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골프업계의 화두는 ‘컬러볼’로 시작해 ‘볼빅’으로 마무리됐다. 겨울용 볼로만 인식돼온 컬러볼을 대중화시킨 주인공은 골프볼 제조업체 볼빅의 문경안 회장이다.
철강유통업체 비엠스틸을 운영하며 500억원대 매출을 올리던 문 회장은 2009년 9월 볼빅을 인수, 1년 여 만에 국내 골프업계의 중심에 섰다.
문 회장이 회사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업계 반응은 싸늘했다. “골프볼만으로 성공하기엔 이미 외국 브랜드의 장악력이 월등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주변인들은 “오순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이유가 뭐 있냐”며 만류했다.
“가능성을 봤어요. 세계적인 선수들이 즐비한 나라에 세계적인 용품 업체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닙니까?”
문 회장의 이러한 결정엔 20년이 넘은 그의 골프 구력이 한몫했다. 비즈니스를 위해 시작했던 골프가 8개월 만에 싱글 핸디 수준이 됐고, 2006년엔 경기도 용인 신원CC클럽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회사를 인수한 후 그가 띄운 승부수는 컬러볼. 이미 15년 동안 컬러볼을 수출한 볼빅의 노하우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저가 브랜드가 아닌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리노베이션이었다.
“6개월 동안 수출을 중단했어요. 저가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했죠. 오히려 미국과 일본 바이어들이 먼저 단가를 올려서 제안하던데요(웃음). 그만큼 기술력엔 자신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매월 30% 이상 매출신장을 기록한 볼빅은 현재 세계적인 골프볼 업체 타이틀리스트와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다. 회사를 인수할 당시 매출과 비교하면 1년 남짓한 기간에 2배 이상 성장했다. 과연 그 비결이 뭘까. 문 회장은 메이드 인 코리아의 힘이라며 골프는 과학이라고 강조했다.
컬러볼을 가공하고 다듬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최근 볼빅 골프볼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골프 선수들의 시상식이 많은 시기 아닌가. 골프 분야에 특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큼 특출한 곳이 없어서 그런 것도 같고(웃음).
2009년 9월 볼빅을 인수했다. 지난해 매출이 특별했다던데.
대기업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웃음). 120억원을 기록했는데, 그중 30%를 마케팅 비용으로 썼다. 그 덕에 이익이 크진 않았다.
인수 당시보다 성장 폭이 크다.
2009년엔 매출액이 50억원이었고 수출과 내수가 반반이었다. 사실 상반기만 놓고 보면 매출이 30억원도 안됐다. 하반기부터 힘을 냈는데, 9월부터 12월까지 월 매출만 20억원을 내면서 성적이 좋아졌다.
내수와 수출의 비중은 어떤가.
2009년과 비교하면 수출 물량은 절반으로 줄고 매출은 늘었다. 회사를 인수하곤 6개월간 아예 수출을 안 했지. 그런 후에 저가인 2피스볼 생산을 중단하고 3피스, 4피스 등 프리미엄볼만 생산해 수출했다. 가격도 예전보다 5배가량 높았다. 물론 비싸다는 생각이 앞설 수도 있지. 하지만 그만큼 기술엔 자신 있었거든. 게다가 볼빅의 볼은 전량 메이드 인 코리아인데 왜 중국 제품처럼 싸구려 취급을 받아야 하나. 국내에서 반응도 비슷하더라고. ‘국산인데 외제처럼 비싸요?’ 하면서.
5배나 높은 가격은 일종의 모험 아닌가.
다른 데 2만원하는 등심을 4만원에 파는 고깃집이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처음엔 왜 이리 비싸냐고 투덜대지만 특별한 미팅이 있을 땐 그곳을 먼저 떠올린다. 일종의 소비심리인데 두 번 갔을 땐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네 번 갔을 땐 그 집은 원래 비싸다고 말한다. 후식을 먹어도 뭔가 특별한 것 같거든. 아, 물론 서너 번 이상 손님 발길을 끄는 맛은 기본이지(웃음). 볼빅을 인수하고선 뛰어난 기술에 비해 싼 가격이 안타까웠다. 국산 볼이 성공하지 못한 건 오히려 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이란 인식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지.
골프용품 분야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드문가 보다.
볼만 놓고 볼 때 순수 국산 제품은 볼빅이 유일하다. 로열티? 1원 한 푼 안 나간다. 이렇게 말하면 볼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할 수도 있는데 볼 하나 만드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 볼 안쪽에 코어를 만들고 가공과 건조를 거쳐 세 번 네 번 주변을 감싼다. 그렇게 3피스, 4피스 볼이 빛을 보는데 A급 볼과 B급 볼은 치는 순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볼빅의 컬러볼이 상종가다. 볼빅하면 컬러볼인데 일반 볼과 생산량도 다를 것 같다.
