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경 수일통상 대표 | 아너 소사이어티와 함께하는 행복한 사회 “받은 만큼 서로 돕는 게 당연한 원칙 아닙니까”
입력 : 2014.06.09 16:23:22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소년은 아침이면 밀가루 떡국, 점심은 칼국수, 저녁에는 수제비를 먹어야 했다. 매일 반복되는 밀가루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삼시 세끼 굶지 않으니 든든했다. 대학입시를 치르고 성균관대 법률학과에 합격한 소년은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입학금은 친척의 도움으로 치렀다지만 나머지 학기 등록금이 문제였다. 그래서 주경야독했다. 악착같이 벌었고 열심히 공부했다. 소년은 그렇게 청년이 됐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후덕한 아저씨가 된 그 시절 청년은 자신과 처지가 같은 후배들에게 대학입학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있다. 지원하는 인원도 연간 20~25명이나 된다. 등록금 일부는 아무 소용없다며, 10년 전 장학재단을 만든 이후 줄곧 전액지원을 고집하고 있다.
“잘 먹고 자랐죠.(웃음) 그때 그 밀가루가 아마도 미군 구호품이었을 텐데, 떡국에 칼국수에 수제비까지 제대로 먹고 자랐습니다. 그게 뭐 그리 대순가요. 다들 그렇게 살았잖아요.”
국내 최초로 시도한 레몬 수입 그게 평생 직업
앞선 인생사의 주인공은 석수경 수일통상 대표다. 수입청과 전문업체인 수일통상은 제스프리 키위, 썬키스트 오렌지, 필리핀 바나나 등을 수입하며 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는 탄탄한 중소기업이다. 인천, 곤지암, 부산 등지에 물류센터를 두고 있다. 지난 해 매출액만 1300억원, 4개 계열사의 매출액을 더하면 2200억원을 넘어섰다.
“직장생활을 하다 우연한 기회에 과일을 접하게 됐어요. 무역회사 수입파트에 있었는데, 그때 외국에서 과일을 수입하는 걸 보고 1984년에 국내 최초로 레몬을 들여왔습니다. 그렇게 발을 들여서 지금까지 왔어요. 별다른 재주가 없어서요. 그저 큰 고비 없이 열심히 했습니다.”
고비가 없었다지만 무일푼으로 시작한 사업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길이 없었다. 석 대표는 “어쩌면 고비를 느낄 시간이 없었다”며 노력도 많이 했지만 운도 따랐다고 덧붙였다.
“과일은 노하우가 없어요. 하느님과 동업이죠. 매년 날씨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거든요.(웃음) 수입을 해야 하니 사업 초기엔 매달 두어 번씩 비행기를 탔습니다. 1년에 3분의 1은 외국에 있었어요. 요즘 사업하는 후배들을 보면 보통 근면이나 성실을 사훈으로 삼는데, 전 최적의 판단과 빠른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닥친 어려움을 이겨낸 판단과 대처 경험이 강한 기업을 키우거든요.”
10년 전 장학재단 설립, 국내 최초 부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석 대표는 지난해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부하며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올해는 그의 두 딸 중 둘째 딸이 명부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 최초로 부녀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딸이 결혼식 축의금을 뜻있게 쓰고 싶다고 기부하더군요. 제가 받았던 도움을 말해주곤 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2004년 11억원의 기금으로 설립한 수일장학재단은 서울과 강릉의 학생들에게 연간 두 번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석 대표는 “지원 규모를 좀 더 늘려야 한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장학재단이 설립된 첫해에는 제 주변의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했는데, 지금은 지역사회 단체들의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제 고향인 강릉의 후배들도 추천받고 있어요. 빠른 시기에 법이 허용하는 한 회사 지분을 최대한 장학재단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같이 고생한 임원, 직원들에겐 주식 분배를 약속했어요. 저 혼자 키운 회사가 아니거든요. 이제 하나하나 실행하려고 합니다.”
아너 소사이어티를 아십니까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눔에 참여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개인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이다. 한국의 기부문화 발전을 위해 2007년 12월 설립했다. 1억원 이상 기부하거나 5년간 1억원을 약정할 경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기부 활동에 적극적인 갑부 2만여 명으로 구성된 미국 단체 ‘토크빌소사이어티’를 벤치마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