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이재명 경기지사가 당선되면서 여야의 20대 대선을 향한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아직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의 양강구도가 뚜렷해, 이재명 지사의 맞수는 어느 정도 윤곽이 나타난 상태다.
여기서 이번 대선의 한 가지 재미난 관전 포인트는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될 경우 여야 정치적 비주류 간의 맞대결이 성사된다는 점이다.
이 지사가 민주당 내 비주류 정치인인 것은 주지의 사실. 그는 당내 주류인 친문도 아니고 의원으로서의 의정 경험도 없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사실상 자신의 개인 능력으로만 지금의 자리에 왔다. 윤 전 총장도 정치 입문 4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정치신인으로 당내 이렇다 할 기반 세력이 없다. 야권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당내보다는 당 밖의 지지율이 훨씬 높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정치 지형도가 확 바뀔 수도 있다는 분석을 한다. 전례 없는 정치권 비주류 간의 이 같은 도전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흥미진진하다. 누가 이기든지 승자는 정치권의 신주류가 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10월 18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재수 끝에 당 대권 주자로
이 지사의 대선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19대 대선에서 도전에 나섰지만 당시 당의 유력 대권주자였던 현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다. 게다가 같이 대권 도전에 나섰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도 뒤졌다. 이때만 해도 이 지사의 정치적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당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거친 공격으로 당의 주류인 친문세력의 눈 밖에 났다.
그런 그가 불과 4년 만에 당의 대권 주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사이다’로 불리는 거침없는 발언과 행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지지층은 그의 거침없는 발언에 열광한다.
이 지사의 정치적 전환점은 19대 대권 도전이 실패로 끝난 후 자신의 체급을 한 단계 높이기로 결정하면서다.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그는 대선 이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 출마했는데, 이것이 성공하면서 정치적 도약에 성공했다. 당내에서 쟁쟁한 경쟁자였던 전해철 의원과 양기대 의원을 눌러 경기도지사 당 후보로 선출됐고, 본선에서는 보수 유력 정치 인사인 남경필 당시 도지사를 이겼다.
이후 이 지사는 날개를 단 듯 누가 보더라도 대선 행보라고 의심받을 만한 것들을 거침없이 해나갔다. 일개 도백의 신분으로 기본소득이란 국가적 화두를 과감히 던지면서 현 정권 내내 정책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그의 정책 전반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이 안팎에서 쏟아졌지만, 그는 불도저처럼 자신의 정책을 밀고 나갔다. 정부의 선별적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원에 반대해 자체 예산으로 경기도민들에게 별도의 재난지원금을 준 것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소속 정당과의 논란도 피하지 않았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기본시리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무상교복, 무상 산후조리원, 청년 배당 등 무상 시리즈 정책을 폈다.
이 지사의 정치적 성장 배경에는 기회 포착에 능하다는 것도 한몫했다. 지난해 코로나19 발발 초기에 신천지가 주 감염원으로 지목된 후 이 지사가 직접 과천 신천지 본부를 급습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단적인 예다. 국민적 원성을 샀던 신천지에 대한 반감을 누구보다 빠르게 활용하며 자신에 대한 국민적 호감도를 높였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당시 벌어졌던 촛불 시위에서 이 지사는 정치인 중에서 가장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다. 당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지사의 정치적 감각은 누구보다 빠른 것 같다”며 “타고난 ‘정치적 촉’이 남다른 것 같다”고 귀띔했다.
물론 그가 성남시장 시절 보여준 정책적 능력도 그의 현재 위상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당선 당시 성남시는 부실한 재정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그는 해결을 위해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를 선언한 후 3년 6개월 만에 이를 모두 갚았다. 또 경기지사 시절 집행한 계곡 불법 영업 정비 사업도 그의 행정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이재명 지사(왼쪽)가 당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던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모습.
하지만 스스로 ‘바닥부터 올라왔다’고 하는 만큼 그의 인생역정은 파란만장하다. 또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사실 이 지사는 도덕적인 면에서는 약점이 꽤 된다. 대법원이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한 친형 강제입원 논란, 형수 욕설, 검찰 사칭으로 인한 벌금형, 면허취소 수준의 음주운전, 여배우와의 스캔들, 조폭 연루설, 게다가 최근 불거진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한 의혹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다.
