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 시합에서 왠지 계속 질 것 같아 보이는 인간 샌드백,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쳇바퀴 돌 듯 시장을 뺏기는 중소기업들, 공권력에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폭력조직, 미국과 붙어서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발을 감행하는 중동 국가들.
이런 존재들을 통칭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언더독(Underdog)이다. 투견대회에서 항상 패배하는 개들을 지칭했던 이 말은 거대한 존재 앞에서 한 없이 작아 보이는 존재들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됐다. <티핑 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 등 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저널리스트 겸 경영사상가인 말콤 글래드웰과의 인터뷰 주제는 바로 ‘왜 언더독들은 승리하는가?’였다.
과연 언더독들은 거대한 권력과 맞붙어 얼마의 비율로 승리를 거뒀는가? 말콤 글래드웰은 뉴욕 집무실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늦어도 2013년 가을 정도에 이 주제와 관련된 신간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놀랍게도 10번 중 3~4번은 언더독들이 이기는 것으로 관찰됐다. 그는 이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현실세상에서 벌어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또는 ‘다윗과 골리앗’ 사례들을 조사했다. 약 4년이 걸렸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골리앗의 싸움 법칙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며 “완전히 다른 창조적 전략(돌팔매질)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이 절대적 약자였던 까닭”이라고 말했다. 혁신의 원천이 바로 다윗의 ‘작은 키’라는 주장이다.
그는 베트남과 이라크를 비교했다. 글래드웰은 “두 나라 모두 미국이라는 골리앗과 맞붙었지만 한 나라는 이겼고 한 나라는 졌다”며 “이라크는 당시 미국이 사용했던 전쟁의 법칙을 따라서 싸웠지만 베트남은 달랐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게릴라전을 펼쳤다. 오늘날 알카에다도 그런 방식으로 전술을 바꾸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려면 골리앗이 쓰는 방법을 그대로 쓰면 안 된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미 정점에 도달한 사람들이 아니다”며 “오히려 세상에서 왕따를 당하는 인물(Outcasts)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창의적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글래드웰은 한발 더 나아가 “사회는 상처받은 사람(Damaged People)들에 의해 발전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그들은 세상을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불행이 가져오는 긍정 효과(Consequences of Disadvantage)’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 직장에서 너무 오랫동안 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 10년차 정도 되면 각종 혜택이나 특혜들을 얻는데 그게 인간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글래드웰은 “창의성이란 연령의 함수가 아니다”며 “오히려 그 직업 내에 머물렀던 기간, 즉 연식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다. 70대 노인이라도 새 직장에서 일한다면 창의적일 가능성이 있고 30대 청년이라도 한 곳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으면 기득권 계층이 되어 버려 창의력을 잃는다. 고정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골리앗이 되기 전에 다른 직장으로 옮겨 스스로를 다윗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그는 청년 실업 문제도 이 관점에서 보면 흥미롭다고 했다.
글래드웰은 “내가 지금 21살 뉴욕 청년이라면 나는 서울이나 싱가포르 상하이 같은 도시로 건너가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언어와 문화 등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다윗으로 시작할 수 있는 곳에 가서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는 “게다가 뉴욕에 비해 서울 싱가포르 상하이 등의 성장 가능성이 훨씬 크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1960~1970년대 미국에 건너 온 한국 이민자들이 그런 다윗들이었다”며 “반대로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적인 상황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그는 “내 조수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나는 한국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대신 그는 분단된 현실을 바꾸려면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사람들을 비관적으로 만드는 것은 ‘(분단된 상황이) 절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념”이라며 “(남한과 북한) 모두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반복해야만 희망을 열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에 대해 언급한 또 다른 대목은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에서다. 대한항공이 괌 사고 이후 조종사들의 유교적 장유유서 문화를 바꾼 스토리다. 그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며 “문화에 갇힌 죄수 같은 존재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그는 “대한항공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리더십이 실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작은 트렌드 중에서 향후 메가트렌드가 될 만한 것들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는 단번에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을 꺼냈다. 글래드웰은 “이미 재빠른 온라인 활동가들은 사생활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확산되기 시작하면 보다 많은 사생활 보호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에는 사생활 보호가 그렇게 엄격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논리가 확산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소셜 미디어 비판론으로도 유명하다. 2010년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의존했다면 쿠바 혁명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소셜 미디어가 약한 인간관계만을 구축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디를 만들어 놓긴 했지만 이용하지 않는다. 