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질서는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으로 재편되는가. 미국과 함께 G2로 대표되는 중국의 영향력은 이미 경제 분야를 넘어 정치·사회·외교·문화 등의 분야로 까지 확대되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 이어 중국식 세계질서가 뒤를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노리는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한편에서는 인본주의에 기초한 부강한 중국 만들기라고 해석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으로서 세계경제 질서의 중심이 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 주도의 세계)의 시대를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이 꿈꾸는 글로벌 대국의 실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세계질서 재편은 아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지금만큼 우리에게 중국이 큰 벽으로 느껴진 적은 없었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11월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행위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그들의 편을 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
2010년 중국이 150여 년 만에 아시아 역내에서 일본을 제치고 적어도 총량면에서는 제1위 경제대국으로 귀환할 것 같다. 서울에서 개최된 G20 회의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환율절상 압력에 중국은 완강한 태도를 취하며 버텼다. 어쩌면 미국의 시대가 가고 중국의 시대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거대해진 이웃 중국과의 관계가 우리의 향후 명운을 결정할 수도 있다. 특히 한반도가 어떠한 형태로든 냉전을 청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중국과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가 우리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를 가늠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면 중국이 추구하는 세계는 무엇이며 중국식 세계질서는 무엇인가?
아직은 드러내지 않은 세계질서 청사진
중국은 흥미롭게도 세계질서를 여하히 가져갈 지에 대한 청사진은 갖고 있지 못하다. 서방에서는 성급하게 ‘베이징 콘센서스’니 하는 중국식 모델이 있다는 투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중국이 지향하는 이념의 사회는 결정된 게 없다. 덩샤오핑의 100년 대계도 국민을 배불리고, 최저 문화생활을 하게 하며, 마지막으로 대동사회를 이루는 정도였다. 물론 대동사회가 세계 비전일 수도 있다. 아마 덩샤오핑 자신이 1920년대 유럽의 영화로운 생산 현장을 근로학생으로서 보았고, 1950년대의 구 소련의 첨단발전 현황을 마오와 함께 지도자로서 시찰했으며, 1970년대 미국의 피크를 뉴욕에서 직접 목격했을 뿐 아니라 1980년대 일본의 생산성 극대점을 낱낱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덩샤오핑은 그들 국가처럼 잘 살아야지 하는 정도의 인식이지 세계를 어떻게 끌고 가야겠다는 인식은 어느 곳에도 발견되고 있지 않다.
우선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서방을 포함한 세계질서를 추구해 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공관계가 하나의 예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너무 큰 나라였기에 자신이 세계 중심이라는 인식하에 머물렀지 구태여 세계화를 추구해 본적이 없다. 중국질서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측면이라면 아주 가까이 몽골 시대가 있었다. 몽골이 지배한 13~14세기는 이념이나 사상의 측면보다는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고 지배계층이 얼마나 많은 금은보화를 약탈해서 갖느냐가 기준이었을 것이다. 올리비아 뉴톤 존이라는 호주 가수가 부른 <Xanadu>(제너두)라는 노래가 묘사하는 것이 이상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몽골 황실이 여름을 나기 위해서 만든 이궁이 상도(上都. 수도는 지금 북경인 大都)인데 그것의 발음이 서방인에게는 Xanadu로 들린 것이다. 서방세계에서는 Xanadu가 만물이 넘치는 이상향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념적으로는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정도이고 복종하기만 한다면 그만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명나라 시대의 정화(鄭和)가 거대군단을 이끌고 동남아시아로부터 아프리카까지 몇 번 다녀온 것이 중국의 또 하나의 세계화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15세기 초 진행됐는데 당시 물력과 권위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개념이 새로운 제품 교역의 활성화에 의한 경제적인 이익의 공유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중국이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신기한 물건들을 동남아와 아프리카로 나르고 이를 통해서 권위를 넓혀간, 어쩌면 경제 중심의 세계화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중국의 관심지역 범위는 동남아→인디아→아프리카로 연장됐다.
그 이후 청나라 시대의 세계관 또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청은 사실 변방 부족으로서 중원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지배한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고, 이러한 측면에서 더 이상의 세계화가 불필요했다. 이처럼 명·청 시대를 관통한 개념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조공제도로, 중국과 각 조공국 사이의 ‘관계’에서 공품과 예물을 매개체로 중국의 수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서로 간에 복잡한 등급관계가 형성됐고 동시에 경쟁관계 또한 지역을 넘어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됐다. 그러나 어떠한 이념도 개입되지 않았다.
