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면서 시장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서 집값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지표 몇 가지를 살펴보면 주택 시장 분위기와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는 있다.
▶매물 감소에 거래량까지 절벽
“파느니 증여한다” 기조 뚜렷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수요자 움직임을 파악하기 좋은 지표다. 주택 거래가 많다는 것은 부동산에 관심 있는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를 때 거래량도 늘어난다. 반면 가격 조정기나 하락기에는 수요자도 매입을 꺼리기 때문에 유통량이 저조해진다. 이때 수요자는 거래량이 바닥을 치고 다시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기다린다.
다만 최근의 주택 시장 양상은 다소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올 들어 주택 거래량이 급감했는데도 집값은 되레 상승하는, ‘거래 절벽 속 집값 상승 기조’가 굳어질 전망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9월 15일 기준 8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3505건으로 집계됐다. 아직 등록 신고 기한(30일)이 남아 매매 건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가장 거래가 많았던 지난 1월(5796)에 비해서는 6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는 올 들어 가장 적은 수준으로 ▲1월 5796건(전년 동기 대비 10.9% 감소) ▲2월 3874건(53.3% 감소) ▲3월 3788건(14.4% 감소) ▲4월 3666건(20.8% ‘증가’) ▲5월 4797건(14.2% 감소) ▲6월 3936건(74.8% 감소) ▲7월 4469건(58.1% 감소)에 비해 감소세가 확연하다. 전국적으로도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주춤하다. 지난 7월 주택 매매량은 총 8만8937건으로 전년 같은 달(14만1419건) 대비 37.1% 감소했다.
통상 거래량 감소는 집값 하락 신호로 통한다. 하지만 올해는 전혀 반대 흐름이 나타난다. 8월 다섯째 주(3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21% 올라 최근 5주 연속 0.2%대의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0.4% 올라 3주 연속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수도권 아파트값은 7월 중순부터 7주 연속(0.36%→0.36%→0.37%→0.39%→0.40%→0.40%→0.40%) 최고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선 중소형 아파트도 9억원을 넘기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930만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1억원을 넘어섰다.
매매 거래량이 줄었는데도 집값이 오히려 오른 것은 매물 자체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면 매물이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정부 판단과 달리 아파트 매물은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급감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9월 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4만27건으로, 6월 초(4만5912건)에 비해 12.8% 감소했다. 전국적으로도 올 1분기 42만 건이 넘던 아파트 매물은 9월 초 24만여 가구까지 급감했다. 반면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다주택자의 아파트 증여는 늘어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지역 아파트 증여(1698건)는 전달(1261건) 대비 1.3배 증가했다. 앞서 지난 3월(2019건)보다는 증여가 감소했지만 2016년(6137건, 4%), 2017년(7408건, 4.5%)과 비교해 증여 규모와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지난 6월 고가 주택이 몰린 강남구(171→298건, 1.7배), 송파구(82→629건, 7.7배) 등 강남권을 중심으로 증여 건수가 크게 늘었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커지면서 부모가 아파트를 팔지 않고 자식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선 매물 잠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집값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주택자가 내놓을 만한 절세 매물이 사실상 사라진 데다, 정부가 뾰족한 단기 공급 대책을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로 증여가 늘고 매물 잠김이 더욱 심해져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다”며 “장기화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추진 중인 집값 안정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줄어드는 공급, 매물이 귀해진다
KDI “가격 조정은 2~3년 후에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급 부족 현상에 따른 집값 상승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본다. 정부의 공급 대책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감소하는 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나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3기 신도시 등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 중이지만, 인허가·분양·준공 주택 수 등을 종합해보면 실제 공급(본청약, 입주)까지는 최소 3~5년은 걸리는 만큼 공급 확대를 체감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인허가·분양·준공 등 주택 공급과 관련된 지표들은 2015년 이후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인허가 물량은 2015년 76만5328가구로 고점을 찍은 뒤 2016년(72만6048가구)→2017년(65만3441가구)→2018년(55만4136가구)→2019년(48만7975가구)→지난해(45만7514가구)까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서울 인허가 실적도 2017년(11만3131가구)→2018년(6만5751가구)→ 2019년(6만2272가구)→지난해(5만8181가구)까지 매년 감소세다.
