾀하고 자국을 널리 알리는 이 시대의 새로운 패션 아이콘, 퍼스트레이디의 스타일을 분석했다.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 무리가 없도록 안팎에서 조용히 내조하던 영부인의 사회적 역할이 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통령의 부인이 내조에 힘쓰고 각종 자선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한편 외국에서는 그 나라의 패션 수준과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등을 나타내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패션 산업의 판도를 바꾸거나 침체된 산업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패션이라는 만국 공통의 관심사를 활용해 유능한 외교관이 되기도 한다.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은 더 이상 개인의 취향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아함과 검소함을 강조한 한국의 퍼스트 레이디
우리나라 영부인의 의상은 단정한 레이디 라이크 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공통점은 지나치게 사치스런 고가의 제품이나 외국 브랜드는 지향한다는 것. 구설수에 오를 만한 화려한 액세서리나 사치품은 삼가고 우아하면서 동시에 검소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패션을 사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곧잘 연결시키는 언론과 국민 정서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살찐 정치인은 외면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패션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는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아들 정대선과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당시 김윤옥 여사가 들었던 하늘색 가방이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1000만원대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곤혹을 치룬 경험이 있다. 반대로 김 여사의 패션이 긍정적인 화제를 몰고 온 적도 있다. 이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던 당시 입었던 선명한 블루 코트에 대한 문의가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쇄도했던 것. 이 대통령이 몸담고 있던 당의 상징인 블루 컬러의 롱 코트에 네크라인의 풍성한 리본 장식이 돋보이는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김 여사의 스타일은 중년 여성은 물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김 여사가 입었던 옷은 국내 브랜드 보티첼리에서 맞춤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층 젊어진 김윤옥 여사의 패션
영부인 김윤옥 여사
이 대통령의 부인 김 여사는 취임 초기 전형적인 내조형 영부인이었다. 무릎을 덮는 긴치마에 부드러운 파스텔 컬러의 의상을 선호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어머니 상을 연출했다. 최근에는 무난하고 보수적인 스타일에서 탈피해 좀 더 젊고 스타일리시한 룩을 선보인다. 무채색과 파스텔 계열보다는 노란색과 빨간색, 보라색 등 과감한 색상을 선택한다. 옷의 전체적인 길이와 실루엣에도 변화가 생겼다. 키가 작아 보일 수 있는 무릎 밑 치마를 무릎 길이로 조절했으며 실크 등과 같은 고급 소재를 활용해 고급스럽고 세련된 룩을 연출한다. 허리선을 적당히 강조한 실루엣은 키가 크지 않고 작은 체구인 김 여사의 단점을 효과적으로 커버해준다. 김 여사의 패션 감각은 한복 스타일에서도 엿볼 수 있다. G20에 아이보리색 저고리에 쑥색 치마를 입었는데 분홍색 옷고름과 앞부분과 소맷부리 끝동의 꽃무늬로 화사하고 기품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여기에 진주 귀걸이를 더해 우아한 느낌을 더했다. 손님을 맞는 온화한 안주인의 모습으로 적합했다는 평이다. 이 대통력 취임식 때에는 한복 장인으로 알려진 이영희 한복을 입었는데 최고급 자미사 옷감으로 만든 연두색 두루마기 아래로 내려온 황금색 치맛자락이 인상적이었다. 옷고름의 색을 이명박 대통령의 넥타이 컬러와 맞춘 것에서 김 여사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김 여사는 외국 순방이나 중요한 행사 때 이 대통령의 타이 컬러와 본인의 옷 색깔을 동일하게 매치하곤 한다. 진주 목걸이나 귀걸이 이외의 주얼리는 거의 착용하지 않지만 한복을 입을 때에는 쌍가락지를 끼거나 튀지 않는 컬러의 작은 가방을 드는 것으로 포인트를 준다. 김 여사는 역대 영부인과 달리 의상을 담당하는 코디네이터를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행사나 외국 순방길에 오를 때에는 딸들과 의논하는 정도다.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 영부인 패션에 드러나다
이희호 여사 / 권양숙 여사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는 과감한 컬러를 시도했다. 과거의 영부인이 파스텔이나 모노톤의 컬러를 즐겨 착용했던 것에 반해 선명한 핑크나 빨강, 보라색 등 화려한 컬러를 즐겨 입었다. 권 여사는 외국 순방을 할 때면 그 나라를 상징하는 컬러를 미리 체크해 의상에 반영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노 대통령과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갈 때 입었던 짙은 진달래색 투피스 역시 북한에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꽃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활발한 사회 활동을 펼쳤던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실용적인 디자인의 정장을 즐겨 입었다. 오랜 기간 감옥살이를 했던 고 김 대통령의 뒷바라지를 하고, 그를 대신해 정치 활동을 하는 등 내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정치적 동료였던 이 여사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세련되고 이지적인 양장 차림을 많이 선보였다. 밝은 컬러를 선호해 주로 파스텔 계열의 옷을 입었으며, 고령의 나이를 적절히 커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줄 갈색톤 헤어를 유지한 것이 특징이다. 여느 영부인에 비해 노출이 적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조용한 퍼스트레이디로 꼽힌다. 청와대 내부 직원들을 위한 소소한 복지활동만 펼쳤던 손 여사는 세련되고 우아한 디자인을 좋아했다.