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K콘텐츠의 글로벌 전성시대다. K팝, K영화, K푸드, K웹툰, K게임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들이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의 고유 문자인 한글도 세계 속 언어로 성장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외신들도 주목하며 ‘어떻게 한국 문화가 세계를 정복했나’(더타임스), ‘어떻게 한국 문화가 영국에서 주류가 됐나’(데일리메일) 등 ‘코리아 웨이브’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K콘텐츠 열풍의 반대편에 있는 어두운 면들이다. 어느 곳에나 밝음(明)이 있으면 어두움(暗)도 있듯이 K콘텐츠를 둘러싼 환경도 그렇다. 문제는 현재의 환호에 취해 K콘텐츠를 둘러싼 문제점들을 도외시한다면 이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현 우리 문화적 국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K콘텐츠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이를 살피지 않으면 현재의 K컬처의 글로벌 인기는 사상누각처럼 한순간에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빅히트 친 <오징어 게임> 국내 창작자 실익은 없다
최근 K콘텐츠 인기의 정점은 최근 ‘세계적 신드롬’으로까지 번진 TV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은 출시 20여 일 만에 총 94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며, 1억 명이 넘는 세계 인구가 시청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K팝인 방탄소년단의 노래들이 빌보드 1위를 한 데 이어, 글로벌 OTT(Over The Top·온라인 콘텐츠 제공 서비스) 강자인 넷플릭스에서도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최고 흥행작에 오른 것이다.
글로벌 대히트를 친 <오징어 게임>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각국에서 <오징어 게임> 속 게임들을 따라하는 열풍이 부는가 하면, 드라마에서 사용된 의상, 소품 등도 덩달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따른 파생 효과도 엄청나다. 외신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의 가치를 1조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우리의 콘텐츠와 그 안에 담긴 K문화가 세계 속으로 전파되는 것은 무형의 엄청난 수익이지만 정작 이 드라마를 만든 감독과 제작자는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따른 이익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의 가치를 1조원으로 평가하지만 창작자들이 이에 대해 얻는 몫은 거의 없다.
이는 넷플릭스의 투자 전략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제작자들한테 충분한 제작비를 주면서도 제작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다. 즉 창작의 자유를 전폭적으로 보장한다. 대신 지식재산권(IP)을 독점한다. 제작자의 역할은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만 있고 이후의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더라도 계약 당시 약정된 것만 창작자들에게 지불된다. 창작자의 IP에서 나오는 추가 이익은 오롯이 넷플릭스의 몫으로 돌아간다.
다소 불리할 수도 있는 이 같은 넷플릭스와의 계약 구조에 대해 창작자들은 지금까지는 큰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유는 창작자들의 그토록 원하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돈 걱정 없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도 한 인터뷰에서 “(수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했다”면서 “하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매료돼 지금도 넷플릭스의 문을 두드리는 한국의 영화·드라마 감독들은 줄을 서고 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투자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국내 투자 환경이 부실하니 창작자들이 수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업체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콘텐츠 ‘쩐주’들의 갑질 또한 제작자들이 해외 투자사로 눈길을 돌리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새 영화를 준비 중인 한 감독은 “솔직히 갑질이라고 느낄 정도로 제작사의 간섭이 많다”면서 “영화를 실제 크랭크인하기까지 참을 인자를 얼마나 새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이들 국내 영화 투자자들이 제작비를 통 크게 쓰는 것도 아니다. 될 만한 작품에만 베팅을 하던 스타일 때문에 영화 제작자 상당수가 쪼들리는 제작비에 허덕인다.
김민영 넷플릭스 한국·동남아·호주·뉴질랜드 콘텐츠 총괄은 넷플릭스 콘텐츠 로드쇼에서 올해 한국 콘텐츠에 약 5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OTT의 문제점도 있다.
