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계로 나갈 때가 됐습니다.”
푸근한 인상에 여유로운 모습, 간간히 쏟아져 나오는 날카로운 안광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지난해 6월 전주페이퍼의 새로운 사령탑에 오른 주우식 대표다.
주 대표는 사실 재계에서 스타CEO로 평가받는 능력 있는 경영인이다. 행정고시를 합격한 뒤 재경부에서 잘 나가는 엘리트관료였지만 1999년 사표를 내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숨겨진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입사해 IR팀장으로 활동을 시작할 당시 삼성전자의 주가는 30만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10년 후 그가 삼성을 떠날 때 주가가 130만원대에 달했다.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공직생활을 박차고 나와 삼성전자의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에 일조했던 그가 이번에는 대표적인 굴뚝산업으로 불리는 ‘제지업’에 도전장을 냈다. 바로 전주페이퍼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주우식 대표를 전주페이퍼의 서울사무소가 자리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나봤다.
신문용지 1등 기업… 직접 고교서 NIE 강의
“국내 제지시장은 성장이 정체돼 있지만 해외시장은 상황이 다릅니다. 인도와 중국 등 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들의 경우 해마다 종이수요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희가 국내 신문용지 1등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린다면 높은 성장가능성이 있는 셈입니다. 국내 1등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처럼 우리도 세계적인 제지업체로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린 것입니다.”
주우식 대표는 ‘글로벌 시장’을 유독 강조했다.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는 성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며 “성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이미 실행에 옮긴 상태다. 지난 6월 취임 이후 수출 비중을 늘리고 있다. 실제 전주페이퍼는 싱가포르, 대만 등의 빅3 신문사와 계약했다. 취임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수출중심으로 회사를 변화시키고 있다.
M&A 역시 고려대상이다. 주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좋다”면서 “M&A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과 미국에 집중돼 있는 글로벌 제지업체들이 낮은 생산성 때문에 2008년 이후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점이 주 대표의 눈에 기회로 비춰졌다.
“전 세계적으로 종이에 대한 수요가 3000만톤이 넘는데, 이 중 10%인 300만톤 생산규모가 매년 줄어들며 문을 닫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경쟁력이 낮은 기업들을 인수합병해 생산성을 높이고, 전주페이퍼의 노하우를 더한다면 성장의 큰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내수 시장에서 현상유지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주력사업인 신문용지업이 이미 포화된 만큼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발굴할 계획이다. 특히 산업용 특수지 같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이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IT확산은 제지업계로 보면 직접적인 위기입니다. 하지만 재료로서의 종이는 다릅니다. 종이는 섬유로도 쓸 수 있고, 보존용기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게 바로 종이인 셈입니다. 그래서 활용도가 높은 종이를 개발 중에 있습니다. 이미 개발이 완료돼 올해부터 판매에 들어가는 종이도 있습니다. 바로 식품용 포장종이입니다. 친환경적이면서도 비용도 싸고, 보관도 쉬워 앞으로의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력사업인 신문용지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다. 주 대표는 “IT의 발달로 신문의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신문용지 사업 역시 매출이 정체되고 있지만, 회사 매출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가장 관심이 간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주 대표는 ‘신문활용교육(Newspaper In Education, NIE)’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직접 고등학교를 방문해 강의에 나설 정도다. 전주페이퍼는 2004년부터 10년째 한국신문협회가 주관하는 NIE를 후원하고 있다.
“신문은 여러 가지 사건과 견해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어, 사안의 중요성과 판단력을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매일 두시간 이상 신문을 정독합니다. 특히 신문의 논설과 다양한 칼럼을 보면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앞으로 내다보는 혜안을 얻을 수 있어 청소년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캐시카우 ‘환경산업’
주우식 대표는 전주페이퍼의 새로운 캐시카우가 될 ‘환경산업’에 대한 비전도 공개했다. 전주페이퍼는 현재 재생용지 생산 과정에서 발전소를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전주공장에서 생산되는 제지는 모두 재생용지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폐지를 재가공해 새로운 종이를 만들어내고 친환경 산업인 셈입니다. 이렇게 생산된 재생용지는 해외에서 펄프로 생산한 용지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환경보호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입니다.”
