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의 재정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명확한 해법이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많은 이들이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를 꼽고 있다. 더 나아가 유럽의 단일화가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인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경제논설위원이 유럽 정상들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부으며 유럽 정상들의 무능한 리더십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매일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유럽단일화 전략은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일(Improbable Idea)”이라며 “유로존이 붕괴될 확률은 50%를 넘는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 각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내부적 정치 결속은 커녕 유럽 공동체를 이어가려는 공감대조차 무너졌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서로 다른 역사·문화·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합을 이루기 어렵고 또 설사 통합을 이루더라도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 유럽의 부채위기로 인한 불안감은 이러한 유럽의 정치적 결속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오랜 위기 탓에 유럽 각국들이 불신에 빠져 문제 해결을 위한 빠른 의사 결정은커녕 유럽 정부 간의 합의된 조약 조차 비준·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현재의 정치적 결속력이라면 유로존이 붕괴할 확률은 아주 높으며 정치적 결속을 기대하기란 점점 어려워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몇 개월간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와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 등 해법을 찾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아무런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번번히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마틴 울프는 칼럼을 통해 지난 유럽 정상회의를 실망스러웠던 이전 회의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특히 국채 매입과 취약한 정부를 통해 구제금융 자금을 지원하기보다 부실은행에 직접 지원하기로 한 점을 높이 살만하고 그는 말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부분은 은행과 주권국의 부정적인 상호 간의 연결고리를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그는 이런 합의가 잠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표면적인 부분보다는 더 강력한 통합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는 점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연합이 구성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후자의 경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유로존의 정치적 원동력이 변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안정화기구(ESM) 기금 확대, 유로본드 발행, 은행연합 등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 이상으로 유로존 내에서 경쟁력 균형을 회복하는 것 또한 큰 장기적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럽중앙은행(ECB)은 국채 매입을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도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 또는 은행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강력한 결속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은행연합의 구성은 물론 구성된다 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이렇듯 유럽 각국의 정치적 신뢰관계가 악화된 원인으로 독일의 리더십 부재와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지목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조심성이 너무 많고 보수적이기 때문에 메르켈 정부에 현 상황을 변화시킬 만한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적어도 2013년 독일 총선까지는 기다려봐야 한다.”
그는 지난 1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재정긴축에 치중하는 메르켈 독일 총리와 물가안정에 치중하는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럽을 살리지 못할 것이라며 그들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를 꽉 조이는 긴축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생각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나 가능하며 유로존 모든 나라에 이러한 긴축 정책을 실행할 경우 전체 경제가 더 위축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많은 이들이 독일이 유로존 최대 수혜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독일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독일은 유로를 지지하면서 많은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경제 모델은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유로존 국가들이 독일의 최대 시장이다. 하지만 독일은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경제를 파산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결국 유로존 최대 수혜자인 독일은 자국 경제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유로존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사실 잘못된 선택이다. 유로존은 더 강력한 결속력만 있다면 독일을 파산시키지 않고도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이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유로존을 지키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유럽 위기의 해결책은 두 가지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두 가지 해결책은 바로 당장의 위기를 위한 해법과 장기적인 개혁이다. 이어 그는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새로운경제사상연구소(INET)’에서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언급하며 이러한 전략을 상세히 정리해 놓았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먼저 중장기적으로는 공공부채와 민간부채를 조정하고 재정적자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 금융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채무국과 채권국 모두에 반드시 필요한 의제로 상당한 개혁과 정책 변화를 필요로 한다. 또 장기적으로는 재정지원을 가능하게 해주는 은행연합과 이를 지원하는 재정동맹이 필요하다.
마틴 울프는 실질적으로 위기를 끝낼 수 있는 조건으로 주권국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은행, 긴 경제 조정 및 긴축 시기 동안 주권이 약한 국가를 위한 자금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한 경제 성장으로의 전환을 꼽았다.
마틴 울프는 유로존 채무위기 국가 중 특히 그리스를 예로 들었다. 그리스는 트로이카와 합의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 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으면 그리스 정부는 실패할 것이다. 그리스에는 장기적으로 조정 문제와 성장 문제가 있다. 현재 상황을 보면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만약에 해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부채가 과감하게 감가상각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리스는 재정부채가 사라지면 유로존을 탈퇴하는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 설득력 있는 탈퇴 조짐은 채무자들과의 관계를 지금보다 개선시켜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에도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스페인 사태와 관련해서 그는 “300억유로의 구제금융 지원금과 재정적자 감축목표 시한을 2014년까지 연장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스페인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을 모두 다 갖춘(Fully-Fledged) 구제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내년 전 세계 경제가 다소 약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침체 중이다. 부채에 허덕이는 부유국들의 성공적인 디레버리징과 신흥국가 진출보다 소비자에 의존하는 고소득 국가들의 근본적인 수요 재조정 없이는 성장은 불규칙할 것이며 앞으로 수년간 매우 약한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다. 유로존은 아마 내년에도 침체를 겪을 것이다. 미국도 미약하고 불규칙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고 연간 성장률은 2%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 한국 일본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경제와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특히 중국은 구조적 변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으며 투자붕괴 위험이 있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인도 역시 최근 달성했던 9%대 성장률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일본도 미약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다.”
한국의 내년 경제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현재 한국은 인구통계, 성장 정도, 채무 문제 등을 놓고 봤을 때 3%대 성장에 만족해야 한다”며 “만약 앞으로 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면 오히려 무척 놀라운 일일 것”이라고 밝혔다.
마틴 울프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수석경제논설위원 겸 부편집장으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경제 칼럼니스트다.
1946년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고 동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세계은행 국제무역부서에서 10년간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재직했다.
그는 마흔 살이 넘은 1987년 파이낸셜타임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1996년까지 경제부 선임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전 세계 경제 이슈와 관련해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간결한 문체로 현실 경제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서 ‘CBE(Commander of British Empire)’ 훈장을 받았다. 세계은행 재직 시절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신흥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보고 자유주의자로 돌아섰었지만 최근에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절한 역할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