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품이 세계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K-뷰티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뉴욕, 파리, 동경, 북경 등 해외 유명 도시에 가면 한국발 화장품을 파는 곳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개발한 마스크팩과 쿠션 화장품은 전 세계인들이 애용하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토니모리, 잇츠스킨 등 중저가 화장품들이 히트 상품을 연이어 개발하면서 상장으로 관심을 모았고, 해외에 진출해 선전 중이다. 역사 이래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화장품이지만 모든 회사가 축제 분위기인 건 아니다. 오히려 호황 속 더욱 치열해진 경쟁을 이기지 못해 사그라지거나 잘못된 관리로 위기를 맞고 있는 곳도 있다. 부침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해진 화장품업계 명암을 살펴본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UP1위 아모레 서경배 회장 뷰티 한류 이끌어
2위 LG생건도 거침없는 질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뷰티로드를 개척하고 있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탐험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20년까지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 5대 브랜드를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로 육성하고 이를 통해 5년 내 매출 12조원과 영업이익을 15%, 해외매출 비중 50%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가야할 고지가 명확하기에 그의 거침없는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해외 현지 공장을 통한 글로벌 사업 성과가 두드러지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글로벌 사업은 2014년 말 매출(K-IFRS 기준) 8325억원을 달성했고, 올 3분기까지 누계로 860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7% 성장한 결과다. 아모레퍼시픽이 해외에서 선전에 힘입어 화장품이 수출 효자 상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간 아모레퍼시픽의 수출실적은 1억9700만달러로, 전년(1억3000만달러)에 비해 51.4%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 수출액도 1억8253만달러에 달한다. 잠정 예상으로 2억달러(약 2300억원) 수출 고지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3년 국내 화장품 기업 최초로 ‘1억달러’ 수출을 넘어선 지 2년 만이다. 지난해 말 열린 ‘제 52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서경배 회장은 최고등급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서 회장은 중국 외에 중동, 중남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에 추가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2위 LG생활건강 화장품도 지난해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중국 화장품 시장 성장과 생활용품 시장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LG생활건강 주가는 황제주로 등극했다. 지난해 3분기 메르스 여파에도 불구하고 매출, 영업이익, 당기 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려 관심을 끈다. LG생활건강의 좋은 실적을 이끈 것은 2005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는 차석용 부회장이다. 그는 회사매출을 41분기째, 영업이익은 42분기째 증가세를 이어가는 놀라운 경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차 부회장은 얼마 전 LG그룹 임원인사에서 유임이 결정됐다. 이로써 차 부회장은 12년째 LG생활건강을 이끌게 됐다. 그가 취임 이후 성사시킨 인수합병만 15건으로 ‘인수합병의 귀재’로 통한다. 지난해에도 CNP차앤박화장품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 서경배 회장과 차석용 부회장은 오랜 특허전쟁을 종료하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양사는 화장품과 생활용품 분야의 등록 특허에 관한 상호 간 통상실시권 허여 계약을 한 것. 통상실시권 허여는 등록 특허의 특허권자가 다른 사람에게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 해당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제도다. 이로써 양사는 3년간 이어진 쿠션 특허 전쟁이 마침표를 찍고 선의의 경쟁에 나서는 모습이다.
유근직 잇츠스킨 대표, 배해동 토니모리 회장
UP한불화장품, 잇츠스킨 상장·네오팜 인수
토니모리, 中현지법인 설립…제조사업도
달팽이크림으로 알려진 화장품 업체 잇츠스킨이 2015년 12월 28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입성한다. 유근직 잇츠스킨 대표는 “일시적인 히트 상품이 아니라 20∼30년 뒤에도 소비자의 기억에 남는 롱런 브랜드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잇츠스킨은 2006년 한불화장품이 출범한 코스메틱 브랜드숍이다. 2009년 국내 코스메틱 브랜드숍 최초로 달팽이 점액물질인 ‘뮤신’을 활용한 달팽이크림을 개발했다. 잇츠스킨의 달팽이크림 ‘프레스티지 끄렘 데스까르고’는 전 세계에서 6초에 1개씩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유 대표는 “달팽이크림은 중국인 관광객 면세점 구매 필수제품에 오른 데 이어 웨이보 기준 1일 평균 검색량 100만 건을 웃도는 등 잇츠스킨의 성장 견인차”라고 소개했다. 잇츠스킨은 현재 달팽이라인 45개 품목을 비롯해 645개의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100∼150개의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75.8%에 달한다.
