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말 파리 오트쿠튀르 위크에서 공개된 하이 주얼리 신작들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다이아몬드의 실루엣이 부쩍 날렵해졌다. 디올과 루이비통, 메시카와 드비어스까지 하우스들이 약속이라도한 듯 오벌(Oval), 에메랄드(Emerald), 페어(Pear)컷처럼 세로로 긴 스톤을 전면에 내세웠다. 화려한 유색 보석과 자연주의 모티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길게 뻗은 다이아몬드가 주는 존재감은 유독 도드라진다. 호날두가 선물한 초대형 오벌, 셀레나 고메즈의 마퀴즈, 토미 폴의 에메랄드컷까지, 최근 화제가 된 셀럽 약혼반지도 하나같이 세로로 긴 실루엣이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거래 플랫폼 랩넷(RapNet)의 데이터를 보면 2025년 오벌컷 검색량은 전년 대비 40% 넘게 늘었고, 에메랄드와 페어컷 역시 25% 안팎의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지수가 전반적으로 조정을 겪는 시기에도 2캐럿 이상의 ‘롱 앤 슬림’ 스톤들이 탄탄한 가격 방어력을 보여준 점은 주목할 만하다. 캐럿이라는 숫자로만 가치를 재단하던 관행이 흔들리면서 비율과 형태가 새로운 가격 변수로 부상했다.
라운드 일색이던 시장에서 긴 컷의 비중이 늘어난 배경에는 공급의 불균형과 라운드에 대한 피로감이 겹쳐 있다. 이미 2~3년 전부터 소매 시장보다 한발 빠른 원석 연마 업계에서 일찌감치 긴 형태의 비율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라운드 브릴리언트컷은 이상적인 광채 비율을 맞추기 위해 원석을 깎아내는 양이 워낙 많아 같은 크기를 만들더라도 더 큰 원석이 필요하고 그만큼 손실도 크다. 반면 길게 뻗은 모양은 원석 본연의 형태를 살릴 수 있어 수율 면에서 유리한 편이다. 그러나 시장이 선호하는 날렵한 비율과 좋은 광채를 동시에 잡아내려면 커팅 과정에서 상당한 선별과 희생이 뒤따른다. 비율과 광채를 모두 갖춘 스톤은 그만큼 귀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랩넷 지수를 분석해 보면, 작년 초 부터 2캐럿 이상의 오벌과 페어컷은 라운드컷의 하락 폭과 별개로 상대적으로 견조한 가격 흐름을 보여왔다.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는 구간이 생기면서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과 수요가 이렇게 바뀐 데는 실무적인 이유도 한몫한다. 라운드 브릴리언트컷은 광채가 뛰어나지만 물리적 구조상 동일 중량 대비 가로세로 폭이 제한적이라 다소 단조로운 인상을 줄 때가 있다. 세로로 긴 스톤은 착용했을 때 훨씬 가늘고 날렵해 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탁월하다. 손가락이 길어 보이는 효과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선택 이유가 된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면적의 경제학’이다. 같은 1캐럿이라도 잘 연마된 오벌이나 페어컷은 라운드보다 위에서 내려다본 표면적이 더 넓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 중량보다 ‘더 커보이는’ 시각적 만족감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숫자보다 눈에 보이는 미학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변화다.
에메랄드컷 안에서도 같은 흐름이 보인다. 정사각 형태의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 고전적인 안정감을 주던 정사각 비율은 이제 날렵한 세로 비율에 자리를 내어주는 추세다. 페어컷의 위상도 달라졌다.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페어컷은 위는 둥글고 아래는 뾰족한 상하 대비가 주는 긴장감이 매력이다. 최근에는 물방울 끝이 더 날카롭고 길게 빠진 1.6:1에 가까운 길고 날렵한 비율이 자주 보인다. 오벌의 부드러움과 에메랄드의 구조미, 그 사이 어딘가를 원하는 이들이 페어로 향하는 흐름이다. 주요 경매와 메이저 브랜드 컬렉션에서도 긴 형태의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긴 컷이라고 무조건 통하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길이와 너비의 비율인데 컷마다 이상적인 수치가 다르다. 오벌컷을 예로 들면 1.4:1에서 1.5:1 사이가 가장 우아하다. 이 선을 넘어가면 광채의 중심이 무너지기 쉽고, 미달하면 둔탁해 보인다. 시장이 가격 우위를 인정해주는 지점은 바로 이 정교한 균형에 있다. 최근 가격 데이터에서도 이 비율을 충실히 따른 스톤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와 가격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스톤의 실루엣이 바뀌면 이를 감싸는 방식인 세팅도 진화한다. 최근 주얼러들은 스톤의 긴 실루엣을 강조하기 위해 측면을 과감히 비우거나, 극도로 얇은 프롱을 사용해 스톤이 손가락 위에 떠 있는 듯한 착시를 연출한다. 페어나 마퀴즈 처럼 끝이 뾰족한 스톤은 충격에 취약한 부분을 보호하면서도 빛의 유입을 방해하지 않는 정교한 V-프롱 처리가 필수다. 긴 다이아몬드를 고를 때 경계해야 할 기술적 결함도 있다. 보우타이(Bow-tie) 현상이다. 스톤 중앙을 가로질러 나비넥타이 모양으로 빛이 빠져나가는 어두운 그림자인데, 이 그림자가 짙을수록 스톤의 광채는 탁해지고 가치는 떨어진다. 감정서 등급에만 의존하지 말고, 실제 조명 아래에서 스톤을 회전시켜 빛의 누수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어느 각도에서 보든 빛이 고르게 퍼지는지, 세팅의 마감은 깔끔한지까지 살펴야 한다. 스톤의 비율이 착용자의 손등 너비와 조화를 이루는지도 꼭 확인할 일이다. 올봄, 당신의 취향은 어떤 비율을 향하고 있는가.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