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플레이션시대 수익 올리는 비법] Part Ⅲ 1. 틈새 투자 피난처 현금 확보도 투자… 변동성 피해 가자
박지훈 기자
입력 : 2022.06.02 14:23:42
수정 : 2022.06.02 15:07:12
팬데믹에서 기력을 회복할 조짐을 보이던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제로코로나(칭링)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은 상하이 등 대도시 봉쇄로 성장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은 40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연준)의 0.5%p 금리 인상, 이른바 ‘빅스텝’으로 인한 경기 하강 조짐이 뚜렷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개월째 지속되며 천연가스와 원유 등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인플레이션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신흥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식량 위기로 성장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자산 시장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재테크 암흑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글로벌 자산 시장 거품이 걷히면서 주식·부동산·가상자산이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부동산이 좋지 않으면 주식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이 또한 여의찮으면 가상자산 시장으로 눈을 돌리던 재테크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MMF·RP·발행어음
“소나기는 피해 가자.” “현금도 투자다.”
최근 투자 시장이 여의찮아 보이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자산 시장이 흔들리고 금리 상승 전망이 높아지면서 변동성을 낮춘 단기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머니마켓펀드(MMF)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Money·Market·Fund의 약자인 MMF는 국공채와 양도성예금증서 등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해 예금이자보다 높은 이율을 추구하는 펀드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MMF는 연 수익률이 1% 안팎에 불과하지만,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다는 특징으로 주식을 현금화한 자금을 잠시 예치하는 용도로 많이 활용된다. 보통은 국공채 등 우량 채권에 투자해 원금 손실 우려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투자에 나선 채권 중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다면 MMF에서도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MMF는 환매 신청을 하면 돈이 바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그 다음날 들어온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당장 주식 시장에 투입해야 하는 돈의 경우 MMF보다는 RP나 발행어음이 더 편할 수 있다.
지난 5월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다시 폭락하자 뉴욕증권거래소(NYSE) 한 트레이더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RP(repurchase agreement)는 환매조건부채권으로 증권사가 가진 채권을 고객에게 판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증권사가 원금과 이자를 주고 이 채권을 다시 사주는 형태의 투자 상품이다. 일정 기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이다. MMF와 마찬가지로 국공채, 통안채(통화안정채), 금융채, 우량회사채 등 안정적인 채권에 투자하기 때문에 원금 손실 우려가 적고 단 하루를 맡겨도 하루치 이자가 지급되어 단기 자금을 운용하기에 유리하다.
수시형은 기간 상관없이 내가 마음대로 넣고 뺄 수 있는 방식으로 주식자금 운용에 유리하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기신용으로 발행하는 일종의 약속어음으로 증권사 신용으로 발행하기 때문에 신용도가 높은 대형 증권사만 발행할 수 있다. 현재는 미래에셋증권,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4곳에서만 발행어음을 취급하고 있다. 기본적인 방식은 RP와 거의 유사하고 단 하루 동안만 갖고 있더라도 이자가 지급된다. RP와 마찬가지로 수시형과 약정형 2가지가 있다. 이자는 증권사마다 좀 다른데, 수시형이 약 1.5% 정도, 약정형은 1년 기준으로 약 2.5% 수준이다.
▶배당주·로볼 ETF
주가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변동성이 적고 꾸준한 추가수익을 챙기는 배당주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최근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높아짐에 따라 증시 낙폭이 커지고 있지만 코스피 고배당 50지수는 코스피 대비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인다. 최근 몇 달간 코스피 지수가 10% 이상 하락하는 동안 배당지수는 1%대 하락에 그쳐,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주효하고 있다.
미국 주식 시장의 경우 5월 초부터 긴축 우려로 변동성지수(VIX)가 30을 상회하는 등 변동성이 큰 장세를 맞이했다. 향후 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한 연준의 빅스텝이 이어질 우려가 큰 상황에 이러한 변동장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장주보다 가치주의 저변동성에 대한 매력과 배당주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정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022년 코스피 예상 배당수익률은 2.38%로 현재 정기예금 1년물 금리(1.9%)보다 높다”며 “배당주는 일반적으로 PER, PBR가 낮은 종목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배당이 높은 개별종목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지만 더욱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법으로는 ETF가 있다. 대표적으로 아리랑(ARIRANG)과 코덱스(KODEX) 고배당 ETF는 연초 대비 현재까지 누적 초과수익률은 각각 40%, 40.6%로, 누적 성과가 꾸준하게 나타나고 있다. 두 상품은 은행과 철강, 통신, 에너지 등 가치주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됐다.
