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1년 구글은 ‘미친 짓을 마다하지 않겠다’며 풍선을 지구 곳곳에 띄운다. 900여 개의 풍선을 서로 연결하여 지구상 인터넷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도 연결된 인터넷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 룬’이 시작된 것이다. 전 세계 언론들이 이 프로젝트에 주목하며 대대적 보도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올해 1월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2. 애플은 2017년에 10번째 버전의 아이폰을 내놓으며, 강력한 무선충전 기능이 내장된 바닥 패드 하나를 내놓았다. 그 위에만 올려두면 아이폰, 애플워치, 에어팟 등과 같은 무선충전 제품들이 한꺼번에 충전될 수 있는 획기적인 패드였다. 이름은 ‘에어파워’라고 이름 지어졌고 유저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제품은 발표만 하고 실제로 발매는 되지 않았다. 2019년 3월, 애플은 조용히 이 제품의 개발이 중단되었다는 보도를 시인했다.
#3. 매년 새해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전망들을 내놓는 CES.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인 만큼 2020년 CES에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슈렉> <알라딘> <마다가스카르> <치킨런> <쿵푸팬더> 등을 연출한 감독 제프리 카젠버그와 HP의 CEO를 역임했던 맥 휘트먼 두 사람이 CES 2020의 기조 연설자로 연단에 섰다. 두 사람은 틱톡과 같은 짧은 동영상을 넷플릭스처럼 스트리밍하는 콘텐츠 회사 ‘퀴비’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발표한 그해 2020년 12월에 파산을 선언했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이 2013년 공식 출범한 ‘프로젝프 룬(Project Loon)’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에는 도전이 많다. 매년 수천 개의 스타트업이 이 지역에서 탄생하고, 구글 애플 페이스북 테슬라 엔비디아 AMD 등과 같은 기업들이 수십 개씩 신제품을 발표한다. 당연히 그들의 모든 도전이 성공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실리콘밸리를 만든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돈 밸런타인 세콰이어캐피털 창업자는 “시장을 여러 카테고리로 나눠 봤을 때, 그 카테고리에서 리더가 되는 승자는 하나 아니면 둘밖에 없을 거라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수많은 실패들이 이 지역에서 쏟아졌다. 일단 대형 기업의 프로젝트들을 제외하고 스타트업들만 열거해 보자.
퀴비(Quibi): 총 투자금 17억5000만달러(약 2조원). 짧은 분량의 동영상 콘텐츠를 생산해 넷플릭스처럼 구독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콘텐츠 회사를 꿈꿨음. 제프리 카젠버그, 맥 휘트먼 등과 같은 거물급 창업자들이 뛰어들어 일찍부터 화제가 됐으나 가입자 부족과 매각 실패로 2020년 12월 결국 회사 청산.
이센셜(Essential): 총 투자금 3억3000만달러(약 3859억원). 카메라 등이 멋지게 장착된 신개념 디자인의 폰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음. 특히 ‘안드로이드 OS’를 만든 장본인인 앤디 루빈이 창업해 화제가 됨. 그러나 제품의 완성도 부족과 앤디 루빈의 성추문 보도 등으로 인해 결국 2020년 2월 회사 청산.
테라노스(Theranos): 총 투자금 14억달러(약 1조6380억원). 혈액 한 방울로 사람들의 각종 질병을 판단해낼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 2003년 설립 이후 월그린(Walgreen)과 같은 미국의 전국적 약국회사도 투자를 했었고 호주의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개인적으로 투자도 하면서 유명세를 떨쳤음. 그러나 이 회사가 개발하는 제품들의 오류와 문제점에 대한 월스트리트저널의 탐사보도 이후 2018년 결국 파산.
스케일팩터(ScaleFactor): 중소기업들을 위한 인공지능 회계비서가 되어주겠다고 선언한 회사. 총 투자금 1억400만달러(약 1216억원)를 유치했고 테크스타즈, 베세미어 벤처스 등 꽤 이름 있는 벤처투자자들의 자금도 받았지만, 코로나19에다 제품의 품질 문제 때문에 결국 2020년 회사 청산을 선언.
허브하우스(HubHaus): 새로운 개념의 장기간 숙박공유 플랫폼 스타트업. 집값이 비싼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과 같은 지역에서 원룸이나 집을 장기간 임대하여 집값 부담을 떨어뜨리려는 목적을 지닌 플랫폼 회사였음. 최근 들어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지만, 2019년 위워크의 상장 불발과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2020년 청산.