이 감독은 “넷플릭스에서 투자를 심사할 때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이 유명 배우 캐스팅”이라면서 “넷플릭스도 수익이 보장되는 최소한의 장치를 중시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유명 배우는 한정돼 있는데 OTT를 포함해, 공중파·케이블·영화가 함께 캐스팅에 덤벼드니 이들의 몸값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면서 “이러면 거대 자본이 유리할 수밖에 없고, 이는 영화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또 다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OTT 업체 또한 넷플릭스의 투자 전략을 따라하지만 투자 금액 면에서 파워가 약하다. 때문에 자본을 앞세운 넷플릭스 이익 독점 구조는 어느 정도 개선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넷플릭스 등 해외 OTT가 국내 콘텐츠 판로 확장 차원에선 도움이 되지만 2차 저작권을 독점해 국내 제작사들이 해외 OTT 하청기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OTT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을 강화해 제작사가 지식재산권(IP) 등 권리 확보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실익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글로벌 공룡 OTT 업체의 계약 관행을 제재할 방법은 딱히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넷플릭스가 국내 망 사용료 납부 거부를 하고 있지만 이를 강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웹툰 업계서도 불공정 계약 논란은 여전
드라마와 함께 K콘텐츠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는 웹툰도 IP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웹툰 창작자들이 만든 콘텐츠의 권리를 침해하는 플랫폼 업계의 문제점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해결은 전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의 단골 메뉴이기도 하지만 웹툰 업계의 자정 노력은 그리 많지 않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8년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6개 웹툰 서비스 사업자의 연재계약서를 심사해 불리한 10개 약관 조항에 대한 시정 요구를 한 적이 있는데 시정 요구 이후의 변화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유정주 의원이 국감에서 공개한 한 계약서에는 여전히 업계의 불공정한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계약서에는 “작가는 지금까지의 작업물과 산출물을 즉시 회사에 제출하고 양도된 산출물의 저작권에 대한 모든 권리가 회사에 귀속된다. ‘회사’는 출판사 또는 연재 플랫폼 등 ‘배포’를 위해 필요한 제3자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일체의 권리를 보유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내용대로라면 웹툰 업계에서도 한 작품이 공전의 히트를 칠지라도 그에 따른 부가 수익을 창작자들이 제대로 누릴 수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넷플릭스처럼 창작에 전폭적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웹툰 업계의 창작자에 대한 투자는 선인세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MG(미니멈 개런티)라고 한다. 이는 작품이 인기를 끌 때까지 금전적 측면에서 고달플 수 있으니 미리 인세를 줘, 창작자들이 돈 걱정 없이 작품을 제작하려는 뜻에서 도입됐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지난 3월 게임 업계 대표들이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간담회를 갖고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게임 업종의 특성을 감안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모습.
문제는 MG 계약을 맺은 작품이 인기를 끌 때다. MG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보통 플랫폼사가 가져가는 수익 비율이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매출의 45%에 달하는 수수료를 가져간다. 여기에 더해 작가가 소속된 에이전시(CP)가 끼어있을 경우, 여기서도 매출의 일부분을 가져간다. 이런 구조 속에 실제 작가가 가져가는 수익은 그리 크지 않다.
이 MG 계약을 맺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업계 구조상 힘들다는 것이 창작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 작품이 좋더라도 인기를 끌려면 거대 플랫폼의 마케팅은 필수인데, 플랫폼들은 MG 계약이 이뤄진 작품을 위주로 마케팅을 진행한다”며 “이 때문에 작가들은 MG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계약상 많은 수수료를 가져올 수 있는 작품의 마케팅에 공룡 플랫폼들이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과 작가를 잇는 에이전시의 난립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CP의 난립으로 작가들과의 불공정한 계약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유 의원 측은 “웹툰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이전시의 행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국감이 끝난 후 선투자 작품 기준 이벤트 캐시 정산분 최소 5% 이상 보장 방안 등의 작가 생태계 1차 개선안을 내놨다.
김동훈 웹툰작가노동조합위원장은 “수익이 나더라도 거대 플랫폼이 30~50%를 떼어가고 남은 금액을 메인작가와 제작사가 나누고 또 메인작가는 글작가, 보조작가와 또 나눠야 하는 구조라서 (최종 손에 쥐는 금액은) 최저 생계비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2차 저작권에 대해서도 작가들이 권리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의 불공정 계약 경험률은 50.4%로 집계됐다.
우리 콘텐츠의 해외 불법 유통 문제도 심각하다.
김승수 의원실이 공개한 ‘2021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41만9950개에 달하는 불법 복제물이 유통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중국 쪽의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유정주 의원이 한국저작권보호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국산 IP 콘텐츠 불법 유통 적발건수 현황’을 보면 5년간 중국이 8만5000여 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쪽에서 주로 불법 유통되는 우리 콘텐츠는 방송, 영화와 같은 영상물들이었다. 최근 <오징어 게임>의 중국 내 불법 유통도 논란으로 떠오른 바 있다.
최근 글로벌 히트작을 만들어내며 우리 콘텐츠 글로벌 전파에 새 선봉장이 되고 있는 게임 업계에도 해묵은 숙제들이 많다. 낮은 보수, 긴 노동시간, 낡은 생산관행 등 만성적 문제들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게임 산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래도 반드시 해결해야 될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