이 연구원은 “2021년은 기저효과로 경기민감주가 부각되면서 배당주도 수혜를 입었다”며 “앞으로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구간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배당주의 매력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동성을 분산하는 방법으로 주가 변동성이 낮은 로볼(저변동성) ETF도 투자 피난처로 꼽힌다. 저변동성 ETF는 주가 변동성이 낮은 종목을 편입해 운용하는 ETF다.
저변동성 팩터가 강한 종목은 주가 급등에 대한 기대도 상대적으로 낮아 그동안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올해 들어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상황이 반전됐다.
윤재홍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현재와 같이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변동성 시장 국면에서 변동성 팩터가 관심 받고 있다”며 “저변동성 이상 현상을 바탕으로 한 시장 대비 초과 수익 가능성과 주식 자체의 특성을 활용한 포트폴리오 변동성 완화 가능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변동성 이상 현상은 고변동·고수익이라는 일반적 원리와 달리 변동성 낮은 포트폴리오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의 핵심은 저변동성 포트폴리오로도 장기 초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TIGER 로우볼’ ETF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200개 종목 가운데 변동성이 가장 낮은 40개 종목에 투자한다. 대표적으로 KT&G, 에스원, 코리안리, 삼성카드, KT, 신한지주 등이 비중 상위 종목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ARIRANG 중형주저변동성, 파워 고배당저변동성, KBSTAR 모멘텀로우볼 등 로볼 ETF들도 연초 이후 코스피 대비 우수한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불안한 장세가 2분기 내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베타(시장 민감도)가 낮은 종목으로 구성된 로볼 ETF에 투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멀티에셋펀드
현금도 투자라는 말이 있지만 인플레이션 국면에 무조건 현금만 보유해서는 퇴보를 면치 못할 수 있다. 특정 섹터에 집중투자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분산효과를 극대화한 투자 상품이 주목받을 수 있다. 주식과 펀드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원자재, 외환(FX) 등 다양한 자산에 골고루 투자하는 멀티에셋펀드가 대안 투자처로 드러나는 이유다.
멀티에셋펀드는 금융투자상품 대부분이 주식과 채권, 기타 자산에 투자할 때 자산별 상관관계 등을 활용해 변동성을 낮추고 일정 수준의 위험조정수익률을 추구하는 자산배분 전략을 활용한다. 상대적으로 다른 투자상품에 비해 분산효과를 통해 위험을 낮춘 안정적인 투자처로 여겨진다. 2013년 출시 이후 국내에서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상품이지만 해외에서는 멀티에셋펀드가 2011년 이후 연평균 21.9%씩 성장하며 최근 11년간 순자산만 9.3배 넘게 불어났다. 글로벌 펀드 시장에서 멀티에셋펀드 규모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1871억달러(약 238조원)에 이른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 들어 인플레이션 부담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등으로 대체 자산을 제외한 주식과 채권 모두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과 중국 봉쇄에 따른 공급망 이슈에 원자재 시장은 강세를 보여 이들 자산에 다양하게 투자하는 멀티에셋펀드가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성과를 보이는 상품은 키움투자자산운용의 ‘키움불리오글로벌멀티에셋EMP펀드(ClassS-P)’다. 하락장에서도 연초 이후 2.51%의 수익률을 거뒀다. 이 상품은 주로 미국 시장에 상장된 주식, 채권, 원자재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분산 투자한다. 1분기에는 자체 모멘텀 지표에 따라 미국 주식을 편출하고 천연가스를 편입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오 연구원은 “멀티에셋펀드는 불확실성이 큰 장세에서 특정 자산이나 종목(투자)보다 매크로 분석을 기반으로 자산을 배분한다”며 “신규 투자자금 또한 지속해서 유입되는 만큼 앞으로 대안 투자처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