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 17일 부분 개각을 단행했다. 공석이었던 해양수산부장관을 포함해 4명을 교체한 ‘소폭’이었지만 정치권에 던지는 의미는 컸다. 한마디로 주요 장관 대부분을 ‘박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믿을 만한 국회의원’으로 바꾼 것이다.
이번에 내정된 유일호 국토교통부장관은 박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일 때 비서실장을 역임한 ‘신박(新朴)’ 국회의원이다.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은 당대표 시절 비서를 지냈고 당내 친박계 의원모임인 ‘국가경쟁력 강화포럼’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친박(親朴)’ 중진 의원이다.
비서 출신이란 점은 박 대통령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평범한 여당 의원이 아니고 박 대통령과 귓속말을 주고받은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 체제에서 ‘스킨십이 가능한’ 측근은 극소수여서 주목받을 만한 포인트다.
이번 개각을 통해 이완구 국무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우여 사회부총리 등 3인의 대표적인 ‘친박’의원 외에 측근 의원들까지 내각에 불러들여 총리를 포함한 장관 18자리 중 무려 6명을 친박계 의원으로 채우는 진용을 갖췄다. 3년차 ‘친박 친정내각’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이 원하는 각종 개혁조치 등 국정과제를 달성하려면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여의치 않다. 여당은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등 ‘비박(非朴)’지도부가 들어섰고 야당 또한 문재인 신임 대표가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 국회와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시기에 일심동체의 측근 의원들을 내각에 전진 배치하고 국정과제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다.
▶2·17개각 ‘사실상 내각제’ 평가
물론 박 대통령에게 이는 청문회 통과를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다. 취임 초부터 각종 인선 때마다 자질논란 등으로 후보자가 대거 낙마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끼리의 동류의식으로 인해 이른바 ‘의원불패’라는 조어가 나돌 정도로 다른 직종에 비해 인사청문회 통과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국회의원들을 새 장관감으로 앞세웠다는 설명이다. 실제 인사청문회가 생긴 이래 지난 15년간 청문회를 거친 총 28명의 국회의원은 단 한사람도 낙마하지 않았다.
여기에 전임 이명박 전 대통령(서울시장), 노무현 전 대통령(해수부장관)처럼 행정 경험 없이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이 사실상 경력의 전부인 박 대통령으로선 기용할 수 있는 인재풀이 국회의원밖에 없다는 한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모친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를 경험했던 것 말고는 국회의원이 사회활동의 전부”라며 “급해지면 활용할 수 있는 지식과 인재의 풀은 국회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당과 여권 일각에선 ‘행정경험이 전무한 대통령의 과도한 입법부 의존증’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개각이 박 대통령의 ‘고육책’일진 몰라도 ‘희망사항’은 아니란 점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2013년 초 취임 직후 조각을 했던 결과를 비교해 보면 분명해진다.
▶첫 조각선 ‘도전적인 드림팀’ 꿈꿔
박 대통령에게 아마도 2013년 초 첫 조각과 인선과정은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다. 어느 정권에게나 주어져 왔던 언론과의 ‘허니문 기간’을 즐길 사이도 없이 첫 조각 때 김용준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김병관 국방장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까지 지명한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한마디로 ‘인사 참사’였다.
대부분 개인적인 부도덕성이 이유였다. 야권과 시민단체 등에선 비판이 쇄도했고 언론에서도 박 대통령이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질타했지만 적어도 이때 박 대통령은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개념의 도전적인 인선을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처럼 ‘사실상 내각제’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측근 정치인들이나 관료출신을 선호하진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첫 조각의 ‘꽃’이라 불렸던 김종훈 미래부장관 내정자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의 벤처시장에서 검증된 ‘빅샷’이었다. 김씨는 영어조차 서툴러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았던 이민 2세대로 미국에서 빈손으로 벤처기업을 창업해 ‘세계 400대 부자’ 반열에 오른 창업 경험자다. 여기에 알카텔-루슨트 벨 연구소 소장으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대상으로 가치를 평가해온 경험도 갖고 있다.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역시 살아 있는 국내의 벤처신화였고,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도 정부와 관련 없이 법조계와 학계에서 자유롭게 활동해 온 인사였다. 적어도 이때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로 ‘창조적인’ 새 정부를 이끌어 가려 했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창조경제’ 김종훈 “50만 고용 목표”
잘 알려졌다시피 박 대통령의 국정기조 ‘창조경제’는 개념을 잡는 데만 거의 2년이 걸렸다. 말하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 ‘세계의 3대 불가사의’라는 등 코미디의 소재가 될 정도였다. 2년을 허송세월한 셈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볼 때가 됐다. ‘만약 박 대통령이 처음 계획한 대로 김종훈 씨가 첫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됐다면?’ 그랬더라도 창조경제는 성과 없이 코미디의 소재에 그쳤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 크게 기대를 걸었던 김종훈 씨의 낙마 이후 크게 상심했었다고 한다. 실제 김씨 낙마 이후 미래부장관은 최문기-최양희 장관 등 교수출신들이 도맡았다. 김씨를 대체할 대안은 학자나 공무원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은 김씨가 낙마한 후에도 그가 꿈꿨던 ‘미래창조과학부’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공개로 몇 차례 전문가들을 김씨에게 보냈다. 그때 김씨를 만났던 한 전문가는 “공직자로서 도덕적인 측면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몇 마디만 들어봐도 그 분야에선 정말 대단한 사람인 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에서 온 전문가그룹을 만나면 곧바로 프로젝트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는 “오늘 우리는 일자리 10만개를 만들기 위해 만났다. 이런 식의 목표의식 없이는 공무원 조직은 시간만 보내게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장관이 되면 ‘1-25-50 프로젝트’를 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김씨가 말한 1은 박 대통령 임기 5년간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 1개를 탄생시키고, 25개는 임기 5년간 연 5개씩 25개 첨단 벤처기업의 나스닥 상장, 50은 같은 기간 혁신형 창업기업 일자리 50만명의 창출의 의미였다. 구호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얘기지만 김씨는 미국 새너자이에서 셀사이드(창업해 투자를 받고 기업을 파는 쪽)와 바이사이드(창업기업을 대상으로 돈을 투자해 사는 쪽) 양 분야를 모두 최고의 위치에서 경험한 보기 드문 사람이다. 그가 작정하고 미래창조과학부와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를 한번 뒤집어놓았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