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인 이상 도시가구 가운데 저소득층 비율은 2001년 9.2%에서 2011년 12.4%로 늘었고 중산층 비율은 같은 기간 71.7%에서 67.7%로 줄었다. 이는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른 저소득층의 불만이 이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란 정치적 구호를 통해 표출됐다. 그런데 그 화살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와 현대차로 집중됐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재벌 규제를 전면에 내세운 민주통합당은 지난 2007년 364개이던 10대 그룹 계열사가 2012년 638개로 274개가 늘었다는 자료를 제시하며 상위 10대집단 총수는 평균 0.94%에 불과한 지분을 들고 수십 개 계열사를 거느린 수십조 원의 기업집단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금산분리 원칙을 강화해 금융회사가 재벌의 사금고화하거나 계열사 지배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더 나아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다시 도입하고 재벌 총수일가의 부당한 사익 추구도 근절하겠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이보다는 유연한 현실적인 공약을 내놨다.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중 기존에 있었던 것은 유예를 두되 신규만 금지하고 대기업의 금융·보험 계열사가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일정 정도 제한하기로 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양당이 유사한 공약을 제시한 만큼 새 정부 출범 이후 순환출자 금지나 금산분리 강화라는 규제가 어떤 식으로든 제도화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 ·현대차그룹 긴장
이런 공약이 외면상으로는 10대그룹 전반을 대상으로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삼성·현대차 그룹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비주력 계열사가 크게 늘어난 것은 재벌그룹만의 현상이 아닌데도 재벌그룹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게 우선 그렇다. 실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코는 17개에서 70개, KT의 경우 12개에서 50개로 계열사가 늘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경제민주화 공약의 타깃에선 벗어나 있는 상태다.
이번 선거에서 핵심 이슈였던 순환출자 문제의 경우 대상이 아주 제한적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순환출자가 있는 기업집단은 15개에 달해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여러 그룹이 규제를 받을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규제 강화로 고민하게 될 곳은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 정도에 국한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현대차 지분 20.8%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차를 통해 기아차 지분 33.9%를 들고 있고, 기아차가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들고 있다. 한마디로 손자 회사가 할아버지 회사의 주인인 셈이다.
현재 정몽구 회장 개인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6.99%, 현대차 지분율은 5.17%이다. 기아차에 대해선 정의선 부회장이 1.7%를 들고 있을 뿐이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면 당장 기아차가 들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팔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4조7000억 원을 조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 지분 모두를 팔아도 60%(기아차 지분 기준 약 10% 내외)만을 해소할 수 있다.
삼성의 경우 금융사 의결권 제한이 핵심 이슈다. 이건희 회장 일가는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 지분 19.3%를 들고 있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5%를 소유하고 있다. 또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 지분 4.06%를 들고 있으며 이건희 회장 일가가 들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4.7% 내외다. 금융기관의 의결권을 제한할 경우 당장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에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기타 대주주로는 6%를 들고 있는 국민연금과 5.18%를 들고 있는 시티뱅크가 있다.
이런 상태에서 순환출자를 해소하라고 하면 당분간 두 그룹의 신규 출자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이 이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 이슈라고 내세우면서 선명성을 강조한 이슈들은 한국 최고의 기업들에게 족쇄를 채울 수도 있는 사안이다.
공약 수정 불가피할 것
양당이 비슷한 약속을 해 현실화할 가능성은 커졌지만 이런 면에서 이들 규제가 실제 시행되려면 상당 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책이 경제 정의를 구현하는 핵심이 아닐 뿐 아니라 예상되는 부작용도 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민주통합당이 ‘재벌’을 핵심 개혁 대상으로 거론했지만 포스코나 KT도 대규모 확장을 해왔던 만큼 용어 자체부터 ‘대기업집단’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경제민주화라고 내세운 정책들의 상당수는 경제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다.
정치권은 순환출자 해소나 금산분리를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지배구조가 경제 문제를 야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거센 저항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이다. 외환위기는 물론이고 최근의 금융위기도 주된 원인은 지배구조가 아닌 과도한 차입경영이었다. 한마디로 기업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차입을 한 게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발생한 엔론사태의 경우는 지배구조는 좋았으나 분식결산을 한 게 문제였다. 지배주주의 자기거래나 부당 내부거래 등을 적발하지 못한 책임은 우선 정부 당국에 있다. 그런데도 양극화의 원인이 지배구조에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한 것은 난센스 중에서도 난센스라고 할 수 있다.
종합할 때 이번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양 제기된 이슈들은 대부분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도 비난의 화살이 기업에 집중된 것은 합리적 비판이 이뤄지지 않고 정치 바람을 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런 이슈들은 ‘공약’의 옷을 입고 나왔지만 실제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