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경제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노령화가 지목되고 있다. 노령화의 진전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간) 연금수급 불균형에 따른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아울러 세계적인 저출산 기조로 인해 인구구조가 좋지 못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미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는 유치원을 늘린다든지 하는 출산장려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제15회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한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2011년 유럽재정위기 등 최근 발생한 위기가 여전히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노령화가 새로운 문제점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트리셰 전 총재는 7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15일 세계지식포럼의 주요 세션인 ‘2015년 세계전망 대토론회’와 ‘중앙은행 총재 라운드테이블’을 잇달아 소화한 뒤 다음날인 16일 아침 일찍 인터뷰에 응하는 강행군을 하면서도 시종일관 ‘우문’에 대한 친절한 ‘현답’과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깊은 푸른 눈 위로 드리워진 ‘백미’는 그가 왜 ‘세계 3대 경제대통령’으로 불린 사람인지 짐작케 했다.
유럽 경제가 침체 양상을 드러내며 디플레이션 공포에 시달리고 ECB는 추가 양적완화를 지속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우선 유럽경제의 현재상황은 경기침체나 불황이 아닌 ‘저성장’ 국면으로 정의 내리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현재 ECB 총재인 드라기가 펼친 통화정책들이 매우 적절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드라기가 추진하고 있는 자산담보부채권(ABS) 매입을 비롯해 기존에 자금난에 빠진 유럽국가에 대한 저리자금을 공급했던 LTRO프로그램, 예금금리를 0%이하인 -0.20%로 낮춘 조치 등이 그것이다. 과거 리먼 금융위기 직후 ECB가 취했던 통화정책들을 고려할 때 이러한 통화정책들은 굉장히 효과적일 것이다. ECB는 리먼 금융위기 직후 모든 유럽은행에 고정금리로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한 데 이어 개별 유럽국가의 채권을 사들이는 SMP프로그램, 유럽국가들의 단기채권을 사들임으로써 이들 국가들의 유동성에 대한 안전장치로 작용하는 OMT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펼치며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드라기 총재의 노력 덕분에 유럽의 장기무위험금리는 미국보다 현저히 낮은 상황이며 ECB의 통화정책은 금리를 가능한 한 낮게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재정 나쁜 나라들 신용도 개선 나서야 통화정책만으로 충분히 디플레이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가. 여기에 재정정책 등 정부정책은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나.
물론 중앙은행이 펼치는 통화정책이 만능은 아니다. 현재 상황에서 어떤 부문에서 묘안을 짜낼 여지가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디플레이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재정정책은 물론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통화정책에 더해 재정정책 부문에서 정책 시행 여지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재정정책을 펼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나라들은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하지만 재정압박이 존재하는 나라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재정압박이 있는 나라들은 우선 경쟁력을 회복해 적절한 신용등급을 획득하는 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특히 유럽의 경우에는 역내 모든 국가에 있어 경제 체질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나라뿐 아니라 독일처럼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나라일지라도 체질개선이 중요하다.
재정건전성이 뒷받침되는 나라의 경우 경제 체질개선의 핵심은 내수진작이다. 이러한 점에서 민간부문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수진작은 공공 혹은 정부 섹터에서가 아닌 민간부문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민간부문에 자본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는 상태라면 제조업, 서비스업에 대한 더 많은 투자가 가능한 데다 산업 경쟁력 또한 높아 영업이익을 충분히 낼 수 있기 때문에 임금상승 여지가 더 많아진다. 이는 내수를 진작해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 시행에 따른 일본의 정책에 대한 공과를 어떻게 생각하나. 향후 아베노믹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항상 국제사회가 서로 성장, 고용창출, 생활수준에 대해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이런 측면에서 아베노믹스는 세계번영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은 통화정책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아베노믹스의 역할은 세 번째 화살인 경제구조 개혁이다. 앞서 말했듯 경제구조 개혁은 모든 나라에서 중요하다. 비단 일본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경제구조 개혁은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있어서 본질적 요소다. 이것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중국 중장기적으로 세계 1위국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중장기 관점에서 중국 GDP는 세계 1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위안화가 자유로이 환전가능하며 변동환율이 적용되는 국제통화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존의 미국달러, 유로, 엔 등과 더불어 새로운 주요 국제 통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한국의 원화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제규모, 경제 역동성 및 성장세를 감안할 때 원화 또한 향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고령화 외에 선진국 경제 둔화 요인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선진국, 이머징 국가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경제는 몇 가지 주요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인구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과학기술의 빠른 진보와 세계화 등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티파티(tea party; 리먼 위기 이후 미국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을 크게 늘린 데 대한 조세 저항운동)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 피케티 교수의 ‘부의 불평등’ 논쟁이 한창이다.
부의 불평등에 관해서 생각할 때 이것이 특정국가 내의 문제인지, 아니면 국가 간의 불평등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국가 간 부의 불평등 문제는 상당히 감소하고 있다. 중국의 평균적인 삶의 질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좋아졌으며 인도의 경우에는 매우 좋아졌다. 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40년 전에는 아프리카 빈국만큼 가난했지만 지금은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누리고 있다.
특정국가 내를 살펴본다면 지난 40년간 불평등이 늘어나고 있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중국내 부의 불평등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부의 불평등 정도는 각국마다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나의 모국 프랑스에서는 다른 나라 대비 부의 불평등 확대 정도가 다양한 정부정책으로 인해 작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피케티가 주장하는 것처럼 부의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자본주의 법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다. 그보다 최근 시기가 부의 불평등이 감소하기보다는 증가하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것이 부의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하나의 요소라는 점은 사실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세금, 규제 등에 있어 보다 우호적인 나라로 재산을 옮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공조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의 세금회피를 줄이려는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장클로드 트리셰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942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등이 졸업해 지도자 양성소로 유명한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제2대 ECB총재를 역임하며 2008년 리먼 금융위기 극복을 성공적으로 진두지휘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버냉키 의장, 영란은행(BOE) 킹 총재 등과 더불어 세계 3인의 ‘경제 대통령’으로 꼽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