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그룹 자동차 디자인의 중심은 ‘사람’이다.”
2013 서울모터쇼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3월 28일 킨텍스를 찾은 로렌스 반덴애커 르노그룹 디자인 총괄 부회장의 디자인 철학이다. ‘자연을 품다, 인간을 담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서울모터쇼와 잘 어우러진다.
그는 같은 날 서울모터쇼를 방문했던 재규어 수석 디자이너인 이안 칼럼처럼 유명하지는 않다. 디자이너로서 삶 대부분을 실용성을 추구하는 미국 및 일본의 대중 브랜드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해야 자동차 예술가로 대접받는 것과는 거리를 둔 대신, 실용성과 효율성에 근접한 대중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해 왔다. 1965년 9월 태어난 그는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교 산업디자인대학에서 엔지니어링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자동차 디자인과 인연을 맺었다. 1990년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꿈의 무대인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디자인 시스템 회사의 디자이너로 입사한 뒤 1993년에는 아우디로 자리를 옮겨 독일 잉골슈타트 디자인 센터에서 외장 담당 디자이너로 일했다.
포드자동차 수석 디자이너, 마스다 자동차 디자인 총괄을 거쳐 2009년 르노그룹에 입사해 디자인 총괄 부회장을 맡았다. 아우디에서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중적인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한 셈이다. 예술적인 럭셔리카를 디자인해야 주목받는 디자이너 세상에서는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는 디자이너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름다운 자동차보다는 실용적이면서도 인간 중심적인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데 눈을 떴다. 이는 인간 중심의 대중적인 브랜드를 추구하는 르노그룹이 그를 디자인 총괄로 발탁하는 계기가 됐다. “2009년 르노그룹에 합류했을 때 내 사명은 새로운 디자인의 장을 여는 것이었다. 르노가 과거를 존중하면서 르노의 브랜드 가치를 새롭게 해석해 달라는 임무를 준 것이다. 르노가 가진 100년 이상의 역사와 아이콘적인 요소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다. 과거를 존중하면서 재도약하기 위해서다.” 그는 ‘변화를 주도하라(Drive the Change)’는 르노의 새로운 전략 방향에 따라 ‘사랑에 빠지고, 여행을 떠나고, 가정을 꾸리고,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기는’ 고객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춘 전략을 수립했다.
“디자인을 할 때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 사랑, 일, 가족, 여가 등 삶 자체를 디자인 접목한다. 그러다 보니 감각적이고 따뜻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르노그룹이 추구하고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디자인을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이다.”
사람과 인생에 초점을 둔 새로운 디자인 전략은 르노 브랜드의 비전을 담은 키워드 ‘심플함, 감성, 따뜻함’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다. 전략은 양산차에 적용되기 앞서 콘셉트카에 반영됐다.
“2010년 파리모터쇼 이후 출시된 모든 콘셉트카에 르노그룹의 인간 중심적 정체성을 담았다. 드지르(DeZir)는 사랑에 빠진 고객, 캡처(Captur)는 세상을 탐험하는 고객, R스페이스(R-Space)는 가정을 꾸려나가는 고객을 표현했다.” 그가 정의한 사람의 라이프 사이클 중 두 번째 단계 ‘탐험(Explore)’을 디자인 모티브로 삼은 캡처는 드지르에서 선보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보다 기술적이고 기능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면을 더했다.
세 번째 단계를 표현한 R스페이스는 가족지향성과 스포티함, 기능성과 감각적인 면을 동시에 포용해 가정을 꾸려나가면서도 열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어하는 다양한 니즈에 초점을 맞췄다.
프렌지(Frenzy)는 라이프 사이클에서 일하는 단계에 해당하는 콘셉트카다. 100% 전기 자동차로 제작됐고 37인치 대형 스크린을 채택했다. 부피가 큰 물건을 실을 수 있도록 루프가 천으로 제작됐고 중앙에서 개폐되는 문을 장착했다.
그의 주도로 만들어진 콘셉트카는 이처럼 삶의 가치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콘셉트카 ‘알피느(Alpine) A110-50’만큼은 달랐다. 그의 디자인팀은 레이싱카와 스포츠카를 만들던 프랑스 회사 인 알피느가 르노 엔진과 디자인을 채용해 1962년 파리모터쇼에 출품했던 ‘알피느 A110 베를리네트’의 50주년을 기념해 이 차를 디자인했다. 그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려는 르노그룹의 디자인 전략을 충실히 반영하는 동시에 모터스포츠에 대한 르노의 열정을 강하게 표출하는 데 공을 들였다.
현재 그의 주된 관심은 QM3(캡처의 한국 판매명)에 있다. 서울모터쇼 기간에 한국을 찾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QM3를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질문에 그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짧게 말했다. “QM3를 한국어로 표현한다면 ‘멋지다’이다. 유려하면서도 감각적인 스타일링을 갖췄으면서도 실용적인 매력 덩어리다.” QM3에 대한 그의 자랑은 계속됐다. “지난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QM3를 선보였을 때 디자인에 관심 높은 이탈리아 기자단이 슈퍼 스포츠카인 라페라리 다음으로 QM3를 흥미로운 자동차로 선정했다. 프랑스에서는 전시장에 내놓지도, 광고도 하지 않았는데 800대 이상 사전 계약되기도 했다.”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국내 시장에서도 QM3가 하반기 출시되면 크게 성공할 것으로 그는 자신했다.
한국의 차들은 색상이 단조롭다고 지적하면서 컬러풀하고 개성 넘치는 차가 많아져야 하고, 그 역할을 투톤 컬러로 스타일리시한 QM3가 맡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르노그룹과 르노삼성은 트렌드를 만들어 가길 원한다. 경쟁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차별화로 시장을 주도하고 혁신적인 차량을 선보여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수비수가 아닌 공격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