당내 경선 후보 과정에서도 이 같은 문제들은 계속 논란을 야기했다.
당시 이 지사 측은 일부 논란과 관련해 “사회의 부조리와 싸우면서 피치 못하게 얻은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대중의 시선은 의구심에 가득 차 있다.
특히 화천대유라는 민간 개발업자가 천문학적 수익을 거둔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은 그에게 만만치 않은 해결 과제로 다가가고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장동 사건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당시 터졌던 LH의 투기 논란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는데, “본선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이재명의 대권 가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대장동 사건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지사는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특유의 ‘사이다 발언’으로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다.
이 지사는 당 대선 후보 선출 감사 연설문에서 “토건세력과 유착한 정치세력의 부패·비리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며 “이번 대선은 부패 기득권과의 최후대첩”이라고 했는데, 현 정부 들어 보수세력을 부패한 구악 집단으로 각인케 하는 전략과 흡사한 모습이다. 대장동 사건의 프레임을 개혁세력과 수구세력의 대립으로 몰아가려는 뜻도 읽힌다. 그는 이와 관련해 경기도 국감에 ‘지사 신분’으로 출석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무차별 의혹 제기에 직접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모습에 이 지사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대한민국을 확 바꿀 강단 있는 정치인”으로 보지만, 그 반대 진영에서는 “뻔뻔함의 극치라는 가면을 썼다”는 혹평을 해댄다.
이 지사의 대선 전략은 들여다보면 단순 명쾌하다. 불공정한 적폐세력을 상정하고, 이를 몰아낼 적임자가 자신이라고 끊임없이 외친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데, 흙수저 출신의 사회 개혁이라는 대선 전략이 그의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공장에서 일하는 소년 노동자가 됐다. 공장 기계벨트에 손이 감기고 프레스사고로 팔이 부러지는 아픔도 겪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갔다.
대선 출마선언에도 그의 어린 시절이 담겨져 있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저의 모든 판단과 행동과 정책은 제 삶의 경험과 가족 이웃의 현실에서 나옵니다. 약자의 희생으로 호의호식할 수 없었고, 빼앗기지 않고 누구나 공정한 환경에서 함께 잘 사는 것이 저의 행복이기 때문에 저는 저의 행복을 위해 싸웠을 뿐”이라고 했다.
이 지사가 대장동 이슈를 넘는다고 해도 또 다른 관문이 남았다. 정치적 비주류라는 그의 입지다. 대선이라는 큰 게임을 이 지사의 개인기만으로 돌파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성남시와 경기도란 특정 지역에서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쾌도난마 같은 정책집행과 발언이 통할 수는 있어도 전국적 단위에서는 그 효과를 오롯이 기대하기는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대선을 치르려면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 특히 당내 주류인 친문 측과 이 지사는 화학적 결합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이낙연 전 대표 측을 어떻게 껴안는가가 관건인데, 아직까지는 껄끄러워 보인다. 자신을 강하게 비난했던 이 전 대표 측의 설훈 의원을 경선이 끝난 직후 끌어안는 모습을 보이며 ‘원팀’을 강조하긴 했지만, 이 전 대표 측의 일부 인사들은 여전히 이 지사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기서 자연스레 ‘이재명의 사람’들에 관심이 쏠린다. 경선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본선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그룹은 이른바 의원 7명으로 구성된 7인회와 성남시장 시절부터 곁을 지켜온 성남라인이다. 이들 또한 정치적으로 비주류에 속한다.
7인회는 정성호·김영진·김병욱·임종성·문진석·김남국 의원과 이규민 전 의원 등이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의원이 좌장 격으로 캠프에서 총괄특보단장을 맡았다. 중도성향의 합리적 이미지로 이 후보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거론된다. 정 의원은 이 지사의 외연확대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인회 중 정 의원과 김영진·김병욱 의원은 지난 대선부터 이 지사의 곁을 지켜왔다.
