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월 26일 이른바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첫 번째 대책이라며 서민·중산층 주거안정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내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밝혔다.
정부의 이런 상황인식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사상 최장·최악의 전세난에 곳곳에서 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궁지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 내몰린 청와대와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임대차 선진화 방안을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지만 막상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시장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물론 월세 소득공제 대상과 한도를 확대해 한 달치 월세를 돌려준다는 소식만 접한 일부 월세 사는 직장인들은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세에서 월세로 임대차시장 구조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임대료 부담을 줄여주는 정부 대책이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란 얕은 판단에서다.
그러나 시장의 전반적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대책이 나오자마자 시장은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다. 한국 고유의 임대차 문화에 무지한 정부가 내논 임대차 선진화 방안은 여론의 뭇매를 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깜짝 놀랐다. 부랴부랴 지난 3월 5일 일부 임대인 과세를 2년 유예한다는 보완조치를 내놨지만 시장은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모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에 정부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임대차 선진화 방안 무슨 내용이기에
임대차 선진화 방안 중 아직까지도 논란이 뜨거운 부분은 유명무실한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측 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던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로 ‘세수확충’이라는 부푼 꿈을 꾼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부는 대책에서 소규모 월세 임대소득에 대해 분리과세 방침을 밝혔다. 2주택 이하 보유자로서 주택임대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 경우 14%의 단일세율로 소득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소규모 주택임대 소득은 규모의 영세성과 전세 보증금 임대소득과세 대상자인 3주택 이상 보유자와의 형평성 등을 감안해 세부담을 합리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실제 시뮬레이션 결과 근로소득이 5000만원이 있는 부부가 1주택을 임대해 연간 임대소득 1000만원을 거둘 경우 현재 종합과세에 따른 세금은 75만원이지만 분리과세를 하면 70만원으로 세금이 5만원 줄어든다.
정부는 이렇게 소액 임대소득의 경우 오히려 세금이 줄어든다며 이번 대책으로 소규모 영세 임대인들의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세금을 깎아줄 테니 이제 양지로 나와서 세금을 내고 떳떳하게 임대사업을 하라는 뜻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관리들이 탁상에 앉아 짧은 식견으로 내놓은 정책이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우선 공동체의 상호부조 성격이 강한 전세 제도의 장점에 대한 인식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주택문제는 사실 오랜 동안 서민들이 서로 나누는 저비용 구조의 ‘전세’에 의존해 왔는데 정부가 고비용 구조의 서구식 제도인 월세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가 세금 징수에만 혈안이 돼 민간의 순기능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은퇴자·생계형 임대인 세금폭탄
실제 정부의 임대차 선진화 방안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다른 소득 없이 임대소득만으로 생활하는 은퇴자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시뮬레이션 결과 다른 소득 없이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은퇴자들은 지금처럼 종합과세를 할 경우 6%였던 세율이 분리과세한다면 14%로 두 배 이상 높아지면서 내야 할 세금도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적게는 20만~30만원, 많아봐야 70만~80만원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은퇴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나라의 곳간을 채우겠다는 발상에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각종 시뮬레이션 결과 다른 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정부가 밝힌 대로 소득세 부담이 지금보다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소득이 있다는 얘기는 월세만 받아서 생활하는 생계형 임대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부자감세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부는 지난 3월 6일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보완조치’를 내 놓았다. 정책 발표 일주일 만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진화에 나선 셈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경제팀을 신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시장에서 터져 나왔다.
보완조치는 연간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 2주택 소유자에 대한 임대소득 과세를 2년간 유예하고 2016년부터 분리과세 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동시에 정부는 월세 임대소득자와의 과세형평을 감안해 3주택 소유자에 국한된 전세 임대소득 과세를 2016년부터 2주택 소유자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살아나는 주택시장에 찬물
그렇지만 정책 당국자들은 경제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서민들의 심리를 간과한 것이다. 지금 정부의 보완조치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은 여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민간 임대를 활성화하겠다면서 지금까지 안 내던 세금을 내라고 하면 임대인들이 선뜻 내겠냐”며 “보완조치로 전세까지 과세하기로 한 만큼 집을 처분하는 다주택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다주택자 매물이 부동산에 하나 둘 나오고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물량이 쏟아지고 있지는 않지만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면 시장에 다주택자 매물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등도 직격탄을 맞았다. 세입자들이 주인 동의 없이 월세 소득공제를 신청하게 되면서 상당수 임대소득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로 임대차 시장이 위축되면 전·월세난이 더 심화될 수 있다. 전·월세난 해소 차원에서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 밖에도 임대차 선진화 방안은 곳곳에 구멍이 많다.
우선 세입자가 월세 소득공제를 신청하지 않으면 여전히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 용산에 집중된 외국인 대상 고액 월세 주택의 경우 이들이 확정일자를 받지 않고 소득공제도 신청하지 않기 때문에 임대사업 등록을 하지 않아도 세원이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
반대로 소액 월세를 내는 세입자 중 연봉 3000만원이 안되는 근로소득자는 과세 미달자로 낼 세금이 없기 때문에 월세 소득공제를 신청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월세 소득공제 확대의 실질적인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월세 소득공제 확대 수혜는 연봉 5000만~7000만원 근로소득자들에게 집중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 꼼수도 등장하고 있다. 임대소득을 최대한 줄여서 신고하기 위해 집주인들이 월세를 줄이고 대신 관리비를 대폭 인상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임대료 수입은 그대로지만 월세가 줄고 관리비가 늘면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이 줄어든다는 점은 파고든 것이다.
지금 집을 임대하는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세금을 피할 생각들을 하고 있다. 세금 귀찮아 아예 임대를 접자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분위기가 막 살아나려는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분명하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경기가 장기간 횡보를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오석 경제팀의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