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민심을 잡기 위한 여야 대선주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백가쟁명식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내년 대선의 판도가 부동산 민심에 있는 만큼 여기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부동산 정책의 방점은 공급확대에 있다. 현 정권 들어 폭등한 집값을 잡기 위해선 공급을 늘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것을 여야 후보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전남 함평군 함평천지전통시장을 방문,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50만 호면 해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볼 것은 주요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에 ‘250만 호’란 숫자가 유독 눈에 뛴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임기 내 250만 호 공급을 약속했다. 이 숫자는 이 정도의 물량이 공급되어야 집값 안정을 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데, 현재 2000여만 채로 추산되는 주택 공급의 12~13% 정도 되는 물량이다.
전문가들은 물량 공급 면에서 무리가 없는 숫자라고 진단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주택 인허가 건수만 보더라도 매년 50만 호 정도 되는데 임기 5년이면 250만 호가 된다”면서 “굳이 이 기준을 대지 않더라도 현재 정부에서 공급을 약속한 물량만 해도 200만 호가 되기 때문에 각종 규제완화 정책이 더해지면 250만 호란 숫자는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물론 250만 호가 공급된다고 해서 집값 안정이 꾀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물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가격을 낮추는 효과는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이 공급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는 것도 여야 대선주자가 공급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야 대선 후보의 주택 공급 방식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 여당 후보들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이어 받아 공공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면 야당 후보들은 시장을 중시한다. 동시에 여야 후보들은 너도나도 싼 아파트 공급을 내세우고 있다. 집값 폭등의 최대 피해자인 젊은 층을 어루만지기 위한 정책이다.
먼저 여당 지지율 1위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주택 공급의 방점은 ‘공공’에 있다. 이른바 기본주택인데, 역세권 등 좋은 입지에 주택을 지어 무주택자 누구나 건설 원가 수준의 저렴한 임대료로 30년 이상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온 공공 임대의 부실한 품질을 의식해, 고품질이면서 충분한 면적의 싼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이 지사의 구상이다. 이 지사는 임기 내 공급 예정인 250만 채 중 100만 호를 기본주택으로 채운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렇게 하면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율을 토지임대부 분양분까지 포함해 10%까지 늘릴 수 있다고 본다.
이 지사와 대선주자 전체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250만 호 공급을 내세웠는데, 이 지사와 달리 민간의 역할을 강조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 방식이다. 여기에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3기 신도시의 차질 없는 진행을 통한 주택 공급도 약속했다. 신도시 건설 역시 공공보다는 민간의 역할이 더 크다.
윤 전 총장도 공공의 역할을 아예 무시하지 않는다. 청년, 신혼부부 30만 명에게 원가주택 3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표 ‘싼 주택’이다. 원가주택은 건설원가로 지어진 국민주택규모(85㎡) 이하의 주택을 청년들이 분양가 20%만 내고 들어가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분양가의 나머지 80%는 장기저리로 국민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지원한다.
이 정책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5년 이상 거주 후 원가주택의 매각을 원할 경우 국가에 매각토록 하되, 매매 차익 중 70%까지 입주자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2차 입주자도 국가가 1차 입주자로부터 환매한 낮은 가격에 입주할 수 있다.
경북 포항 죽도시장에서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지자들에게 두 손을 번쩍 들어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250만 호 공급 대열에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있다.
원희룡 전 지사 역시 민간의 역할을 중시하는 재건축 재개발 정책 활성화를 통해 250만 호 공급을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재건축 50만 호 ▲재개발 50만 호 ▲공공택지 125만 호 ▲혁신도시, 지방 거점도시 중심 신규택지 발굴 등을 통한 25만 호 등이다. 원 전 지사는 재건축·재개발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과 ‘재건축 연한’ 폐지를 약속했다.
