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스타CEO]⑨ 하이얼 장루이민(張瑞敏) 회장…하이얼 가전 한국 소비자와 더 가까워 질 겁니다
입력 : 2013.05.03 17:58:49
수정 : 2013.05.27 15:25:08
하이얼 LCD TV
하이얼은 전 세계 백색가전 시장에서 지난해까지 4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중국 최대 가전업체다. 지금은 스마트폰 시장이 워낙 커지면서 매출 규모 면에서 화웨이(통신기기)와 레노버(PC·스마트폰)에 밀렸지만 그 누구도 중국을 대표하는 전자업체로 하이얼을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하이얼은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부터 두각을 나타내면서 중국의 고도성장을 주도한 대표적 민영기업이다. 지난해는 1631억위안(29조원) 매출에 90억위안(1조6000억원) 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웨이, 레노버와 함께 중국 전자업계 3인방을 형성하고 있는 하이얼은 매출액 기준으로 4위 기업과는 2배 이상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이런 하이얼을 일군 사람이 바로 장루이민(張瑞敏) 회장(63)이다. 그가 하이얼과 인연을 맺은 것은 거의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얼의 전신이었던 국영기업 칭다오냉장고가 연이은 적자로 파산하기 일보 직전에 놓였던 1984년 12월의 일이다. 당시 새 공장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칭다오가전공사에서 일하던 젊은 장루이민이었다. 그가 공장장이 됐을 때 칭다오냉장고는 정상적인 회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주먹구구로 운영되고 있었다.
직원들은 멀쩡한 화장실을 놔두고 공장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볼 정도였다. 자재를 훔쳐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장루이민은 이 상태로는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보고 새로운 관리규정을 발표했다.
직원들의 초기 반응은 냉담했다. 규정 발표 이후임에도 버젓이 비품을 훔쳐 나가던 직원을 적발해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 조치를 취하는 등 강한 모습을 보이고 나서야 직원들이 조금씩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경영 회복에 나서던 하이얼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품질에 대한 장 회장의 지독한 열정 때문이었다.
“소비자는 항상 옳다” 품질 혁신 이뤄
1985년 장 회장은 한 고객으로부터 항의편지를 받았다. 하이얼 냉장고 품질에 문제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창고로 달려가 당시 창고에 쌓여 있던 냉장고 400대를 일일이 다 검사했다. 그 결과 76대의 냉장고에서 이런저런 결함이 발견됐다. 불량 냉장고 처리 방안을 두고 회사 임원들은 우수 직원에게 선물로 주거나 아니면 관리들에게 상납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장 회장은 그러나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문제가 발견된 냉장고 전부를 망치로 부수도록 지시했다. 당시 냉장고 가격은 평직원 월급의 20배에 달하는 고가 제품이었다. 직원들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장 회장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직원들에게 “앞으로는 품질 검사에서 합격하지 못한 제품은 시장에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불합격 제품에 대해서는 생산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해 버렸다.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그 자신도 냉장고 불량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 달치 월급을 벌금으로 냈다.
회사는 1991년까지 냉장고만 생산하다가 1992년부터 세탁기와 TV 등으로 제품을 확대했다. 그해 12월에는 하이얼이라는 새 회사 이름도 얻었다.
그 하이얼이 지금은 전 세계 21개 지역에서 24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R&D 센터도 전 세계 10곳에 두고 있다. 종업원 수는 7만명에 달한다. 현재 전 세계 가전 시장에서 8%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소비자는 항상 올바르며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은 하이얼 역사에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그가 1997년 10월 서부 내륙의 쓰촨성으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세탁기 배수관이 자주 막혀 불편을 겪고 있다”는 고객의 항의를 들었다. 곧바로 실태를 조사해보니 농민들이 고구마 등을 세탁기로 씻는 바람에 찌꺼기가 배수구를 막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농민들에게 올바른 세탁기 사용법을 가르치자고 주장했지만 장루이민은 오히려 고구마를 씻어도 문제가 없는 세탁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실제로 6개월 뒤 하이얼은 고구마 세탁기를 개발해 냈고, 초기 물량 1만대가 하루 만에 다 팔려나가는 인기를 끌었다.
하이얼이 중국 세탁기 시장을 키우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소형 세탁기를 출시한 것도 고객의 수요를 철저히 연구한 결과였다. 장루이민은 세탁기 판매량이 여름철에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자주 빨래를 해야 하는 여름에 오히려 세탁기 판매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가벼운 여름철 옷 몇 벌을 빨기에는 세탁기 용량이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중국인들은 물 소비가 많은 세탁기를 많이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1997년에 새로 개발한 것이 1.5㎏급 소형 세탁기다. 덕분에 세탁기 수요 기반이 넓어졌고, 여름철은 세탁기 판매 비수기라는 인식도 사라졌다.
칭다오의 하이얼로드 1번지에 위치한 전자단지
와인 냉장고 세계시장 60% 차지
하이얼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찌감치 직원들에게 창의를 강조한 것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시장에서 기업은 경사면에 놓여 있는 공과 같다. 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뒤로 밀리는 힘도 커진다. 밀리지 않으려면 관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경사면 위로 공이 올라가게 해야 하는데 이 힘이 바로 창의력이다.” 그의 이 말은 중국의 경영학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로 하이얼의 창의 정신을 대표한다.
더구나 하이얼은 경쟁업체들이 도저히 따라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와인 냉장고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하이얼이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과 함께 생산 공정의 효율성으로 이런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많았지만 요즘 들어서는 하이얼의 혁신 능력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12년 글로벌 혁신기업 보고서’에서 하이얼을 세계 8위 혁신기업에 올려놓기도 했다. 2년 전에 비해 순위가 20계단 상승했을 정도로 빠른 발전이다. 특히 소비품 매출 부문에서는 특색 있는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에서의 혁신을 인정받아 세계 1위에 올랐다.