대장동 사건으로 주목받는 성남라인도 7인회 못지않은 최측근 그룹이다. 캠프에서 비서실 부실장을 맡았던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을 비롯해 캠프 대변인인 김남준 전 경기도 언론비서관, 총괄 부본부장인 김용 전 경기도 대변인 등이 성남라인으로 꼽힌다. 이들 중 최측근은 누가 뭐래도 정진상 전 실장이다. 1994년 ‘성남시민모임’에서부터 이 후보와 인연을 맺었고 변호사 시절 사무장을 지냈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해찬계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캠프 총괄본부장이었던 조정식 의원, 자치분권본부장을 맡았던 이해식 의원,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 지사의 정치적 이미지 전환에 크게 기여했다.
강성 초선 인사들도 이 지사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김남국·민형배·황운하·윤영덕·이수진·문정복 의원 등 ‘처럼회’ 인사들을 비롯해, 박주민·이재정·이탄희 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전문가 그룹으로는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와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등이 있다.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의 권위자다. 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문정인 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등이 외교 안보 분야에서 자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계 중앙대 출신 인맥들도 이 지사 지원을 위해 속속 모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권 예비후보
▶윤석열 vs 홍준표
국민의힘에서는 정치신인 윤석열 전 총장이 보수의 신주류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한때 범보수 대선 후보 적합도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지만, 고발 사주 의혹·무속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주춤한 상태다.
현재 윤 전 총장의 강력한 경쟁 상대는 홍준표 의원이다. 공교롭게도 홍 의원은 5선의 중진의원이다. 자연스레 보수의 신주류와 구주류 사이의 대결이 성사되고 있다.
두 사람은 각종 범보수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0월 11~13일 전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홍 의원이 27.6%를 얻어 윤 전 총장(22.4%)을 앞섰다. JTBC가 10월 12일부터 13일 사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유권자 1006명 대상)에서도 홍 의원(27.5%)이 윤 전 총장(23%)을 앞섰다.
하지만 뉴데일리와 시사경남 의뢰로 PNR(피플네트웍스리서치)가 한 조사에서는(전국 유권자 1000명, 10월 15~16일) 윤 전 총장이 37%를 얻어 홍 의원(32.2%)을 제쳤다. 이재명 지사와의 대결에서도 두 사람의 경쟁력은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다. 한길리서치가 10월 9~11일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38.1%의 지지를 얻어, 34.6%를 획득한 이 지사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 의원(35.3%)도 이 조사에서 이 지사(33.0%)를 누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KBS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36%의 지지율에 그치며, 이 지사(41%)에 뒤지는 모습을 보였다. 홍 의원(39.3%)은 이 지사(39.9%)와 백중세를 나타냈다. 한국갤럽 조사(10월 11~12일, 전 국민 1006명 대상)에서는 이 지사 vs 윤 전 총장은 43% 대 40.4%, 이 지사 vs 홍 의원은 각각 40.7%와 40.6%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서로 우위가 엇갈리는 모습이 뚜렷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두 사람의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지율 격차가 모두 오차범위 내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이를 두고 한 정치 전문가는 “윤 전 총장과 홍 의원이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분석했다.
실제 두 대선 예비 후보는 당 안팎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열린 맞수토론만 보더라도 홍 의원이 “정치하신 지 4개월 됐습니다. 4개월 되신 분이 느닷없이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고 하니까, 내가 참 어이가 없습니다”라고 공격하자, 윤 전 총장은 “그러면 국민이 왜 (저를) 지지하겠나. 기존에 정치하신 분들한테 국민이 실망했기 때문 아니냐. 후보님들이 잘 하셨으면 제가 여기 나올 이유가 없다”며 강하게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은 “당을 26년 지키셨다고 하면서… 거기다 지사도 하시고 했으면 좀 격을 갖추십시오”라고 비판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윤 전 총장은 토론회가 거듭될수록 강한 이미지를 드러내며 대선 출마 전에 각인돼 있던 현 정권에 맞서는 강골 검사의 이미지를 다시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 같은 전략이 성공하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게 나타나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의 표를 결집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인사는 홍 의원에 대해선 “본선 경쟁력에 대한 보수 유권자들의 의구심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의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이 최소 20% 정도는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