현대에도 손문이 대아시아주의를 주창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당시 역사적인 시대의 산물이지 그 속에 뭐를 담아야 할지는 전혀 공백이었다.
두 번째로 중국인의 행동 양식에서도 아직 어느 곳에도 세계질서의 개념은 없다. 필자는 자주 우리가 중국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식으로 그것도 자의적으로 보고마는 병폐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곤 했다. 중국이 아시아에 있다고 해서 우리와 행동 양식이 아주 비슷할 것이며 잘 통할 것이라는 관념이다. 특히 유교사상이 우리보다 더 강할 것으로 보는데, 이미 우리식 유교 이념이 중국에서 사라져서 중국은 미래가 없다는 식의 섣부른 평가를 내리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여기서 오해는 시작되는 것 같다. 오히려 중국은 뭔가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나름대로 자체적 변화의 주체이기에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들 중국인의 행동 양식을 ‘선동거 후결혼’이니 자기이익을 위해서는 뭐든지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만큼 중국의 생각은 획일적인 체계를 잡지 못할 정도로 사이즈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아주 복잡한 생명체인 것이다.
사실 중국의 개혁·개방의 실마리가 된 농지자유 활용권 부여도 실험을 추인해준 결과다. 당시 이를 도입한 자오즈양이나 완리가 자신들이 통치하던 지지리도 못살던 사천성과 안휘성에서 지방 간부가 행한 실험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 간부들은 배고픔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다가 목숨 걸고 이를 실천해서 해결한 것이다. 이후 이 성공 사례를 중앙정부가 채택, 이를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중앙에서 결론을 내리고 이를 지방이 따라서 집행하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수 중심의 발전이 핵심
그러면 중국이 정말 일부에서 예측하는 것처럼 2025년경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의 최대경제국이 되어도 그러하겠는가의 의문이다. 이것은 중국이 현재 추구하는 생각이나 내걸고 있는 구호 등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국가발전의 1단계 목표를 끝낸 것에 불과하다. 1972년 UN가입, 2001년 WTO가입, 2008 올림픽개최, 2010년 EXPO 개최 등 일련의 이벤트로 세계를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2억5000만 극빈층을 해결, 덩샤오핑이 설계한 제1단계, 즉 배고픔을 해결한 상태의 발전을 이룬 데 불과하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내 문제에 매달려서 2단계 발전, 즉 최저 문화생활을 달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것이다.
이 측면에서 중국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내수 중심의 발전은 그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국내 문제 중심이지 대외 문제 개입에는 에너지 투입을 최소화할 것이다. 물론 2006년을 기점으로 <대국굴기>라는 CCTV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국민을 계몽했다던지, 속편인 <부흥지로>라는 것을 통해서도 중국이 지향하는 세계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나름대로 국가의 흥망성쇠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과거의 강국들이 과연 여하한 경로를 통해서, 또한 여하한 방향으로 국가를 만들어 갔는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세계를 지배한다는 개념보다는 국가를 어떻게 부강시키느냐는 다분히 국내적인 문제인 것이다.
한 영토안의 국가는 흥망성쇠의 주기가 나름대로 있다. 즉 중화주의가 있었다면 이를 포함한 새로운 사상, 이념의 추구는 나름대로의 주기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중국처럼 패권 가능성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는 없었다. 미국이 추구한 세계질서의 이념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였고, 이 새로운 신기루를 좇기 위해서 전 세계가 지난 2~3세기 간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 결과 현재로서는 미국의 피크를 끝으로 어쩌면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엉뚱하게도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250여 년이 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미국의 이념은 개척 정신에 바탕을 두고 1774년에 제도화됐으며 그 피크는 1900년대에 이루어 졌다. 하나의 왕조나 가계가 이를 이끌어 간 것이 아니라 이념으로 끌고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초가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라고 본다면 결국은 250년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건 아닌지? 일본 또한 도쿠가와 막부시대의 경우 1600년대 초를 시작으로 해서 1868년까지 260여 년을 지속하지만 결국은 새로운 사상의 도래에 의해서 해체됐던 건 아닌가? 중국도 마찬가지로 청나라 역사를 본다면 1644년 경 중원을 차지하고 난 후 강희→옹정→건륭을 거치면서 130년간의 클라이맥스를 거치고 결국은 1800년대 초부터 스러져 가다가 270여 년만인 1911년에 자체적으로 붕괴하고 말았다.