모바일용 동영상 서비스 퀴비가 서비스 시작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크기는 다르지만, 수십억원에서 수조원씩의 자금을 쓰고 장렬히 산화한 기업의 사례들이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도전이 풀려고 했던 문제들은, 지금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현실세계의 문제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예를 들어 ‘퀴비’는 ‘기성세대와 다른 문법과 속도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어떻게 하면 영화 콘텐츠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했었다. 틱톡(Tiktok)과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이 질문에 나름 대답해 나가고 있지만 ‘퀴비’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프로덕션에 의해 제작된 콘텐츠가 아니라 일인 방송 중심의 콘텐츠라는 점에서 마치 넷플릭스(퀴비)와 유튜브(틱톡)처럼 결이 다른 접근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퀴비’의 문제의식 자체는 아직 유효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로 꼽히는 테라노스의 경우도 그들이 가졌던 문제의식 자체는 유효하다는 평가들이 많다. 그들이 제시했던 ‘혈액 한 방울로 인간의 병을 파악해 내겠다’는 문제의식은 다른 스타트업들이 계승해나가고 있다. 스탠퍼드 중퇴생 등이 설립한 ‘아테라스(Athelas)’는 혈액 검사를 하면 60초 안에 암 진단까지 해낼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의 최고 벤처투자자인 세콰이어캐피털을 비롯해 제네럴캐털리스트 등과 같은 투자자들의 자금을 받았고, 올해 8월에도 7200만달러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혈액으로 인간의 질병을 빠르게 테스트하겠다는 꿈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스케일팩터’나 ‘허브하우스’ 같은 기업들의 문제의식 역시 마찬가지다. 회계장부를 정리해주는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는 문제의식은 ‘파일럿(Pilot)’ ‘제로(Xero)’ 등과 같은 회사가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제로(Xero)의 경우 호주에서 3600명 이상을 고용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해 가고 있으며, 주식시장에도 상장돼 있다. 장기간 저렴하게 방이나 주택을 임대할 수 있게 하자는 허브하우스의 문제의식도 ‘방갈로(Bangalow)’ ‘커먼(Common)’ 등과 같은 서비스들에 의해 현재 진행 중이다. 한마디로 이들이 실패했다고 하여 숏폼 동영상 구독 서비스, 혈액검사를 통한 간편 질병진단 서비스, 인공지능 회계 서비스, 장기간 주택임대 서비스 등이 나오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이야기다. 거꾸로 10년 정도 지난 미래에는 누군가 이런 서비스들을 만들어서 시장의 엄청난 평가를 받는 위대한 기업을 만들지도 모르는 것이다.
반면 실리콘밸리에 있는 큰 기업들이 했던 실패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했던 것들을 따라하려다 헛걸음을 친 종류들이 많다. 예를 들어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이 했던 수많은 실패 프로젝트들을 한번 열거해 보자.
스마트 안경 단말기 ‘구글 글라스’를 착용한 구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구글의 채팅에 대한 끝없는 실패: 구글은 2005년 ‘구글토크’를 내놓으면서부터 무려 16년 동안 ‘카카오톡’이나 ‘왓츠앱’ ‘페이스북메신저’ ‘슬랙’ 등과 같은 메신저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노력해 왔음. 2005년 구글톡, 2009년 구글보이스, 2010년 구글버즈, 2013년 구글행아웃, 2016년 구글알로(Allo), 2017년 유튜브메시지, 2018년 구글챗, 2019년 구글포토메시지, 2020년 구글스타디아메시지 등. 하지만 어느 것 하나 10억 명 이상이 쓰는 구글의 주력 서비스로 자리 잡지 못했음. 2021년 구글은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가상공간 서비스 ‘스페이스’ 기능을 추가하면서 구글챗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음. 결국 구글은 채팅 시장에서 과거 여러 시도들을 했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음.