원 전 지사의 시세보다 싼 주택 공급 정책은 ‘반반 주택’이다. 이 정책은 무주택자들이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할 때 정부가 집값의 50%를 공동 투자하도록 설계됐다. 9억원 이하의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중도 사퇴한 정세균 전 총리는 임기 내 280만 호 공급을 약속했었다. 정세균 전 총리 역시 시세보다 대폭 싼 반의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내세웠었다.
최근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홍준표 의원도 값싼 아파트 공급 대열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반값도 모자라 시세 4분의 1 가격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내세웠다. 이른바 쿼터아파트로 토지임대형식으로 공급하면 가능하다는 것이 홍 의원의 주장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임기 중 주택 200만 호를 약속하며 청년 신혼부부에 민간 분양가의 반값에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대규모 공급 대신 서울공항을 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공항이 옮겨간 자리에 공공주택 3만 호를 공급하고, 공항 주변의 고도제한을 해제해 4만 호를 추가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강남-송파-판교, 위례신도시-성남구도심 등의 벨트와 연계하면 10만 명 수준의 스마트신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의 주택 공급 계획은 수도권을 우선시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김영삼·김대중 정부 10여 년간 서울 집값이 안정되었던 것은 노태우 정부의 1기 신도시 공급 덕분이었다. 그만큼 시장보다 한발 앞서가는 공급 대책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현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민간주택 100만 호를 최대한 빨리 공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그 역시 신도시 건설보다는 기존 도심의 재개발, 재건축을 촉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과 외곽도시들의 용적률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서울의 경우 용적률을 40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공공임대주택 50만 호 건설도 내세웠다.
▶현실성 여부는 글쎄…
이처럼 여야 후보 모두 집권에 성공하면 집값을 잡기 위해 공급 확대 정책을 펴겠다고 하지만 실현 여부를 두고 비판도 만만치 않다. 입지선정부터 재원까지 논란이 거세다.
이 지사의 기본주택의 경우 역세권에 충분한 면적을 약속했는데, 역세권 주위 주택은 일반적으로 노른자위 땅으로 알려져 있다. 시세도 인근보다 높게 유지된다. 때문에 지을 만한 땅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게다가 이 지사가 공급하겠다고 나선 주택은 원가 수준의 임대료로 살 수 있겠다고 한 공공임대형 주택이다. 땅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해도 땅 주인으로부터 산 시세에 비해 원가 수준의 임대료로 인해 그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재원만 하더라도 임대주택당 보통 1억2000만원 정도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100만 호를 지으려면 120조원이 든다”면서 “기본주택은 주택 지을 땅과 주택 지을 돈이 모두 문제인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TV 토론에서 기본주택과 관련해 “매년 44조원씩 220조원을 조달하겠다는데 그러려면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을 한 10번쯤 삽질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역세권 주택 공약은 윤 전 총장도 내놨다. 교통 요지인 역세권에 무주택자의 첫 집을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역세권 민간재건축단지의 용적률 상향조정을 통해 공공분양주택을 확보한 후 2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용적률을 300~500%로 높여주고 이 중 50%를 공공기부채납 받아서 공공분양주택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역시 문제는 입지다. 이와 관련해 윤 전 총장의 부동산 공약을 설계한 김경환 서강대 교수는 “도심 재건축과 국공유지, 3기 신도시 택지의 일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등 주변 택지 개발 등의 방법을 활용하려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홍준표 의원이 최근 논란이 불거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 대장개발지구를 찾아 발언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원가주택도 재원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원가주택을 산 청년들이 집을 되팔 때 국가가 매매 차익의 70%를 보장해준다고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유승민 캠프 측은 “윤 전 총장 측의 계획대로 따져본 결과 30년간 기회비용을 포함해 필요한 돈이 1879조원”이라면서 “지나친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윤 캠프 측은 환매한 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고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다음 사람에게 파는 구조여서 LH의 수입은 줄어들 수 있지만 원가주택 사업이 적자가 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심교언 교수는 “지금도 청년주택에 가까운 공공임대주택은 조성원가보다 토지를 낮게 공급한다”면서 “원가주택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의 서울공항 개발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짙다. 특히 서울공항 개발은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단골메뉴다. 그때마다 안보를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원 전 지사는 반반 아파트와 관련해 10년간 7조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사업 규모는 22조원이지만 채권 발행 등을 통해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면 국가예산은 7조원이면 된다는 구상이다.
