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SKY대도 취업난으로 고전하는 판에 80%가 넘는 높은 취업률을 유지하고, 또 해가 갈수록 그 취업률이 더 올라가는 대학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 직업교육 대학인 한국폴리텍대학이다.
비결을 들으려고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을 찾았다. 그는 아주대 교수를 하다가 공직에 들어와 국무조정실 차장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역임한 테크노크라트이자 교육행정에 능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박 이사장은 매일 아침 취업률 자료를 받아본다는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6월 12일 아침 자료를 받아보니 (취업률이) 86.6%로 나왔다. 2013년에 85.2%였고 올해 사상 최고다. 취업률은 학교의 성적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취업률 높이는 데 기여한 교직원에게 인센티브 주면서 독려하고 있다.”
이처럼 취업률이 높은 것은 폴리텍대학 프로그램의 장점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2년간 108학점을 가르친다. 다른 전문대가 보통 80~90학점을 가르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많다. 그만큼 내실 있고 집중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특히 FL이라고 부르는 팩토리 러닝 시스템을 도입해 기업의 생산현장과 같은 여건에서 프로젝트 교육을 하고 있다. 또 기업전담제를 도입해 교수 한 명이 10~12개 기업을 맡아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연구하고 교육한 학생을 책임지고 추천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선 ‘취업 유지율(취업 후 1년 이상 재직하는 비율)’이 중요한데, 다른 대학 출신들이 60%를 밑도는데 반해 우리 졸업생들은 77%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학생들이 잘 적응한다.”
홍보를 잘해 대학 인지도를 높인 것도 취업률 제고에 큰 몫을 했다고 덧붙였다.
“부임해서 보니 우수한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면서도 인지도가 낮았다. 그래서 전방위로 홍보에 나섰다. 덕분에 갤럽 조사 기준으로 부임했을 때 54%였던 대학 인지도가 2년 만에 79%로 상승했다. 단지 우리 대학 이름 알리자는 것만이 아니다. 많은 국민들이 폴리텍대학을 알아서 직업교육 제대로 받고 생활이 나아져야 한다.”
그는 한국폴리텍대학의 비전을 ‘2020년 세계 초우량 직업능력개발대학’이 되는 것으로 세웠다.
싱가포르 폴리테크닉(S)이 라이벌이라고 했다. 한편으론 고위 공직자 출신답게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눈을 돌렸다. 베이비부머와 경력단절 여성을 교육하고 일반고 3학년생 대상 직업교육을 확대하며 폴리텍고등학교까지 신설해 국가 인적자산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복지예산만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교육을 통해 취약계층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보다 효율적이다. 이를 위해 폴리텍대학은 국민의 ‘생애 전 단계 교육기관’을 목표로 세우고 교육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했다. 2012년 300명으로 시작한 베이비부머 훈련은 지난해 1000명으로 늘린데 이어 올해는 1300명을 교육할 계획이다. 교육 직종도 보일러나 전기, 도배 등 전통적인 것에서 물류처리나 쇼핑몰 관리운영, 스마트전기통신설비 등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경력단절 여성은 지난 해 700명을 교육시켜 47%가 새 직장을 갖도록 했다. 올해는 1000명 규모로 늘렸고 50% 이상의 취업을 기대하고 있다.”
베이비부머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노동시장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는 그는 특히 소중한 경제자원인 여성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인성교육 강화에도 주력
박 이사장은 이곳에 오기 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아주대 총장을 맡는 등 교육에 일가견이 있다. 그에게 한국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좋을지를 물었다.
“<21세기 자본론>을 쓴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극심한 현대사회의 불균형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는 기회의 균등이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교육은 기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툴이라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 교육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특히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미국도 인성교육이나 인문학 교육이 줄어들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우리도 인성교육과 인문학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폴리텍대학은 직업교육 전문기간이지만 인문학 교육을 보강했다고 했다.
