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518년에 남긴 기하학 원고의 끝 부분에는 특이한 말이 적혀 있다. 몇 개의 도식이 그려져 있고 원고 내용이 아무런 흐트러짐 없이 나열되어 있는 필사본 원고의 마지막 줄에는 “수프가 식기 때문에”라고 쓰여 있다. 다큐 작가인 찰스 니콜은 이 인간적인 말 한마디에서 시작해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내면을 추적해 나간다.
이런 식이다. 다빈치는 말년에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에 수프는 아마 야채수프였을 것이다. 수프는 충직한 가정부였던 마투린이 끓였을 것이다. 마투린은 다빈치가 유서를 통해 ‘모피로 안감을 댄 좋은 품질의 검은 코트’를 유산으로 남겨주었던 그 여인이다.
추리하면 이렇다. 다빈치는 원고를 쓰고 있었고 마투린이 “선생님 수프가 다 식어요”라고 소리를 쳤을 것이다. 그는 아쉽게도 이 연구를 끝내지 못했다. 수프가 식기 때문에….
찰스 니콜은 인류 최고의 만능 천재라는 다빈치의 비범함보다는 수프가 식기 때문에 연구를 중단했던 평범함에 초점을 맞춘다. 찰스 니콜은 자신의 책 <레오나르도 다빈치 평전>에서 ‘천재’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천재의 평전을 완성한다.
찰스 니콜은 다비치가 남긴 7000쪽의 자필 노트를 통해 퍼즐을 풀어내듯 그의 정신세계를 분석한다. 다빈치의 노트는 원본 형태로 원형이 남아 있는 것에서부터 후대에 와서 정리해 새롭게 제본한 것, 낱장 형태로 남아 있는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남겨져 있다. 노트에 남겨 있는 글에는 다빈치 내면의 고통도 녹아 있다.
“오만한 어떤 사람들은, 내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문맹자로 얕보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투스카니 지방에서 서자로 태어나 피렌체의 작업실을 전전하며 어깨너머로 예술과 학문을 익힌 그에게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시선은 늘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죽는 방법 또한 배우고 있었다”는 메모에서는 티베트 불교 경전의 한 대목이 떠오를 정도로 철학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인류 최초로 비행기 설계도를 그렸던 다빈치의 고민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다.
“새는 수학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다. 이 기계의 모든 동작을 훨씬 힘을 덜 들이고 재생산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에서 부족한 것은 바로 새의 영혼뿐이다. 인간의 영혼은 새의 영혼을 닮아가야 한다.”
다빈치가 위대한 건 그의 타고난 지적 열망과 그 열망을 실천해 낸 성실함과 호기심 때문이다. 그는 화가이자 작가였으며 철학·수학·천문학·지리학·생물학·역사학·건축학 등의 분야에서 당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성취를 이루어낸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힘으로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물결을 주도해 낸 말 그대로 ‘르네상스인’이었다.
그의 순수한 호기심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메모도 있다. 다빈치는 새 펜촉으로 첫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습관적으로 ‘나에게 말해 달라(tell me)’는 글귀를 종이 위에 긁적였다. 나에게 말을 해 달라는 이 외침은 그가 얼마나 순수한 호기심으로 평생을 살았는지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