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화웨이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는 서방국가들의 극심한 견제다. 통신분야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보니 안보를 앞세우는 서방국가들의 견제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기업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화웨이에 대한 견제는 중국과 대척점에 서 있는 미국에서 특히 심하다. 미국은 “화웨이는 중국 군부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적극 차단하고 있다. 런정페이 회장이 군인 출신이라는 점 이외에는 뚜렷하게 제시하는 근거가 없음에도 강경하게 반응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 업체를 인수하려는 화웨이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 2010년 미국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쓰리콤을 인수하려다 실패한 것을 비롯해 스리립 시스템 지분을 매입하려고 했을 때도 미국 정부가 “국가안전에 위험을 줄 수 있다”면서 제동을 걸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화웨이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EU 측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로부터 불법으로 보조금을 받아 낮은 가격으로 EU에 공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이 사실은 기존 통신장비 시장의 강자였던 유럽 업체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통신장비업계 세계 1위인 스웨덴의 에릭슨을 비롯해 프랑스 알카텔 루슨트, 독일과 핀란드의 노키아지멘스 등의 최근 사업 부진이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때문이라는 지적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이들 업체는 “중국 업체들이 상식 이하의 가격으로 판매해 시장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고 있다”며 화웨이를 공공연히 비난해왔다.
화웨이는 호주에서도 물을 먹었다. 2017년 개통을 목표로 호주가 추진 중인 대규모 광대역망 구축사업 입찰을 원천 봉쇄당했다. 이 사업은 420억 호주달러(48조7000억원) 규모로 호주 국책사업 사상 최대 규모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호주 가정의 93%가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거대 사업에 참여하려던 화웨이는 결국 입찰 서류조차 내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서방국가들의 이런 견제에는 화웨이가 이란과 거래한 것에 대한 괘씸죄도 적용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서방국가들은 화웨이가 반정부 인사를 감시하는 위치추적시스템을 이란에 공급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67)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중국 인민해방군 통신장교로 근무하다가 전역해 43세 때 통신장비 수입상을 차린 것이 화웨이의 전신이다. 그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창업해 중국 1위 민영기업을 일굴 수 있었던 힘은 어려서부터 몸으로 체득한 ‘헝그리 정신’에서 나왔다. 런정페이 회장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중국에서도 시골에 속하는 서부 내륙 구이저우성 안순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수민족 거주지에서 중학교 교장을 했고 어머니는 같은 학교에서 교사를 했지만 생활형편은 넉넉치 못했다. ‘생활이 곧 전투’라는 그의 신조는 유복하지만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의 맏아들로 지내면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중학교 교사인 부모 덕에 공부를 곧잘했던 그는 현 충칭대학의 전신인 충칭토목공학대학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그는 당시로서는 첨단인 전자계산기를 비롯해 디지털 기술은 물론 철학 등 인문학까지 닥치는 대로 섭렵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어와 영어 등 3개 국어를 독학으로 마스터한 것도 이때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곧바로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군사기술연구원으로 배치됐다. 전공을 살려 통신분야 기술장교로 복무하면서 그의 진가가 발휘됐다. 전군기술성과대회에서 1등상을 받아 인민해방군 대표로 전국과학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군 내에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부친의 경력 때문에 상당기간 공산당 입당이 거부됐다. 일본군 강점기에 그의 부친이 광둥성 광저우에서 국민당의 군수공장 경리로 일한 전력이 문제가 된 탓이다.