인본주의의 개념화
어쩌면 중화주의도 과거의 흥망성쇠와 함께 이미 흘러간 개념에 불과한 것일지 모른다. 중화사상이라는 것도 다소 애매모호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중화사상이란 중국 중심적인 생각을 강요하고 이를 이웃에게까지 전파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즉 인류의 보편타당적인 생각이나 사고보다는 부단히 중국 중심적인 생각만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했을 것이다. 과연 무엇을 중화사상이라고 하는 것인지? 이것은 불변한 것인가? 애매한 것이다. 중국내에서 한 통치 세력이 강력하고 필요할 경우 중화사상이 강조되지만 주도세력의 힘이 약해지거나 강력한 라이벌 세력이 나타나고 더 나을 경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자주 보곤 한다.
결국은 현재의 중국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면 우선 물질적으로는 국가주도 시장경제 도입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아직까지 모색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최근 중국의 추세를 보면 절대적으로 강조된 것이 결국은 세계와 더불어 살고, 중국 특유의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즉 대동사회, 조화로운 사회, 중용, 균형 등의 이념에서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이 현재 추구하는 국가주도의 창조와 혁신이라는 개념과 인본주의라는 개념은 주목할만 하다. 국가주도의 시장경제와 거대인구에 기반한 다원주의, 조화, 다양화가 중요한 테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10월 말 끝난 상하이 엑스포에서 중국관을 보고 필자는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중국관의 맨 위층에 전시한 그림이었다.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 송나라 시대의 구태의연한 곰팡내 나는 그림에다가 초현대식 IT 기술을 접목시켜서 죽어있는 물체를 동영상화 시켰다. 간단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혁신을 나름대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상상의 날개를 현실화시킨 점에서는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가 어린이들의 상상력의 다양성을 보여준 것이다. 층계에 전시된 전국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이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다양한 소재와 상상을 초월하는 기법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결국은 숫자가 많다는 점이 부담도 되고 막대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처절한 측면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중에는 뭔가 다른 창조가 일어 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의 부호 순위에서 상위 인사들의 출신지를 보면 상당수가 인구가 빽빽한 사천이나 먹고살 것이 변변치 않은 안휘성 등에서 출발해서 거상으로 발전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자못 흥미롭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인본주의를 개념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 꽃핀 민주화도 이미 2000년 이전에 로마에서 시작됐고 이것을 미국이 단순히 정치 결정 과정에서만의 민주화가 아닌 대중민주화로 바꾼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따라서 중국이 체계화하고자 하는 조화로운 사회와 인본주의도 눈여겨봄 직하다. 중국에서는 현재 유교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과거 한때 공자와 맹자를 비난한 적이 있었는데 1990년대부터 공자의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하면서 그 이상(理想) 가운데 재해석할 것이 없는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또한 프랑스의 알리앙스나 독일의 괴테인스티튜트처럼 중국도 ‘공자 학원’을 세계 각국에 세우고 이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것이 어쩌면 인본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상은 아닌지? 즉 사상적으로 인본주의가 아직 개념화되지는 않았지만 그 개념을 부지불식간에 만들어 가고 있다고 판단된다.
중국에 이익이 주는 내부 역량이 먼저
그러면 이러한 방향의 국제질서가 우리에게 해인가 독인가? 남북한 문제에서 중국이 얼마나 개입할 것인가? 어쩌면 중국은 남북한 문제에서도 이상에서 필자가 얘기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쉬운 결론이 나올지 모른다.
하나는 너무 한반도 문제로 중국이 자체 추진하고 있는 국내문제(즉 발전의 추구)에 해가 되는 것을 최소화하는데 국력을 쏟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북한의 너무 급속한 붕괴 사태 발생에 따라서 난민이 발생한다는 것은 중국자체 발전에 또 하나의 부담인 것이다. 둘째, 북한의 후계문제에 대해서도 명백한 의사를 밝히고 있지 않다. 이는 중국식 만만디 개념을 원용한다면 잘 이해가 된다. 중국이 구태여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자체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까지는 한없이 기다릴 수 있다는 인식이다. 개혁·개방 이후 그렇게 문제시되던 국유기업 개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국유기업 개혁의 구호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내걸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준비를 거치면서 20년이 지난 1998년이 되어서야 칼을 들게 됐다. 그것도 칼을 들고 직접 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칼을 가지고 떡을 썰어서 신생 대항 기업에게 넘겨주는 행태를 보여준 것이다. 어떤 주어진 목표를 일관되게 추구하거나 하는 것보다는 만들어 간다.
