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핫한 주제 중 하나가 ‘중국’이다. 모든 사회문제를 정부의 통제로 해결하려는 ‘공산당식 홍색 규제’가 연일 쏟아지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주가가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하락하는가 하면 특정 산업 자체가 공중분해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규제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강도도 ‘핵폭탄급’인 데다 사실상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진 상태다. 미국과 함께 G2인 중국은 그동안 월스트리트의 주요 투자 대상이었다. 그랬던 월스트리트의 중국 관련 리포트에 최근 ‘투자불가능(Uninvestable)’이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가 중국과 ‘거리두기’에 나선 것이다.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 국내 투자자들에게 ‘돈나무 언니’로 유명한 캐시 우드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중국 비중을 크게 낮췄다. 캐시 우드가 운영하는 아크인베스트매니지먼트의 주요 상품 중 하나인 ‘아크이노베이션 ETF’는 지난 2월 중국 비중이 8%에 달했지만 7월 말 현재 1% 미만으로 급감했다. 중국 정부의 빅테크 기업 규제가 계속되자 중국 주식을 대거 매각한 것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중국의 ‘디지털 굴기’를 대표하는 알리바바를 지난 1분기 8386만 주 보유하고 있었지만 2분기에만 7403만 주를 내다 팔았다. 이에 블랙록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알리바바가 차지하는 비중도 1분기 0.56%에서 0.06%로 감소했다. 월스트리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세계 최대 벤처캐피털 펀드인 비전펀드를 운용하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 회장은 지난달 10일 중국 투자를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손 회장은 그동안 중국의 정보기술(IT) 분야 스타트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다. 실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내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23%다. 단일 국가 기준으로는 미국(34%)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이랬던 소프트뱅크가 결국 ‘공산당 리스크’를 감당하지 못하고 중국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처럼 글로벌 큰손들이 중국을 손절하게 만든 ‘공산당 리스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첫 출발점은 지난해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금융포럼이다. 이 행사에서 연사로 나선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중국 고위당국자 면전에서 “중국 금융당국은 전당포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비판을 쏟아냈다. 공산당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알리바바그룹의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가 금융당국에 의해 이틀 전에 전격적으로 중단됐고 마윈은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알리바바는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3조원에 달하는 벌금폭탄을 맞았다.
디디추싱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자 중국 당국은 디디추싱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시작했으며 벌금, 영업정지, 투자 제한 등 전례에 없던 규제를 쏟아냈다.
▶시진핑, 제조업 중심 경제 꿈꾸나
이는 공산당이 그린 큰 그림에서 마윈과 알리바바는 한 조각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중국 당국은 IT업계에서 알리바바와 쌍벽을 이루는 텐센트를 비롯해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 라이프 서비스 플랫폼인 메이투안 등 이른바 ‘빅테크’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규제를 쏟아냈다. 중국 정부가 ‘빅테크’를 첫 번째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은 중국 IT 기업들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서 공산당의 1순위 목표인 체제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동안 IT 기업들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 IT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던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보호 아래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과정에서 빅테크는 거의 정부에 맞먹는 파워를 갖게 됐다. 빅테크들은 경쟁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고 영토를 끊임없이 넓혀갔다. 수억 명에 달하는 사용자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파악할 수 있는 빅테이터도 손에 쥐게 됐다. 공산당 입장에서는 이대로 계속 빅테크를 방치할 경우 체제 유지에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는 “최근 일련의 빅테크 규제는 중국 공산당이 글로벌 투자자들의 자국 기업에 대한 인식보다는 체제 안정에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을 사실상 금지시킨 것도 이런 연장선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 차량공유 서비스 시장에서 80%를 차지하고 있는 디디추싱이다. 중국인들의 이동 방법, 이동 시간은 물론 중국 구석구석의 지도까지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디디추싱이 미국 증시에 상장하자 중국 공산당은 데이터 안보를 명분으로 신규영업 금지 등 핵폭탄급 규제를 쏟아냈다. 일각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빅테크 기업보다 제조업이 경제의 주축이 되기를 원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등 빅테크를 규제하는 것이 자살행위처럼 보이지만 시진핑 주석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고 전했다. 기술은 필요한 기술과 있으면 좋은 기술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인터넷 관련 기술은 필요한 기술이 아니며 제조업의 기술은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시 주석은 지난해 연설에서 “중국은 디지털 경제, 디지털 사회, 디지털 정부의 건설을 가속해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실물경제가 기반이며 다양한 제조업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IT 기업 중에서도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화웨이, 샤오미 등은 중국 정부의 핵심 규제 대상에서 빠져있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중국이 사교육, 게임 등에 쏟아내고 있는 규제도 민심 안정을 통한 체제 유지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말 사교육 기관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기업공개 등 자금조달도 가로막았다. 이는 사교육 시장을 구조조정함으로써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손보겠다는 공산당의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이다. 공교육을 강화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누리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서민층에서 공산당의 사교육 금지 조치를 반기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중국 정부가 최근 ‘의무교육 단계 학생들의 숙제 부담과 사교육 부담 경감에 관한 의견’을 통해 이윤추구형 사교육을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사교육 시장에 철퇴를 가한 것은 출산율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 당국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5월 산아 제한 정책을 폐지하고 세 자녀까지 허용했다.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치솟은 집값과 감당하기 힘든 교육비 등으로 아이를 더 낳을 형편이 안 되는데 정부가 탁상행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중국 정부가 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사교육을 금지한 것이다. 게임시장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청소년기 게임에 중독되는 학생들을 최소화시켜 학부모들의 근심을 덜어준다는 취지다. 중국 정부가 노래방 금지곡 목록을 새로 만들고 도를 넘어서는 아이돌 팬클럽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모두 사회 안정과 연관된 규제들이다.특히 시진핑 주석이 그리는 큰 그림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시 주석은 내년 가을 열릴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를 통해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다. 장기집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서민과 중산층 계층의 민심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에 시 주석이 성장우선주의인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에서 분배와 균형을 중시하는 마오쩌둥의 ‘공부론(共富論)’으로 큰 물줄기를 바꾸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어느 정도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린다는 ‘전면적 샤오캉(小康) 사회’ 달성을 선언한 시 주석은 올해 들어 ‘공동 부유’를 핵심 집정 목표로 제시하면서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지난 6월 중국 동부의 대표적 발전지역인 저장성을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공동 부유 시범구’로 지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기업 때리기도 결국 중국 정부가 성장보다 사회적 안정과 부의 재분배에 더 중점을 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사모펀드 하비스트캐피털 설립자인 앨런 송은 “중국 기업가와 투자자들은 무분별한 자본 확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며 “효율성보다 공정성을 우선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중국의 ‘홍색 규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최근 14차 5개년 계획(2021~2025)의 세부사항으로 ‘법치 정부 건설 실시 강요’를 발표했다. 문서는 “인민들이 삶의 질 개선을 요구하면서 법치 국가 건설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법치 국가 건설을 추진해야만 한다”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