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이젠 더불어 사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창업기업가 사관학교 맡은 송자 총장
입력 : 2013.03.07 16:12:31
수정 : 2013.03.26 14:35:05
대학의 변혁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4년 재임 기간 동안 1500억원을 모금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대외협력처, 입학관리처를 설치하며 미디어에 대학 광고를 게재하는 등 국내 대학 최초의 변혁을 시도했다. 처음엔 ‘뭐 그런 일까지 대학에서…’라며 거들떠보지 않던 타 대학들도 이후 송 전 총장의 시도를 벤치마킹했다. 지금은 당시의 변혁이 대학의 당연한 업무 중 하나가 됐다.
고인 물은 썩는다며 늘 새로움을 강조하던 송 전 총장은 최근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IGM) 회장과 함께 창업기업가 사관학교(IEA)를 출범시키고 한국 경제에 필요한 창업자 양성에 나섰다.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아이들과 미래’ 사무실에서 만난 송 전 총장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고용축소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창업”이라며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이 일본이 필요한 정치지도자를 길러내듯 IEA는 한국 경제에 필요한 창업자를 키워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과연 송 전 총장의 또 다른 변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이라며 “나오지 말란 법이 있냐?”고 되물었다.
세월이 지나도 늘 에너제틱하다. 명지학원 이사장, 세이프키즈, 아이들과 미래 이사장, 한국 가이드스타 이사장 등 활동이 다양하다. 직장인들 입장에선 선망의 대상인 직함들인데
솔직히 가장 부담이 없는 건 총장이다. 솔직히 회장이나 이사장은 주인도 아닌 입장이고 일생 교수를 했기 때문에 교수나 총장이 편하지. 다른 직함은 좀 어색하네.
최근엔 IGM 창업기업가 사관학교(IEA) 총장을 맡았다
전성철 회장이 벤처처럼 IGM 세계경영연구원을 만들 때부터 사외이사로 참여했었다. 그런 인연으로 이번에 총장을 맡게 됐지. 일단 학교이니 총장은 내가 맡지만 일은 당신이 하라고.(웃음) 생각보다 지원율이 굉장히 높았다. 30~40명 뽑는데 417명이 지원했다더라고. 떨어진 사람들이 왜 떨어졌냐고 항의까지 했다니 말다했지.
선정 기준에 대한 항의였나요
글쎄. 좀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미국 아이비리그가 그런 항의를 받는다고 신경이나 쓰나. 하버드는 세계와 미국의 지도자가 될 사람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영어로 리쿠르팅(Recruiting)이지 셀렉션(Selection)이 아니야. 우리가 찾은 사람이 이번엔 이 사람이다 이거지. 넓게 보면 이건 학교 권위에 대한 문제다. 대학의 문제지. 뽑는 게 아니라 찾아다닌다고 생각해야지. 우리도 그런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IEA는 학교라기보단 일종의 교육기관 이지요
3학기를 진행하는데 첫 강의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한다. 창업에 크게 성공하신 분들과 IGM의 교수들이 하루씩 봉사하는 형식이다. 입학금도 없지. 300만원을 받는데, 졸업하면 돌려준다. 80% 이상 출석해야 졸업할 수 있지. 학기 중에 이 사람은 안되겠다 싶으면 내보내고 받았던 300만원도 돌려준다. 일종의 실험이지.
IEA의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을 텐데
월급쟁이는 온실에서 사는 것처럼 코스를 밟는다. 주어져 있는 스케줄에 따르면 되거든.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렇게만 해선 안 돼. 정주영, 이병철, 김우중 회장이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분들 아닌가. 자본주의는 위험에 대한 대가다. 정주영 회장도 조선업에 대한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에 지금 대가를 받은 것이지. 물론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실패하는 이들이 더 많지. 자본주의는 실패한다 해도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나올 수 있어야지. 월급쟁이 하겠다는 사람만 있어선 안 된다. 미국인들의 고민 중 하나가 카네기, 포드, 잭 웰치처럼 제조업으로 뻗어나가는 인재들보다 월가로 빠져나가는 인재가 너무 많다는 것 아닌가. 그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아니다. 나쁜 말로 도박이지.
그건 한국의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도 그렇지. 머리 좋은 인재들이 전부 의과대학 간다고 걱정이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IEA는 창업하려는 학생이 있으면 끝까지, 펀딩까지 도와줄 생각이다.
금융회사나 공기업, 공직을 선호하는 청년들의 세태에 새로운 바람이다
아이디어가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얼마든지 현실성이 있다. 어떻게 운영하고 진행하느냐의 문제지. 예를 들어 미국 댈러스의 SMU대학에선 1학년부터 팀별로 사업 기획안을 내야 한다. 보스턴의 벤트리 컬리지는 창업만을 교육한다. 이렇게 창업자를 키우면서 지속적으로 실험하는 대학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월급쟁이를 키워내는 건 이제 승산이 없다.