새로 준공돼 입주하는 주택 물량도 감소했다. 올 7월까지 전국 주택 준공 물량은 21만 5475가구다. 지난해 같은 기간(29만2807가구)보다 26.4% 감소한 수치다. 수도권은 12만9429가구로 같은 기간 17.1% 줄었고, 지방은 8만046가구로 37.1% 감소했다. 특히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년 전보다 31.6%나 감소한 16만840가구에 그쳤다. 아파트 분양 물량도 쪼그라들었다. 1~7월 전국의 공동주택 분양 물량은 전년 같은 기간(18만8437가구) 대비 2.2% 감소한 18만4321가구였다. 수도권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5% 줄어든 8만5564가구, 지방은 18.3% 증가한 9만8757가구였다. 일반분양은 13만6348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7% 증가했고, 임대주택은 2만5072가구로 32.8% 늘었다. 조합원분은 48.1% 감소한 2만2901가구였다. 재개발·재건축 사업 부진에 따른 영향이다. 또 하반기에는 당장 입주하는 물량도 많지 않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 하반기 입주 예정인 서울 아파트는 1만3023가구다. 이는 2019년 하반기(2만3989가구), 2020년 하반기(2만2786가구)와 비교하면 1만 가구 이상 감소한 물량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 부동산 포럼에서 ‘주택시장 진단과 향후 전망’ 발제를 통해 “정부가 지난해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의 세율을 대폭 높이는 등의 규제가 부동산 시장의 공급을 막았다”며 “주택가격의 상승은 물량 부족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아파트 신규 공급은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신규 택지 지정 등을 통해 2~3년 후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고평가된 주택가격은 (주택 공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2~3년 후에야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현 정부 들어 부동산 상승률이 그 어느 정부 때보다 높았다”며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과거 서울시가 뉴타운 개발 정책에서 벗어나 재개발 규제를 강화한 것이 문제였다며 이 기간 공급이 예정됐다 취소된 물량만 대략 26만 가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집값 안정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수요 선행지표들 ‘역대 최고’
대출규제에도 매매수요 자극
‘역대 최고’ 통계 기록이 속출하고 있는 경매 시장 지표도 눈여겨볼 만하다. 멈추지 않는 집값 상승세에 지난 8월 인천·경기 지역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 역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서울 아파트 8월 낙찰가율도 전달보다 9.3%포인트 오른 116.3%를 기록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올 초부터 상승세를 이어오던 서울 아파트 낙찰가율은 지난 6월 11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 지역은 12개월 연속, 인천은 7개월 연속으로 아파트 낙찰가율이 100%를 웃돌고 있다. 지난 8월 경기, 인천 낙찰가율은 각각 115.1%, 123.9%로 역대 최고치다. 전국 아파트 낙찰가율은 올해 1월 100%대를 돌파한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기록하며 연이어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일부 아파트 경매 낙찰가는 감정가를 훨씬 웃도는 등 과열 양상도 나타났다. 지난 8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21계에서 진행된 강남구 삼성동 ‘삼성동아셈’ 전용 109㎡ 경매에는 17명이 몰릴 정도로 관심을 모았는데, 결국 감정가 12억5000만원보다 4억원가량 높은 16억300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낙찰가율이 무려 130%에 달했다. 같은 날 서초구 우면동 ‘LH서초5단지’ 전용 85㎡ 역시 감정가 9억400만원을 웃도는 11억3100만원에 낙찰돼 125%의 낙찰가율을 기록했다.
