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올해 실적은 대단하다. 지난 2년간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냈을 뿐 아니라 매출액과 영업이익 면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8조5616억원, 영업이익 9304억원으로 올해 초 계획했던 연간 영업이익 목표 8000억원을 이미 초과 달성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에는 국내 항공업계 사상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도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도 대한항공의 사상 최대 실적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민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11월8일 대한항공에 대해 “내년 국내선 및 화물 부문의 성장세 둔화에도 국제여객 탑승률과 화물 부문 탑재율이 모두 상승하면서 올해보다 소폭 증가한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폭 증가’라고 언급했지만 ‘사상 최대’ 실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올해보다 증가할 것이라는 의미다. 대한항공의 내년 실적도 고공비행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2004년 대한항공 입사 후 전무까지 승승장구
대한항공의 실적이 고공비행하면서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외아들 조원태 전무다. 조 회장은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으로 최근 한진그룹 내 사업보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진그룹 한 관계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그룹의 사업은 이미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며 “그보다는 삼수를 하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으로서의 책임을 더 막중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런 조 회장을 보좌하고 나선 사람이 바로 조원태 전무다. 지난해 말 조 전무가 승진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 사람들 사이에서는 ‘초고속 승진’, ‘3세 경영 시동’이라는 말이 오갔다.
2003년 8월 한진정보통신 영업기획담당 차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조 전무가 대한항공에 입사한 것은 2004년 10월. 직책은 경영전략본부 경영기획팀 차장이었다. 이후 2006년 1월 자재부 부장, 2007년 1월 상무보, 2008년 1월 상무B, 2008년 8월 여객사업본부 부본부장, 2009년 1월 상무A를 거쳐 2010년 1월 정식으로 전무 타이틀을 달았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승승장구한 것이다. 현재 조 전무는 또 유니컨버스, ㈜한진, 한진드림익스프레스 등 한진그룹 계열사의 등기이사다.
193㎝의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조 전무는 1976년 조 회장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어린 시절 조 전무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졸업하고 귀국 후 인하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또 2006년 12월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지난 여의도 한국투자증권빌딩에서 열린 대한항공 기업설명회(IR) 자리에 조 전무는 대한항공을 대표해 참석했다.
기업설명회에서 달라진 모습 보여
이날 기업설명회는 대한항공이 4년 만에 마련한 자리였다. 각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기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조 전무는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를 보이며 기자들의 질문에 또박또박 자신 있게 답변했다.
그런 조 전무의 모습을 본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는 ‘조원태 전무가 달라졌다’, ‘전무 승진하더니 제대로 하는 것 같다’, ‘한진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될 듯하다’는 등의 얘기가 오갔다. 조 전무는 이날 기자들을 상대로 내내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여 그동안 곱지만은 않았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이 불참한 것을 두고 조 전무에게 본격적으로 힘이 실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대한항공의 기업설명회가 있기 전인 지난 3월 대한항공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과 영업 방해’의 이유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저가항공사의 시장 진입과 사업 활동을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결정 탓인지 이날 조 전무에게는 저가항공에 대한 질문도 쏟아졌다. 그러나 조 전무는 “저가항공사와 대한항공은 시장이 달라 경쟁관계로 볼 수 없다”며 “명품 좌석과 서비스로 무장한 대한항공과 가격 경쟁력이 바탕인 저가항공사는 개척할 수 있는 노선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항공은 성장하는 저가항공 시장에 대해 진에어를 통해 대응하고 개척해 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진에어’는 대한항공이 100% 출자로 설립한 저가항공사다.
조 전무는 또 “항공기가 부족할 정도로 시장 상황이 너무 좋지만 신규 항공기 인도 지연으로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재부 총괄팀장을 지냈고 여객사업본부장으로서 추가 항공기 도입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이와 관련 조 전무는 “A380 인도 시기가 당초 올 5월에서 11월로, 다시 내년 5월로 두 차례 연기됐다”며 “B747-8과 B787도 인도 시기가 미뤄져 효율이 떨어져 빼거나 매각하려던 항공기를 계속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조 전무는 지난해 6월 인천공항에서 열린 B777-300ER 명품 항공기 공개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주도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조 전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기자들 앞에 처음으로 나선 것이었다.
조 전무는 이 자리에서 “여객사업본부장으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고객 만족”이라며 “과거의 항공기가 기성복이라면 좌석을 비롯해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B777-300ER 항공기에 선보인 서비스는 맞춤복”이라고 설명했다. 또 “눈높이가 높아진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퇴보”라며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좌석을 편안하게 하고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차세대 항공기를 적극 도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전무는 “주문형 오디오비디오(AVOD) 시스템 성능을 향상해 고객 불만 사항을 크게 줄였고 시트 편의성도 개선했다”며 “이 모든 것이 대한항공이 명품 항공사로 가는 과정”이라고 자부심도 감추지 않았다.
항공기 공개 행사장 때와 기업설명회에서 보여준 조 전무의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워낙 베일에 싸여 있었던 탓이다. 언론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이기 전 대한항공 내에서 경영수업과 훈련을 받아왔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IT 기기에 관심 많은 얼리어답터
조 전무가 ‘경영 마인드’를 본격적으로 내비치기 시작한 것은 상무 시절이다.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 건물에서 상무 직책을 수행하던 조 전무는 당시 아버지 조양호 회장에게 업무보고를 하러 갈 때마다 몇 번이고 예행연습을 했다고 한다. “보고할 때 한마디라도 얼버무린다 싶으면 불호령이 떨어지니까요”라는 것이 당시 조 전무의 말이었다. 그만큼 조 회장이 외아들 조 전무를 혹독하게 훈련시켰던 것이다.