블로그에도 2010년 이후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는 페이스북의 상장 가치에 대해 “나보고 페이스북 주식을 사겠냐고 물으면 답은 단호하게 노(No)”라며 “5년만 지나면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사라질 것이란 말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마크 주커버그에 대해서는 “그가 한 일이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의 업적보다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소셜 미디어들이 혁명을 불러일으켜 왔지만 저널리즘이라는 본질은 변함없다고 주장했다. “미디어 산업이 변하더라도 기자라는 직업은 사회에 여전히 필요한 존재”라며 “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기자로서의 본인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강연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데 특별한 기술이 있나’라고 묻자 “나는 강연자가 아니라 기자이기 때문에 취재한 것을 이야기 할 뿐”이라고 답했다. 흥미로운 사례들을 취재해 왔기 때문에 강연 또한 스토리 중심이다. 그는 “내가 이제까지 썼던 책에 나오는 스토리들은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며 “이런 스토리들을 얻기 위해 나는 도서관, 인터뷰 때로는 긴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래드웰은 스스로 “2일 동안 일을 해서 결과물을 쓰는 것보다 나는 2년 동안 작업해서 깊은 이야기를 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며 “사람들을 움직이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다루기에 신문 또는 잡지의 짧은 지면은 한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글래드웰은 자본주의는 위기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는 “경제 또는 경제정책이 위기”라며 “그리스 문제는 닫힌 나라, 규제가 강한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또 그는 “미국 경제를 봐라. 실리콘밸리나 자동차산업이나 제조업은 아직 건재하다”며 “이런 산업들은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보다 경쟁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경제정책의 위기이지 자본주의라는 경제시스템 자체의 위기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글래드웰은 “중국이 미국과 같은 슈퍼파워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며 중앙에서 결정하는 경제구조도 이유”라고 말했다. 여기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더십 문제와 관련해선 “리더들은 사회 내부의 분열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며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설득하고 논리적으로 동의시키는 것이 첫 번째 임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는 문화, 계층 등에 따른 분열을 이어줄 수 있는 리더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래드웰은 “미국을 보라”며 “이념·정치·지역·계층에 따라 분화가 극심하다”고 진단했다. 또 유럽의 상황을 상기시키며 유럽 국가 내부의 분열들을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도 그런 리더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말콤 글래드웰
‘세계 최고의 스토리텔러(Story Teller)’ ‘21세기를 정의하는 작가’로 각광 받는 말콤 글래드웰(더 뉴요커의 저널리스트)이 온다. 오는 10월 9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제13회 세계지식포럼 강연을 위해서다. 그는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방문 요청을 그동안 50차례 이상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첫 방한으로 그는 세계지식포럼을 선택했다. 말콤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등 4권의 책을 썼을 뿐인데 발간 즉시 밀리언셀러가 됐다. 그가 책 속에서 사용한 ‘티핑포인트’ ‘1만시간의 법칙’과 같은 용어는 곧바로 경영학사전에 올랐다. 독특한 시각으로 인간 행복에 대해 분석한 ‘스파게티 소스와 인간의 선택’이라는 강연 동영상은 200만 건 이상 조회됐을 정도다. 피터 드러커(1909~2005)를 잇는 경영사상가가 있다면 그가 꼽힐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그의 첫 번째 책인 <티핑 포인트>는 백미다. 김치냉장고, 허시 퍼피 등 일부 소수들에게만 통용되던 상품들이 어떻게 일순간 거대 트렌드를 형성하는지를 저널리스트적인 현장 취재와 명쾌한 이론으로 풀어낸 역작이다. 반스앤드노블이 2000년대를 대표하는 책으로 꼽은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400만부 이상 팔렸다. 그가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내놓은 개념인 ‘1만 시간의 법칙’은 글래드웰 철학의 에센스가 담겨 있다.
“선천적 재능이란 없다. 문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재능이나 문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사람은 바뀔 수 있다.”
무엇이든 잘 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글래드웰은 주장한다. 비틀즈가 본격적인 성공을 이루기 전까지 연주에 몰두한 시간이 대략 1만 시간이었다. 빌 게이츠가 역시 새벽마다 인근 대학 컴퓨터실에 잠입해 1만 시간가량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자메이카 출신 심리치료사인 어머니와 영국의 수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 심각한 둔재(Basket case)였다고 스스로 밝혔다. 대학시절 성적도 그렇게 좋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는 토론토대학교 학사 출신이다. 하지만 뒤늦게 그의 글재주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티핑 포인트>를 비롯한 베스트셀러 저서에 힘입어 ‘스타 지식인’이 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5년 타임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인(2008년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꼽혔다.
[뉴욕 = 김명수 기자 서울 = 신현규 매일경제 지식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