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패권 다툼이 반도체에서 바이오 분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 내 중국 바이오업체들의 행보가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다. 이에 미국은 생물보안법(Biosecure Act)까지 만들어 중국 바이오업체들에 대해 직접 제재의 칼을 들었다.
생물보안법은 중국 바이오기업의 거래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로, 적대 국가의 생명공학 기업· 조직·단체 등에 미국인의 유전 정보 유출을 방지한다는 것을 법안 제정 취지로 내세우고 있다. 생물보안법은 지난 3월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하원 및 상원 전체회의를 통과한 후 대통령의 서명을 받으면 정식 발효된다.
중국 바이오업체는 베이징유전체연구소(BGI) 그룹과 우시앱텍, 그리고 그들의 계열사 등이다. 미 안보 당국은 이 업체들이 중국 정부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바이오판 화웨이’로, 이들이 수집한 미국 내 민감한 바이오 정보가 중국 정부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방첩 기관들은 미국에서 활동해온 중국 바이오테크기업들을 오래도록 주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반도체를 필두로 미·중 간 벌어지고 있는 기술 패권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마냥 억지스러운 트집 잡기만은 아니다. 이들 기업이 중국 정부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힘든 구석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정부와 연관돼 있다고 이들 기업이 불미스러운 일을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 체제의 특성상 의구심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하다.
1999년 설립된 BGI는 중국에서 설립된 비영리연구기관이다. 하지만 초기부터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13년에는 미국의 유전체 분석장비업체인 컴플리트 제노믹스를 인수하며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BGI는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연계설도 불거진 상태다. BGI와 인민해방군이 연계돼 있다는 의혹은 회사가 군 병원에서 태아 유전자 정보를 연구했고,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회사가 2013년 출시한 비침습 산전 검사의 기술 개발에 인민해방군이 도움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이 검사는 산모의 혈액샘플로 다운증후군과 같은 기형 여부를 파악하는 것인데, 남은 혈액 표본이 중국 당국과 관련된 유전자은행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인 바 있다. 특히 해당 검사의 개인정보보호정책에 ‘국가 안보에 직결될 경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라는 항목이 들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왜 이 같은 조항이 들어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난무하기도 했다.
BGI 측은 이에 대해 “유전자 검사 분석 과정에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에는 접근하지 않으며, 5년이 지나면 해외에서 얻은 샘플은 파기한다”면서 ”또한 중국 정부가 국가 안보나 국방을 목적으로 이를 요구한 적이 없고, 제공하지도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BGI 산하의 MGI도 미국이 주시하고 있는 유전체 분석 기업이다. 2016년 4월 BGI의 유전체 시퀀서(염기서열분석기) 부문에서 독립해 설립됐는데, 이 기업 역시 성장세가 가파르다. 임상 고처리량 유전자 서열 분석기를 독자적으로 개발 및 양산 가능한 중국 유일의 기업이다.
우시앱텍도 미국이 BGI 못지않게 자국 바이오 정보를 빼내 간다고 의심하는 기업이다. 우시앱텍은 중국 내 1위의 임상시험 대행업체로 미국 증시에도 상장이 돼 있고, 직원 수만 해도 1만 명이 넘는 대형 바이오업체다.
FBI 등 미 방첩 당국은 우시앱텍이 유전체 데이터 회사인 넥스트코드를 인수하면서부터 안보와 관련된 이슈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바이오기업이었던 넥스트코드는 유전체 분석 기술을 가진 유망 스타트업이었다. 우시는 넥스트코드를 인수해 중국의 우시앱텍 유전센터와 합병시켜 우시 넥스트코드를 만들었다. 이후 미국, 중국, 아이슬란드 등에 지사를 두면서 운영해왔다. 미 당국이 주목한 것은 넥스트코드가 가지고 있던 미국인들의 방대한 유전자 분석 자료였다. 미 당국은 당시 자국민의 유전자 정보가 중국 정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관계기관에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계속 추적을 하던 관계 당국은 생물보안법이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를 통과하기 전에 가진 관련 브리핑에서 우시앱텍이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데 관여돼 있다고 공식 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고객들의 지적재산권이 동의 없이 중국 당국에 이전됐다”면서 관련 근거도 브리핑에서 제시했다고 한다.