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는 긴 플레어스커트를 즐겨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임기 기간 중 단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아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던 김옥숙 여사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개 무난하고 검소한 양장 차림을 했는데 ‘보통 사람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노 전 대통령의 정치색과 일맥상통 되는 부분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역대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이 여사의 성격이 그녀의 스타일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당시 유행했던 패션 아이템을 적극 활용했다. 1980년대 유행했던 유니섹스 스타일이 반영된 정장 차림을 즐겼으며 다채로운 컬러와 프린트 아이템을 과감하게 매치하곤 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고 육영수 여사는 정치인의 배우자 상을 확고히 한 인물이다. 젊은 나이에 영부인의 자리에 올랐지만 한복을 즐겨 입었다. 고운 목선이 드러나는 올림머리를 즐겨 했으며, 주로 옥색이나 미색 등 수수하면서도 기품 있는 한복을 입었다. 육 여사는 영부인 최초로 청와대에 퍼스트레이디 비서실을 만들 정도로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본인 앞으로 온 편지는 모두 읽고 손수 답장을 작성해 발송할 정도였고 화장법이나 패션 스타일을 꼼꼼히 체크해 이미지 메이킹에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탁월한 패션 전략가 미셸 오바마
전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대통령의 옷차림은 지구인 모두의 관심사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데서 지켜보고 보좌하는 퍼스트레이디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다. 47세의 나이로 미국 건국 이후 다섯 번째로 젊은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와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의 스타일은 언제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백악관의 안주인 미셸 오바마는 ‘제2의 재클린’, ‘검은 피부의 재키’라는 애칭을 들으며 선거 운동 때부터 버락 오바마 못지않은 세간의 집중을 받아 왔다. 미셸 오바마가 남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확신에서 비롯된 차별화 때문이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그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적재적소에 입고 나오는 탁월한 ‘패션 전략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이크루(J.Crew)나 H&M 같은 캐주얼 브랜드의 중저가 옷부터 신진 디자이너의 아름다운 드레스까지 정치인들이 흔히 갖는 체면 의식과 허세를 버리고 실용성과 대중성을 앞세워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되던 밤 당선 연설을 하는 오바마의 옆에는 블랙과 레드의 강렬한 컬러 대비가 돋보이는 드레스를 입었다. 이 대담한 드레스는 나르시스 로드리게즈가 디자인한 것으로 그녀의 대담하고 진취적인 성격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다. 이전의 미국 퍼스트레이디들이 오스카 드 라 렌타 등 고전적인 스타일을 선호한 것에 비하면 단연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미셸 오바마는 신진 디자이너의 의상을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임식 때는 쿠바 출신의 디자이너 이자벨 톨레도의 옐로 컬러 브로케이드 코트와 드레스 앙상블을 입었다. 옐로 컬러 의상으로 경제 불황과 전쟁의 위협 등 전 세계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전략가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취임식 이후 열린 파티에는 한쪽 어깨가 오픈된 대담한 화이트 드레스를 입었는데 이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대만 출신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의상이었다.
미셸 오바마의 세련된 패션 감각을 두고 <ABC> 뉴스는 “미셸의 옷차림은 세련됐지만 서민들과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다”고 평가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미셸은 주류에서 소외된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명성을 알릴 기회를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식 우아함의 상징 카를라 브루니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모델 겸 가수로 활동하던 카를루 브루니는 제18대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를 만난 후 섹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단아하고 세련된 프랑스 퍼스트레이디로 변신했다. 19세에 모델로 데뷔해 아르마니, 베르사체, 디올, 샤넬 등 명품 브랜드의 모델로 활약했던 카를라 브루니는 이탈리아 재벌가의 상속녀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화려한 생활을 누리며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델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며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던 전성기에 돌연 음반을 내며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믹 재거와 에릭 클랩튼과 같은 유명 셀러브리티와의 화려한 연애 경력을 지닌 그녀와 두 번의 결혼 생활을 실패한 사르코지는 만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결혼에 이르러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사랑스럽고 우아한 퍼스트레이디의 모습에 프랑스 국민들은 점차 호감을 갖게 됐고 카를라 브루니는 자신의 위치에 맞는 기품 있는 모습을 보이며 ‘넥스트 그레이스 켈리’, ‘포스트 재키’라는 애칭을 얻기에 이르렀다.
카를라 브루니는 장식이 거의 없는 H라인의 미니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가늘고 곧은 팔과 어깨 라인이 돋보이는 미니 드레스 위로 얇은 벨트를 더해 허리 라인을 강조하고, 작은 주얼리나 시계 정도의 장식만 더해 심플하고 베이식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또한 키가 작은 니콜라 사르코지를 배려해 굽이 없는 플랫 슈즈를 신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모델 활동을 한 카를라 브루니는 자국 브랜드를 주로 애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크리스챤 디올의 의상을 자주 입는다. 그녀는 블랙과 그레이 컬러 등 무채색 컬러를 즐기고 화려함을 더할 때에는 보라색이나 블루 톤의 아이템을 선택한다. 하얀 피부의 그녀가 가장 즐기는 컬러는 매혹적인 보라색으로 코트부터 클러치, 구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라색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