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張欣) SOHO차이나 회장 | 예술작품 짓듯 최고의 건물 고집 부동산업계 주무르는 여자 갑부
입력 : 2013.10.15 14:30:55
SOHO차이나는 중국을 대표하는 부동산 개발회사다. 완다, 완커, 바오리 등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부동산 회사가 중국에 여럿 있지만 SOHO차이나는 여러모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대형 부동산 회사들이 주로 상가와 아파트 등 전형적인 상업용, 주거용 건물에 주력하는 데 비해 SOHO차이나는 몇년 전부터 사무용 빌딩만을 고집한다.
그것도 그냥 사무실이 아닌 건물 하나 하나가 전부 도시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독창적인 디자인의 건물을 짓는다. SOHO차이나는 또한 베이징과 상하이 이외의 지역에서는 건물을 지은 적이 없다.
최고의 건물은 최고의 도시에 지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베이징과 상하이에 사업을 집중한다. 물론 두 곳에 지어야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할 수 있다는 비즈니스 전략이기도 하다.
중국을 대표하는 부동산 개발회사
SOHO차이나는 덕분에 지난해 105억9000만위안(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지난 2011년 순이익 38억9000만위안의 3배에 가까운 성과다. SOHO차이나가 보유하고 있는 150억위안(2조6500억원)의 현금을 어디에 투입할 것인지 여부가 부동산 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을 정도다.
이런 SOHO차이나는 두 명의 최고경영자(CEO)에 의해 공동으로 경영되고 있다. 공동 경영의 경우 잡음이 날 때가 많지만 이들은 매끄럽게 회사를 키워나가고 있다. 주인공은 판스이(潘石屹·50)와 장신(張欣·48) 회장이다. 눈치를 챘겠지만 둘은 부부다. 두 경영자간 갈등이 없는 것은 역할을 분담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편인 판 회장은 경영전략과 해외부문을 담당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 발굴에 주력한다. 부인인 장 회장은 설계와 공사, 판매, 금융 등 나머지 분야를 담당한다. 판 회장이 큰 그림을 챙긴다면 장 회장은 철저히 실무를 챙기는 업무 구분이다.
지난해 가을 장 회장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어 “누가 회사에서 더 힘이 세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회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리는 매일 함께 있으며, 어떤 일이든 같이 결정한다. 업무를 세부적으로 구분지어 결정하지 않는다. 서로 협력하는 사이라고 보면 된다”고 응수했다.
두 사람이 공동 경영을 하고 있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좀 더 받는 쪽은 장 회장이다.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SOHO차이나를 돋보이게 하는 건물 디자인을 그가 담당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판 회장이 결코 장 회장에 밀리는 것은 아니다. 장 회장이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인기 블로거로 500만명의 팔로어를 끌고 다니고 있지만 판 회장은 그보다 팔로어 수가 더 많다. 그럼에도 장 회장이 더 돋보이는 이유는 그의 삶이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장 회장은 이미 중국의 대표적 여성 갑부 대열에 올라 있다.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2013년 자수성가형 갑부 여성’ 순위에서 그는 36억달러 재산으로 7위에 올랐다. 지난해는 포브스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포춘차이나가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CEO 5명’ 중 한 명에 들었다. 그러나 어릴 적 장 회장은 중국에서도 아주 가난한 집의 딸이었다. 미얀마 화교 출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1965년 태어난 그는 어릴 적 베이징에서 어렵게 살았다. 부모의 경제력이 별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나이 14세 때이던 1979년 가족 전체가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이주했다.
장 회장도 가계 살림을 도와야 했다. 그는 장난감이나 전기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근로자로 일하면서 학업을 병행했다. 5년간 벌어들인 3000파운드가 그의 출세의 종잣돈이었다. 그가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그의 가방에는 몇 벌의 옷과 냄비 몇 개, 영어사전이 전부였을 정도로 단출했다.
집안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돈을 벌면서 공부한 그는 영국 서섹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케임브리지대에서 발전경제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땄다. 이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골드만삭스 등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다. 홍콩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근로자가 연봉 20만달러의 월가 금융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이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장 회장에게 월가는 꿈에 그리던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뒷날 월가에서 일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오직 돈만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월가의 가치관이 맘에 들지 않았다”며 “인생에서 가장 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중국으로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은 그는 친구가 추천한 중국의 한 부동산업체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서 지금의 남편인 판 회장을 운명적으로 만났다. 당시 판 회장은 이미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이혼남이었다. 그러나 첫눈에 반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을 장벽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난 지 2주일 만에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얼마 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는 별도 부동산 회사를 설립했다. 1995년의 일이다. 초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으나 SOHO(Small Office Home Office)라는 개념을 아파트에 도입해 폭발적인 인기를 거두면서 성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지금도 둘의 호흡은 환상적이다.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지금도 판 회장의 의상을 장 회장이 직접 골라준다. SOHO차이나 초기에는 주로 판 회장이 경영을 도맡았으나 2000년대 들어선 이후에는 장 회장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SOHO차이나가 2004~20 06년 베이징의 핵심 비즈니스 구역인 궈마오 지역에서 전체 빌딩의 39%를 수주하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는 건물 디자인을 총괄한 장 회장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런 성공을 발판으로 SOHO차이나는 2007년 10월에 홍콩 증시 상장해 19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