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으로 관광·전시산업에 ‘직격탄’을 맞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인의 3대 축제라 불리는 ‘엑스포’를 개최하며 다시 뛰고 있다. 팬데믹 여파로 1년 늦게 열린 두바이 엑스포는 지난 10월 1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6개월간 ‘마음의 연결, 미래의 창조(Connecting Minds, Creating The Future)’를 주제로 열린다.
두바이는 중동·아프리카 지역 최초의 엑스포인 ‘2020 두바이 엑스포’ 개막을 위해 151억달러(약 17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황량한 사막이나 다름없던 두바이 남쪽 제벨알리 지역을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켰다. 두바이는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행사장에 192개국의 전시관을 입주시키고 행사장 인근에는 지하철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뚫었다. 도넛 모양의 스테인리스 스틸로 설계된 미래박물관, 인공 섬 블루워터 아일랜드 중심에 자리 잡은 세계 최대 회전식 관람차 아인 두바이 등 새로운 랜드마크 또한 시내 곳곳에 선보였다.
2020 두바이 엑스포에 설치된 한국관 외부 전경. 사진제공= KOTRA
▶ICT 기술력 강조한 한국관
가을에도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가 훌쩍 넘는 두바이 한복판에서 유튜브 누적 조회 수 3억 회로 화제를 모은 퓨전국악 ‘범 내려온다’의 흥겨운 가락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율주행 시스템과 모션 제어 기능이 탑재된 이동형 디스플레이 ‘모바일 컬럼’과 함께 안무가들이 비보잉과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공연을 선보이자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600여 일간의 대장정을 거쳐 지난 10월 1일(현지시간) 문을 연 두바이 엑스포 한국관은 최근 치솟고 있는 한류의 인기를 반영하듯 전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개막 당일 한국관은 오후 2시부터 일반인에게 문을 열었는데 10시간 만에 3238명이나 다녀갔다. 엑스포 조직위가 시간당 수용인원을 수백여 명 수준으로 제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는 게 한국관 측 설명이다.
2020 두바이 엑스포 아랍에미리트관 내부 전시. 사진제공= KOTRA
192개 참가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관은 외관에서부터 독특한 구조로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빛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마당에 착안해 거대한 텐트 형상의 구조물을 세웠고,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어냈던 카드 섹션에서 영감을 받아 정사각형 모향의 스핀큐브 1600여 개를 외부 경사면에 배치했다.
내부는 ‘모두가 연결되는 거대한 움직임’을 테마로 한 문화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지상층(GF)을 시작으로 4개 층에 걸쳐 다양한 전시물을 배치했다. 관람객들은 삼성전자의 모바일 디바이스를 들고 다니면서 곳곳에 설치된 QR코드로 한국의 미래 모빌리티와 도시 전경 등을 증강현실(AR)로 체험했다. 또한 편안하게 누워서 한국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버티컬 시네마 전시관을 통해 한국에 다녀온 듯한 생생한 몰입감도 느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들이 2020 두바이 엑스포 한국관을 방문했다. 사진제공= KOTRA
한국관에는 전통 등불을 만들거나 붓글씨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가 함께 운영됐다. 현지 한식업체와 협력해 불고기와 비빕밥 등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과 300여 가지 한국 제품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도 열렸다. 전시관 건축을 비롯해 6개월간 현지 운영 비용으로만 무려 410억여원이 투입됐다. 두바이 엑스포 한국관 정부대표인 유정열 KOTRA 사장은 개관식 축사에서 “전 세계가 다시 거리를 좁혀나가기 시작하는 지금 두바이 엑스포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한국관은 사막에 핀 꽃을 모티브로 해 인종, 성별, 나이와 관계없이 각각의 개인을 하나로 모으는 다이내믹함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두바이 엑스포 조직위는 참가국별로 집중 홍보기간인 ‘국가의 날’을 지정했는데, 한국의 날은 내년 1월 16일이다. 이를 기념해 엑스포 전시장 심장부에 해당하는 알 와슬 플라자에서 340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스트레이 키즈’가 무대 공연을 실시할 예정이며, 국내 50여 개 기업과 협력해 수소차 등 다양한 혁신제품을 함께 선보일 계획이다.
