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분주했다. 울리는 휴대폰에 답하거나 찾아온 손님을 응대하며 한동안 포트폴리오를 응시했다. 뒷모습은 10대 학생이요, 옷매무새는 20대 청년을 닮은 그는 스스로 서른일곱이라며 세월을 붙잡았다.
바로 그 나이에 ‘이상봉(Lie Sang Bong)’이란 브랜드를 만들고 정신없이 패션쇼를 준비하다 문득 여기서 멈추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단다. 그리곤 열심히 디자인했다. 뭐든 주어진 일은 만족스러울 때까지 파고들었다. 그렇게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맞은 서른일곱의 이상봉은 명실공히 전 국민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한국적 정서와 전통이 어우러진 디자인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됐는가 하면 딱 한 번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이 오래도록 회자되며 이름 석 자가 각인됐다.
물론 패션 디자이너 활동은 늘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이다. 어딜 가든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인 그는 요즘 분에 넘치는 사랑에 보답하겠다며 재능기부에도 팔을 걷어 붙였다. 광복절을 앞두고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태극티셔츠를 제작했는가 하면 서울시의 에너지 절감 운동인 ‘원전 하나 줄이기’에 참여해 ‘아름다운 부채’ 디자인을 기부하기도 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기 영역에서 재능기부로 사회봉사에 참여하는 ‘드로잉서클’에는 벌써 3년째 참여하고 있다. 그것만? 2012 런던올림픽 탁구선수단의 선수복, 10월에 교체되는 집배원복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디자인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대중과 숨 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집과 학교 밖에 몰랐던 내성적인 소년, 대학시절(서울예술대 방송연예과) 무대에 올라 배우가 되려 했던 청년은 이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로 이른바 패션한류를 이끌고 있다. 과연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최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초대회장에 오른 이상봉을 만났다. 그가 내민 작은 봉투 모양의 명함을 열자 ‘행복’이란 두 글자가 선명했다.
생각만 하는 건 정신병자도 할 수 있는 일이다언론에 노출되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다.
그런가? 정말? 아마도 젊은 친구들을 위한 강연 영향이 큰 것 같은데. 기업에서도 간간히 강연을 하고 있다. 근데 좀 다른 것 같더라고. 기업은 창의적인 면을 원하고 젊은 친구들은 멘토로서 희망과 꿈을 원하는 것 같다.
패션 분야 외에서도 멘토로 손꼽히는데 부담스럽진 않은가.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은 창의성과 관련 있는 부분이고 패션분야도 그 어느 때보다 여러 분야의 경계선에 서있다. 오늘날의 패션은 누구나 문화와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나. 예전엔 그 경계선에서 힘들고 혼란스러웠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디자이너의 영역도 대중적인 분야로 넓어진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봉’이란 이름은 이미 대중적인 브랜드가 됐다.
여러 분야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많은 분들이 알게 된 것 같다. 어떤 분들은 내가 디자인한 다이어리로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고 하고 또 당신이 디자인한 접시로 냉면을 먹고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 옷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라이프스타일에서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 싶다.
디자이너로서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졌다. 의도적인 행보인가.
그건 꽤 오래 전에 시작한 일인데 1993년에 이상봉 아트컬렉션을 진행했었다. 지금은 트렌드가 됐는데 그 때 옷 외에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지. 내가 디자인한 찻잔으로 커피를 마시고 또 내 손을 거친 음악을 들으며 서로 생각을 공유하는, 2년 동안 했는데 부도까진 아니었어도 빚을 많이 졌네.
그때 돈으로 10억원을 까먹었으니. 지금까지 유일한 적자였다. 한 5년 간 빚 갚느라 고생했지.(웃음)
당시 생각은 지금도 여전한가.
그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된다.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시기가 빨랐을 뿐이니까. 하지만 내가 판단해서 행동한 일에 후회는 없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돈 주고 사서라도 경험해 봐야지. 그건 시대를 초월해 당연한 사실 아닌가. 생각만으로 끝나는 건 정신병자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행동으로 옮겨야 창의적인 발상을 발전시킬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방송출연도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였나 보다.
아이고, 사실 방송출연은 손에 꼽는데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게 강렬해서인지 자주 나온다는 말을 많이 듣네. 재방송이 많아서 그런가.(웃음)
난 방송멘트를 따는 것도 회사 사무실에서 진행한다. 방송국은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지. 그곳에 가면 하루가 지나는데 그 시간이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그래서 가끔 이상봉은 마케팅을 참 잘한다는 소릴 들으면 혼자 놀라곤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운영 중인데 다분히 마케팅적인 면 아닌가.
그건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닌 걸. 광고 출연할 때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 그게 조건이었거든.(웃음)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도 그 세계를 몰랐을 텐데 모든 게 너무 행운이다.
상위 브랜드의 대중성이 반가운 것만은 아닐 텐데.
그런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지금은 유명 패션 디자이너도 일반 SPA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다. 난 대중에게 받은 사랑은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시작했다. 지금도 나를 만나고 나와 생각이 같은 분들과 호흡할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