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보궐선거 당시 후보였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2030 청년들과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내년 대선 결과는 2030세대의 선택에 달렸다.’
4월 보궐선거가 끝난 후 여야 정치권서 공통적으로 터져 나온 목소리다. 내년 대선을 위한 본격 채비에 돌입한 정치권이 2030세대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보여준 이들의 ‘보팅 파워’ 때문이다.
여당의 참패로 끝난 보궐선거는 20, 30대의 쏠림 투표의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서울 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30의 야당 후보 지지율은 압도적이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공고한 지지층이던 이들이었지만 4월 보궐선거서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변심은 익히 알려진 대로 부동산 문제 때문이다. 폭등하는 집값, 불안정한 전월세 시장, 치솟은 세금, 이런 가운데 터진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 등에 여당을 향한 2030의 지지는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렸다. 이에 반해 60대 이상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을 향한 결집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승패는 손쉽게 결정이 나버렸다. 그동안 현 정권 출범 이후 총선 등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했던 국민의힘은 4월 보궐선거 승리에 한껏 고무된 상태다. 차기 대선에서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커졌다.
하지만 성급한 모습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내년 대선 때도 MZ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선거가 끝난 후 한국리서치·코리아리서치·케이스탯·엠브레인 등 여론조사 전문업체 4곳이 함께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주된 요인을 묻는 질문에 “민주당이 잘못해서”라는 답변(61%)이 가장 높았다. (4월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는 국민의힘이 자체 역량으로 선거에 이긴 것이 아니고,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언제든 MZ세대들이 국민의힘을 떠나도 이상치 않은 것이 냉정한 현실인 것이다.
▶2030은 여전히 ‘변화’에 방점
2030의 민심 이반 기저에는 현 정권이 내세운 ‘공정의 가치’에 대한 배신감이 깔려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부터 현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내로남불적 형태에 대한 비판이 거셌지만, 현 여권 인사들은 이를 들은 체 만 체하며 마이웨이식 행보를 고집했다. 여기에 분노한 젊은 세대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같은 행태를 심판하기 위해 야권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2030세대의 민심 흐름과 관련해 한 가지 눈여겨볼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4월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에게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를 물은 결과인데, 여기서 2030세대는 야권 후보들보다 여권 대선 주자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사는 20대와 30대에게 15%, 16%의 지지를 얻으며 여론조사 전체 1위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같은 세대 지지율(각각 7%, 14%)을 앞섰다. 이 같은 젊은 세대의 민심 추이는 4월 보궐선거 결과에서 나타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인 셈이다.
만일 조사 결과에서 2030세대가 윤석열 전 총장에게도 높은 지지를 보냈다면 이들 세대의 여론 물길이 확 꺾였다고 볼 수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젊은 세대의 보수 정당에 대한 거리두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추이가 다른 여론조사도 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4월 16일 전국 18세 이상 1011명을 상대로 가상 양자대결 조사를 벌인 결과, 윤 전 총장은 51.1%로 이재명 지사(32.3%)를 여유 있게 앞섰는데,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이 지사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20대의 경우도 윤 전 총장을 선호하는 응답이 51.6%였다. 다만 이들 연령층에서 지지후보가 ‘없다’라는 응답도 20.4%나 돼 윤 전 총장을 향한 20대 여론은 여전히 유동적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12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LH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2030세대가 4월 보궐선거에서 보수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대표선수로 자리매김한 윤 전 총장을 향해서 전폭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 것은 이들이 지금과는 다른 우리 사회에 대한 ‘변화’된 모습을 여전히 바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윤 전 총장이 비록 공정과 정의라는 이슈를 선점했지만 검찰이란 우리 사회 기득권 출신의 대권 주자를 향해 2030세대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여권이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검찰 개혁이란 화두에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고 이런 측면이 윤 전 총장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임에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자리에서 물러난 후 잠행 중인 윤 전 총장이 노동전문가를 만난 후 “청년 일자리가 국가 최우선 과제”라는 언급을 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윤 전 총장이 2030세대의 마음을 껴안는다면 내년 대선은 의외로 손쉬운 싸움이 될 여지도 있다.
이주형 청년정치활성화운동본부 회장은 “윤 전 총장이 자신의 첫 행보로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챙긴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적절했다”면서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공감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여권 1위 후보인 이 지사의 행보가 윤 전 총보다는 더 빠르다. 이 지사는 젊은 층의 이런 기류를 재빨리 파악해 기본소득 등의 이슈를 선점했고, 현재 탄탄한 지지율의 바탕이 되고 있다. 특히 트레이드마크인 좌고우면하지 않는 행정으로 민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행보는 지지자들을 계속 흡인하는 원동력이다. 최근 백신 도입이 늦어지면서 논란이 있자 경기도 자체적으로 백신을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기록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신간 <윤석열의 진심> 등 관련 서적들이 4월 14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판매대에 놓여 있다.
▶여야 2030 마음잡기 총력전
현재 여야 모두 203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부터 청년 챙기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보궐선거가 끝난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현 청년들은 그때(IMF 당시) 청년들 못지않게 취업난과 불투명한 미래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기존의 대책을 넘어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청년들의 최대 고민거리인 일자리 문제의 적극적 해결을 정부 관계자들에게 주문했다. 정부·여당은 민심 이반의 기폭제가 됐던 부동산 정책도 다시 손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임 원내 사령탑인 윤호중 원내대표는 당 내 경선과정에서 성난 부동산 민심을 의식해 “정부가 실시한 부동산 정책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과감히 바꾸겠다”며 정책 기조 전환의지를 이미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당은 최근 부동산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관련 정책의 전반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1가구 1주택 등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부담 완화, 종부세 부과기준인 공시가격 상향 조정 등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아예 반성문을 썼다. 이들은 “모든 비판을 차단하고 나만이 정의라고 고집하는 오만함이 당의 모습을 그렇게 만들었다”며 자책했는데, 여기에 재선 의원 등 당 내 상당수 의원들도 공감을 표시했다. 다만 이 반성문은 당 내 극렬 강성 지지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또 다른 논쟁거리를 남겼다.
