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판매량은 팬데믹으로 인한 판매 감소, 차량 반도체 수급 차질 등 공급망 불안, 변이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조업 중단과 제품 출고 지연 등으로 전년 대비 4.3% 증가한 8455만 대에 그쳤다. 하지만 친환경차 분야로 넘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계 각국의 환경규제 강화와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이어지며 전년 대비 110.7%(666만 대)나 판매량이 증가했다. 역대 최대 판매 기록이다.
좀 더 세분화하면 순수전기차(BEV)는 전년 대비 119.1% 증가한 473만 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는 전년 대비 92.6% 증가한 192만 대, 수소연료전지차(FCEV)는 86.3% 증가한 1만5501대가 판매되며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친환경차 시장을 주도한 순수전기차의 경우 브랜드와 모델도 확연하게 늘었다. 2020년엔 99개 브랜드의 270개 모델이 판매된 데 비해 2021년엔 113개 브랜드의 346개 모델이 판매됐다. 과연, 이러한 기세는 올해도 여전할까.
▶부산모터쇼 주역 된 주행거리 524㎞ ‘아이오닉6’
전기차에 대한 각 완성차 업체의 꾸준한 관심은 최근 4년 만에 개최된 부산국제모터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현대차, 기아, 제네시스)과 BMW그룹(BMW, MINI, 롤스로이스) 등이 참가해 ‘넥스트 모빌리티, 축제가 되다(Next Mobility, A Celebration)’란 주제로 개막된 부산모터쇼의 주역은 단연 순수전기차(BEV)였다. 수입차 브랜드 중 유일하게 참가한 BMW그룹코리아는 아시아 최초 공개 1종, 한국 최초 공개 4종 포함, 총 21개의 모델을 선보였다.
특히 ‘미래를 이끄는 드라이빙의 즐거움(Driving Plea sure, Drive the Future)’을 테마로 공개된 순수전기 플래그십 세단 ‘i7’이 눈길을 끌었다. 이 차는 2015년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7시리즈 완전변경 모델의 순수전기차다. 국내에는 올 4분기에 ‘i7 x드라이브60’가 출시될 예정인데, 두 개의 전기모터로 최고출력 544마력(유럽 기준)을 발휘한다.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갖춘 101.7㎾h 고전압 배터리를 장착해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가 625㎞(WLTP·유럽에서 통용되는 자동차 연비 및 배출가스 측정 기준)나 된다.
현대차가 부산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한 ‘아이오닉 6’.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된 모델은 세계 최초로 공개된 현대차의 순수전기차 ‘아이오닉6’였다.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라이프의 경험(Experience Sustainable Mobility Life)’을 주제로 완성차, 친환경차 등 총 14대를 전시한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의 중심축이다. 독일의 아우토 자이퉁, 영국의 오토카, 미국의 블룸버그,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이 부산까지 날아와 기사를 쏟아낸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차 측은 “아이오닉6는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핵심 차종”이라고 강조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모터쇼 행사 전 온라인으로 진행된 공개 행사에서 “아이오닉6는 전동화 전환을 가속화하고 전용 전기차 분야의 글로벌 선두가 되기 위한 현대차 전략의 주요한 이정표”라며 “모든 면에서 최적화된 독특한 경험을 제공해 전동화 이동경험을 재정의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장 사장이 밝힌 아이오닉6의 2023년 글로벌 판매 목표는 5만 대 이상이다.
아이오닉6(롱레인지)는 1회 완충 시 최대 주행 가능 거리가 524㎞나 돼 현재 출시된 전기차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주행 효율과 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격도 5500만~6500만원대로 책정돼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1위인 테슬라와 비교해 탁월한 가성비를 인정받았다.
오종원 현대차 국내상품전략팀 책임은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E-GMP 플랫폼을 적용한 차량들은 공통적으로 실내 공간이 넓고 실용적으로 디자인됐다”며 공간의 우수성을 전했다.
부산모터쇼 현장에서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출시된 전기차 중 500㎞를 달릴 수 있는 차는 테슬라의 ‘모델3’ ‘모델Y’ ‘모델S’가 전부였다”며 “테슬라가 제품 가격을 확 올리면서 가장 저렴한 모델3 롱레인지 가격이 8469만원이나 되는데, 그보다 2000만~3000만원 싼 가격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할 수 있는 전기차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주행거리 500㎞는 전기차 대중화의 새로운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와 제네시스는 지난해 연간 14만 대를 기록한 글로벌 전기차 판매 규모를 2030년 180만 대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시장은 지난해 4만2000대에서 2030년 33만 대로 연평균 26%의 판매 성장을 달성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아이오닉6를 포함해 국내 기준 올해 6개인 전기차 모델(현대차 3종·제네시스 3종)을 2030년까지 13개(현대차 6종·제네시스 7종)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아이오닉6에 이어 2024년엔 전기SUV ‘아이오닉7’도 출시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라인업 확대를 통해 현대차와 제네시스의 국내 전기차 판매 비중을 2021년 6%에서 2030년 45%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가 부산모터쇼에서 공개한 전기차 ‘세븐’ 콘셉트카.
▶유럽선 잇단 전기차 회의론 왜?
이처럼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출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서 제기되고 있는 전기차 회의론도 업계 화두 중 하나다.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베를린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유럽 내 내연기관차를 완전히 없애는 건 잘못된 결정”이라며 “독일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영국은 2011년부터 시행해온 전기차 보조금 지급을 최근 종료했다.
전기차 판매량이 자동차 시장의 80%를 넘어선 노르웨이도 지난 5월 전기차에 주는 통행료와 주차료 할인 등 각종 혜택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국내 수입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럽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등 글로벌 경제위기에 유럽 경제가 진통을 겪으며 나타나는 일종의 불확실성 중 하나”라며 “특히 전기차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걸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사면초가에 몰렸다”며 “이러한 상황이 전기차 시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유럽 내에 고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볼보의 순수전기차 ‘C40 리차지’
BYD 전기차 ‘한’
테슬라 ‘모델3’
EU는 2020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평균)이 1㎞당 95g을 초과할 경우 1g당 95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며 배기가스 기준을 강화했다. 팬데믹 이후엔 보조금을 늘리며 친환경차, 특히 순수전기차 판매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당장 경기 침체 위기가 고조되며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급격한 전환이 가져올 경제적 불안과 고용 감소 등의 우려가 유럽의 정치권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이에 반해 국내 완성차 업계는 “대세엔 지장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한 임원은 “결국 전기차로 가야 한다는 명제엔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가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며 “시기적인 조절이 있을 순 있지만 거스를 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상반기 전년 대비 63% 성장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
유럽 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순항 중이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63% 증가한 428만5000대로 집계됐다. SNE리서치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배터리와 전기차 가격 상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 지속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시장이 성장세를 지속했다고 분석했다.
지역별로는 중국이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에 전년 동기 대비 121% 증가한 247만4000대를 판매하며 성장세를 이끌었다. 북미 지역도 50만8000대로 59%나 늘었다. 반면 유럽은 전쟁 등의 영향으로 5% 성장에 그쳤다. 전기차 업체별 판매량은 중국의 BYD가 전년 대비 323% 늘어난 64만7000대를 판매해 테슬라(57만5000대)를 제쳤다. 3, 4, 5위에는 상하이자동차(SAIC·37만대), 폭스바겐(31만6000대), 현대차·기아(24만8000대)가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