조 회장은 보고하는 사람이 그 누구든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면 올바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조 전무는 그때 아버지 조 회장의 성향을 이렇게 말했다.
“하나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전체를 일일이 다 확인하시지만 막힘없이 보고하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사인을 해주시죠.”
얼리어답터로 알려진 조 전무의 대한항공 입사 후 첫 성과는 타사 제품들보다 뒤떨어져 있던 사내 그룹웨어를 교체한 것이다. 조 전무 주도로 사내 그룹웨어를 교체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은 사원 개인별 이메일이 아닌 부서별 이메일을 할당해 사용하고 있었다. 사내 그룹웨어 교체에 대해 초기 여러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직원 개개인에게 모두 이메일 서버를 할당할 수 있다는 점은 고객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하는 대한항공의 경영방침으로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항공업은 어느 업종보다 상호 소통과 통신, IT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대한항공은 조 전무 입사로 이 부분을 한층 강화했다. 비록 사내 서버지만 사원 개개인이 아니라 부서별 이메일 할당은 21세기 첨단시대에 20세기 시설로 경쟁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 초만 해도 웬만한 기업에서는 전부 사원 개인 이메일을 쓰던 때”라고 회상했다. 시대에 뒤떨어져 있던 사내 시스템을 젊은 조 전무 한 사람이 싹 바꾸었던 것이다.
조 전무가 전무로 승진한 올해 대한항공의 실적은 사상 최대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실적이 모두 조 전무의 경영능력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경쟁 항공사의 실적과 해운업계의 실적도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한 사실을 보면 항공·해운업계가 전반적으로 호황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항공·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나 올해부터 항공·해운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항공·해운업계의 실적이 좋은 것은 업계 호황 덕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대한항공의 실적 증가세가 다른 항공·해운업계의 그것보다 눈에 띄게 좋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항공기·노선 확대 절실
조 전무의 최대 관심은 대한항공을 명품 글로벌 항공사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 조 전무는 “노선망과 스케줄 서비스를 경쟁력으로 시장을 개척하겠다”면서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지는 자칫 대폭적인 운임 상승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시장과 고객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서비스 질이 얼마나 향상될지가 관건이다. 조 전무는 여객사업본부장으로서 이를 책임지고 조정할 의무가 있다.
조 전무는 또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노선을 확대하겠다”고도 말했다. 이를 위해선 항공기의 추가 도입이 절실하다.
대한항공은 올해 B777-300ER, A330-200 등 6대의 항공기를 도입했다. 항공기의 경우 주문하고 나서 인수까지 보통 3~4년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항공이 올해 들여온 항공기들은 이미 2006년도에 주문했던 물량이다. 대한항공이 항공기들을 주문했던 2006년 당시에는 전 세계 항공 시장이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보유 항공기도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오히려 항공기를 도입했던 것이다.
당시 항공기 구매 계약 규모는 공시가 기준 55억 달러였다. 이는 국내 항공사 단일 구매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기 때문에 전 세계 항공업계는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이때 항공기 도입을 결정한 것에 대해 별다른 질타가 없다. 도리어 과감한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항공기 도입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인 조 전무는 모든 결정과 추진은 아버지 조양호 회장이 한 일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명품 항공기 도입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기 상황이 어려운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도 그걸 피할 길은 없어요. 하지만 남들이 서 있을 때 한발 더 나아가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최신 기종은 비싸지만 연료 효율성은 훨씬 높아요. 한때 국제 유가가 140달러까지 뛰었습니다. 지금은 유가가 비교적 안정돼 있지만 언제 다시 그런 상황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B777-300ER은 기존 항공기보다 연료 효율성이 10% 높습니다. 유가 상승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이 오히려 더 높다고 볼 수 있어요. 또 고객들은 갈수록 기내의 쾌적성과 서비스를 더 까다롭게 따져보고 있습니다.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은 퇴보나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외아들의 경영활동을 아버지 조양호 회장은 흡족해 하는 눈치다. 조 회장은 지난해 7월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3차 민관합동회의에 참석한 직후 조 전무의 경영활동과 능력에 대해 “지금까지는 아주 잘하고 있다”며 만족하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또 조 전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줄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아들 조 전무에 대한 조 회장의 이런 마음은 승진 인사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지난해 11월에는 리처드 앤더슨 델타항공 회장이 “월터(조 전무의 영어이름)는 스카이팀 국제협력팀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해 조 전무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 같은 사실을 봐서도 조 전무는 대내외적으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 전무는 지난 4월 기업설명회 때 “올해 안에 재무구조개선약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적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11월 채권단과 3년간의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바 있다.
글로벌 명품 항공사의 주역으로
조 전무의 주도로 향후 한진그룹이 재무구조개선약정에서 훌륭히 벗어난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 고 조중훈-조양호-조원태로 이어지는 ‘3세 경영’ 시대를 열어갈 조 전무가 단순히 명품 항공기를 도입하고 노선을 확대하는 외형적 요건 외에 합리적인 운임과 최고의 고객 서비스 제공이라는 품질경영을 병행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조 전무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있다. 대한항공을 명품 글로벌 항공사로 이끌어 나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