따라서 남북한 문제에서도 중국의 국제질서가 여하해야 하는지를 따지기 앞서서 우리가 내부의 힘을 키워서 중국에게 뭔가 이익이 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시쳇말로 깐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갖고 긴 호흡으로 설득한다면 중국은 받아들일 것이고, 그 결과가 바로 지역질서의 축이 될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여하히 중국에게 비치고, 중국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느냐가 관건이다.
[정영록 /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yrcheong@snu.ac.kr]
세계질서 재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중국경제는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2009년 미국은 -2.4%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중국은 금융위기에도 9.1%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다. 2010년에는 미국의 2.7% 성장전망에 비해서 중국은 10.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으로서 중국이 세계경제 질서의 중심이 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 주도의 세계)의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30년 전만 해도 중국은 세계경제사에서 잊어진 나라였다. 아편전쟁 이후 청제국의 몰락과 대약진 운동, 문화혁명 등 공산당의 연이은 정책 실패로 중국은 ‘죽의 장막’ 속에 가려진 그저 가난한 대국일 뿐이었다.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고 대외적 영향력도 크지 않았다. 그러던 중국이 ‘중국경제의 설계사’로 칭송받는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죽의 장막’에서 나와 30년 만에 세계무대에 우뚝 서게 됐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실용주의 사상으로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세계 최대의 수출국, 세계 2위의 수입국 등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강자가 되었다.
2030년경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전망
2003년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중국경제가 2015년 일본을 추월하고 2040년경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당시로서 막연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이 불가능해 보이던 전망이었다. 하지만 2010년 중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일본의 경제규모를 추월하면서 그 전망은 현실로 다가왔다.
중국이 가진 대내외적 위험으로 중국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2009년 말 현재 중국의 경제규모는 4조9092억 달러로 14조2563억 달러인 미국의 3분의1 정도여서 아직 미국과는 격차가 크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향후 중국경제가 연평균 6~8%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 이르면 2020년, 늦어도 2030년 무렵에는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이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것에는 시간에 대한 작은 이견만 있을 뿐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중국이 보여준 성장 속도와 기세를 보면 이러한 전망에 대한 믿음은 더욱 굳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공생의 차이메리카에서 경쟁의 G2로
금융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2006년 자신의 저서인 <금융의 지배>에서 미국과 중국의 긴밀하게 얽힌 경제적 공생관계를 가리켜 중국(China)과 미국(America)을 합친 ‘차이메리카(Chimerica)’라고 말했다. 퍼거슨 교수는 중국의 수출과 미국의 수입·채권·채무로 이루어진 특수하고 상호의존적인 공생관계를 통해 지난 10년간 중국과 미국은 고도성장과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지난 10년간 중국은 자국 제품을 미국에 수출해 경제 발전을 이룩했고, 미국은 중국산 저가 수입품 덕분에 저금리 시대에 인플레이션 우려 없이 풍요를 누려왔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로 미 국채를 매입했으며 미국은 이를 통해 재정적자를 보충하고 세계 최대 시장으로서 중국 상품을 소비했다. 상호의존적이고 공생적인 순환구조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에서 비롯된 중국의 자신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7(선진 7개국)을 대체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나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그리고 아프리카, 중남미 등을 대상으로 한 경제외교 등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2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세계 5위의 투자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아시아를 넘어 프랑스에서 200억 달러의 항공기를 구매하고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국가의 국채를 사주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의 위안화 절상압력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면서 개발도상국의 대표주자로서 발언권을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지분권 확대라는 성과까지 이루어 냈다. 이로서 중국은 점진적이고 안정적인 환율정책을 펼 수 있는 대외적 동의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미국이나 EU, 일본 등 선진국들이 주도해 온 글로벌 경제질서를 재구축하고 경제강국으로서 미국과 경쟁하며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슈퍼파워, 소위 ‘G2’로 재부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팍스 시니카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들
중화민국 부흥을 통해 중국을 새로운 대국, 팍스 시니카로 건설하려는 중국정부의 노력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2006년 11월 중국의 공영방송인 CCTV는 <대국굴기>(大國屈起)라는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은 2년에 걸쳐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포르투칼,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1500년 이후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던 9개 국가의 흥망성쇠를 조망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 패권을 잡을 국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전 세계에 던지면서 중국이 팍스 시니카로 나아가기 위한 대외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1세기 들어와 세계 패권을 차지한 미국의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존 강대국들은 무력으로 식민지를 점령하면서 세계패권을 차지했다. 반면 미국은 무력 대신 금융과 에너지 등 경제적 자원을 장악함으로써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이 팍스 시니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전략을 시행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이에 따라 2007년 중국투자공사(CIC)라는 국부펀드를 설립해 세계금융 중심인 미국 월스트리트에 진출했다. 또한 중국 공상은행은 남아공 스탠더드 뱅크 지분 20%를 인수해 아프리카 자원개발을 위한 금융교두보를 확보했다. 최근에는 위안화 무역결제 확대를 통해 위안화 거래 시범실시 지역을 20개 성으로 확대하고 중국내 적격기업도 6만7000여 개로 확대하는 등 위안화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석유기업인 시노펙(SINOPEC)은 이란 야다바 유전개발에 20억 달러를 투자했고, 베네수엘라와는 10억 달러 규모의 유전을 공동개발 중이다.