“취임 직후부터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여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한 대안을 찾았다. 기술만 좋으면 됐지 인문학이나 영어가 무슨 필요가 있냐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순수기술도 인문학적 사고가 뒷받침돼야 보다 창의적이고 생명력이 길어질 수 있기에 추진토록 했다. 취임 당시 11%에 불과했던 인문교과 비중을 18%로 높였고 교양개설 학점도 20학점에서 31학점으로 확대했다. 학생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려고 2학점이던 영어 필수학점을 6학점으로 확대하고 원어민 영어캠프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수월성 교육과 보편적 인성교육은 어느 하나를 희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두 마리 토끼 가운데 어느 한 마리만 잡는다는 것은 곤란하다. 교육은 어느 한 쪽만 해서는 안 된다. 교양 배우고 전공 배우는 것처럼 수월성 교육하면서 동시에 인문학 교육도 해야 한다. 하버드대나 옥스퍼드대도 최근 교양이나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데 대해 박 이사장은 새로운 교육실험을 하더라도 기존에 잘 되던 제도는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 되던 제도는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든다면 마이스터고교 같은 것이다. 중고교육에서 대안학교 부상이 뚜렷한 미국의 경우 기존 교육시스템은 유지하면서 대안학교를 추가로 발전시켰다. 미국에는 또 커먼코어라는 게 있다. 양당이 모두 받아들인 것으로 수학과 영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이다. 이를 위한 교사평가도 상당히 진전됐다. 교사들이 상당히 불편해 하지만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교육의 효율을 강조하며 무능한 교사를 퇴출시키고 대신 잘 하는 교사에겐 2만달러나 되는 인센티브를 주었다. 아울러 뉴욕시장이 교육감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교육을 개혁했다.”
공직은 직장 아닌 봉사하는 자리
박 이사장은 공직 출신이면서 공무원 강의의 인기강사로 꼽히고 있다. 그가 공직을 어떻게 보는지를 물었다. “공직은 봉사하는 자리다. 명예를 먹고사는 자리다. 다산의 목민심서에서 ‘타관가구나 목민지관은 불가구야(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라고 했다. 공무원은 소명의식을 갖고 봉사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공직은 일반 직장인과는 달라야 한다고 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공직을 직장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공직은 국가정책을 주무르는 자리다. 단순한 직장인이 아니라 소명의식을 갖고 사명감으로 하는 자리다.”
명예를 얻는 공직에서 너무 많은 보상을 바라지는 말라고 했다.
“재정 여건이 허락한다면 (공직자에게) 보다 많이 보상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미국도 얼마 주지 않는다. 장관이 20만달러 수준이고 대통령도 40만달러에 불과하다. 공직에서 큰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생계에 어려움을 겪게 해선 안 된다. 적정선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공직자는 평판을 먹고 사는 자리인 만큼 좋은 평판을 받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그는 특히 총리나 장관은 자리가 중요한 만큼 여기에 더해 역량까지 갖춰야 한다고 했다.
“총리는 국정을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다. 신뢰와 믿음은 기본이다. 공자도 민신(民信)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총리에게 사회를 통합할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또 내각을 통합할 경험과 역량도 갖춰야 한다.”
그러면서 승진을 꿈꾸는 공직자라면 끊임없이 공부를 하라고 주문했다.
“공직자는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진다. 가장 좋은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고시를 했다면 실력이나 학력은 기본적으로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바쁘다고 책을 읽지 않는다.”
관피아 논란은 시대적 요구인 만큼 공직자들의 사고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월호 때문에 관피아가 부각됐으나 언젠가는 부딪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공직자도 환경에 맞춰서 가야 한다. 언젠가 나갈 것을 대비해 실력을 갖춰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박사학위 따고, 기능을 익혀야 한다.”