혜택을 입은 사람이 나눌 줄 알아야 한다전문경영인과 창업자, 자기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월급쟁이와는 생각 자체가 다른 것 같다
당연하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내 것이란 생각을 가졌을 때 최선을 다하도록 만드셨거든. 그건 부인할 수 없는 문제다. 내 것이라고 생각해야 아끼고 쓸고 닦을 것 아니겠어. 사유재산제도가 자본주의의 기본이란 걸 잊어선 안된다. 예를 들어 청교도들이 미국에 가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첫해도 흉년, 그 다음해에도 흉년이었어. 그때는 신앙공동체이니 같이 농사를 지었다. 3년 동안 흉년이 들자 목사님들이 이번엔 가족단위로 땅을 나눠서 일을 하라고 했지. 4년째인 그 해에 당장 풍년이 들었다. 그렇게 가을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 게 지금의 추수감사절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을 보면 가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린 사회주의를 3년 실험으로 끝낸 나라’라고. 그게 미국의 기본이다. 물론 이젠 혼자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오긴 했지. 그래서 같이, 더불어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함께, 더불어?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렇지. 오바마가 대통령직 수락 연설을 할 때 가장 많이 쓴 단어가 ‘We’와 ‘Together’였다. 그것도 맞는 얘기지. 자본주의의 장점이 뭐냐. 세상 어떤 제도보다 우리에게 자유를 가장 많이 가져다 줬다. 부도 가져다 줬지. 문제는 아무리 좋아도 영원히 갈 순 없다는 것이지. 우선 양극화의 문제가 그렇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생기거든. 경쟁에서 졌는데 어쩌란 말이야? 이럴 수가 없어. 그러니 자본주의 사회에선 있는 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빌 게이츠가 ‘창조적 자본주의’란 말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부를 창조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앞으로는 가난을 해결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미국도 부자세를 걷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걸 세금으로 해결할 순 없지. 나눔의 문화가 그걸 뒷받침한다. 미국의 기부금액을 살펴보면 70% 이상이 중산층에서 기부했다.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아무리 많이 내놔도 전체 기부금액의 10%도 안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는 중산층이 튼튼해야지. 혜택을 입는 사람이 혜택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기부문화는 어떤지요
월드비전을 보면 한 달에 3~4만원씩 기부하는 분들이 약 50만명이다. 그분들이 2000억원을 만들어서 아프리카 등지를 돕고 있지. 전 세계에서 미국, 캐나다, 호주 다음이 우리다. 아마도 2등까지는 올라설 것 같다. 기업도 보자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돈을 많이 벌어서 주주들에게 배당도 많이 주고 임직원들에게 임금도 많이 줘서 이들로 하여금 많이 나눌 수 있도록 해야지. 그런데 우리 기업은 직접 준다. 우리 기업은 얼마, 해버리면 끝이야. 그러면 소속된 직원들은 그저 구경꾼이 되버리고 만다. 물론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정말 잘하려면 직원들이 나눌 수 있도록 해야지. 자본주의가 살아남으려면 이런 식의 나눔 문화가 넓어져야 한다.
자연스럽게 노사문제로 연결되는데요
더 이상 노사가 대립관계여선 안 된다. 서로 협력해야지. 토요타가 어떻게 GM을 이겼나. 토요타는 50년 동안 파업이 없었는데 GM은 매년 파업을 했다. 그러니 당연히 질 수밖에.
정부와 기업의 관계도 중요한데요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선 정부가 제도적으로 유인하고 기업은 정부와 협력을 해야겠지. 무엇보다 기업의 역할이 크다. 이전 시대의 기업은 정부의 혜택이 많았다. 그건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니었는데, 그 당시 기업의 슬로건이 ‘나라를 위한다’ 아니었나. ‘사업보국’이었지. 예를 들어 포항제철은 ‘제철보국’이었다. 옆 나라 일본은 ‘국익’이란 단어를 많이 썼고, 미국도 GM이 ‘제너럴 모터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란 슬로건을 썼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수출과 내수 제품의 질이 달랐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래선 안 된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다.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지 애국심에 호소해선 안 된다. 기업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직원의 직원에 의한 직원을 위한 기업이 세상을 리드한다어떤 기업가가 많은 나라가 세상을 리드해 나갈 수 있을까요
에이브러햄 링컨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했는데, 넓게 얘기하면 사람이고 쉽게 얘기하면 ‘직원의 직원에 의한 직원을 위한 기업’을 경영할 줄 아는 경영자가 많은 사회, 사람이 귀한 줄 알고 다스릴 줄 아는 사회, 내가 잘돼야 회사가 잘된다는 신념이 확실한 직원이 많은 기업, 이 모든 구성요소들이 많은 사회가 세상을 리드해 간다.