유 대표는 “모회사인 한불화장품이 이어온 연구개발(R&D)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브랜드숍과의 차별화된 점”이라며 “매출이 2배 이상 늘어도 한불화장품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잇츠스킨은 현재 18개국 71개 지점으로 운영되는 해외 단독 브랜드숍을 올해부터 100개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잇츠스킨 선전에 힘입어 모기업인 한불화장품도 공격적 경영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한불화장품은 애경그룹 계열사인 네오팜을 인수했다. 네오팜은 아토피피부염 보습제로 잘 알려진 ‘아토팜’ 등 코스메슈티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의약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피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피부질환 해결을 돕는 물질과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회사다. 네오팜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매출액 231억원, 영업이익 47억원, 당기 순이익 40억원을 기록했다. 한불화장품은 네오팜 인수, 잇츠스킨 상장뿐 아니라 향후 중국 시장을 교두보로 해 동남아 등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상장과 해외시장 진출 등 숨 가쁘게 달려온 토니모리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중국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 이 회사는 중국 절강성 평호시에 현지법인 및 생산시설을 설립한다. 이를 통해 현지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제조전문 사업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현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 가격경쟁력을 강화하고 별도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및 제조자개발생산(ODM) 등 제조사업도 전개할 예정이다. 초기 예상 투자규모는 약 2500만달러 수준이다. 한편 토니모리를 상장하면서 현금을 확보한 배해동 토니모리 회장이 최근 금강제화가 보유하고 있던 서울 양재동 빌딩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DOWN미샤, 과도한 할인 자충수
네이처리퍼블릭, CEO 리스크
브랜드숍의 효시격인 미샤를 만든 에이블씨엔씨가 영업에 고전을 겪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지나친 가격할인과 덤핑공세로 단기적 이익은 얻었으나 결국 브랜드 이미지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대표는 지난해 개인 SNS에 글을 올려 “미투제품 마케팅부터 변질되기 시작됐고, 미샤가 지금은 그냥 그런 화장품 브랜드”라고 반성하는 의미를 글을 남긴 바 있다.
2000년 설립된 미샤는 ‘3300원 제품’이라는 저가 전략으로 브랜드숍 업계 1위를 지속해왔으나 비슷한 전략을 취한 경쟁사가 많아지면서 점차 실적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오랜 기간 히트 상품이 부재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샤의 히트상품으로 불리는 제품들은 2007년 ‘M 퍼펙트 커버 BB크림’과 후속 제품인 ‘M 시그너처 리얼 컴플릿 BB크림’, 한방화장품 고가 라인, 2011년에 출시된 시그너처 바이브레이팅 마스카라 등이다. 또 2012년 명품 화장품과의 대결을 선언한 에센스, 아이크림 등이 이슈를 만들며 히트 상품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후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작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 미샤는 유럽 시장 진출을 통한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미샤가 처음 입성한 유럽 시장은 독일 잉골슈타드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독일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13년 기준 151억8000만달러(약 16조7000억원)로 세계 5위, 유럽 1위에 올라 있다. 이어 최근에는 스페인의 수도 바르셀로나에 단독 매장을 열었다. 코트라에 따르면 스페인은 연간 화장품 시장 규모가 64억유로(약 8조2000억원)로 유럽에서는 5위에 올라 있다. 또 스페인의 한국 화장품 수입 규모는 2010년 25만유로에서 2014년 261만유로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에이블씨엔씨는 미샤 매장을 러시아,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을 중심으로 진출해 온 바 있다. 동유럽 진출 경험을 바탕으로 서유럽 시장 전반에 대한 적극적인 진출을 시작한 셈이다. 에이블씨엔씨 측은 “화장품 본고장인 유럽에서 품질로 승부해 반드시 성과를 보이겠다”며 “유럽에도 한국 화장품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네이처리퍼블릭이 ‘오너 리스크’라는 악재에 부딪혔다. 정운호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으면서 그동안 추진했던 기업공개(IPO), 해외 사업 등이 차질을 빚고 있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지분 100%를 보유한 오너이자 CEO인 정 대표의 부재로 네이처리퍼블릭의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당장 ‘제2의 도약’을 위한 첫 단추인 IPO부터 난관에 부딪힐 전망이다.
정 대표는 해외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내년 초 IPO를 준비하고 있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K-뷰티의 열풍 속에 네이처리퍼블릭이 국내 증시에 화려하게 데뷔할 것으로 예상했다.
IPO주관사 선정 당시 예상된 시가총액만 5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네이처리퍼블릭의 IPO 주관업무를 담당한 대신증권은 최근 관련 작업을 일체 중단한 상태다. 정운호 사장은 오랫동안 경쟁을 벌여온 라이벌인 업체인 미샤로부터 지하철 매장 사업권을 가져오면서 적극적인 사업 확장을 추진해왔다.
소망화장품은 KT&G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거액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화장품은 자사 브랜드숍 브랜드인 더샘이 영업부진으로 고전 중이다. 한국화장품의 임충헌 회장과 한불화장품의 임병철 사장은 형제지간이다. 한국·한불화장품을 창업한 고 임광정 회장의 각각 장남과 삼남이다. 형제가 브랜드숍 화장품인 더샘과 잇츠스킨을 각각 론칭해 사업을 벌여왔다. 현재까지 경영 실적은 더샘은 흐림이고, 잇츠스킨은 맑음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