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당시 50여 개 스타트업이 모여 닻을 올린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이 출범 6년 만인 올해 회원사 2000개를 돌파하며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로 거듭났다. 출범 당시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의장이 1대 의장을, 김슬아 컬리 대표와 안성우 직방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가 2대 의장, 현재 박재욱 쏘카 대표가 3대 의장을 맡고 있는 코스포는 국내 유니콘 스타트업의 절반 이상이 회원사로 활동하며 외연을 넓히고 있다.
2018년 코스포에 합류한 최성진 대표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사무처장,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을 거친 IT 전문가다. 최 대표는 “현 시기는 언제 회복될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투자환경이 위축된 위험한 시기”라며 “장기적으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속적인 성장을 확신하지만 위축된 투자환경을 극복하려면 성장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OECD 국가 중 한국의 규제환경은 최하위권”이라며 “스타트업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과 제도 또한 민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
현재는 위험하고 중요한 시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사실 요즘 투자환경이 많이 위축돼 어려운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필요한 측면이 있어서 부산과 대구, 경북지역을 다니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위기’ ‘투자 혹한기’란 말도 들리는데요.
▷투자환경이 위축된 게 가장 큰 이유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거시적인 환경과 연결돼 있어요. 세계적인 불황이기도 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여전합니다. 국내 스타트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오긴 했지만 최근 2~3년간의 폭발적인 유동성 공급 시기는 이제 지나갔어요. 이젠 변화된 환경에 맞춰 성장 전략을 짜야 할 시기입니다.
▶최근 주목받던 여러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일시 중단하거나 폐업하기도 했습니다.
▷서비스 유지가 힘들다거나 핵심 인력들이 퇴사하고 있다는 소리도 있고…. 스타트업 업계에선 농담처럼 “위기 아닌 때가 어디 있었나”라고 말하곤 하는데, 지금은 그만큼 위험하고 중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일각에선 창업한 지 3~7년 차, 그러니까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건넌 스타트업까지 위기를 겪는 데엔 내부적인 문제도 있다고 하는데요.
▷원래 스타트업 영역은 구조적으로 불확실성이 크죠.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로 창업해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거든요. 여기에 투자를 받아 성장 속도를 올립니다. 상황에 따라 스타트업이 새로운 산업이 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며 크게 일어나기도 하는데, 여전히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요. 그동안엔 스타트업 업계가 꾸준히 성장해왔고, 투자된 자금들이 성과를 낸 후에도 재투자됐어요. 지속적인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빠른 성장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환경이 달라졌어요. 많은 투자를 받은 기업도 불확실성이 커지면 후속 투자는 없다는 전제하에 성장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동안 경쟁자보다 빨리 시장을 선점하고 빠르게 성장해야 이길 수 있다는 전략을 취했다면 이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죠. 상황에 따라서는 BEP(손익분기점)를 맞춰가면서 성장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시장은 성장을 거듭했지만 ‘버텨야 한다’는 명제는 여전하군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공감하는 창업가 정신의 키워드 중 하나는 ‘혁신’이고 또 하나가 존경받을 때까지 버틴다는 뜻의 ‘존버’예요. 생존을 위해 그 어떤 악조건에서도 버텨야 한다는 게 스타트업의 필요충분조건이었는데, 다시 이런 점이 강조되는 시기가 됐습니다. 이용자와 교감 없는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단은 사실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치명적인 결과는 낳는다고 봐야죠.
▶그래서인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처럼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고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희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 처음엔 10여 명의 창업자들이 모여 스타트업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한지에 대해 논의했고, 이게 50명이 된 후엔 “그럼 우리가 만들어보자”가 된 거죠. 2016년에 출범할 당시에 회원사가 50곳이었습니다.
▶6년 만에 회원사가 2000여 곳으로 늘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인증한 국내 벤처기업이 약 3만5000여 개인데, 이 숫자가 모두 스타트업 기업인 건 아닙니다. 저희가 보기엔 약 1만 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어요. 코스포는 그중 2000여 개 이상이 가입한 단체가 됐습니다. 스타트업 외에도 빅테크 기업이나 글로벌 기업,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곳들이 함께 동참해서 포럼을 이끌고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스타트업이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포럼의 역할이 궁금한데요.
