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서로 매입해 주는 교환 프로그램을 당장 시행해야 한다. 이러한 형태의 강력한 재정동맹을 구축하지 못하면 유로존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유럽엔 끔찍한 재앙이 닥칠 것이고 독일은 덩치만 큰 최악의 패배자(Biggest Loser by Far)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요슈카 피셔 전 부총리는 대국을 이끈 인물답게 최근 유로존 위기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의견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 7월 21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현 정권의 리더십 부재와 책임감 부족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그는 인터뷰 내내 독일의 리더십 부재를 꼬집으며 “독일은 유로존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혜택을 많이 본 국가”라며 “독일이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들을 돕지 않으면 이것은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요슈카 피셔(Joseph Martin Fischer)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슈뢰더 정부하에서 독일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지냈다. 당시 유연한 외교 정책으로 독일의 외교적 명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스위스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스위스 프랑화 가치는 유로존 붕괴 시나리오 때문에 지난 4월 유로화 대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로 붕괴 이후 독일 통화가치 상승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것은 결국 세계 경제의 주요 수출국인 독일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의 말이다. 유럽에서는 3000만마르크에 달하는 옛날 독일 화폐가 암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유로화가 붕괴되면 독일 마르크화가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벌써 마르크화 사재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는 얘기다. 피셔 전 부총리는 마르크화가 다시 유통될 경우 그 가치가 치솟아 독일의 수출경쟁력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존 국가들에 긴축정책을 강요하면서 오히려 장기 침체로 몰아넣는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그리스 문제가 처음에는 500만유로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초기 대응을 적절히 하지 못해 지금은 유럽 전체에 위기를 몰고 왔다는 점도 지적했다. 피셔 전 부총리는 그러나 유로존 위기가 도리어 지역의 결속을 강화해 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심장(Strong Nerves)’이 필요하다”며 “앞으로의 발전은 전략이 아닌 위기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세계 경제의 불안전성의 원천”이라고 덧붙였다.
요슈카 피셔
요슈카 피셔가 독일 대중에게 인기있는 이유는 기성 정치인과는 사뭇 다른 그의 소박한 인생 때문이다. 그는 1948년 헝가리 출신의 푸줏간집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가출해 청년 시절을 택시기사, 공장노동자, 책 외판원 등을 전전했다. 노동자로서의 문제의식을 느낀 그는 지하에서 극좌운동을 벌였다. 세계적인 석유회사 오펠(OPEL)에서 일하면서 노동자 조직을 만들고 현장투쟁을 이끄는 등 급진주의적 혁명운동을 주도했다. 그의 정치인생은 1981년 신생 정당이었던 녹색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2년 간 연방의원을 지냈고 헤센주 환경부 장관을 두 차례 지냈다. 1994년 연방하원에 복귀한 뒤 1998년 총선에서 슈뢰더 전 총리의 사민당(SPD)과 ‘적록연정’을 이뤄내면서 외무장관 겸 부총리에 올랐다.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하자 57세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정계에서 은퇴해 많은 독일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체중감량 에세이 <나는 달린다>로 대중에게도 친숙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다이어트 직후 만난 스물두 살 연하의 아내와 네 번째 결혼생활을 하다가 최근에는 다시 결별해 초로의 로맨스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현재 프린스턴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김효성 매일경제 지식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