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단 테스트를 위한 안테나숍으로 시작한 장미라사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맞춤 전문 테일러 숍으로 꼽힌다. ‘장미라사’라는 브랜드를 성공의 반열에 올린 데에는 이영원 대표의 남다른 열정과 앞을내다보는 탁월한 선구안, 끊임없는 연구가 큰 역할을 했다. 최고의품질만이 확실한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영원 대표를 만났다.
맞춤정장 숍이라고 하기엔 이름이 독특하다. 무슨 뜻인가.
장미라사는 1956년 삼성 제일모직에서 원단을 만들기 시작하면서원단의 품질을 테스트하던 팀이었다. ‘장미’는 삼성의 사화(社花)다. ‘라’는 구라파를 의미하고, ‘사’는 섬유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일본식 이름에 장미를 붙여 놓은 것이다. 여성스러운 느낌이 강해서 상호를 교체했던 적이 있었는데, 고객들의 항의가 많아다시 장미라사로 돌아왔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맞춤복보다는 기성복을 많이 찾지 않나. 운영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위기가 몇 번 찾아왔다. 1998년 외환위기로 시장이 위축됐을 때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고객층을 좁혔다.그 전에는 슈트의 가격대가 다양한 편이었는데 외환위기 때 낮은가격대의 상품들을 없애버렸다. 처음에는 항의가 많았다. 일반 고객들은 전부 빠져 나가고 소수의 고객만 남았다. 다들 고객을 늘리려고 애쓰는데, 반대로 줄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선택이었지 않은가.
물론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원칙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진정한비스포크(Bespoke)’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했고 원단부터 작은 자재까지 모두 다 주문생산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에 가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질 좋은 원단을 직접 제작해 들여왔다.고품질의 원자재를 이용해 완성도 높은 슈트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고객들이 다시 늘었다. 옷을 만드는 과정을 바꾸고 시스템을확실히 정착시키기까지 8년 정도 걸렸다.
가격대에 불만을 가지는 고객은 없나. 결코 싼 가격은 아닌데.
장미라사에서 슈트 한 벌을 맞추는 데 200만원에서 300만원대가든다.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로 따지면 오히려 싼 편이다. 기성복인에르메세질도 제냐나 로로피아나 같은 브랜드의 슈트보다 훨씬 싸다. 같은 원단을 사용해도 간접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전에는높은 가격을 항의하는 고객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드물다. 장미라사의 슈트를 입어보면 그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때문이다.
최고의 품질이 곧 최선의 마케팅거대 자본을 앞세운 패션 브랜드에 밀리지 않기 위한 특별한 마케팅 전략이 있는지 궁금하다.
최고의 홍보와 마케팅은 품질이다. 훌륭한 품질만큼 효과적으로 홍보되는 것은 없다. 우리 옷을 입어 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브랜드의 옷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옷을 만들면 자연스레 고객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VIP혹은 유명인사 고객의 확보다. 한때는 직접 네팔로 찾아가 주문을받아 네팔 왕실의 옷을 제작하기도 했다. 옐친 러시아 전 대통령의 슈트를 제작한 적도 있다. 지휘자 정명훈의 연미복을 제작하는 스폰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고객들은 보통 어떤 스타일을 주문하나.
중장년 이상 고객들은 지나치게 크게, 젊은 고객들은 너무 작게 입으려고 한다. 서양인들이 슈트를 몸에 딱 맞게 입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 입어보면 몸에 붙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가 아니다. 패턴 자체가 슬림해 보이는 것이지 사이즈가 작은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나라고객들은 아직 몸에 맞는 옷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테일러링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테일러 수준은 서양에 훨씬 못 미친다. 가까운 일본에 비해서도 한참 떨어진다. 하지만 바느질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옷을 보는 심미안을 좀 더 다듬고 발전시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데, 쉽지 않다. 옷이라는 것이 학문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많이 보고, 많이 입어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맞춤 테일러 숍 시장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기성복의 가격은 점점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옷에 대한 관심 또한 점점 많아지고 있고, 무엇보다 발전적인 점은 젊은 사람들이 맞춤 슈트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기성복 브랜드에서는 같은 옷을 대량생산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개성을 중시하지 않나. 똑같은 옷을 입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슈트를 입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활동하는 테일러들의 나이가 많은 편이지 않나. 국내에 그들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교육 시설이 있는지 궁금하다.
기술자 노조단체와 함께 ‘테일러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인들이 맞춤복에 관심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직접 기술을 전수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노동부에서도 지원해주는 정식 교육기관으로 전문적인 테일러링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프로그램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최근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 점점 활성화되고 있다.
다른 지점을 오픈할 계획은 없나.
현재까지는 없다. 만약 오픈하게 되면 부산이 될 것 같다. 1년에 한두 번 투어 형식으로 부산에 가서 주문을 받아 제작하고 있는데 반응이 매우 좋다. 앞으로 빈도수를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