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셔츠에 자줏빛 넥타이, 무늬가 큰 재킷에 노란빛 도는 코르덴까지. 유쾌한 장난기 가득한 신사는 카메라 앵글이 초점을 맞추자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샴페인을 번쩍 들어올렸다. 최근 와인 수입업체 레뱅드메일의 초청으로 샴페인 브랜드 ‘샹파뉴 도츠(Deutz)’와 와인 브랜드 ‘들라스(Delas)’를 홍보하기 위해 방한한 조엘 페인은 독일에 적을 두고 활동하는 베스트 소믈리에(Best Sommelier)다. 활동무대는 유럽이지만 정작 태생은 미국. 전 세계를 오가며 건축가로 활동하다 와인에 빠져 독일에 정착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다. 비즈니스 차 예닐곱 번 한국에 다녀갈 만큼 국내 와인 시장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다.
“10년 전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와인시장이 척박했습니다. 와인 바가 거의 없었지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와인문화는 여전히 생소합니다. 한국식으로 식사할 때면 식탁 위에 물병뿐이에요. 그나마 그 물도 잘 마시지 않더라고요(웃음).”
즐겨 마시는 와인을 묻자 대뜸 중국을 예로 든다. 베이징에서 와인을 강의하는 교수가 소비자 조사를 실시했더니 중국에서 판매되는 와인의 92%가 레드와인, 그중에서도 보르도 와인이었다는 것. 진정 구매한 와인을 좋아하는지 블라인드 테이스팅해 보니 대상자의 70%가 화이트 와인을 선택했다.
“와인을 럭셔리 토이로 인식한 것이죠. 나머지 레드와인 중에서도 선호한 맛은 그레이트 보르도가 아니라 보졸레였어요. 도츠와 들라스도 그렇지만 부드러운 스타일의 와인이 인기가 높습니다. 저요? 개인적으로 보르도 와인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워낙 숙성을 요하는 묵직함이 매력인지라 숙성이 안됐을 땐 마시기 힘들어요. 그래서 보르도엔 손이 잘 안갑니다.”
와인 초보자라면 칠레나 호주 등 신대륙 와인이 접근하기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럽와인의 경우 포도 품종과 전통 등 찾고 기억하고 선택해야 하는 단계가 여럿인데 신대륙 와인은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맛의 차이는 있겠죠. 하지만 심플하게 접근할 수 있어요. ‘어제 친구랑 까베르네 쇼비뇽을 마셨어’ 혹은 ‘샤르도네를 마셨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거든요. 처음 와인을 접할 때 하나하나 알아가는 기쁨은 이렇게 간단한 성취에서 시작됩니다. 도츠와 들라스는 좀 더 복합적이고 와인의 맛을 느끼시는 분들이 주 타깃입니다.”
한·EU FTA? 과연…
그렇다면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과 그렇지 않는 음식은 어떤 게 있을까. 그는 “음식과 와인의 결합이 입에 맞으면 서로 어울리는 것인데 국물이 있는 음식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치를 즐겨먹지만 샐러드, 생야채, 국물이 있는 스프 등은 와인과 어울리지 않는단다.
한국과 칠레의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국내 와인시장에 칠레와인의 점유율이 높아진 사실을 언급하자 유럽과의 매치가 어떨지 알 수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한국과 유럽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한국 내에서 유럽 와인의 가격이 많이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요? 한국은 수입주류에 대해 세금이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 세금이 완화되더라도 유통규제가 까다로워요. 소매만 할 수 있는 사업자, 도매만 할 수 있는 사업자가 따로 있으니 마진율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와인을 즐기는 유럽인들조차 6만~7만원대의 와인은 놀라운 것이죠. 대부분 9000원 내외의 와인을 구입합니다. 좀 더 합리적으로 싸고 좋은 와인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쉽습니다.”
국내 와인시장의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발언이다. 한국에선 와인만큼 대중화되지 못한 샴페인을 논할 땐 목소리가 살짝 부드러워졌다. 그가 꼽은 샴페인의 장점은 새롭다는 것. 탄산이 들어간 모든 음료가 전통보다 현대의 상징이듯, 샴페인도 즐기기 나름이라며 잔을 권했다.
“저 같은 경우 늘 샴페인과 함께 합니다. 아침식사를 할 때, 오후에 볕이 좋을 때, 저녁식사를 할 때, 새벽에 칼럼을 쓸 때도 마시죠(웃음). 샴페인은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만 마시는 술이 아닙니다. 결혼할 때도 마시고 이혼할 때도 마시죠. 아기가 태어났을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함께 합니다. 즐기세요. 아, 도츠는 굉장히 여성적이고 우아한 샴페인입니다. 별다른 음식이나 안주가 없이 즐기기엔 그만이에요. 한잔 하시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