결국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1978년에야 공산당에 입당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감군 계획에 따라 다른 군인 50만명과 함께 전역한 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됐다. 런정페이는 아버지가 일했던 광둥성으로 건너가 당시 선전에 있는 전자업체에 취직했다. 몇 년간 일하면서 통신사업에 눈을 뜬 그는 1988년 자본금 2만1000위안으로 화웨이를 창업했다. 주로 키폰 전화기 등 통신기기 수입 판매업을 하다가 1993년에 프로그램 제어 전자교환기 개발에 성공한 것을 발판으로 본격적인 통신장비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해 돈벌이에 집착할 때 그는 오직 기술개발에 전념했다. 이때부터 이미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인민해방군 출신답게 마오쩌둥의 전술을 경영에 접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농촌에서 혁명을 일으킨 뒤 도시로 포위해 들어간 마오쩌둥처럼 그는 대형 경쟁업체들이 장악한 대도시 대신 농촌 지역부터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했다. 첨단이지만 저렴한 제품을 농촌에 먼저 공급한 뒤 대도시로 서서히 잠식해 들어갔다. 해외에 진출 할때도 이와 유사한 전략을 펴고 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홍콩에 먼저 진출해 성공을 거둔 다음 러시아와 남미 등 기술수준이 낮은 신흥시장을 공략했다.
이어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정보기술과 통신장비의 본고장인 유럽과 북미지역으로 진출했다. 주도면밀한 그의 경영전략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늑대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가 되려면 임직원들 모두가 늑대가 돼야 한다”며 “후각이 예민한 늑대처럼 제품 개발과 시장 개척도 예민한 감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절대 굴복하지 않는 늑대처럼 과감한 공격정신을 가져야 하며 무리지어 다니는 늑대처럼 임직원들이 서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런정페이는 이미 큰 돈을 벌었지만 통신장비 이외의 사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빨간색 무용신발에 빗댄 그의 발언에서 확실하게 드러났다. 그는 “빨간색 무용 신발처럼 통신장비 이외의 사업도 유혹적”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그 신발을 신으면 영원히 벗지 못하고 평생 춤을 춰야 한다”며 다른 사업에 관심이 없음을 분명하게 내비쳤다. 다만 그의 은밀한 행보가 여전히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중국의 국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언론과 접촉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출액의 12% R&D 투자 ‘기술 자이언트’
스마트폰은 이제 인류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비즈니스를 한다는 사람치고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 업무에 전혀 필요없다 치더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시대에 뒤쳐진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애플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다. 이 어마어마한 시장을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 기업이 놓칠 리 없다.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어느덧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이 주도하는 이 시장에서 3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 1분기에는 전통의 강자인 핀란드 노키아와 캐나다 리서치인모션(RIM)이 각각 3,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더 눈에 띄는 기업은 이들의 바로 턱밑까지 좇아와 5위를 차지한 곳이었다. LG전자? 모토롤라? 소니? 모두 아니다. 바로 중국의 화웨이(華爲)다.
우리에겐 아직 이름마저 생소한 화웨이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사실 화웨이가 생소한 건 스마트폰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기 때문일 뿐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화웨이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핸드폰과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하기 전에 이 회사는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통신업계에서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거인으로 성장했다. 세계 50대 통신회사 중 90% 이상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서비스를 비롯해 와이브로, 롱텀에볼루션(LTE) 등 이동통신 분야에서는 이미 최강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는 어느덧 민영기업 중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베이징대 민영기업연구소가 발표한 중국 500대 민영기업 보고서에서 화웨이는 확실한 격차로 1위에 이름을 올려놨다. 장쑤사강(철강)과 쑤닝전기(가전유통), 레노버(PC), 위룬(식품), 지리자동차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 뒤를 이었지만 화웨이의 실적 앞에서는 초라할 지경이다. 화웨이는 이제 시선을 스마트폰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성장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목표를 수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화웨이는 벌써 세계 5위 스마트폰 업체가 됐다. 캐나다 시장조사기관인 캐너코드시큐리티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 1분기 전 세계에서 840만대 스마트폰을 팔았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8.4%를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 4위를 차지했던 LG전자가 9위로 밀리는 등 업계의 지각변동 속에서 승자는 단연 화웨이였다. 이런 성과는 시작에 불과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노키아와 RIM까지 제치고 화웨이가 스마트폰 분야 3위로 올라설 것을 확신하고 있다. 매출액도 이미 40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화웨이는 전년에 비해 11.7% 증가한 2039억위안(37조4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순이익은 116억4700만위안(2조1300억원)에 달했다. 단말기 출하량은 총 1억5000만대. 이 중 휴대전화가 5500만대, 스마트폰은 2000만대에 달했다. 스마트폰 판매는 전년도에 비해 무려 5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6000만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하고 있다.