홍 의원은 쿼터아파트와 관련해 서울 강북지역에 평당 1000만원대의 아파트를 공영 개발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여는 세금폭탄, 야는 규제 해제
금보다 주택 물량을 늘려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지만, 집을 소유하고 사고파는 것에 대한 공급 부분의 정책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여당 후보들은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면서 세금 등 규제를 더 옥죄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야당 후보들은 규제를 풀어 주택 거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지사는 국토보유세 도입을 예고했다. 민간이 소유한 모든 토지에 예외 없이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인데, 0.17%에 불과한 실효보유세를 1%까지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국토보유세 역시 이 지사의 정책 트레이드마크인 기본 시리즈와 무관치 않다. 이 지사는 거둬들인 세금을 기본소득으로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구상이다. 실효보유세가 1%까지 오르면 50조원가량 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 정책 역시 논란이 거세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국토보유세를 매기게 되면 월세 상승처럼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택지소유를 제한하는 다소 충격적인 정책을 내놨다. 1인당 400평 이상의 도심 택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넘으면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현실화를 위해 택지소유상한법을 포함해 개발이익환수법개정안, 종합부동산법(토지초가이득세법) 등 토지독점규제 3법을 내세우고 대표 발의까지 했다. 이 전 대표는 관련 정책을 발표하면서 “소수의 독과점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땅을 필요 없이 가진 분들은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땅을 내놓기 싫으면 부담을 더 지라는 것이다. 또 개발이익 환수율도 50%에 이른다.
토지독점규제 3법은 노태우 정부에서 선보인 토지공개념 3법과 유사한데, 문제는 이들 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토지초과이득세법은 1994년 헌법 불합치 판결을, 택지소유상한제법은 1999년 위헌 판정을 받았다.
이 전 대표 측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실현 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나, 전문가들 상당수가 여전히 위헌적 요소가 강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 정책이 실제 집행될 경우 오히려 토지가격만 상승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토지 소유주들이 토지를 내놓기보다 오히려 매물만 줄어드는 현상이 빚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실소유자들은 세금이 전가된 토지를 살 수밖에 없고 공급원가만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가 추석 연휴 전남 목포시 용당동 동부시장을 찾아 상인을 격려하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현 정부의 규제 정책인 보유세 강화 기조를 더 올렸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며 지대개혁을 통해 보유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개헌을 통한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 구현을 약속했다. 대신 거래세는 완화하겠다고 했다.
이에 반해 야당 후보들은 공급 폭탄과 동시에 세금 규제도 확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보유세,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 집을 사고팔거나 보유할 때 드는 세금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전 총장은 “주택 구입과 원활한 주거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보유세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양도소득세 세율을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은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80%까지 대폭 완화, 1주택 기준으로 취득세는 가격과 상관없이 1%로 인하하고, 재산세와 종부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인상도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1주택 양도세는 최고세율을 40% 수준으로 인하하겠다고 했다.
원 전 지사는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 폐지를 주장한다. 또 양도세는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 의원과 원 전 지사는 임대차 3법 폐지도 약속했다.
최 전 원장은 임대차 3법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시가격의 산정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고 주택담보비율을 현행 40%에서 70%로 상향조정하겠다고도 했다. 최 전 원장 역시 양도세와 보유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홍 의원은 아예 양도세 폐지를 주장한다. 대신 거래세를 도입하자고 했다. 재개발, 재건축의 경우 5년 이상 그 지역에 실거주한 사람은 초과이익환수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본다.
▶새 부동산 기구 설치 공약도
여야 대선주자들은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새로운 기구 설립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지사는 주택도시부를 신설하고 부동산감독원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또 공공주택관리전담기관을 설치하겠다고 구상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