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대화] (5) 세계 유수 아트페어서 주목받은 화가 정재영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山河 한국화에 담아 전 세계 알릴것”
안재형 기자
입력 : 2019.04.29 13:48:10
정재영 화가
1964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홍익대와 동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91년 중앙미술대전 최우수상과 199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등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199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매년 회화, 드로잉, 설치, 판화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아트 파리, 아트 쾰른, 아트 시카고 등 미국과 유럽의 여러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있다. 그가 소속된 모제이 갤러리(Mo.j gallery)는 올 가을 서울 한남동(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28가길 31)에 서울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4월 중순의 부산은 벌써부터 바닷바람이 후끈하다. 그래서인지 부산역에서 광안대교를 거쳐 해운대로 가는 해안도로의 바다 내음이 짙어졌다. 해운대의 핫스팟이라는 달맞이고개, 그 고개 중심에서 내려다본 해운대의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날이 좋으면 저 멀리 대마도가 잡힐 듯 눈에 선한데, 바닷물까지 푸르게 물결치면 어느 것이 하늘빛인지 묘하게 중첩되며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서론이 길었다. 오로지 화가 정재영을 만나기 위해 날 좋은 봄 오후에 달맞이 고개를 찾았다. 이곳에 자리한 모제이(Mo.J) 갤러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는 최근 유럽에서 주목받는 한국 작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4월 프랑스 ‘아트 파리 아트 페어’ 현장에선 그랑팔레 미술관 입구 원형 계단에 가로 10m가 넘는 대형 캔버스 천을 깔고, 250㎝의 대형 서예 붓에 검은색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 생경한 퍼포먼스에 자연스럽게 관람객들의 시선이 모였고, 당시 50호부터 100호 이상의 대형작품이 전시된 정재영의 전시 부스에선 스위스와 프랑스, 스페인, 인도 컬렉터가 5점의 작품을 구매했다.
올 4월에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아트 쾰른 현장에서 2점이 주인을 찾았고 2점이 협의를, 아트 파리에서도 3점의 작품이 컬렉터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본인 스스로 여전히 무명이라 말하는 이 동양의 작가는 최근 3~4년간 이렇게 서서히 유럽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과연 그들이 J Young(그는 유럽에서 J Young으로 활동 중이다)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예전엔 누가 알거나 말거나 그림 그리는 데 집중했는데, 이젠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며 달라진 자신의 일상을 소개했다.
정재영 작가의 작품이 걸린 2017 파리 아트페어 모제이(Mo.J)갤러리 부스(우)와 2016년작 <Moment>(좌)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던 아이, 지금도…
▶유럽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됐다고 들었습니다.
▷이틀 전에 도착했어요. 벨기에 브뤼셀에 작업실을 찾아보느라 늦었네요. 아트페어에 나갈 때마다 그림을 비행기로 운송하는데, 그 비용이 많이 들어서 차라리 그곳에서 작업하는 게 어떨까 알아보고 있습니다.
▶운송을 비행기로 하면 꽤 많이 나오겠습니다.
▷그냥 들고 탈 수 있는 크기가 아니거든요. 이번 독일에선 50호 3점, 100호 1점, 150호 3점, 300호 3점을 걸었어요. 아, 저만 부스를 독점한 건 아니고 박서보 선생님의 작품과 함께 했지요. 아직 제가 무명이라서….
▶갤러리가 꽤 웅장하고 멋집니다. 이곳에 소속돼 후원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10년부터 모제이 갤러리 소속으로 후원받으며 전업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작업도 하고 전시도 하는데 감사한 일이죠. 그렇다고 마냥 받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유럽의 아트페어를 다니다 유명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나 신인작가의 좋은 작품을 추천하면 갤러리가 구입해 일종의 투자를 하기도 합니다.
▶갤러리 디자인을 직접 하셨다고.
▷갤러리 관장이 달맞이 고개에 땅을 마련했다고 하길래 제가 디자인하겠다고 나섰어요. 직접 하나하나 설계하고 내부 인테리어까지 디자인했습니다. 예전부터 설계도면을 볼 줄 알았거든요. 그림을 그리면서도 건축도면을 잘 그려서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놀라시곤 했지요. 올 가을에 서울 한남동에 모제이 갤러리 서울관이 개관하는데 그곳도 설계도 제가 했습니다.
▶그림부터 설계까지, 조기 교육의 영향인가요.
▷경북 예천 시골이 제 고향인걸요. 오로지 그림만 그렸습니다. 공부요? 안했지. 영어나 수학에는 아주 젬병이었어요. 그래서 대학도 4번 만에 들어갔지요.(웃음) 마지막엔 정신 좀 차렸던 것 같아요. 그림은 대학가서도 정말 열심히 그렸어요. 1년에 100호 그림 10점 그리라고 하면 전 100점을 그렸으니까.
▶화가가 된 계기가 있을 법한데요.
