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볕이 따갑던 지난 6월 말,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 대한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올해 받는 배당금 34억3000만원 전액을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박 회장은 2011년과 2012년에도 배당금 전액을 기부했다. 최근 3년간 기부금만 총 137억원에 달한다. 박 회장의 기부는 지난 2008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 편지에서 “2010년부터 배당금 전액을 이 땅의 젊은이를 위해 사용하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셈이다.
2000년 3월 박현주 회장의 사재 75억원으로 출범한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사회공헌 영역의 의미 있는 발자취다. 미래에셋의 사회공헌은 금융투자 스타일만큼이나 공격적이다. 대부분의 기업이 성장 후 기부에 나서는 것과 달리 설립 초기부터 사회기여를 사시(社是)로 삼았다. 덕분에 업계에선 미래에셋의 사회공헌 활동을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비교하며 가장 체계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금융권에선 일찌감치 앞서나갔다. 사회공헌 분야도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장학사업이다. ‘뛰어난 DNA는 제대로 활용해야만 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공부하지 못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의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생 프로그램은 그래서 특별하다. 국내장학생, 해외교환장학생, 글로벌투자전문가장학생 등 3가지 프로그램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고 프로그램 별로 각각 2236명, 2567명, 122명 등 5000여명의 장학생을 육성해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글로벌리더대장정, 스쿨투어, 우리아이경제교실 등 어린이 경제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6만명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미래에셋의 경제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불과 10년…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에 서다
그가 말하면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뉴스가 된다. 그만큼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박현주 회장의 파워는 여전히 강력하다. 1997년 미래에셋을 설립했으니 올해로 16년.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미래에셋캐피탈, 부동산114 등 주요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운용자산(AUM)은 140조6260억원(2013년 3월말 기준), 보험사 FC를 제외한 그룹 인력이 4180명에 이른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11개국, 19개 글로벌 네트워크(해외법인 15개, 해외사무소 3개, 글로벌리서치센터 1개)도 운영하고 있다.
설립 초기, 외국인이 좌지우지하던 국내 주식시장을 기관 중심으로 바꾼 것도 미래에셋이다. 당시 전통의 강호들도 어느 순간 툭 불거져 나온 신생 회사에 훌쩍 뒤처졌다. 자연스럽게 박 회장은 후배들이 생각하는 선망의 대상이자 멘토로 선정되는 일이 잦아졌다. 승승장구로 연결된 드라마틱한 창업스토리도 한몫 단단히 했다.
첫 ‘LUXMEN 기업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박 회장은 “창업 후 금융이라는 한 길을 가고 금융의 국제화까지 이뤄냈다는 점에 젊은이들이 남다를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사업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국내에 안주하는 것과 달리 미래에셋이 해외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투자를 실행에 옮긴 걸 주목하는 거죠.” 전문가일수록 박 회장의 금융에 대한 안목과 전략을 높게 평가한다.
“(추석연휴 기간이던) 지난주 일본을 다녀왔는데 일본 금융기관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 금융회사가 무리 없이 해낸 일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더군요.” 박 회장은 “미래에셋은 주식과 채권뿐 아니라 (부동산을 비롯한) 대체투자까지 끊임없이 전략에 변화를 꾀한 점을 외국에서 더욱 주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그의 관심은 금융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고민에 꽂혀 있다. 박 회장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고령화”라며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고, 또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틈날 때마다 깊은 생각에 빠지곤 하지만 너무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가급적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도 결과로 말하겠다는 뜻입니다. 심사위원들이 높게 평가해 주셨지만 사회 공헌도 표시나지 않게 하고 싶어요.” 시대가 안고 있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박 회장의 이러한 면모가 ‘LUXMEN 기업인상’ 수상으로 이심전심 연결된 듯하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주목한 미래에셋
박 회장은 증권계에 입문한 지 4년 6개월 만인 32살의 나이에 전국 최연소 지점장에 발탁됐다. ‘한 분야에서 적어도 10년 이상 정진해야 한다’는 인생철학에 따라 10여 년간 한 우물을 판 박 회장은 1997년 미래에셋을 설립한다. 연이은 대박 신화는 회사 설립 이후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1998년에 내놓은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가 성공을 거뒀고 최초의 부동산펀드와 PEF 등을 내놓으며 한국 금융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당시 세간에선 “그가 하면 모든 게 최초”란 말이 돌기도 했다. 박현주 회장은 이후 적립식 펀드 활성화를 통한 펀드의 대중화, 업계 최초로 해외에 진출해 금융상품을 수출하는 등 차별화된 전략과 원칙중심의 투자를 바탕으로 창업 10여 년 만에 미래에셋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 톱클래스 투자전문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미래에셋의 성공 스토리는 지난 2010년 4월 아시아 자산운용사로는 최초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의 케이스스터디로 채택되기도 했다. 대기업 계열 금융사가 대부분인 국내 금융 시장에 뮤추얼펀드를 도입한 점, 적립식펀드의 대중화를 통해 새로운 투자 문화를 창조한 점, 한국 최초의 해외투자펀드·부동산펀드·PEF 등을 소개한 점이 호평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