2020 두바이 엑스포 중국관 외부 전경. 사진제공= KOTRA
▶북한 제외한 전 세계 UN 가입국 총출동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막을 올린 엑스포는 169년간 전화기와 비행기, TV 등을 처음 선보이며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 각국의 혁신 기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무대로 시작한 엑스포는 최근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국가별 미래 비전과 철학을 제시하는 박람회로 변화하고 있다. 두바이는 기회(Opportunity), 모빌리티(Mobility),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 세 가지 주제를 내세워 참가국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전 세계 192개국이 참여했다. 폐쇄적 성향의 북한을 제외하면 국제연합(UN)에 가입한 정회원국이 모두 참가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영국, 인도, 프랑스 등 주요국들은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공간을 앞세워 전 세계에서 온 관람객들을 끌어모으는 데 열을 올렸다. 각 주(州)를 상징하는 별모양 조각들로 꾸며진 미국관은 우주를 주제로 다양한 우주개발 성과와 역사를 선보였다. 입구에 내건 독립선언문 문구를 시작으로 무빙워크를 따라 전화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 백열전구를 개발한 토머스 에디슨,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민간 우주탐사기업을 세운 일론 머스크 등을 연이어 소개했다. 전시관 한편에는 스페이스X의 우주 발사체 팰컨9 모형을 배치해 방문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2020 두바이 엑스포 일본관 내부 전시. 사진제공= KOTRA
붉은색 성 형태의 중국관은 자신들만의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시진핑 주석의 환영사 영상을 입구에 배치한 중국관에서는 키 1.3m의 중국 최초 휴머노이드 서비스 로봇 유유가 주목받았다. 사전 홍보와 달리 유유가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 밖에도 중국 상하이자동차의 전기차, 독자 우주정거장 건설 프로젝트 등 다양한 전시물을 공개했는데 전체적으로 중국 문화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 있었다.
주최국인 UAE는 민첩성과 힘, 용기를 상징하는 매를 모방한 디자인의 전시관을 꾸렸다. 내부에는 사막의 언덕을 형상화한 디스플레이 모형을 배경으로 UAE의 과거와 미래 등을 전했다. 왕정 국가인 만큼 UAE 건국 50주년을 기념해 지도자의 비전과 업적을 홍보하는 전시가 주를 이뤘고 미래 비전과 계획 등도 함께 전했다.
옆 나라 일본은 문화 콘텐츠 강국답게 건담을 홍보대사로 내세웠다. 슈퍼마리오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캐릭터들이 전시관 곳곳에서 등장했고 천장과 벽 등에 빔을 쏴서 일본 전통과 자연에 대한 영상 콘텐츠도 상영했다. 영국관은 외계 문명에 인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주제로 전기 배선 다발을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전시관을 설치했고, 인도관은 우리보다 한발 앞선 우주개발 역사와 차크라, 허브 등 전통 문화요소를 함께 소개했다. 이 밖에도 이스라엘은 검은색 암막으로 둘러싸인 원형 체험장을 구성해 흡사 클럽에 온 듯이 DJ가 음악을 틀고 공연을 시작했다. 독일은 NFC 기능이 탑재된 단말기를 제공해 내부에서 다양한 형태의 IT 기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고 이탈리아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거대한 다비드 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위드 코로나’ 시대 새 기준 제시한 두바이
두바이와 아부다비 등 7개 토후국으로 이뤄진 UAE는 엑스포 흥행을 위해 방역수칙과 출입국 제한을 대폭 완화하며 우리보다 한발 앞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대를 본격화했다. 세계 1위 백신 접종률(92.3%)을 기반으로 관광비자 발급을 재개하고 72시간(출발일 기준) 내 PCR 검사 ‘음성’ 결과를 받은 외국인에게는 격리의무도 면제 조치했다. 이로 인해 두바이 현지는 엑스포 개막을 계기로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KOTRA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면서 두바이 경기가 반토막이 났는데 1년여 만에 코로나 이전 수준까지 회복했다”며 “지난 8월부터는 호텔과 쇼핑몰 등지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 도심 야경을 바라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모여 있다.
엑스포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방문한 세계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인 두바이몰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두바이몰에 입점한 삼성전자 매장에도 갤럭시 Z 폴드3, 네오 QLED 8K 등을 관심 있게 살펴보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고, 세계 최고 높이의 건축물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입구에는 입장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엑스포 조직위 등에 따르면 6개월간의 행사기간 동안 2500만 명의 관광객이 두바이를 찾을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통한 경제효과만 3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행사 첫날인 1일에만 5만3000여 명의 관람객이 엑스포를 다녀갔다. 조직위는 엑스포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가 90만 명에 이를 것이라며 지난해 -5.9%로 고꾸라졌던 UAE의 경제성장률도 올해는 엑스포 특수 등에 힘입어 3.1%로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들이 2020 두바이 엑스포 한국관을 방문했다. 사진제공= KOTRA
두바이는 내년 3월 엑스포가 막을 내리면 ‘District 2020’ 프로젝트를 통해 250만㎡ 규모 부지를 경제자유구역과 기업·주거 복합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외국인 거주 비율이 88%에 달하는 UAE는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서 ‘위드 코로나’ 시대에 돌입했지만 일부 방역수칙은 여전히 준수하고 있다. 두바이를 포함한 UAE 전역에서 거주민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제공하고 있으며, 마스크 미착용 시에는 최대 10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펼치는 식당에서는 최대 10인까지만 모일 수 있고, 엘리베이터는 크기에 따라 3~4인만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두바이 현지 교민 A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펼쳤던 두바이에서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작년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할 때는 거주민들조차 일주일에 3시간만 이동할 수 있었고, 차량 이동시에는 경찰에 사전신고하지 않을 경우 벌금까지 내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