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성공하는 국가의 비결은 포용의 정치…애쓰모글루 미국 MIT 경제학과 교수
입력 : 2012.12.28 14:19:08
수정 : 2013.01.25 11:39:44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MIT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 제도가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삶의 질 등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국가 주도 산업정책은 국가의 장기적 성장을 도모할 수 없다며 포용적인 제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최근 한국을 찾아 대담과 강연,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와 대기업-중소기업 간 성장 균형, 중국의 성장 지속 여부, 중동 혁명, 미국의 위기 등 다양한 주제의 해법을 논의했다. 애쓰모글루 교수의 생각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포용적인 제도와 착취적인 제도 간 차이는 무엇인가.
제임스 로빈슨 교수와 함께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논증 포인트는 포용적인(Inclusive) 정치 제도만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포용적인 제도를 갖춘 국가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공정한 경쟁 기회를 제공하며 혁신을 장려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면 착취적인(Extractive) 제도가 더 많았다. 착취적인 제도에서는 재산권이 보호되지 않으며 출생부터 불평등하다. 지배 계층은 교육을 통한 계층 간 이동이 불가능하도록 진입장벽을 만든다. 사회 구성원의 역량이 발휘될 수 없는 구조다. 착취적인 제도로 단기적인 반짝 성장은 할 수 있으나 일부 엘리트의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해 단기에 그치게 된다. 착취적인 제도에서는 새로운 기술, 기업, 부를 창출할 수 없다.
포용적인 제도와 착취적인 제도 차이를 남북한에 적용해 설명해달라.
남북한은 원래 정치·경제·문화에서 동질성을 지닌 국가였으나, 이제는 정치와 경제 제도가 완전히 달라졌으며 개인이 갖는 기회도 완전히 달라졌다.
북한은 남한과 1인당 국민소득도 10배 정도 차이가 나며, 기아가 심각하고 원조도 받아야 하는 반면 남한은 역동적인 경제 국가가 됐다. 한국이 포용적 제도를 차차 발전시켜 왔다면 북한의 제도는 같은 기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다.
경제민주화가 한국 대선 화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균형 성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은 삼성, 현대, LG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어떻게 규제할지 신경써야 할 때가 아니다. 한국은 10개 이상의 삼성을 키워야 한다. 정부가 보조하고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는 10개 이상의 삼성이 나올 수 없다. 정부와 재벌의 정경유착 고리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 나는 한국이 다른 새로운 기업들도 성장할 수 있을 정도로 포용적인 정치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 경제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삼성, 현대, LG 등 소수 기업이 경제를 장악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모델이 아니다. 한국이 1인당 GDP를 현재의 2배 수준으로 늘리려면 다양한 분야에서 10개 이상의 삼성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지난 50년간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여준 나라다.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소수엘리트 지배 국가였던 한국이 경제성장과 함께 국민의 정치 참여도 많이 이끌어낸 국가로 바뀌었다. 또 정치적으로도 정실 자본주의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일당독재 체제의 공산국가인 중국은 최근 고성장을 구가했다. 중국이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을까.
중국은 지금처럼 착취적인 정치시스템에서는 고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지배 계층은 당을 통해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재산을 증식시켰다. 당과 기업이 결탁해 부패가 만연하다. 소수의 정치 엘리트가 부를 독점하면서 경제성장을 구가한 예는 역사에서 많았다.
과거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은 설탕 재배와 설탕 농장 노예제를 통해 상위 1%가 나머지 99%를 통치했는데 부의 창출은 가능했다. 상위 1%는 토지와 군대,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설탕을 노예제와 억압, 착취적인 필요에 따라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설탕 외 경제수단을 다각화하지 못했고,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도 없어 결국 오늘날 저소득 국가들이 됐다.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이다. 중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한국처럼 중진국 수준이 될 때 중국의 성장은 멈출 것이다. 착취적인 제도로 자원재배분과 같은 쉬운 방식을 택할 때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을 척결할 만한 정치적·사회적 대변혁이 필요하다. 만약 중국의 착취적인 정치제도가 변한다면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힘이 너무 강력하고 방대해 변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의 일당독재 체제에 언제 변화가 올 수 있나.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과 중남미의 사례를 보면 과거 이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 대기업 위주로 성장을 해왔다. 이러한 성장은 선진경제 GDP의 35~40%에 달하는 수준까지는 쉽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성장이 어렵다. 중국이 앞으로 10~15년이 지나 중진국으로 편입되기 전까지는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본다.