▷손재주가 좋았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미술반 선생님이 그 손재주를 보시곤 미술을 권하시더군요. 2학년 때 미술반으로 갔는데 마침 저희 고향에 예천문화제가 있어요. 중·고등학교가 같이 있었는데 미술반에서 고등학생 형들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빠져들기 시작했지요. 그때 예천문화제에서 처음으로 ‘가작’을 받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줄 알았어요.(웃음) 나중에 그런 문화제 심사를 갔는데, 참가자 중 반은 가작을 주더군요. 그래도 그 덕에 그림에 빠졌습니다. 그 어릴 때 하루 5~6시간은 그렸어요. 밤이 되면 학교에서 전기를 내렸는데 석고상을 손으로 만져가면서 그렸으니까.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국전 수상도 많이 하셨습니다.
▷젊을 때 얘기에요. 그래서인지 철이 좀 없었지요. 게다가 성격이 좀 직설적이라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웃음)
▶그러고 보니 서양화를 전공하셨는데, 지금은 동양화를 그리십니다.
▷동양화라기 보단 다분히 한국화죠. 먹도 많이 쓰고 붓글씨 붓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했는데, 혼자 독학했어요. 중학교 땐 서예 붓 서너 개가 닳아 없어지기도 했지요.
외국서 내 이름 발음 서툴러, 아직은 무명(無名)
▶해외시장에서 서서히 ‘J Young’을 주시하고 있는데요.
▷아이고, 지금도 외국에선 무명이죠. 아주 살짝 재작년부터 반응이 있긴 했습니다. 지난해 2월에 인도페어에 다녀왔는데, 국내에선 모제이가 처음 참가했어요. 그때 스위스 콜렉터가 현장에서 130호 그림을 사갔습니다. 그러면서 당신과의 관계는 이제 시작이라 하더라고요. 바로 아트 파리로 넘어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올해도 아트 파리에서 3점, 쾰른에서 2점이 협의 중이고, 쾰른 현장에선 2점이 주인을 찾기도 했습니다. 50호 이상 되는 작품들이었어요.
▶이번 유럽 여정이 꽤 길었습니다.
▷아트 파리, 아트 쾰른에 참가하느라 파리, 쾰른, 베를린, 브뤼셀까지 25일간 머물렀어요. 저만 단독으로 다니는 건 아니고 국내 스타 작가 분들과 함께 다닙니다. 아직은 외국 분들이 제 이름 석자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요즘엔 ‘J Young’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언제부터 유럽의 아트페어에 참가하신 겁니까.
▷모제이 갤러리가 나서면서 참여하게 됐는데 한 4년 됐네요. 아직 국제적으로 최상위 아트페어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곳은 전 세계에서 약 300여 개의 갤러리를 추려내 초청하는데, 아직 모제이가 그 안에 들진 못하거든요. 국내에선 국제나 현대갤러리가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조만간 저희에게도 소식이 들릴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입니까.
▷글쎄요. 안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 팔리더군요. 예쁘게 꽃나비 그린다고 사람들이 앞에 서서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나만이 창작할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죠. 100호, 300호 그림을 그리면서도 아예 팔 생각은 안합니다. 언젠가 좋아하는 분이 있겠죠.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활동이 더 활발한데요.
▷젊은 시절에 유학은 못 갔지만 대학원은 나와서 교수가 되긴 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교수보다 작가에 뜻을 두었어야 했는데 그게 좀 아쉬워요. 젊을 때 창작활동을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생각해보니 국내에서의 최고가 해외에서의 최고는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뉴욕이나 파리에선 이름만 나도 세계적인 작가라고 평가받거든요. 재능이 가장 많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그걸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해외에서 좀 더 자유롭게 활동하고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아트 파리가 열린 파리의 그랑팔레 미술관에서 가로 10m가 넘는 대형 캔버스 천을 깔고 그 위에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좀 알아봐요.(웃음) 이번에 아트 쾰른에서 그 퍼포먼스 영상을 틀었더니 주최 측에서 내년에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아마도 할 거 같아요. 예술가는 이슈가 있어야죠.
▶현재 관심이 있는 이슈는 무엇입니까.
▷전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산하에 관심이 많아요. 또 통일이란 이슈도 그렇고. 2000년대 중반에 평화통일협회 미술 사무총장을 맡았었는데, 그런 인연으로 2005년에 평양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아리랑 집단체조도 보고.(웃음) 당시에 가보니 너무 못살더군요. 통일이 꼭 돼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내년 독일에서의 퍼포먼스는 바로 그 통일이란 주제도 있고, 전 세계 신문을 모아 현재의 이슈들을 캔버스에 붙이려고 해요. 매일경제신문도 있겠죠. 그 이슈들을 붓으로 지워나가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꿈이라면.
▷20년 후에도 여전히 작업을 하고 싶고… 그때는 그림을 그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팔려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