우시앱텍은 넥스트코드와 관련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분사를 시켰지만, 미 당국은 여전히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배구조상 중국 정부가 우시를 통제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징후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우시앱텍 역시 인민해방군과 연계됐다는 의심을 받고있다. 우시앱텍이 군-민이 공동으로 개최한 행사를 지원하고, 군으로부터 나온 자금도 일부 지원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리처드 코넬 우시앱텍 미국·유럽 담당 최고 책임자는 이 같은 우려에 “전혀 근거가 없고 단지 지역 행사에 참가했을 뿐”이라며 혐의 내용을 반박하고 있다. 우시앱텍은 또 대변인을 통해 “고객의 정보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며, 고객의 지시에 따라 정보를 보관하고 있다”며 불법 정보 이전 의혹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우시앱텍뿐만 아니라 BGI 또한 미국 내에서 취득한 바이오 정보의 유출은 없다고 반박하지만, 미 의회와 정부의 압박은 더 거세지고 있다. 특히 미 의회의 공세가 매서운데, BGI의 경우 생물보안법을 회피하기 위해 새로운 자회사까지 미국 내에 새로 만들려 한다면서 서둘러 중국 바이오기업들에 대한 제재 목록을 확정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관련 사안을 담당하는 미국 하원 중국공산당선정위원회의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공화당)과 라자 크리슈나무르티 의원(민주당)은 BGI의 자회사인 MGI 그룹, 컴플리트 지노믹스·이노믹스·스토믹스, 중국군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리진셀, 그리고 바자임 바이오텍·악스바이오 등 7개 바이오기업을 추가로 제재 목록에 올려야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중국 정부도 공식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에서 “(우리가) 군사력 강화를 위해 바이오기술을 이용한다고 보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라면서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BGI 그룹은 “스토믹스는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로 중국에서 사업을 운영하지 않으며 중국 군부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고, 미국에 본사를 둔 이노믹스도 중국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들 기업은 중국 군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미 의회와 정부가 밀어붙이는 생물보안법으로 인해 미 바이오업계는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바로 법안에 담겨 있는 ‘우려 기업’으로 지정된 곳들과의 계약을 금지하는 내용 때문이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이들 기업과 계약한 기업들은 협력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미국의 바이오 사업 사슬에서 이들 중국 기업들이 담당하는 역할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은 문제다.
우시앱텍은 위탁개발생산(CDMO) 전문업체로, 연구개발·임상·생산 단계 등 의약품 제조 과정에 필요한 전 과정에 있어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선두업체다. 저비용으로 고품질의 성과를 내면서 미국의 바이오기업들의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뉴욕타임스는 우시앱텍이 미국에서 사용되는 약의 4분의 1을 개발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특히 우시앱텍은 아이디어 단계부터 대량 생산에 이르기까지 바이오 회사들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는데, 바이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은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암, 비만, HIV, 백혈병, 림프종 등 다양한 질병 치료제 개발에 여러 바이오 회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얀센, 일라이 릴리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도 우시앱텍과 파트너 관계다.
미국 내 바이오 전문 투자 회사인 RA 캐피털 매니지먼트 측은 자신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있는 200개의 생명공학 회사 중 절반이 우시 측과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생물보안법은 미국 바이오기업들에 사실상 복병이나 다름이 없다. 중국 바이오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상황은 또 다른 의약품 공급망을 구축해야 된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중국만큼 비용 대비 효과를 내는 글로벌 공급망을 단기간 내에 찾기도, 갖추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긴 시간이 걸리는 의약품 개발의 특성까지 고려할 때 앞으로 글로벌 의약품 개발 둔화 현상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시앱텍의 역할에 대한 대체재를 찾더라도, 현재와 같은 바이오 공급망을 갖추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국가 안보 측면에서 의약품 공급망을 보호하면서 중국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기업과 산업을 보호하는 일은 녹록지 않은 과제”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바이오업계는 새로운 바이오 공급망 전쟁에 대한 채비를 빠르게 하고 있다. 의약품 개발과 관련해 미국 내 중국 기업들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인데, 그 기저에는 미국이 바이오에서도 반도체처럼 자국 우선주의를 채택할 수 있다는 시각이 깔려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일본 최대 CDMO 업체인 후지필름다이오신스바이오테크놀로지(후지필름)는 미국 내 CDMO 관련 시설 확장을 위해 12억달러 투자 계획을 밝혔다. 세계 CDMO 매출 1위 업체인 론자는 로슈가 미국 캘리포니아 배커빌에 소유한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12억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국 내 CDMO 관련 시설 인수 가능성 등 우리 바이오 업체들의 물밑 움직임도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중소형 CDMO 업체들의 반사이익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영증권은 ‘생물보안법이 CDMO 에 미칠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CDMO 서비스 선택 시 고객사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글로벌 GMP, 즉 미국 cGMP(current Good Manufacturing Practice, 또는 유럽 EU-GMP) 인증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이에 준하는 설비운영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은 적이 있는지”라면서 “국내도 cGMP 역량을 보유한 기업들이 있다”고 전했다. 신영증권은 다만 “국내 기업 수가 제한적이어서 즉각적인 수주 유입은 글로벌 중소형 CDMO로 먼저 집중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하지만 소화되지 않은 물량의 경우 가격경쟁력과, 지리적 이점이 있는 국내기업이 그 수혜를 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