국민의힘에서는 차기 당대표를 뽑는 데 있어 중진 용퇴론이 불거져 나왔다. 그러면서 초선 당대표론이 급속히 퍼지고 있는데, 어렵게 마음을 돌린 2030세대를 잡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만일 초선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된다면 정당사의 최대 이변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현역의원 101명 중 초선의원은 56명으로 절반을 넘기는데, 이들이 힘을 합치면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벌써부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초선 당 대표 현실화의 최대 관문인 중진들 사이에서도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5선의 서병수 의원은 당 대표 불출마의사를 밝히며 다른 중진들도 동참하자는 주장을 했지만 별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당 내에서도 초선이 당 대표가 되면 “젊은 세대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유리할지 몰라도 차기 대선 관리까지 맡게 되는 신임 당 대표의 역할을 감안하면 그 깜냥이 되겠느냐”는 의견도 많다. 또 “현재 원내대표 출마 후보의 경우 대부분 중진인데, 초선 당 대표의 영이 제대로 서겠느냐, 이에 따른 혼란도 감안해야 한다”는 당 내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해 이번 보궐선거서 2030세대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이번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보여줬듯이 전통적 보수층에 더해 2030층을 끌어안지 못하면 선거에 이길 수 없다”며 당이 과거와는 다른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2030세대 사이의 첨예한 논쟁거리인 젠더이슈를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서울시장 국민의힘 후보 당선에 가장 기여한 층이 20대 남성(이대남)들이었고, 이들이 젠더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남들은 현 정권의 여성 친향적 정책에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종종 드러내는데, 이 문제를 부각시켜 이대남의 국민의힘 지지를 계속 끌고 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대남 사로잡기에 적극적이다.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병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아예 남녀 모두 40~100일간 기초군사훈련을 실시해 예비군으로 양성하자는 파격적 구상을 내놨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여성도 군대를 보내자는 청원까지 올라와 있을 정도로 남녀 성평등 이슈는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도정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50대 이탈도 눈여겨봐야
4월 보궐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지난해 총선 이후 공고했던 세대 간 동맹의 형태 변화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총선 결과를 보면 여야를 지지하는 연령별 유권자들은 20·30·40·50대 vs 60대 이상으로 확연히 나눠져 있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들은 태극기 부대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대깨문으로 통칭되면서 뚜렷한 집단군을 이루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런데 4월 보궐선거에서는 40·50대 일부 vs 20·30·60·50대 일부로 구도가 재편돼버렸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40대 남성 vs 20·30·50·60세대로 나뉘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구조사에서 40대에서만 그것도 남성들만 현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변치 않게 보여줬는데, 이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40대만 여권의 흔들리지 않는 지지층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될 것이 바로 50대 표심의 변화다.
지난 총선에서 50대는 단일 유권자(865만 명)로는 최대 수였다. 그동안 50대 이상은 일반적으로 보수 성향을 띤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지난 총선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진보적 모습을 드러내며 민주당에 대거 힘을 실어줬고 180석의 거대야당의 탄생에 일조를 했다.
지난 총선에서 50대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에서 진보로 나타난 것은 이들이 민주화 세대를 경험하면서 나이가 들어온 세대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실제 이들은 박근혜 정부를 산업화 시대의 연장선상이라고 여기며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자 40대와 함께 가장 적극적으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섰다. 그 결과물인 여당의 총선 대승은 산업화 시대가 확실히 끝나고 민주화 세대가 우리 사회를 장악했다는 패러다임 전환 논리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이들이 보궐선거에서 보수 후보로 쏠렸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들 또한 부동산 폭등 등 삶과 직결된 문제에서는 이념보다는 현실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들의 표심 변화는 보궐선거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엿볼 수 있어 일시적 현상이 아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갤럽의 4월 첫째 주(3월 30일~4월 1일) 조사만 보더라도 50대가 보는 차기지도감은 윤 전 총장(33%)이나 이 지사(30%)나 거의 엇비슷했다. 두 사람의 50대 표심 격차는 3%에 불과했다.
하지만 4월 셋째 주 조사에서 그 차이가 5%로 확대됐다. 윤 전 총장은 32%, 이 지사는 27%의 지지를 50대로부터 받았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50대는 윤 전 총장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장성철 소장은 “솔직히 현실문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세대가 50대가 아니겠냐”면서 “가졌던 가치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순위라는 것은 예로부터 바뀌지 않는 진리”라고 꼬집었다. 장 소장은 “내년 대선에서도 부동산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된다면 여당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윤상우 국제교류협회 이사장은 “20대와 50대의 표심 변화는 철저하게 삶의 문제 때문인 것은 맞지만, 이 흐름이 진영 간 대립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선에서도 이어질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특히 2030세대의 경우 각종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여서 어떤 변수에 흔들릴지 모른다”면서 “민주당이 총선 승리를 이뤄냈던 세대 동맹을 다시 복원하고 싶다면 2030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