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최초 9연임 CEO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 “기업경영,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게 중요하죠”
윤재오 기자
입력 : 2016.05.13 17:27:48
“증권사처럼 사람이 중요한 조직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직원들 마음을 얻어 한뜻으로 모아서 같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게 CEO의 역할입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사장이 최근 증권업계 최초로 CEO 9연임에 성공했다. 장수CEO가 되는 비결을 묻자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해줘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몸을 낮췄다.
그는 “생각해보면 오래 하려고 욕심을 안 부렸던 게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며 “어느 조직이나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 보면 단기적 실적에 급급해서 무리를 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긴 호흡으로 회사의 장기발전을 위해 하나하나 쌓아나갈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실적으로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유 사장은 “성과가 나면 실무자들이 잘한 것이고 잘 못한 일이 생기면 CEO 스스로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면 조직 내 갈등이 줄어든다”며 “그런 것들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조직의 성과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유 사장은 지난 2007년 3월 47세의 나이로 한국투자증권 사장에 선임돼 국내 대형증권사 최연소 CEO 기록을 세우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수익원 다변화로 업계 최고의 실적을 내면서 매년 연임에 성공해왔다.
그는 증권업계에서 국제통으로 손꼽히는데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 시절 하루 전체 주식 거래량의 5%를 매매하는 신기록을 세운 일화가 유명하다.
▶탁월한 경영실적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2005년 동원증권과 합병한 이후 증권업계 4대 증권사로 발돋움했습니다. 동원증권의 브로커리지와 기업금융 분야의 경쟁력이 자산관리명가인 한투증권을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이뤄낸 거죠. 이를 토대로 한투증권은 2011년부터 5년 연속 순이익 기준으로 업계 수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벌써 합병한 지 11년이 됐습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롯해 몇 차례 악재로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렸지만 한투증권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발 빠르게 대응해 위기상황을 재도약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아직 원하는 모습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고 수익성 높은 최고의 회사를 만들고 유지해왔습니다. 또 미국, 영국 등 선진금융시장과 더불어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시장 개척을 통해 글로벌 금융투자회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올해 경영방침을 ‘Beyond No.1, Beyond Korea’로 정했습니다.
▶회사의 성과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있나요.
최고의 인재가 최고의 대우를 받을 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도록 철저한 성과보상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최우수 직원을 선발해 부부동반 포상휴가를 보내고 있으며, 자산관리 명장제도를 도입해 선정 직원에게 ‘마이스터’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AM성과급제, 영업점 종합평가기준 등 다양한 평가제도 개선을 통해 직급 성별과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대우 받을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업경영, 특히 증권사 경영에는 직원들 마음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장수CEO가 된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직원들의 마음을 더 잘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바탕에는 소통과 신뢰가 있습니다. 출근할 때 설레고 퇴근할 때 마음이 가벼운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 경영모토입니다. 지난 2014년 증권업계에서 4000여 명이 직장을 떠났지만 한투증권은 인위적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고 오히려 150여 명의 승진인사를 단행했습니다.
▶활발한 해외진출을 하고 있는데 장기 전략은.
오는 2020년에 고객자산 200조원, 세전 순이익 2조원, 해외사업 수익비중 30%로 아시아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인수한 베트남 현지 합작증권사 ‘키스 베트남’은 업계 50위에서 지난해 업계 9위로 급성장했습니다. 철저히 로컬 업무영역을 확대한 결과 인수 2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올해는 톱5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에는 인도네시아 진출을 위해 자카르타에 현지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런던, 홍콩, 뉴욕, 싱가포르, 베트남, 베이징에 이어 7번째 해외거점입니다. 인도네시아 시장의 가능성이 확인되면 법인 설립 또는 현지회사 인수를 통해 한투증권의 계열사로 키울 계획입니다. 해외시장에서 성공모델을 만들어내면 이를 다른 신흥시장에 이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진출을 성공의 경험, 성공의 DNA로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증권사 인수를 통한 대형화 추진계획이 있나요.
일단은 업계 내에서 덩치 키우기 경쟁이 불붙은 것은 사실입니다. 꼭 자기자본이 커야 경쟁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형화 경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시장에 나온 대형증권사는 없습니다. M&A란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운다고 뜻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당분간 자체적으로 내실 있는 성장을 하다가 좋은 물건이 나온다면 다시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생 롤모델로 꼽히는데 조언을 해주시죠.
대학생들이 워낙 여건이 어렵다보니 자기가 평생 좋아하면서 할 만한 일을 찾아서 준비하기보다는 취직에 급급한 실정입니다. 그러다보니 노력과 에너지를 분산하게 됩니다. 쓸데없이 자격증을 많이 따고 온갖 스펙 쌓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이 아쉽죠.
대학 다닐 때는 평생 어떻게 살고 직업을 무엇으로 삼을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 제대로 해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 취업 준비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관심 있는 분야를 찾는 과정에서 그 분야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면 그게 바로 스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보다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앞날을 진지하게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이 너무 근시적인 시각으로 직업을 구하고 있습니다. 당장 돈을 좀 더 주는 곳이 좋은 회사는 아닙니다. 대학생들은 그야말로 100세 시대를 살 것입니다. 길게 호흡을 갖고 가야 합니다. 인생의 장기계획을 대학 졸업할 때 제대로 길게 세워보고 거기에 맞춰 살려고 노력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증권사 CEO가 된 것도 처음 증권업계에 입문한 직후 세웠던 인생의 장기계획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 정해지면 인생계획을 15~20년 단위로 끊어서 세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 어디 투자하면 좋을까요.
지금은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딱히 이게 좋다는 상품이 별로 없어요. 그렇다고 은행에 돈을 묻어둘 수는 없지요.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인데 은행에 돈 넣으면 오히려 손해라는 얘기죠. 그렇다고 장롱 속에 넣어두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혼란스럽고 불투명할 때는 진짜 이론대로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짜서 분산투자를 제대로 해놓는 게 그나마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한 나라에 집중하지 말고, 괜찮은 몇 군데 상품에 다양하게 투자하는 것이 좋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그렇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특별히 좋아 보이는 나라는 없는데, 5년, 10년 후를 봤을 때 베트남, 인도가 유망해 보여요. 리스크는 있지만 꾸준히 성장할 전망입니다. 중국이 최근 성장통을 앓고 있는데 베트남, 인도는 고속성장 후유증 겪기에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은퇴 후 계획은 어떻게 세워두셨나요.
여건이 허락한다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싶습니다. 평생 겪고 경험한 것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대학 강의도 1년 내내 전업으로 할 일은 아니니까,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몇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저만의 공간을 하나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리에 관심 있는데 제대로 배워서 지인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좋은 자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니, 음식 테마로 여행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즐기고 글로 써보고 싶습니다.
유상호 사장은 누구 1960년 경북 안동 출생 △1985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5~1986년 한일은행 △1988년 美 오하이오 주립대 MBA △1988~1992년 대우증권 국제부 △1992~1999년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부사장 △1999~2002년 메리츠증권 상무 △2002~2007년 한국투자증권 부사장 △2007년 3월~현재 한국투자증권 사장
[윤재오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