오명원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최근 경매로 나온 물건들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경매를 신청한 물건이라 올 초 감정가가 책정됐는데 그사이 서울 지역 아파트가격 상승세가 가팔랐다”면서 “낙찰에 성공하려면 현재 시세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써내야 하기 때문에 낙찰가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흔히 경매 시장 지표는 매매 시장의 선행지표로 통한다. 전문가들은 경매 시장에서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는 것을 두고 후 집값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 등 수도권 주요 지역은 현재 공급 물량이 부족하고, 앞으로도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경매 시장에 수요가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집계한 8월 서울 매매가격 전망지수는 125.9로, 전월(122.8)보다 높아졌다. 지난 4월(103.6)→5월(111.5)→6월(118.3)→7월(122.8)→8월(125.9)로 4개월째 상승 중이다. 전국 4000여 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설문해 집계한 매매가격 전망지수는 2~3개월 후 주택가격을 전망한 것으로 0~200 범위 수치로 나타낸다. 100을 초과할수록 상승 비중이 높다는 것을,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뜻한다. 국가 통계 기관인 한국부동산원 집계에서도 전국 주택 매수세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전국 주택종합 매매수급지수는 117.3으로 2012년 7월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7월 104.9로 기준점을 넘긴 매매수급지수는 지난해 12월(111.3) 111.0대를 웃돌기 시작해 지난 7월 117.3까지 오르며 매수세가 더 강해진 모습이다. 수도권과 서울의 주택 매수세도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7월 수도권과 서울의 주택 매매수급지수는 각각 123.5, 120.0으로 수급 불안이 특히 심각했다.
▶매월 낮아지는 주택 구매력 지수
서울서 아파트 사는 데 14→18년
한편 일각에서는 지난 몇 년간 집값이 쉬지 않고 오른 탓에 가격 거품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 시장 가격 거품을 포착할 만한, 이렇다 할 지표가 많지는 않지만 ▲주택구입능력지수(HAI)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 등 지표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버블 징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주택 구매력을 나타내는 대표 지수는 한국감정원이나 KB국민은행 HAI(중위가구소득÷대출상환가능소득×100)다. HAI는 중간 정도 소득(3분위)을 가진 가구가 금융기관 대출을 받아 중간 수준 주택을 구매한다고 가정할 때, 대출금 상환에 필요한 금액을 부담할 수 있는 능력이다. HAI가 100보다 클수록 중간 정도 소득을 가진 가구가 중간 가격 주택을 큰 무리 없이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KB국민은행 리브온부동산에 따르면 올 2분기 말 기준 전국 주택 HAI는 81.4로 지난해 5월(115.7) 정점을 찍은 이후 다소 내려앉았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HAI도 46.2에서 39.6으로 내려앉았다.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HAI 지표를 보면 예전보다 집 사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특히 서울 아파트가격은 고점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구매력 지수 하락이 집값 하락까지 이어질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면서 “서울에서 중저가 지역으로 볼 수 있는 강서구, 노원구, 은평구 등 지역에 실수요자 유입이 이어지며 당분간 서울 집값은 상승을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PIR도 참고할 만한 지표다. 주택가격을 가구당 연소득으로 나눈 배수로 나타낸다. PIR가 10배라면 10년치 소득을 모두 모아야 주택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올 6월 말 기준 서울 소득 3분위 가구의 PIR는 18.5로 2008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았다. 2020년 6월만 해도 서울 PIR는 14.1이었다. 소득을 모두 모아 14년 남짓이면 살 수 있던 내 집 마련 기간이 18년 6개월로 훌쩍 늘어났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PIR도 5.2→7.1로 상승했다. 권대중 교수는 “UN 해비타트 기준대로라면 흔히 3~5 정도를 적정 PIR로 보고, 이를 넘어가면 거품으로 보는데 현재 서울 지역 PIR가 적정선의 4배가량에 육박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심교언 교수는 “PIR는 소득 변화에 따라서 주거비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낼 뿐 ‘거품’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면서도 “PIR가 오랫동안, 지나치게 급등할 때는 거품 가능성에도 무게를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