<대국굴기>가 방송된 후 4년 뒤인 2010년 10월 17기 5중전회에서 중국정부는 향후 중국경제정책의 청사진이자 팍스 시니카로 나아가기 위한 대내적 전략인 12차 5개년(2011~2015년)규획을 발표했다. 성장제일주의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개혁·개방 이후 지난 30년 동안 중국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틀이 ‘국부(國富)’에 초점을 맞춘 양적인 ‘경제성장’이었다면 앞으로 ‘민부(民富)’에 초점을 맞춘 질적인 ‘경제발전’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합리적인 소득분배와 함께 도시와 농촌간의 고른 성장, 민생을 위한 의료 개혁과 사회보장 시스템 강화 등이 기본 방향으로 제시됐다. 또한 팍스 시니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수확대, 민생 개선, 저탄소 성장, 7대 전략적 신흥 산업 육성 등 4대 키워드를 주요 실천과제로 선정했다.
첫째, 내수 확대를 위해 소비 수요를 확대하는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소득분배제도의 합리적 조정과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 도시화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중·저소득층 소득 증대를 통한 소비능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특히 호구제도 개혁을 통한 도시화의 가속화는 방대한 농촌지역의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을 유도해 소비 수요를 증가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농촌개혁, 의료개혁 등 사회보장 시스템 개선 등 민생개선을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 가는 출발점이자 팍스 시니카로 가는 지향점이라고 제시했다.
셋째, 경제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 자원 절약형 친환경 사회건설을 목표로 하는 저탄소 성장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탄소배출 감축, 에너지 소비 총량 통제, 순환경제 발전, 자원 절약 및 관리의 강화 등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GDP 대비 에너지 소비량을 15~20%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20년까지 40~45% 감소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5조 위안 규모의 청정에너지 개발계획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서는 천연가스 사용을 2015년까지 현재 4%에서 8%로 확대하고, 풍력·태양광·바이오매스는 3%, 수력·원자력은 현재 7%에서 9%로 늘릴 예정이다.
넷째,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차세대 정보기술 ▲신재생 에너지 ▲첨단 장비제조 ▲에너지절약 및 환경보호 ▲바이오 ▲신에너지 전기자동차 ▲신소재산업을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육성키로 했다. 현재 2%에 불과한 이들 7대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15년까지 8%, 2020년까지 15%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팍스 시니카 시대에 대비하고 활용해야
중국경제의 부상은 한국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한국경제에 독이 되고 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부상으로 생기는 기회요인을 최대한 활용하고 중국의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우선 중국 내수 소비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향후 내수 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의 전환이 가속화됨에 따라 중국 내수시장은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므로 선도적이고 적극적인 공략이 필요하다. 특히 농촌지역이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되므로 농촌지역에 맞는 가격전략과 제품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둘째, 신에너지, 신소재, 녹색산업, 정보산업 등 중국 정부의 산업정책과 발전 방향에 맞는 산업 분야로의 전략적 진출을 통해 새로운 투자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또한 지속적 기술개발을 통한 기술경쟁력을 유지해 구조조정과 기술혁신으로 경쟁력이 강화된 중국 제품의 추격을 따돌려야 할 것이다. 셋째, 차이나머니의 국내 유입 급증 등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정을 예방하고 중국의 급격한 정책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중국 경제 및 자금흐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