현재 볼빅에서 생산하는 볼의 70%는 컬러볼이다. 그만큼 인기가 높다. 컬러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는데 현재 20가지 정도 생산하고 있다.
타 브랜드에서 컬러볼 생산량을 늘리거나 카피할 만도 한데.
컬러볼의 컬러 하나를 개발하려고 한 달 평균 100개의 볼을 만든다. 볼빅의 경우 37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골프볼은 회사마다 특허가 다르다. 다시 말해 볼빅이 만드는 볼은 전 세계에서 볼빅 밖에 만들지 못한다.
50대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셈인데 첫 걸음이 성공적이다.
처음엔 다들 실패할 거라고 말렸지(웃음). 골프는 볼만으론 승부가 안 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니 타이틀리스트 같은 브랜드와 기술력에서 별 차이가 없더라고.
또 골프 분야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는 걸 보고 확신했다. 예를 들어 양궁은 올림픽에 출전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사용한다. 금메달 따는 선수가 이 제품을 쓰니 찾아서 쓸 수밖에. 골프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들도 많고 그 선수들이 국산 볼을 써준다면 아마추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수 후 1년간 마케팅에 집중한 이유가 그 때문인가.
회사를 인수하기 전에 주변에 볼빅의 이미지를 물으니 다들 좋다더라고. 그런데 정작 구매는 망설이는 거야. 그때의 반응이 ‘글쎄’였는데 그걸 ‘예스’로 바꾸는 데 프로선수들의 손길이 절실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 나와도 의사가 처방하지 않는다면 좋은 약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더라고. 골프볼을 고를 때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들이 20%, 나머지 80%는 주위(전문가)의 권유나 선물 등으로 받는 게 전부다. 프로들이 쓰는 볼은 아마추어도 인정한다는 공식이 골프 분야도 다르지 않다.
클럽 챔피언에 오를 만큼 골프 실력도 대단하다던데.
도움이 많이 됐지(웃음). 사실 제조업에 대한 생각은 늘 갖고 있었는데 나이 오십 넘어 아예 모르는 분야로 뛰어들면 잘못될 가능성이 크겠더라고. 20년 이상 골프볼과 친했으니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고 좋은 볼이 어떤 건지 구별할 줄 아는 눈은 있었다.
좋은 볼? 그렇다면 인수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마케팅에 집중하면서 우선 케이스 디자인을 바꿨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인데, 골프를 좋아하면서 디자인도 최고인 이가 누구인지 수소문했다.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라기에 당장 부탁해서 CI부터 바꿔 나갔다. 몇 달간 연구하면서 2억원가량 투자했는데, 당시 우리 사정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웃음).
디자인이 바뀐 후 매출에 어떤 변화가 있던가.
많이 올라갔지. 3배가량 차이가 났다. 숍에 나가보면 케이스 디자인은 지금도 여전히 인기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여타 국가에서도 볼빅 볼의 인지도가 덩달아 높아졌다.
마케팅의 일환인가. 현재 11명의 선수를 보유한 프로골프단을 운영 중이다. 운영비가 꽤 들 것 같은데.
1년에 약 20억원이 소요된다. 지난해 공격적인 마케팅과 선수들의 활약에 매출 효과를 톡톡히 봤다. 골프로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도 있지. 골프단 운영의 효과는 무한대라고 자신한다. 내 꿈이 한국의 톱프로들이 볼빅 모자를 쓰고 경기에 참가하는 일이다. 그게 실현된다면 외국에서 오픈대회를 개최할 생각이다. 대회가 해외로 중계되면 그 효과가 어떨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역시 미국과 일본 시장을 노리는 것인가.
전 세계가 우리 시장이지만 미국과 일본 시장의 마케팅을 벤치마킹할 필요는 있다.
그들이 자국 대회를 해외 선수에게 개방하는 이유가 뭘까.
국내 대회의 메인스폰서는 골프회사가 아니다. 은행이나 보험, 전자회사인데, PGA, LPGA 선수들이 대회에서 사용하는 건 모두 골프용품이거든. 그러니 국내 대회에 외국 선수들을 끌어들여봤자 오히려 손해지. 미국이나 일본은 자국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자국 골프용품을 사용하게 한다. 외국 선수들이 우승해 지출한 돈보다 몇 배의 광고와 홍보 수익이 생기게 마련이다. 국가적인 이익이지.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산업적인 측면에서 골프도 국가적인 세일즈가 필요하다. 국내 브랜드를 적극 홍보하고 골프 투어 등 골프 관련 산업의 관심이 요구된다.
첫 걸음 이후 앞으로 10년이 중요한데.
국내에서 1등은 당연한 사실이고 앞으로 5년 내에 세계 3대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다. 그 후 토털 브랜드로 의류 등 골프용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국내 브랜드가 우뚝 서야 좋은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 아닌가.
여기엔 물론 국가적인 지원도 요구된다. 골프가 더 이상 떳떳하지 못한, 비싼 스포츠가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떳떳한 스포츠로의 인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