이 회사가 무서운 것은 삼성전자의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사업 초기 저가형 휴대폰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삼성 휴대폰에 대한 인지도가 어느 정도 높아지자 점차 프리미엄 폰 판매에 집중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지금 삼성은 애플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의 양대 프리미엄 폰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번엔 화웨이가 나서고 있다. 2인자로 출발해 소니를 제치고 1인자 반열에 오른 삼성처럼 삼성과 경쟁구도를 형성하면서 성장해 나가겠다는 것이 화웨이의 전략이다.
화웨이 측에서도 굳이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화웨이는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 조만간 스마트폰 분야에서 글로벌 ‘톱3’를 형성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런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기본이 아주 충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연구개발(R&D) 능력이 탄탄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화웨이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R&D에 쏟아 붓고 있다. 지난해 경우 전체 매출액의 11.6%에 달하는 약 38억달러를 R&D에 투자했다.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출액의 9% 가량을 R&D에 투입한 것에 비해 비율을 더 늘렸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액 대비 6.2%를 R&D에 투자한 것을 감안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비중이다. 14만 직원의 44%가 R&D 인력이라는 분석도 있다.
화웨이는 이제 R&D 투자에 힘입어 신제품을 개발해 매출을 늘리고 늘어난 매출 중 상당 비중을 다시 R&D에 투자하는 선순환 궤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화웨이의 R&D는 전 세계의 기술을 포괄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는 물론 미국과 스웨덴, 러시아, 인도 등 세계 17개국에서 18개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항저우에는 14억위안을 투자해 글로벌 R&D 투자센터를 최근 설립했다. 화웨이 직원들은 “매출은 잠깐에 불과하지만 R&D는 평생을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화웨이가 요즘 정보통신분야 전시회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것도 그 덕분이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2(MWC 2012)’에서도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공개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다른 스마트폰 업체들이 퀄컴 등 칩 전문업체가 개발한 AP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자체 개발한 제품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출신의 중국 엔니지어들은 칩 설계 능력이 거의 선진업체 수준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들의 경쟁력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화웨이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을 벤치마킹해 직원 평가에서 하위 5%는 물갈이를 한다. 사람을 새로 2명 뽑으면 서로 경쟁을 시켜 한 명은 탈락시킬 정도로 사내 경쟁이 강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기업이 건강하려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야 한다. 경쟁이 없는 회사는 이미 죽은 회사”라고 강조한다. 중국 중심의 아시아권에서 실력을 다진 화웨이는 최근 유럽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저가폰에 대한 관심이 높은 동유럽 지역이 1차 공략 대상이다. 이를 위해 화웨이는 지난 5월 헝가리에 총 15억달러를 투자해 물류센터를 건설하기로 헝가리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물류센터를 근거지로 유럽으로의 스마트폰 공급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시장 진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미 강남에 한국지사를 설립한 화웨이는 한국 소비자 성향 조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 고객들이 중국산 제품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 걸림돌이라고 자체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들이 고급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저가폰 이미지로는 승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화웨이는 한국시장 연착륙을 위해 국내에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는 것을 틈타 국내 이동통신재판매(MVNO) 사업자들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MVNO 전용 단말기 공급을 꺼리고 있는 만큼 이들을 한국시장 진출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MVNO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휴대전화 수급 문제였다는 점에서 화웨이의 이런 전략이 한국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이처럼 화웨이의 입지가 강해지고 있지만 정작 회사의 지분구조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비상장 회사이다 보니 정확히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런정페이 회장의 지분이 1.42%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임직원들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실질적으로는 중국공산당 권력층들이 화웨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화웨이가 이에 대응해 지난해 처음으로 이사회 명단을 공개했지만 소문의 확산을 차단하지는 못했다.
당시 화웨이는 이사진의 수를 기존 9명에서 13명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쑨야팡 이사장이 그대로 연임한 가운데 런정페이 회장의 딸이 최고재무담당임원(CFO)로, 남동생 런수루가 감사로 새 이사진에 포함된 것이 확인됐을 뿐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