아랍의 봄은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등에서 정권 교체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지금 정세는 불안하다.
아랍의 봄에 대해 매우 낙관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낙관주의는 현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바레인 등 중동 국가들은 하룻밤에, 몇 달 안에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 프랑스 혁명이나 중남미 혁명을 봐도 혁명이 일어난 후 60~70년이 지나서 구체제와 완전히 결별했다.
중동 국가들이 1~2년 내 안정적인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새로운 체제로 바뀌면서 이들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러나 다시 과거로, 아랍의 봄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나서서 체제를 바꾸고 부패에 대항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한 시위 효과는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무바라크 정권과 카다피 정권을 몰아냈다. 이집트나 튀니지에서는 아랍의 봄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리비아처럼 기본적으로 부족 사회인 곳에서는 더욱 어렵다.
제도뿐 아니라 종교도 국가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가.
좋은 질문이다. 종교가 국가의 흥망성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 과학자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개신교를 자본주의 성장 요인으로 꼽은 막스 베버나 아시아권 국가들의 성장 이유를 유교적 가치에서 찾은 사회과학자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종교 자체가 매우 유연한(Plastic, Flexible)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활용된 유교적 가치를 보면 상명하달식(Top-Down) 통치체제를 유지하는데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바뀌자 유교적 가치 또한 스스로 변용 과정을 거친 것 같다. 종교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것이다.
노르웨이나 싱가포르는 여성인력을 활용해 경쟁력을 높인다. 어떻게 생각하나.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다. 조직이 한쪽 성만 활용한다면 어떻게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그러나 일방적인 여성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은 남성에 불평등하게 작용해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기업은 여성에 대한 명시적이고 암시적인 차별을 모두 없애고, 입사 초기부터 여성에게 일을 맡기고 권한을 부여해 여성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나중에 여성우대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남성의 역차별로 이어질 뿐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가.
미국의 위협은 교육 문제와 무분별한 특허소송 증가다. 미국은 교육의 질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대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생 비율이 1960년대에 비해 더 낮아져 19세기와 20세기 초 미국 성장의 견인차인 교육이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허 소송 증가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미국은 애플 구글 등 혁신적인 기업들 덕분에 성장을 구가했고, 과거 혁신 시스템의 상징이 특허였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특허 때문에 소송이 너무 많이 일어나 미국 정부와 기업이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고 있어 미국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는 충분한 능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제도 때문이다. 지속적인 혁신과 기술 변화는 미국이 계속 번영을 구가하는 이유다.
포용적인 제도를 통해 국가들이 발전한다지만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제도를 개선해 나간다면 국가의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나.
예를 들어 포르투갈이나 한국이 중진국이다가 선진 부국이 된다고 하자. 어떻게 포르투갈이 네덜란드나 독일처럼 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한국이 제2의 미국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포르투갈이나 한국의 다음 단계 업그레이드가 항상 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지금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이는 분명 1970년대에는 성공적인 모델이었다.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로도 성공을 구가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 우위를 가진 삼성, 현대 등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1인당 GDP를 2배로 늘리려면 미국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럴 때는 삼성 현대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삼성 현대가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 주도 산업정책으로 소수 기업이 경제를 장악하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모델이 아니다. 저의 틀이 참고의 틀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재를 경험해 본 한국은 대통령 단임제를 고수해 왔는데 중임제 개정 움직임이 있다. 만약 개정을 한다면 한국 경제와 경쟁력에 어떤 변화를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대통령직 임기제한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커서 일인체제가 장기화되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는 임기제한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연임제에도 장점은 있다. 국민이 원하는 바가 구조조정이나 개혁이라고 한다면, 대통령이나 대통령을 둘러싼 정당이 주는 힘을 갖고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미국처럼 한 번 임기가 끝나고 재선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재선을 위한 과정에서 포퓰리스트 정책이 나와 위협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연임제 자체가 위협은 아니다. 한국은 독재 경험이 있으므로 연임제에 대한 거부감도 이해할 수 있다.
애쓰모글루 미국 MIT 경제학과 교수는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MIT 경제학과 교수는 1967년 터키에서 태어나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MIT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정치경제학과 개발경제학, 경제성장, 소득불균형, 노동경제학 등 다방면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쓴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로 명성을 얻었다. 2005년에는 경제학 지평을 넓힌 40세 미만 경제학자에게 수여되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았고, 경제학계에서는 향후 유력한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경진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사진 이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