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계 유통의 절대 强者 김윤호 우림FMG 대표이사 | “이젠 메이드 인 코리아 시계로 승부할 겁니다”
입력 : 2014.10.31 17:29:00
수정 : 2014.11.17 15:00:35
쪽 고른 체형에 살짝 힘이 들어간 헤어스타일, 슬림한 상의에 청바지로 마무리한 품이 한눈에도 패셔너블하다. 서울 동
작구에 위치한 회사 현관에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내로라하는 패셔니스타들의 필수 아이템이라 불리는 핫한 브랜드가 벽면에 그득했다. 파텍필립, 쇼파드, 벨앤로스, 메카니케 벨로치, 볼, 레이몬드 웨일, 부로바, 융한스, 페라가모, 펜디, 폴스미스, 휴고보스, 코치, 닥스 등 하이엔드급부터 패션브랜드까지 가격대도 제각각이요, 고객층도 천차만별이다. 어떻게 이 모든 브랜드의 수입과 판매, 마케팅을 한 회사에서 진행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사업성과의 중심에 김윤호 우림FMG(Fashion Marketing Group) 대표가 있다.
대학시절 결혼해 먹고 살기 위해 이화여대 앞에 ‘메이퀸’이란 잡화점을 시작한 김 대표는 당시 판매 아이템 중 하나였던 손목시계가 꾸준히 팔리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시계브랜드 수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2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림FMG가 그동안 판매한 시계 수량만 200만개를 훌쩍 넘어섰다. 한국의 시계왕을 꼽을 때 자연스럽게 김 대표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다.
그것만? 슬금슬금 발을 디딘 식문화사업은 홍대 앞에 핫한 레스토랑 ‘The Gabriel’을 탄생시켰고, 하고싶어 시작한 영화사업 부문의 ‘필름 트레인’은 <좋지아니한가><부당거래><남쪽으로 튀어>를 낳았다. 올 봄 개봉한 황정민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는 김 대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과연 이 모든 활동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최근 늦둥이로 아들 쌍둥이를 얻은 김 대표는 “3남 1녀를 두고 국가에 기여하고 있다”며 “회사에 출근해 단 한순간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윤호 대표는 김상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큰 아들이기도 하다. 대뜸 정치할 생각 없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막내가 하고 있는데, 지난번 선거에서 600표 차이로 떨어졌다. 아버지께서 눈물을 보이시는 걸 처음 봤다”고 전했다.
1분 1초가 소중하다하루에도 수십 번 미팅이 이어진다던데. 시간 활용에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회사에 출근해선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데, 억지로 그러는 게 아니라 스스로 훈련을 했어요. 그랬더니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 못 견디겠더군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브랜드 관련 미팅이 잡혀있는데,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른 부서 직원이 들어옵니다. 순차적인 미팅이죠. 퇴근하면 입에서 단내가 납니다. 그래도 1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래서인지 전 골프를 못 쳐요. 아버지를 빼곤 가족 중 누구도 골프 치는 이가 없어요.
올해가 우림FMG 창립 25주년입니다. 그간 위기도 있고 기회도 있었을 텐데요.
첫 번째 위기는 1998년 외환위기 때였어요. 환율이나 소비 매출이 급감했는데, 그땐 회사 매출이 60억원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이기도 했지만 수입하면 할수록 손실이 나더군요. 어찌나 식은땀이 나던지. 2010년에는 회사 매출의 54%를 차지하고 있던 엠포리오알마니 브랜드가 빠지면서 손실이 생겼고, 2011년엔 돌체앤가바나가 횡령사건에 휘말리면서 이탈리아 정부가 D&G 브랜드를 폐지시켰어요. 그렇게 2년 동안 전체 매출의 92%가 사라졌습니다.
92%라면 거의 파산 수준인데, 어떻게 회복한 겁니까.
2010년이나 2011년 모두 빠진 브랜드의 매출을 다른 브랜드의 매출을 채웠어요. 매년 새로운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철저히 준비한 덕에 회사나 론칭 브랜드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됐지요.
그러고 보니 외환위기 시절에도 수많은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1998년에 버버리, DKNY, 휴고보스, 베르사체까지 바빴어요. 어려운 시기에 국내 판권을 획득해서 이듬해와 2000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습니다. 위기이자 기회, 또 다른 시작이 바로 그 시기였지요. 2010년에 매출이 좋던 브랜드들이 빠졌을 땐 시계제조를 시작했습니다. 루이까또즈가 그 시기에 나왔고, 자체 주얼리 브랜드인 스톤헨지의 주얼리 시계를 제조하면서 또 다른 기회가 됐어요.
수많은 브랜드 중 효자 브랜드는 무엇입니까.
IMF 당시에는 당연히 아르마니였죠.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브랜드 가치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최고 수준입니다. 버버리 같은 브랜드와 함께 마케팅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어요. 브랜드를 론칭할 땐 이웃 브랜드가 좋아야 성장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올해도 5개 브랜드의 론칭이 진행되고 있는데, 브랜드를 수입할 때 판단 기준이 궁금합니다.
제 기준으로 시계는 전통시계와 패션시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원천이 어디냐에 따른 것인데, 일례로 스와치는 전통시계고 샤넬은 하이엔드급 패션시계죠. 특히 패션시계는 모(母) 브랜드가 국내에서 어떻게 포지셔닝됐는지가 중요해요. 또 정장의 3분의 1에서 5분의 1 가격 수준이 적절한데, 그렇게 진행하면 큰 시장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가격 면에선 패션시계가 명품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첫 관문인 셈이군요.