가전 강자 일본에서도 두각
하이얼의 이런 혁신 원동력 중 하나는 특이한 조직운영 방식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이얼은 단일한 하나의 조직이라기보다는 4000여개에 이르는 수많은 소기업의 연합체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내 창업이 활성화 돼 있다. 직원들은 원하면 누구나 사내 기업을 만들 수 있다. 제품 생산은 물론 물류, 배송도 소기업이 담당하고, 심지어는 재무를 담당하는 소기업도 있을 정도다. 이런 소기업들은 다른 소기업과 계약을 맺고 사업을 이어나간다.
이들 소기업은 손익을 스스로 매겨야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핵심적인 것은 이들이 고객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서비스센터에 전화가 오면 벨이 3번 이상 울리기 전에 응답하고, 서비스 요원은 3시간 이내에 중국 어디라도 도착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도 이런 소기업제의 효과로 분석된다.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도 하이얼의 ‘런단허이(人單合一, 직원과 고객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 전략이 성공에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고객의 입장에서 제품을 개발해 소비자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이를 통해 기업 실적도 향상시키자는 전략이 그것이다. 하이얼은 고객과 직원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마련해 고객 요구를 즉각적으로 제품에 반영함으로써 소비자들로부터 환영받았다.
하이얼은 최근 들어 해외 가전업체들에겐 무덤이나 다름없는 일본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일본시장 매출이 6000억원에 육박해 2011년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파나소닉 자회사 산요전기로부터 고급 가전제품 브랜드 ‘아쿠아’를 인수해 본격적인 일본시장 공략에 나선 덕분이다. 아쿠아 브랜드는 일본법인 매출을 크게 끌어올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3~4년 뒤에는 일본시장에서 1조원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이얼은 한국에도 지난 2004년 법인을 설립해 어느덧 시장 진출 10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TV 판매에 주력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등 생활 가전 분야로 영역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 품목별로 1~2개 모델을 선보였지만 앞으로는 5개 모델 이상으로 라인업을 늘려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향후 5년 내에 한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 목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력하고 있는 고급 프리미엄 시장보다는 중저가 시장을 적극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회사 측 전략이다.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 됐지만 하이얼이 국제화를 선언한 것은 지난 2000년 창사 16주년 기념식에서였다. 1999년 4월 미국에 첫 해외 생산라인을 착공한 직후였다. 초기 투자금 3000만달러를 들여 만들어진 미국 공장은 2000년 후반기부터 연간 20만대의 냉장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글로벌화가 지금은 해외 가전업체를 인수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해외기업 R&D 적극 나서
하이얼은 지난해 말 뉴질랜드 가전업체인 피셔앤페이켈(Fisher&Paykel)의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했다. 지난 2009년 9월 지분 20%를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선 이후 지속적으로 지분 보유량을 늘려온 덕분이다. 하이얼은 이 회사 인수를 통해 고급 프리미엄 가전 판매와 그에 상응하는 R&D 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내년에는 일본 사이타마현에 냉장고 등 백색가전 R&D 거점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세탁기를 개발하는 교토 거점을 포함해 일본 내 기술 인력을 300명 규모로 늘릴 방침이다. 일본 가전업체들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어 기술 인력들의 희망퇴직이 늘고 있고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다는 분석이다. 가전의 왕국 일본에서 개발 능력을 키워 아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과 유럽 시장의 점유율을 크게 높인다는 게 하이얼의 전략이다.
할일이 많은 장 회장은 지난해 4분기부터 휴무일인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고 있다. 오전에 간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서다.
장 회장이 회의 때 자주 언급하는 것이 바로 미국 작가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하는 ‘제3차 산업혁명’이다. 그는 간부들에게 “3차 혁명을 이루지 못하면 위험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회복 불능에 빠질 것”이라며 “3차 혁명을 맞이할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리프킨이 저서를 통해 밝힌 3차 산업혁명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인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에너지 체계 즉 재생에너지가 결합해 수평적 권력을 기반으로 새롭게 이뤄지는 산업혁명을 말한다. 2차 산업혁명은 종말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장 회장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기 위해 노력하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최근 직원들에게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 사례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GE가 세탁기와 열펌프 온수기 생산라인을 중국에서 미국 남부 루이빌로 이전해 성공을 거둔 사례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GE는 과거에 열펌프 온수기를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에서 개당 1599달러에 팔았지만 지금은 1200~1300달러에 판매한다고 한다. 20% 이상 가격을 내렸다는 것이다.
장 회장은 “이런 원가 절감은 전체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직원들 모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성공한 덕분”이라며 “모든 근로자들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바로 생산과정에 적용하는 맞춤형 생산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3차 산업혁명이 아주 먼 일이 아니다”며 “지능화 생산을 통해 원가를 더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하이얼을 비롯한 중국 제조업 위기론으로 이어진다. 그는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 제조에만 익숙해져 있어 3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경우 대규모 제조 공장부터 위험하다”며 “어쩌면 해체될 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가 요즘 들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하이얼의 대기업병이라고 한다. 반응이 빠르고 활력이 넘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지만 하이얼이 갈수록 대기업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장루이민(張瑞敏) 회장
장 회장은 산둥성 라이저우에서 태어나 중국과학기술대학을 졸업했다. 명절과 휴일도 없이 회사에서 매일 12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출장도 항상 목요일에 출발한다. 주말까지 활용해 일을 처리한 뒤 월요일에는 반드시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다. 덕분에 글을 잘 쓰는 경영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