▷국내 유니콘 스타트업의 절반 정도는 코스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포럼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와 세상을 혁신하는 일’이에요. 스타트업은 기존에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을 발견해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며 성장해왔어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많은 이들과 혁신의 가치를 공유해왔습니다. 스타트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그게 우리 사회 전체의 혁신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게 저희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포럼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 영역이 있는데, 우선 선배 창업자들이 후배를 멘토링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우는 역할이 있고, 또 비대면 진료처럼 국내에서 규제에 막혀 불가능한 분야에 대한 해결 노력, 마지막으로 투자자나 지원기관과의 교류를 통해 스타트업 생태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
▶앞서 스타트업 투자의 혹한기가 시작됐다고 했는데, 실제 창업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창업자들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핵심 구성 요소를 논할 때 사람, 기술, 자본, 시장 등 4가지를 말하곤 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 자본이고, 단 하나만 꼽으라면 사람이라고들 하죠. 현재 스타트업 생태계의 위기는 사실 자본의 투자환경, 투자 생태계의 위축이 가장 큰 트리거예요.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상반기에도 스타트업들은 생존을 걱정했습니다.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세계가 다가왔으니 우려가 앞섰는데, 다행히 풍부한 유동성이 스타트업으로 유입되며 지난해 기록적인 투자가 이어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돈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어떤 성장전략을 가져가야 하는 겁니까.
▷개인적으론 장기적인 시점에서 스타트업 생태계와 투자시장이 더 커질 거란 확신을 갖고 있지만 현재의 국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생존전략을 짜야 합니다. 현재 코스포 의장을 맡고 있는 박재욱 쏘카 대표님도 이런 점에선 같은 인식을 갖고 계세요. 이젠 더 이상 MAU(Monthly Active Users·한 달간 서비스 이용자 수)에만 매달려선 투자가 안 들어 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투자 기준도 달라졌을 법한데요.
▷현재는 투자자 우위 시장입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가혹한 조건인데, 투자 시기나 조건 등이 투자자 입장에선 급할 게 없거든요.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스타트업이 우위였어요. 좋은 스타트업이라면 밸류가 좀 높다고 해도 경쟁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곳들이 많았습니다. 고평가됐더라도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투자할 기회가 없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자금이 풍부해 투자받을 생각이 없는 스타트업에는 밸류를 높일 테니 우리 투자를 받으라는 곳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으로 바뀌었어요. 그것도 아니면 지난번에 투자한 게 너무 밸류가 높았으니 이번엔 낮춰서 투자하겠다는 곳도 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의 옥석 가리기라는 말도 있는데 힘든 환경이에요. 투자 건수도 줄고 금액도 줄었어요. 내용을 들여다보면 초기 투자는 그리 위축되진 않았지만 후속 투자는 기존 투자자들만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규제와 제도적 경쟁력도 민간 수준으로 올라와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너무 수도권에만 몰려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제가 부산과 경남지역을 자주 오가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자원의 약 90%는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내 벤처캐피털(VC)과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의 소재지를 확인해보면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에 집중돼 있어요. 그 외 지역에서 창업하면 성공률이 떨어지거나 더 힘들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지요. 현재 전체 스타트업 중 약 40%는 수도권 외 지역에서 창업되고 있는데, 그런 이유로 더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은 서울로 옵니다. 그나마 스타트업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이에요. 260여 개의 코스포 회원사가 활동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분들도 사람과 자본 때문에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근거지를 옮겨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재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서울에서 채용해왔더니 부산 사람이었다는 말도 있더군요. 각 지자체의 위기와도 맞닿아있는 부분입니다.
▶국내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선행돼야 할 조건이라면.
▷일단 글로벌 기준보다 정부의 규제나 제도적인 경쟁력이 낮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인데,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최하위권입니다. 최소한 민간의 경쟁력만큼 규제 경쟁력이 올라와줘야 합니다. 일례로 2019년 무렵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투자받은 100대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을 국내에 적용하면 어찌되는지 들여다보니 약 40%는 사업을 시작할 수가 없었어요. 모빌리티나 원격의료 부문은 아예 못 하는지, 할 순 있지만 제한적이라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VC도 스타트업에 투자해 성장시키고 엑시트(Exit)한 경험이 많아야 규모를 키울 수 있고, 그런 VC에 투자받은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유니콘 너머 데카콘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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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에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최성진 대표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대외협력실장,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 사무처장,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을 거쳐 2018년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 합류했다. 올해부터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는 국내 최대 스타트업 축제 ‘컴업(COMEUP)’을 주관하게 된 코스포는 최근 ‘컴업 2022(11월 9~11일·동대문DDP)’에 참여할 유망 스타트업 ‘컴업스타즈’ 70개사를 선정해 발표했다. 코스포는 올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총망라해 축제를 선보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