지금까지 패션시계 분야에서 이 원칙을 역행해 성공한 시계는 없었어요. 제 경우 패션시계는 첫째, 국내에서 모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가격과 가치)인식. 둘째, 디자인. 셋째, 가격대를 따져보고 수입합니다.
해외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도 중요하다고 하던데요.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경우는 8개월간 제안서 작업을 했고, 쇼파드는 4개월간 작업했어요. 제안서는 그동안 100개 이상 써봤는데,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서두르지 않고 오랫동안 공들이는 게 프레젠테이션 성공의 첫 걸음입니다. 지금도 우리 회사에서 가장 가치 있는 소프트웨어로 당시 만들었던 제안서와 회사 소개서를 꼽고 있습니다.
스마트워치는 패션의 보조 아이템일 뿐스타일이 꼼꼼하신가요. 경영스타일이 궁금한데요.
시계수입만 하던 회사가 제조에도 나섰고, 2개 브랜드는 수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파일럿 시계인 ‘독파이트(Dogfight)’는 내년 바젤월드(스위스시계보석박람회) 참가를 위해 준비 중이에요. 여러 번 도전했고 우여곡절을 겪었죠. 최근엔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에 쇼파드 부티크를 열었는데 6일 만에 매출 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만하면 도전적인 회사 아닌가요.
올 상반기 성적은 어떻습니까.
약 576억원 정도했어요. 지난해에 약 20만개를 판매하면서 1100억원 좀 넘게 올렸는데, 올해도 비슷하게 마감할 것 같네요.
내년에도 2개 브랜드를 수입한다고 들었습니다.
브랜드 수입은 늘 준비하고 있고, 내년에는 앞서 말한 전투기 조종사용 시계인 ‘독파이트’를 전 세계에 내보낼 예정입니다. 이미 전 세계 50개국에 상표권을 등록했어요.
현재 한국의 시계 시장을 평가하신다면.
한국은 2010년을 기준으로 전통시계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세일즈 상승률을 보면 전통시계가 상승 중이고 패션시계는 꾸준한 편이죠. 기계식 시계와 스위스 메이드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하이엔드급 시계 브랜드가 시장에 안착한 것 같습니다.
한국은 스위스 입장에선 11번째 시계수입국가에요. 이미 스위스 시계의 대표 그룹인 스와치 그룹과 리치몬트 그룹이 진출해 있고, 주 타깃인 중장년층들이 시계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고요.
스마트워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스마트워치가 성공할 순 있겠지요. 하지만 패션시계분야를 위협할 것 같진 않아요. 남자에게 시계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인데, 스마트워치는 한 가지밖에 표현하지 못하거든요. 그냥 얼리어답터 정도. 결국은 패션의 보조수단이죠. 패션시계의 매출에 영향을 주진 못할 겁니다.
우림은 시계·주얼리에만 머무는 기업이 아니다우림의 미래가 기대되는데요.
FMG는 패션마케팅그룹을 의미합니다. 시계와 주얼리에만 갇혀 있지 않겠다는 것이죠. 시계 브랜드를 기준으로 의류와 가방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할 겁니다. 독파이트의 경우 시계와 함께 전투기 조종사들이 입는 가죽재킷과 선글라스를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로 묶으려고 합니다. 디자인은 끝났고 내부 설계 중이에요. 내년 바젤월드에 출시되면 대한민국 공군에도 선물할 계획입니다.
주얼리 부문의 해외시장 개척도 활발한데.
내년 가을 무렵 스톤헨지가 싱가포르에 단독 플래그십스토어를 낼 예정입니다. 스톤헨지를 필두로 주얼리도 해외시장 나서게 되는데, 앞으로 패션 분야에 관계되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내친김에 영화 부문은 어떻습니까.
올해 공동 제작한 <남자가 사랑할 때>는 200만명 관객을 동원하면서 이익을 남겼어요. 올해 2편을 더 제작하려고 하는데, 거미필름과 함께 준비하는 <행복이 가득한 집>은 손예진, 김주혁이 주연을 맡아 촬영 중이고, 또 한 편은 사극을 준비 중입니다.
어떤 사업 분야가 가장 매력적입니까.
비싼 무언가를 팔았다고 좋아해본 적은 없어요. 전 수많은 시계를 수입하고 있지만 제 시계는 두서너 개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비즈니스 미팅용이죠.(웃음) 성공이 쉽지 않은 브랜드로 성과를 냈을 때 가장 큰 성취를 느낍니다. 도전에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죠.
뛰어넘고 싶은 브랜드를 꼽는다면.
세계적인 그룹을 바로 뛰어넘을 순 없죠. 스와치그룹이나 파슬의 좋은 경쟁자 중 하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랜 전통이 하루아침에 생길 순 없겠지요. 단, 스톤헨지가 앞으로 전 세계 곳곳에 스와로브스키처럼 진열됐으면 좋겠네요. 30년쯤 후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제 생전이 아닐 수도 있지만 브랜딩은 50년, 100년을 바라봐야 합니다.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10년 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그때는 아마도 전문경영인이 경영하고 있지 않을까요. 10년이면 제가 35년이나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건데, 그때는 치열한 경쟁에서 물러나 있고 싶네요. 봉사하며 지내고 있겠지요.
이건 여담인데, 아버님 덕을 본 적도 있습니까.
사업을 시작하고선 오히려 경제적으론 아버지를 도와드렸죠.(웃음) 결혼하고서 50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어요.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니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절 미워하지 않았고, 믿어주더군요. 꼭 전라도 분들이 아니더라도 아버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도움 받은 점이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