실질개방 안해 개방형 공무원제 실패
그에게 민간이 공직을 대체할 수 있는지, 또 공무원 채용방식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우리의 채용제도는 공직 전문가 양성제는 아니었다. 민간으로 대체하려면 공무원 임용방식을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고시제를 바로 폐지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공직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과거의 개방형 공무원제 실험이 실패한 것은 실질적으로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호를 실질적으로 개방해 민간의 유능한 사람들이 들어와 일하게 해야 한다. 민간인이 공직을 맡아 일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전혀 경험이 없는 민간인에게 공직을 맡아 바로 적응하라고 한다면 그건 슈퍼맨을 요구하는 것이다. 적응할 기간을 주어야 한다. 아울러 그들이 장기간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1~2년 하고 민간으로 돌아간다면 회전문 인사를 심화하는 모양이 된다. 5년, 10년 이상 일하게 해야 한다.”
한국경제 투자 저조 심각
경제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박 이사장이 한국경제를 어떻게 보는지가 궁금했다.
“낙관도 비관도 아니고 양면이 다 있다. 아마 우리가 중국을 보는 시각과 비슷할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마틴 울프는 중국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데 중국은 여전히 앞으로도 7%대 성장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단기적으로 부채나 그림자금융 문제가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직면하게 된다. 이게 사실 가장 큰 어려움이고 우리는 이미 겪고 있다. 한국은 3%대 저성장을 뉴노멀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해야 한다. 25~49세 사이 핵심생산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 비중이 생산가능인구의 54%까지 줄었다.”
그렇더라도 한국은 너무 빨리 저성장 국면에 들어간 만큼 성장률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건은 투자다. 우리의 투자는 10년 단위로 절반씩 떨어진다. 투자는 기업이 하는 것인데, 기업가 정신을 살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현금을 싸들고 투자하지 않는 기업들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한국의 대기업 체제에 대해 거버넌스를 포함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인적자원을 내세워야 하는데 특히 경영 인적자원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논리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는 리 아이아코카가 포드를 살려냈고, 1990년대엔 잭 웰치가 선택과 집중으로 제조와 금융의 조화를 이뤘다. 2000년대는 스티브 잡스의 시대였다. 미국엔 그만큼 시대적 아이콘이 된 경영인이 있었다. 한국도 고 정주영 이병철 같은 유능한 경영인이 많아 나와야 한다.”
그는 1조4000억달러나 되는 큰 경제의 한국이 중진국 함정을 넘어서려면 질적 성장으로 파이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르웨이는 38만㎢에 인구는 약 500만명이다. 이 나라의 2012년 ‘1인당 GDP가 9만5000달러나 된다. 그 정도 소득이 있었기에 복지모델이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파이를 키우기 위해선 불평등 해소가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성장률 높이려면 불평등 해소해야
“우리의 불평등 정도는 OECD국가 톱 수준이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성장이 안 된다. 대런 애스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 불평등이 심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다만 불평등 해소를 위해 토마 피케티 교수가 주장하듯 소득의 80%를 과세하는 것은 지나치며 상위 0.1%, 1%가 스스로 사회환원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또 분배정책만으로 풀 수 없는 노인빈곤 문제는 복지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다. 심각하다. 노인으로 살 능력을 갖춘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삼성연구소는 현재 평균은퇴연령이 53세인데 10년은 더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며 그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연금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안 된다.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다. 그러나 노인복지는 강화해야 한다. 노인들은 월 20만원만 제대로 주면 독립이 가능한데 그걸 안 한다.”
청년들에게 주는 메시지
젊은이들에게 두 가지를 인용해 당부한다. 하나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유용한 ‘Boys be ambitious’라는 경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Stay hungry, stay foolish’다. 특히 스티브 잡스는 이 심플한 문장을 아주 힘 있게 얘기했다. 중국 고사성어로 말하면 大智若愚(대지약우; 큰 지혜는 어리석다)라는 뜻이다. 추사 김정희는 봉원사 왼쪽 끝에 있는 판전의 현판을 아주 심플하게 썼다. 죽기 며칠 전 쓴 글씨인데 평범해 보이는 이 글씨에 추사의 모든 것이 농축된 것 같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