창업주와 후대 기업가의 차이도 있을 텐데. 예를 들어 창업주는 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임직원들이 그들의 솔선수범 마인드를 받아들이고 따르는데 2, 3세 경영에 접어들면서 그런 식의 ‘나를 따르라’는 사고는 일정부분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흔히 부자가 삼대 못 간다고들 하지. 자기 능력껏 벌고 저축하고 나눠줘야지. 그래서 기부문화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벌고 저축하고 나눠주는 걸 반복하는 이들이 많아야 사회에서 부가 축적될 것 아닌가. 기업가의 나눠주는 마음 가짐이 또 다른 부를 부른다.
최근 화두인 복지와 성장과에 대한 논란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지. 순서는 분명하다. 빵이 있어야 나눠먹을 것 아닌가. 없는데 어떻게 나눠먹어. 분명한 순서를 반복해야 한다. 또 하나, 정부와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분명 국민이 해야할 일이 있다. 내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서 참여해야 한다. 구경꾼으로만 남아선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없다.
기부문화 외에 한국 사회의 개선점을 꼽는다면
결국은 교육의 문제다. 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주위에 있는 사람과 더불어 살 줄 아는 착한 사람을 만드는 것. 인성교육이다. 또 살아남기 위해 배워야 하는 지식교육이 있다. 우리 때는 인성교육을 정말 잘했다. 그게 급하게 발전해나가면서 인성 대신 지식에만 집중하게 됐지. 그런데 인성교육은 때를 놓치면 안 되거든. 이건 생활교육이라 반복돼야 한다. 빨간불일 땐 서야 한다는 걸 생각하고 서냐고 그냥 서는 거잖아. 그런데 우린 그 앞에서 건널까 말까 생각을 한다. 이미 때를 놓쳤지.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인성은 모자라다. 난 삼각형을 바로 놓은 건 인성교육, 거꾸로 놓은 건 지식교육이라고 설명하는데, 지식교육은 평생해야 하는 것이고 절대 급하게 해선 안된다. 하지만 인성교육은 나이가 차면 고쳐지질 않아. 완성되는 때가 있다.
성공한 경영자는 감(感)이 다르다성공한 경영자와 실패한 경영자의 특징이 있을 텐데
실패하는 이들을 다 나쁘다고 할 순 없지. 경험에 비춰보면 임금님도 하늘에서 내듯이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때를 잘못 만나면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는 법 아닌가. 예를 들어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게 뭘까. 그건 직감이다. 기업도 예술과 비슷하다. 예술가도 어느 수준까지는 다 비슷하게 올라선다. 그런데 정경화나 백남준이 되는 건 타고 나야지. 기업도 마찬가지다. 타고 난 감이 있어야지. 그건 가르칠 수가 없어. 안될 걸 될 것으로 오해하지 말고 분수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의 도전도 당시에는 나름 무모한 것 아니었나요
우리에겐 무모해 보이지만 그들에겐 된다는 감이 있었던 것이지. 예를 들어 1953년 겨울에 UN군 사령부가 부산 UN군 묘지에 푸른 잔디를 심어달라고 했을 때, 정 회장이 어떻게 했냐고. 보리밭을 옮겨다 심어서 푸른 잔디처럼 보이게 해줬잖아. 평소 공사비에 3배를 더 얹어서 받았다. 푸르게만 보이면 된다는 감을 잡은 것이지. 그건 가르칠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 시대 선배들의 창업과 현재 글로벌 시대의 창업은 배경이 다르다
원칙은 마찬가지다. 하나의 차이라면 당시는 시야가 좁았지. 그저 한국이 전부였다. 지금은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다. 우리만 봐선 안 된다. 세계 시장을 하나로 보고 어디 가서 뭘 할 건지 생각해야지. 서울에서 뭘 해야지 이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전 세계 하나의 시장에서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선행돼야 할 조건이 있을 텐데요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언어 경쟁력이다. 핀란드나 덴마크, 싱가포르, 스위스 등의 국가는 국민 모두가 2개 국어 이상을 한다. 우리말만 해서야 이 개방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겠나. 정주영이나 이병철이 되고자 하는 한국인은 언어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잭 웰치가 한국에 왔을 때 당신이 한국 기업의 회장이면 첫 번째로 할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한국말을 배우겠다”고 했다. 의사소통이 돼야지. 간단하다. 또 하나, 이젠 2등이 괜찮은 세상이 아니다. 문제는 1등이 예전처럼 평균치 1등이 아니란 것이지. 지금은 1등이 다양하다. 똑같이 춤을 춰도 ‘강남스타일’이 또 다른 1등인 세상 아닌가. 박물관을 제외하곤 새 것 갖고 1등하지 헌 것 갖고 1등하지 않는다. 새 것을 찾아다녀야 한다. 예전처럼 육법전서로 1등할 생각은 버려야지. 그러니 안정된 생활을 생각하는 사람과 창업하려는 사람은 DNA가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스티브잡스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을까요
당연히 나오길 바란다. 나오지 말란 법이 있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