구글의 스마트폰 등 하드웨어 비즈니스: 구글은 채팅 외에도 스마트폰 등과 같은 하드웨어 비즈니스를 확대하기 위해 수많은 투자들을 해오고 있음. 넥서스 폰부터 시작해 구글 글라스(헤드셋), 픽셀(스마트폰) 등과 같은 제품들이 그 사례임. 하지만 구글이 만든 하드웨어 제품 중 연간 수천만 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아직 없음. 그럼에도 구글은 스마트폰, 스마트스피커, 원격화상회의 하드웨어 등과 같은 쪽에 투자를 계속해 가고 있음. 구글 글라스 역시 아직 폐기된 제품이 아니며, 산업용으로 계속 제작 및 판매 중임.
구글의 소셜미디어: 구글은 구글버즈(2010~2011), 닷지볼(2005~2009), 구글웨이브(2009~2012), 자이쿠(2007 ~2012), 구글플러스(2011~ 2019) 등 여러 형태로 트위터, 페이스북을 이길 수 있는 소셜미디어를 내놓겠다는 시도들을 했었음. 심지어 오늘날 각광받는 메타버스 솔루션도 2008년에 일찍부터 출시했던 적이 있음. 구글 라이블리(Lively)라는 서비스가 그 주인공인데, 웹에 기반한 ‘세컨드라이프’ 같은 경험을 제공했었음. 하지만 이 모든 시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음.
페이스북 딜스(Deals): 공동구매 서비스인 ‘그루폰’이 성공하면서 치고 올라가자 페이스북이 이와 유사하게 출시했던 서비스. 2011년 4월에 출시됐다가 테스트 후 반응이 별로 좋지 않자 그해 8월에 중단됐음. 하지만 이후에도 페이스북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했고 ‘페이지숍’ 등의 기능으로 이어오고 있음.
에어파워
이 중 구글의 채팅 서비스, 하드웨어, 소셜미디어 서비스의 실패 사례와 페이스북의 공동구매 할인 서비스의 실패 사례 등은 모두 다른 곳에서 유행했던 아이디어를 자기들에게 적용하려다 이뤄진 실패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누군가 관련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을 대체할 만큼 서비스 품질 개선을 하지 못했던 셈이다. 큰 기업이라고 하여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다른 영역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교훈을 들려주는 듯하다. 물론 과거에 없던 새로운 도전을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이런 도전들은 시기적으로 아직 무르익지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는 영역들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주목된다.
내용구글의 X 프로젝트: 하늘을 나는 풍선을 통한 인터넷 보급의 꿈을 담은 ‘프로젝트 룬’이라거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사이드워크랩스(Sidewalk Labs)’ 같은 사업들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이 투자한 여러 위성 프로젝트 중에서 실패한 사례로 꼽힘. 특히 구글의 문샷프로젝트라 불리는 X컴퍼니에서 하는 사업 중에는 수직으로 키우는 농장, 획기적 자율주행 기술 등이 있었지만 초반에 일찍 실패라고 규정짓고 없애버림.
애플의 충전 매트: 하드웨어 회사인 애플이 최근 실제로 내놓은 제품 중에서는 시장에서 많이 팔리지 않은 것들을 찾아보기 어려움. 그만큼 완성도를 높여서 출시하고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런 애플도 전화기, 시계, 이어폰 등을 동시에 충전시키는 꿈의 충전매트인 에어파워의 출시를 실패한 적이 있음(2019).
애플의 뉴턴(Newton):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회사에서 잠시 쫓겨났던 시기에 개발된 휴대형 PC.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폰, 아이패드의 전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 나갔던 제품. 영화 <언더시즈2>에서 스티븐 시걸이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기 위해 들고 나왔던 제품이 바로 이것. 애플의 당시 CEO는 이 제품을 엄청나게 자랑하고 홍보했으나, 판매부진에 결국 1998년 단종됐음. 9년 뒤 스티브 잡스가 뉴턴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제품 ‘아이폰’을 들고 나타남.
스냅(Snap)의 증강현실 안경: 소셜미디어 회사인 스냅은 2017년 증강현실 기능이 들어간 스펙터클(Spectacles)이라는 이름의 안경을 내놓았지만 4000만달러가량의 손실을 보고 처참히 판매에 실패. 하지만 오늘날 페이스북, 애플 등이 증강현실 안경을 내놓으며 관련 시장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음.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 CEO 모습
르네 제임스 인텔 전 회장은 “실패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무수히 많은 실리콘밸리의 실패들은 이 지역에 위치한 수많은 혁신가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밟았던 전우들의 시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