전주페이퍼는 실제 신문용지 제조업 외에 국내 최대 규모의 바이오매스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생활폐기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고형연료 제조업에도 진출했다. 연료를 직접 만들어 발전까지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 2011년에 관련기술을 보유한 한빛그린환경을 인수한 바 있다.
가장 주목되는 곳은 열병합발전소다. 이곳에서는 폐목재, 폐합성수지의 바이오매스를 연료로 활용해 시간당 10MW의 전력과 100톤의 스팀을 생산하고 있다. 2010년 본격 가동에 들어간 지역 민간발전소로 3곳을 보유 중이다. 전주페이퍼의 한 관계자는 “연간 20만톤 이상의 폐기물을 에너지로 재활용하고 있다”며 “원자력발전 사고가 터진 이후 전력대란까지 겹치면서 정부가 친환경 민간 발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기를 만드는 곳은 발전소 뿐 만이 아니다. 앞서 밝힌 폐수처리장 역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박테리아를 통해 정제과정을 거치면서 나오는 메탄가스를 분리해 이것으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주 대표는 전주페이퍼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친환경산업’을 제기한다. 그는 “전주페이퍼는 모든 재료를 재활용하는 ‘100% 리사이클 시스템’으로 가동되고 있다”면서 “이 시스템의 운영 및 건설 노하우를 쌓으면 친환경산업 역시 전주페이퍼에게 또 하나의 성장축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고속성장 위한 준비 마쳐
친환경산업은 전주페이퍼에게도 득이 된다.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해 주는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재생용지의 가격이 펄프로 생산한 용지보다 더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주 대표는 “재생용지로 만드는 리사이클 제품은 시장에서 두 배의 가격으로 판매되며 해외에서는 가격을 더 받을 수 있다”면서 “환경보호 기술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주페이퍼는 친환경 인증마크인 GR(Good Recycle)를 획득한 상태다.
최근에는 인사를 통해 영업조직에 무게를 실어줬다. 삼성전자 출신의 김영출 상무를 영업본부장으로 전격 선임했다. 김 본부장은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동부하이텍을 거쳐 2010년부터 전주페이퍼의 수출마케팅담당 상무를 역임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수출거래선을 확보해 안정적인 영업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주페이퍼는 이번 인사와 관련 “젊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변신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처하고, 글로벌 종합제지회사로 도약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을 전면에 내세워 해외시장에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구조의 변화는 위기를 부르고, 반드시 기회를 가져 온다”고 말하는 주우식 대표. 그가 취임한 지난 반년은 아마도 구조의 변화를 통해 기회를 기다리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고속성장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그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려갈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주우식 대표
1959년 서울 출생
1978년 경복고 졸업
1982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85년 재무부 금융정책과
1989년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1997년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지역경제과장
2007년 삼성전자 부사장
2009년 삼성증권 부사장
2012년 KDB금융지주 수석부사장
2013년 전주페이퍼 대표이사 사장
전주페이퍼는
전주페이퍼는 사실 삼성그룹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65년 새한제지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후 3년 만에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에게 인수됐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 이름을 지금과 유사한 전주제지로 변경했다. 이후 25년간 삼성그룹 계열사로 지내다 1993년 한솔그룹으로 계열분리됐다. 하지만 1997년 IMF 당시 한솔그룹이 전주공장의 신문용지 부문을 매각하면서 삼성과의 연결고리가 끊겼다. 이후 여러번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의 전주페이퍼가 됐다. 현재 최대주주는 모건스탠리가 전체 지분의 58%를, 신한프라이빗PE가 42%를 보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